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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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뭔소리야
바람은 불어도 나는 숨바꼭질을 하겠어!
한진희: 야 김반장, 요즘 왜 그리 퇴근길이 뒤죽박죽이냐? 집이 두채라도 되는거야?

손현주: 그래요 황씨아저씨, 난 집이 두채라고요!

한진희: 두채? 리..... 리얼... 리?


...이게 과연 뭐가 웃긴건지 쓰고나서 보니 나도 모르겠네 OTL
by 잠본이 | 2013/08/23 21:51 | 개그 액추얼리 | 트랙백 | 덧글(6)
쿼런틴
원제: Quarantine
저자: 그렉 이건
출판사: 행복한책읽기

지난 토요일 모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후 4일만에 독파.

2066년의 지구. 30여년 전에 출현한 의문의 거대 구체 버블(bubble)이 태양계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밤이 되어도 별이 보이지 않는 세계.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직 경관이자 사립탐정인 닉 스타브리아노스는 24시간 완벽한 감시체제 하에 있는 병원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젊은 정신지체 여성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익명의 의뢰를 받는다. 닉은 이 여성이 호주대륙 남부의 신생 독립국가 '뉴홍콩'의 한 연구소로 보내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추적을 개시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주저리
by 잠본이 | 2004/09/24 10:00 | 대영도서관 | 트랙백(2) | 핑백(3) | 덧글(20)
파라켈수스
원제: Paracelsus
저자: 에른스트 카이저
출판사: 한길사 (한길로로로 017)

파라켈수스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엔하임은 스위스의 슈비츠 주에서 1493년경에 태어나 1541년 잘츠부르크에서 생을 마친 의사이자 철학자이고 신비가이자 연금술사였다. 말년에는 종교에도 관심을 보여 성경의 여러 부분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오컬트 쪽에 관심을 갖다 보면 이 아저씨가 역사상의 유명한 연금술사 중 한 명으로 나오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의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고치고 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구태의연한 의학에 도전하는 것이 그의 취미(?)였던 듯 하다.

본서는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의 극히 일부분과 그에 관한 여러가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극히 신중한 태도로 이 재미나는 인물의 일대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워낙 옛날에 살았던 인물이고 개인사에 대해서는 남겨진 자료가 극히 적어서 대부분의 서술은 사실에 대한 진술보다는 파라켈수스 자신의 저작에서 따온 구절이나 동시대인들과의 서신, 그리고 당시의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대한 설명 등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원래 독일어(일부는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옮긴 번역체)로 되어있는 물건을 다시 철학 전공자의 손으로 번역한 것이다보니 다소 의미가 아리송한 부분도 많고 쉽게 술술 읽혀지지 않아서 난감한 구절도 적지 않다. 그래도 당시 시대상과 연관지어 그의 사상과 일생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는 데에는 그런대로 도움이 된다.

본서에 따르면 파라켈수스는, 갈레노스로 대표되는 전통의학의 아카데미즘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민중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학의 효용과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려가며 쌓은 경험적 치료술을 더욱 중시했다. 또한 단순히 '기술'로만 여겨지던 의학을 점성술과 종교와 연금술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과도 접목시켜 하나의 독특한 철학으로까지 승화시키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는 과거의 인습이나 기득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칭송과 비판을 동시에 사게 되어 평생토록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했다. (결국 늙고 병약해진 뒤에야 어떻게든 안주할 곳을 찾으려고 하다가 잘츠부르크에 도달했지만 얼마 안 되어 죽었다)

물론 그의 사고방식이나 종교관, 그리고 그가 구사하던 의학 지식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중세의 그늘 아래에서 성립한 것이었고 그가 태어난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전통'이나 '진리'라고 떠받들어지는 것들을 의심하고 이의를 제기하여,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여러가지 의학적 발견들로 가는 물꼬를 텄다. (광산 노동자들의 직업병이나 인간의 정신이 육체에 주는 병리학적 영향 등등) 한마디로 그는 변혁기의 한가운데에 서서 부단한 도전과 개혁을 추구한 이단아였던 셈이다. (무려 '의학계의 루터'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단순히 반대파의 비난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니까...)

