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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F로부터의 초대장
세계를 보는 또 다른 시선 :

대륙에서 온 여섯 통의 편지


아직까지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중국’과 ‘SF’라는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것이 매우 낯선 경험으로 남아 있다. 옛날부터 전해진 중국의 각종 설화와 기담(奇譚), 그리고 일세를 풍미한 무협지 등을 통하여 중국의 판타지 소설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SF는 류츠신의 장편소설 『삼체』를 제외하면 그다지 본격적으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고, 그런 만큼 일반 대중은 물론 뜻있는 SF 독자들 사이에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중국 SF는 분명히 실존하며, 정치 사회적 격변으로 인해 몇 번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장르문학의 기수로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바로 그 미지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에게 날아온 초대장인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하는 망원경이기도 하다.

이...이것이 대륙의 실력인가!
by 잠본이 | 2018/01/28 16:34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덧글(2)
마왕 단테의 우여곡절 (4)
원문: http://www.asahi-net.or.jp/~WX5H-KTB/gofo/dante4.html

(4) 마신편

그런데 한편으로 <마왕 단테>가 <데빌맨>에 이행하는 요소를 많이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연재의 계기가 되었던 '고지라의 시선', '거대한 육체를 손에 넣은 인간의 곤혹스러움'도 또한 그 후의 나가이 고 작품에 승계되었다.
그 타이틀은 바로 <마징가 Z>.

원작만화판 <마징가 Z>의 첫머리를 읽어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카부토 코지는 지하에 숨겨져서 기계로 제어되는 거대한 마신의 봉인을 푸는 것이다. 자택 지하와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의외로 시각화된 구도는 똑같다.

게다가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는 인간을 엄청나게 초월한 힘을 갖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파괴하는 초반의 전개는 그야말로 <단테>의 발전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러 비슷한 앵글에서 모사해 보았더니, 단테와 마징가의 얼굴 디자인에도 비슷한 요소가 숨어 있다.
오각형의 눈, 양 미간에 집중되어 있는 캐릭터의 의식, 찢어진듯한 입. 얼굴 파츠만 단순화시켜 보면, 더더욱 공통의 모티브를 갖고 있다는 점을 눈치채게 된다.
더더군다나, 바로 눈 옆에서부터 양쪽 귀부분을 뿔처럼 돌출된 형태로 그리면, 두 디자인 모두 '틀이 잡힌다[決まる]'.

후반의 히어로성은 <데빌맨>에 이어졌고, '마계'라는 모티브는 그 후의 다이나믹프로 만화라는 장르마저도 결정지은 본 작품이지만, 그와 동시에 당초의 '거대괴수의 시선을 인간이 손에 넣는다면?'라는 테마도 이처럼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마징가 Z>를 읽어보면 TV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세계관이 눈에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도시를 파괴하고 자위대에게 공격받아, 스스로의 의지와는 반대로 주변을 잿더미로 만드는 마징가의 모습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내포하고 있다. 그 파괴 속에서 가까스로 자기 힘으로 마징가를 통제하게 된 카부토 코지는, 어쩌면 몹시 괴로워하고 번민한 끝에 악마의 힘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우츠기 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끝)

Original Text (C) Freak KITABA
Translated by ZAMBONY 2015


...사실은 이분이 저 글을 쓴 뒤에 작가가 <신 마왕 단테>라는 리메이크를 내긴 하는데...
앞에서 제기한 의문에 어느정도 답을 주긴 하지만... 역시 용두사미로 끝나서
속시원한 해결은 보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게다가 동시제작된 애니는 폭망;;;)

...네? <진 마왕 단테> 말인가요? 지저스와 유다를 짝지워준 훌륭한 BL만화죠(딴청)
by 잠본이 | 2015/09/13 22:38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덧글(4)
마왕 단테의 우여곡절 (3)
원문: http://www.asahi-net.or.jp/~WX5H-KTB/gofo/dante3.html

