'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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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후지코후지오
만화의 길 제1권
키가 작고 운동도 못하여 항상 놀림감이 되는 안경잡이 초등학생 '마가 미치오'의 유일한 낙은 만화를 그리는 것. 2차대전이 끝나고 전에 살던 마을로 돌아온 미치오는 똑같이 만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이노 시게루'라는 소년과 만나, 그의 재능에 반하여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급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직접 그린 그림을 환등기에 비춰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하거나, 육필회람지를 돌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등, 여러가지 경험을 쌓아가며 만화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는 피폐한 세상에서 만화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꿈같은 일로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두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만화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천재작가 '테즈카 오사무'의 <신(新)보물섬>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의 만화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에 큰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테즈카 선생에게 팬레터를 보내는 한편 지역신문에 원고를 보내어 본격적으로 자기들의 솜씨를 테스트하기에 이르는데...

일본 전후(戰後) 만화사에서 가장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후지코 후지오인데, 이 이름은 사실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라는 두 작가가 합작 활동을 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한 펜네임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하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온 두 사람은 결국 1988년에 둘로 갈라져서 독자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는데, 후지모토가 후지코 F. 후지오라는 이름을, 그리고 아비코가 후지코 후지오 A라는 이름을 각각 사용함으로써 서로를 구분짓게 되었다. 본작은 후지코 후지오 A(즉 아비코)가 자기의 어린시절 체험과 만화에 대한 추억, 그리고 평생의 친구인 후지모토와의 합작 활동을 바탕으로 하여 엮어나가는 장대한 자전적 이야기(전 14권!)의 첫번째 권에 해당한다. 다만 현실을 그대로 옮긴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여러 가지 면에서 극적인 각색이나 변형이 가해져 있어, 실제의 후지코 콤비와는 약간 다른 가상의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두 친구가 처음으로 만나는 시기나 <신보물섬>을 보게 된 경위, 첫번째 합작장편 <유토피아>를 둘러싼 사정 등등이 실제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면서도 만화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스스로도 다양한 체험을 쌓아나가는 두 친구의 모습이나, 실제의 작가나 작품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묘사하는 전후 일본만화의 성립사 등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우정의 중요함에 대해 좋은 충고를 해 주는 친구 누나 노리코라던가, 테즈카를 거장으로 인정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극화체 스타일을 목표로 삼고 자신만만하게 정진해 나가는 오오사카 출신의 만화가 지망생 게키가 다이스케 등등 매력적인 조연도 차례로 등장하여 이야기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나 주인공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장래의) 거물작가 테즈카 오사무의 등장이 인상깊은데, 결국 방학중에 밤 열차를 타면서까지 타카라즈카 시(市)로 달려가서 테즈카 본인을 만난 두 주인공이 그의 자상한 인간 됨됨이나 보통 작가들 이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깊은 감명을 받아, 자기들이 그리다 만 허접 원고를 달리는 열차 밖으로 내던지며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맹세하는 부분이 1권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하다. (초판과 중판을 가리지 않고 제1권의 표지그림은 반드시 테즈카의 얼굴로 채워버리는 것만 봐도 이 콤비가 얼마나 테즈카를 존경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마냥 밝은 이야기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본작은 두 주인공 중에서도 아비코의 분신이라 할 만한 미치오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데, 부족한 신체조건이나 편모 슬하라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평소에도 열등감에 싸인 채로 지내던 미치오가 항상 긍정적이고 자기보다 훨씬 노력하며 솜씨도 더 좋은 시게루와 자기를 비교하며 남몰래 질투심을 불태우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좁은 도량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는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1권 막바지에는 그러한 미치오의 복잡한 심리가 이런 저런 사소한 일이 쌓인 끝에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어, 앞으로의 전개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SF/홈드라마에 주력하며 밝고 건전한 작풍을 지향했던 후지모토와 괴기/풍자에 주력하며 보다 시니컬한 세계를 추구했던 아비코의 차이를 두 주인공의 성격과 오버랩시키며 본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좋은 책을 보여주신 사노님께 감사드린다.

사노님의 추천사
그날, 소년들은 신(神)을 알현했다
by 잠본이 | 2006/06/17 13:15 | 만화광시대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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