그가 살던 시대 역시 르네상스와 인본주의의 발흥, 신대륙 발견으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 종교개혁과 농민반란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폭발, 그리고 신성 로마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강호 프랑스의 대두로 촉발된 유럽의 재편 등등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건들이 겹쳐져, 모든 것이 '새롭게 판을 짜는' 그런 시대였다. 파라켈수스는 마르틴 루터보다 10살 아래였고 그의 강연을 들은 일도 있다. 또한 파라켈수스는 인본주의 선두주자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의 학자 에라스무스를 고쳐준 일도 있다고 한다. 사소한 일 같지만 이렇게 굉장한 인간들이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찾는 것도 의외로 재미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인물의 인생이 단순히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와 관계를 맺어가며 흘러가는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다. (뻔한 얘기를 이렇게 잘난듯이 하는 것도 병인데...)

편하게 읽기에는 좀 부담이 되고 생각보다 내용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김이 새지만, 파라켈수스란 인물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이제 이 영감을 어떤 식으로 나의 16세기 망상에 등장시킬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독서의 동기가 불순해;;;>)
by 잠본이 | 2004/05/22 01:34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10)
롤리타
원제: Lolita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출판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별다른 고생이나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한번의 이혼경력을 제외하고) 중년의 유럽인 문학자 험버트 험버트(가명). 그에게는 어릴 때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안타까운 첫사랑의 추억이 남아있어, 그 때문인지 십대 초반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새 생활을 시작하려던 그는 미망인인 샬럿 헤이즈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되는데, 샬럿의 어린 외동딸인 돌로레스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바로 그때부터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엄마와 딸의 날카로운 신경전과, 그 딸에게 어떻게든 접근하려 하면서도 체면을 차리는 남자의 위선이, 한 지붕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데...

본작은 2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위 줄거리는 그 일부만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는 일단 위선적이고도 예민한 감성을 가진 속물 험버트와 억척스럽고 질투심 많은 샬럿,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악하고 요염한 이중적인 속성을 갖춘 돌로레스(오직 험버트만이 그녀를 롤리타라고 부른다. 다른 이들은 로, 돌리, 돌로레스 등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의 삼각관계가 진하게 펼쳐지리라고 예상하지만, 작가는 샬럿의 어이없는 교통사고라는 이벤트를 통해 그 기대를 여지없이 날려버리고, 험버트와 롤리타가 세상의 눈을 피해 미국 일대를 헤매는 도피행을 그리는 제2부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나 험버트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것은 자꾸만 어긋나고, 롤리타는 그의 상상과는 반대방향으로만 움직이더니 결국 그를 떠나버리며, 급기야 험버트는 (중반부터 슬금슬금 나오긴 했으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이 위장하고 있던) '어떤 인물'이 거기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짓고 그를 죽여버린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사실 들어가 있는 내용은 대부분 험버트의 자기변호와 망상과 말장난으로 가득하여, 읽고 나면 '뭐가 이따위냐?'라는 느낌으로 당혹스러워진다.

본작은 그 민감한 소재 때문에 발표 당시인 1950년대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고, 지금까지도 입방아찧기 좋아하는 여러 평론가에 의해 각각 다른 식으로 해석되고 음미되어 왔다. 후기로 미루어 보아 작가가 처음부터 중년남자와 어린 소녀의 비련에 가득한 러브스토리, 라는 컨셉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시작한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두 번에 걸친 재구성과 긴 창작 기간을 거치면서 이 작품의 핵심은 그 컨셉에서 3만광년쯤 빗겨가 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이어린 여자아이에 대한 성적 호기심을 병리학적으로 정의하는 '롤리타 컴플렉스'라는 용어(및 그것을 거꾸로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잇속을 채우는 일본의 문화산업계) 덕분에 본작의 제목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 (두 번에 걸친 영화화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으리라) 하지만 그에 비해서, 이 소설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극히 적어 보인다.

게다가 소설 자체도 제대로 읽어보면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다. 음흉한 중년의 에로틱한 로망 판타지 비스무리한 걸 기대하며 본서를 손에 잡은 독자라면, 곧 어지러이 춤추는 만화경을 방불케 하는 험버트의 몽롱하고도 자기도취적인 서술과 일요일 조간신문 기사보다도 재미없는 줄거리,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에 기가 질려 책을 내던져버릴 것이 틀림없다.