(3) 신과 마(魔) 편

메돗사- 그 눈에 비친 생물 전부를 돌로 바꿔버리는 마녀. 하지만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마력을 쓴 것은 바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료의 동급생으로 나가이 캐릭터들 중에서 1, 2위를 다투는 새디스트 나이스가이 오오시바 소스케[大柴壮介]가 의외의 사실을 밝힌다. 우츠기 코스케[宇津木康介]의 자식이기 때문에 료는 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전에 깔아두었던 복선이 여기서 회수된다. 악마 퇴치를 지휘하는 '신의 교단'의 리더가 바로 료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료는 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단테에게 유혹받은 것인가... 역시 신의 측에 서서 악마를 토벌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지만 '신의 교단' 행동대원이었던 오오시바의 너무나도 잔인무도한 악마사냥을 목격하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도망나온 료의 앞에 메돗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메돗사가 료에게 알려준 신의 침략극. 그것이야말로 지옥의 풍경이었다. 남은 페이지를 전부 잡아먹으면서까지 밝혀주는 단테 탄생의 비밀과 신=인간의 정체. 스스로의 입장을 깨닫고 다시금 복수를 맹세하는 단테. 그의 호출을 받고 몰려온 악마군단은 외딴 섬에 집결, 거창하게 악마 부활을 선언하며 이야기는 당돌하게 막을 내린다.

그런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항이 몇 가지 남아 있다.
1. 먼 옛날 단테가 봉인당할 때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여 영혼만 탈출, 그 영혼이 인간으로 환생한 모습이 우츠기 료였음이 밝혀진다. 이것은 료가 '신의 아이'임을 의식하여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가?
2. 단테를 끌어오려고 애쓰던 사탄주의자들은 단테 부활 당시 전멸했는가? 아니면 그들 또한 악마로서의 본 얼굴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3. 만약 단테가 '신의 아이'가 가진 힘이 필요해서 료를 선택한 거라면, 여동생 사오리[沙織]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4. 극중에서 대사로만 등장했던 '아담과 이브'는 대체 어떤 존재였던 것인가?
이들 질문은, 연재잡지 '우리들 매거진'의 휴간이라는 외적 요인 때문에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망상이다.
아담과 이브란 혹시 료와 사오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신의 자손들 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진 채 대대로 살아온 우츠기 일족. 처음으로 신과 합체한 인간의 자손. 하지만 마왕 단테는 료가 신으로서 각성하기 전에 그 혼을 빼앗아갔다. 료의 내면에서 신과 악마가 대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으로서의 힘에 눈뜨기 전의 인간들을 철저하게 학살하는 악마군단을 신의 교단이 막아선다. 그리고 싸움은 료와 사오리의 직접대결을 계기로 절정을 맞이한다...라는 전개가 기다리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차기작 <데빌맨>에서 묘사된 후도 아키라 대 아스카 료의 구도가 딱 저렇지 않던가. 다만, 이야기의 뼈대가 다르기 때문에 보다 신화적, 상징적으로 세련되긴 했지만. 뭐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이긴 하다.

위에서 제기한 의문 중 2.에 대해서는 이후 <데빌맨 레이디>에서 답이 나온다. 역시 단테를 소환하여 자기들이 바라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궐기한 사탄주의자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악마군단이었다. 지옥에 봉인되어 있던 악마의 무리들도 단테는 지상으로 불러냈던 것이다. (계속)
by 잠본이 | 2015/09/13 21:39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덧글(6)
마왕 단테의 우여곡절 (2)
원문: http://www.asahi-net.or.jp/~WX5H-KTB/gofo/dante2.html

(2) 악마인간편

네이팜탄이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가운데 돌연 모습을 드러낸 악마들. 그들은 '신'에게 몸과 마음을 팔아서 인간으로부터의 차별을 회피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단테는 전력을 다하여 '배신자'를 처형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왕의 잔류사념이 저지른 것이고, 료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러던 도중, 료는 갑자기 제정신을 찾는다. 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운명. 단테는 본래의 기억도 되찾지 못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다.

여기서 무대는 일단 '괴수' 마왕 단테의 마크로한 시점에서 우츠기 료의 한 인간으로서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그 선명한 차이는, 이후에 펼쳐지는 나가이 고 마계만화에 공통되는 요소다. 명백히 당초의 구상에서 벗어난 전개다. 그렇다기보다도, 거대괴수의 시점이 당초의 구상을 떠나 홀로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흥미는 이를테면 '악마인간'으로서의 료에게 옮겨간다. 여기서 처음으로 <마왕 단테>는 <데빌맨>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계를 어지럽히는 의문의 사건. 그것은 악마의 짓으로, 료 혼자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날 밤, 사람을 습격한 악마를 결국 료가 '변신'해서 해치운다. 떨쳐버릴 수 없는 번민과 함께. 데빌맨 후도 아키라[不動明]와 같은 종류의 '고독'을 료는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전개가 계속되었다면 단테는 히어로 액션물이 되었을 것이다(*주2). '인간'과 '악마'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전개는 차기작 <데빌맨>에 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이형(異形)의 존재가 된 슬픔,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혼란. 이 테마는 거의 같은 시기에 나가이의 스승인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가 같은 잡지에 연재했었던 <가면라이더>와 통하는 바가 있는데, 이것이 순전한 우연이라고는 해도 흥미깊은 일이다. 그러나 히어로 액션이 될 수 없었던 <마왕 단테>는 마녀 메돗사[メドッサ]의 등장과 미리 깔아놓은 복선(우츠기 료의 가문이 '신의 일가'라는 설정)에 의하여 수습의 방향을 찾아나가게 된다. (계속)

*주2/ 실제로 당시 <우리들 매거진> 편집장의 방침은 이 잡지를 히어로 코믹스 잡지의 최전선에 세우는 것이었던 듯하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가면라이더>, 카지와라 잇키 & 츠지 나오키 <타이거 마스크>, 사이고 코세이[西郷虹星] <초인 헐크>, 히라이 카즈마사 & 사카구치 히사시[坂口尚] <울프가이> 등이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마왕 단테>도 '악마의 힘을 체득한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했었던 것이리라. 적어도 이 시점에는.
by 잠본이 | 2015/09/13 21:19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덧글(2)
마왕 단테의 우여곡절 (1)
원문: http://www.asahi-net.or.jp/~WX5H-KTB/gofo/dante.html

<마왕 단테[魔王ダンテ]>
-주간 '우리들[ぼくら]' 매거진 1971년 1월 1일호(제1호)~6월 1일호(제23호) 연재-

코단샤 코믹스 전 2권(가필 신편성판)
이 버전부터 프롤로그의 '신의 침략'을 비롯하여, 여러 군데에 수정이 가해졌다.
그밖에, 선 코믹스(최초의 단행본, 전 3권), 아사히 소노라마 문고(구판, 전 3권), 선 와이드 코믹스(전 2권), 츄오코론샤[中央公論社] 애장판(전 1권), 츄오코론샤 문고판(전 2권), 코단샤 ZKC판(전 3권)이 존재한다.

===

<마왕 단테>. <데빌맨 해체신서>나 <나가이 고 세기말 악마사전>(둘 다 코단샤에서 간행)에서 이미 다룬 것처럼, 만화가 나가이 고[永井豪]가 본격적으로 '마계'를 그리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데빌맨>이 파생되었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사실,
・히말라야의 영구동토에 봉인되어 있던 악마들이 현대에 부활한다는 설정
・단테의 실루엣은 <데빌맨>의 제논이나 <스사노오>에 연결됨
・악마에게 몸을 강탈당해서도 계속해서 싸우는 주인공
・인간형으로 돌아와 등에 날개가 돋은 주인공 우츠기 료[宇津木 涼]의 모습은 데빌맨의 원형
・단테에게 패하여 신에게 복수해달라고 부탁하는 제논은 애니메이션판 <데빌맨>의 마장군 잔닌의 원형

...등등, 여러 부분에서 '원형'임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여기서는 좀 더 깊게 파고들자는 것이 필자의 자세(쓴웃음). 이하의 4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마왕탄생편
(2) 악마인간편
(3) 신과 마(魔) 편
(4) 마신편

우선은, <데빌맨>과 결정적으로 다른 <단테>의 세계관. 짧은 기간동안 연재했지만 의외로 여러 번 변화를 겪었다. 여기서는 크게 나누어 3가지 전개가 있다고 여겨진다. 위의 (1)~(3)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위의 '가필 신편성판'과 2002년에 나온 전 3권 버전에 실려있는 프롤로그 13쪽 분량은 나중에 새로 그려서 추가한 것이다. 따라서 <마왕 단테>를 읽은 독자가 다시금 단테를 재인식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의 단편(断片)이란 느낌이 강하다. 필자는 이를 '새롭게 재구축된 단테의 세계'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1) 마왕탄생편

꿈에 나온 히말라야 풍경부터 2권 첫머리 네이팜탄 폭격까지의 내용.