시선집중의 대상이어야 할 롤리타 본인도 사실 소설 안에서는 그저 '약간 눈에 띄게 이쁘고 버릇없는 보통 아이'에 불과하며 그녀를 팜므 파탈로 신격화시킨 건 순전히 험버트의 콩깍지와 우유부단함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간에 험버트의 곁을 떠났다가 '하층민의 임신한 마누라'로서 그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서 돈 좀 달라고 하는 롤리타의 모습은, 로리콘이니 뭐니 하는 관념 자체를 산산이 깨부술 정도로 리얼하다. -_-

출판 당시에는 논란거리가 되었던, 험버트의 무신론적인 오기나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행각에 대해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된 오늘날의 평자들은 이러한 '애매모호함'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영원한 미에 대한 동경과 그에 결코 다다를 수 없는(혹은 다다른다 치더라도 그로 인해 오히려 그것을 스스로 파괴시켜버릴지도 모르는) 안타까움이라던가, 나이와 관습을 초월한 진정한 애정의 구현이라던가, 혹은 창작인으로서의 작가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진실'을 쫓아가지만 결코 그것을 잡지는 못하고 반대로 자기가 쓰는 것이 '갈데없는 거짓말의 뭉터기'에 불과함을 깨닫고 그것을 자기 손으로 해체해버리는 몸부림이라던가. 뭐 하여튼 많다.

작가 나보코프가 러시아 혁명 등의 역사적 혼란으로 인해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가정과 조국을 잃고 타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배경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유럽 출신의 지식인' 험버트는 역시 이방인인 작가의 분신으로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애틋함을 찾아 방황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는, 마음의 행로를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자기가 상실한 과거의 무언가(어릴 때의 여자친구 애너벨)를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미국(영악하고 종잡을 수 없는 두 얼굴의 롤리타)에서 어떻게든 구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의 환상 혹은 착각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위선은 일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결국 험버트는 자기의 운명을 꼬아놓은 장본인(이라고 그가 생각하는)이자 그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롤리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어느 인물'을 총으로 쏴 버리고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린다. 확실히 그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죄인이고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파렴치한이지만, 모든 정황이 그의 눈을 통해 묘사되기 때문에 독자는 이자를 동정해야 될지 어째야 될지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또한 본작이 자랑하는(?) '애매모호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후기에 따르면, 나보코프 본인은 보다 풍부한 표현을 원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기의 모국어를 내버려둔 채, 어디까지나 자기에게는 '외국어'인 영어로 이 소설을 쓰느라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본작에는 설명이나 묘사보다는 사물이나 정경을 그저 단어의 나열로 때워버리는,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부분이 많다. 게다가 험버트의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혹은 그 반대로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를 때 튀어나오는 그 수많은 동음이의어의 행렬은 또 뭐란 말인가! 그 덕분에 소재 자체는 꽤나 끈적끈적함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굉장히 메마르고 거침없는 인상을 준다. 과연 이 아저씨가 망명같은 거 안 하고 자기 모국어로 자유롭게 이 이야기를 썼더라면, 그때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방인인 험버트가 혼란과 초조함에 쫓겨가며 자동차로 미대륙 여기저기를 뱅뱅 도는 모습은 어딘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 텍사스> 제1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토리나 캐릭터 면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뿌리를 잃어버린 채 자기가 무엇을 찾는지도 잘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상실감에 가득한 남자'의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썰을 풀어놓긴 했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이 소설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고, 솔직히 알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포스트모던 문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물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ps 롤리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첫번째 남자라는 기념비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본편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찰리 모건은 무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단다. 이런 식으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픽션상의 설정만 모아봐도 꽤 웃길 것 같다. (엑스맨의 저거노트라던가...)

ps 본인의 되도 않는 습작 중 하나인 '저 양을 잡아라'의 두 주인공 이름은 이 책과 저자명 갖고 장난친거지만...내용상 관련은 저언혀 없음.
by 잠본이 | 2004/05/11 14:13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덧글(8)
'성의 역사' 1권
다 보고 떠오른 생각은...
푸코영감이 죽은게 무지 애석하다는...
아니 뭐 아까운 인물이라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을 너무 지리멸렬하고 난삽하게 써놓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터라...
엄청 스트레스를 받은 관계로...

아직 안죽고 살아있었으면

내가 프랑스로 건너가서 암살해주었을텐데~~~


라는 심정이 들어서.

그거야 어떻든 결국 하려는 얘기는 性 자체보다는 그것을 매개로
인간들을 통제하는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하여튼 교양수업 과제로 이런걸 요약해야 하다니 머리가 지끈...
(아마 취미로 읽으라고 했으면 금방 내던졌을테지)

자아 힘내서 영감을 물리치자! (으잉?)


ps 대머리에다 알듯말듯한 소리만 지껄이는게...
어째 토미노 요시유키 생각나게 하는...
(그러나 그 알듯말듯의 레벨이 달라 레벨이;;;)
by 잠본이 | 2003/10/24 18:27 | 대영도서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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