본래 나가이 고가 <단테>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는 영화 <고지라>를 괴수 고지라의 시선에서 본다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그대로 괴수물을 그리는 것도 뭣하니 <신곡>의 루키펠을 이미지 소스로 삼았던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소도구로써의 '악마'에 불과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걸 표현하기 위해 디테일에 소비한 페이지 수가 장난아니게 많다. 단행본 한 권분에 해당하는 200쪽 정도.

그렇게 된 것은 '본인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악마에게 매료되어, 잡아먹혀서, 너무나도 추악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모한다'라는 비상식적인 사건을 작가도 독자도 납득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 일본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서양의 '악마'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단테는 주인공 우츠기 료의 정신을 조종하여 봉인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한다. 하지만 어째서 하필 료를 선택했는가, 어째서 그의 몸을 새디스틱하게 찢어발겨 고통에 신음하게 만들어서 삼켜야만 했는가. 상반신만 남은 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료. 그 '부조리한 폭력'에 대한 분노가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료는 단테의 의식을 몰아내고 자기가 그 몸을 빼앗아버린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소년이 돌연 생각지도 못한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말려들어,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괴수'가 되기까지를 그려냈던 것이다. 그 '슬픔'과 '분노'야말로 파괴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또 그런 패턴이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것은 나가이 고의 신변에 일어난 어떤 사건의 흔적(*주1)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리하여 단테는 나가이 고라는 작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괴물이 된다.

단테=료는 그 어두운 마음에 스스로를 맡기고 도시로 향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거리를, 사람들을, 문명의 전부를 파괴한다. 그것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초조해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따갑다. 그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자기가 사라지든가, 자기 이외의 모든 시선을 지워버리든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무적의 단테는 이리하여 대살육과 대파괴의 길을 택했다.

이 '괴수'를 대체 어떻게 쓰러뜨릴 것인가- 이야기 전개는 <고지라>의 틀을 따른다면 그쪽으로 나아갈 터였다. 허나, '권력'이라는 폭력에 과감히 대항하는 작가 나가이 고는 여기서 시점을 바꿔버린다. (계속)

*주1/ 다들 아시는 바대로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 두들기기에서 비롯된 악서추방운동. 일본 각지에서 게재 잡지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TV 와이드쇼에서 나가이 고를 성토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당시의 담당 편집자는 <마왕 단테>를 읽어보고는 "인간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던 거겠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by 잠본이 | 2015/09/13 19:37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마도카 마기카와 SF
마법소녀가 SF를 찍는다

-review by 야마모토 히로시[山本 弘] / <오토나 아니메> VOL. 21(요센샤, 2011년 7월), p.21
-해석: 잠본이 (2012. 12. 16)


'유령이 나타났을 때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호러, 유령과 친구가 되는 것이 판타지, 유령을 포획하여 연구하는 것이 SF'라는 정의(定義)를, 나는 제창하고 있다. 포인트가 되는 것은 마법이나 유령이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태도'다. 초상적(超常的)인 존재를 '원래 그런거다'라며 사고(思考)를 정지한 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은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걸까?' '이걸 사용하면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SF인 것이다.

<마도카☆마기카>의 경우, 여주인공이 정체모를 작은 동물로부터 "나와 계약해서 마법소녀가 되어줘"라는 부탁을 받는 발단 부분은 전형적인 마법소녀물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시스템까지 생각해 두었다는 점이 다르다. 이 동물은 대체 뭔가, 어째서 마녀 같은 존재가 생겨나는가, 그것과 싸우는 사람은 어째서 소녀여야만 하는가... 종래의 마법소녀물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의식적으로 회피해 왔다.

이러한 논리를 세우는 것을 자유로운 발상을 옥죄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흔해빠진 설정을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약속'이라고 일축해버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실은 발상의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마도카☆마기카>를 보노라면 '마법소녀물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되는 거였나?!'하고 놀라게 된다. 19년 전,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이 창시한 '배틀계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 이 포맷을 많은 작품들이 아무런 의문 없이 계승해 왔다. 하지만 <마도카☆마기카>는 그런 관행을 가볍게 때려부수고, 장르의 틀을 넓혀주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을텐데'라면서.

마미는 머스킷총을, 호무라는 대전차 로켓을 마구 쏴댄다. 놀랍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규칙 위반은 아니다. '마법소녀는 근대병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라는 규칙 따윈 사실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규칙이 있다고 모두들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법소녀라도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건만, 이제까지 무시되어 온 부분이리라. <마도카☆마기카>는 그점을 용서없이 파고든다.

그리고 최종화. 필자도 마도카가 어떤 소원을 빌까 여러모로 추리해 봤지만, 전부 틀렸다. 그리고 장대한 클라이막스에 감동했다. 마도카의 결단은 그녀만이 내릴 수 있는 것으로, 확실히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양호한 선택이다. 도무지 딴죽을 걸 틈이 없다. 이치가 전혀 닿지 않는 '기적'이나 '근성'으로 일발역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충실하였기에 감동적인 것이다.

마법소녀물의 포맷에 논리를 도입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축하였다는 점에서, <마도카☆마기카>는 최고의 SF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 야마모토 히로시
SF작가. 초상현상 등 별별 얼토당토않은 꺼리를 비평하는 '황당학회' 회장. '제1회 기상천외 SF신인상' 가작을 수상한 <스탬피드!>로 1978년에 데뷔. 그 후 정력적으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2007년에 단행본 발매된 대표작 < MM9 >가 2010년에 TV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하야카와 문고에서 <지구이동작전>(상/하권)을 발매.


※다만 각본을 쓴 우로부치 겐 본인은 인터뷰(아니메디아 2011년 4월호)에 따르면 '마지막에 호무라가 어떻게 해서 마도카의 리본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 기적이므로, 개인적으론 SF라고 생각지 않는다'라는 입장인 듯 OTL
by 잠본이 | 2012/12/16 21:41 | 원환의 섭리 | 트랙백 | 덧글(12)
마도카 마기카의 연출
빛과 색과 구도를 통해서 스토리를 해독한다!

-text by 히로타 케이스케[廣田恵介] / <오토나 아니메> VOL. 20(요센샤, 2011년 4월), pp.22~23
-해석: 잠본이(2012. 12. 8)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원 컷의 밀도를 높인다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신보 아키유키 x 샤프트 작품이 시도해 온 방법론의 집대성이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빛과 색채의 사용 방식, 화면 구성 등을 통하여 연출에 담겨 있는 미학을 살펴보자.

1. 화면 내에 광원을 넣는다
○ 제4화에서 쿄코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 도시의 불빛과 철탑에 달려있는 라이트의 2가지 광원이 화면 내에 들어온다. 철탑의 라이트는 쿄코의 등 뒤에 있기 때문에 직접 그녀를 비추지는 못하지만, 거리의 불빛은 풋 라이트(발 밑에서 비추는 광원)의 역할을 하면서 쿄코의 얼굴을 아래쪽으로부터 비추어, 그녀의 표정에 음산한 기운을 더해준다.

2. 캐릭터마다 배정된 퍼스널 컬러
○ 각각의 마법소녀들이 소유한 소울젬의 색은 그녀들의 머리카락 및 눈동자의 색깔과 일치한다. 마미의 소울젬은 오렌지색이기에,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가로등까지 오렌지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쿄코와 사야카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쿄코의 소울젬과 같은 붉은 조명이 배치된다. 붉은 빛의 플레어가 사야카에게 비춰짐으로써, 쿄코가 우월한 입장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3. 역광과 순광을 나누어서 사용
○ 마법소녀의 패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마도카와 호무라는 역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호무라에 대해서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라는 마도카의 대사를 계기로 카메라는 인물들이 서 있던 육교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조명도 순광으로 바뀐다. 호무라의 심경 변화가 빛을 비추는 방향에 의해 절묘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더불어 이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는 식으로 이동하는데, 이같은 연출은 제6화에서 마도카가 어머니 준코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높이에서 360도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를 미묘하게 바꿔가며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점이 특이한데, 이러한 연출을 후반부에 밝혀지는 스토리의 루프 구조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즉 호무라가 겪는 루프는 같은 자리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다른 변수를 해결하며 나선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리이카> 2011년 11월 임시증간호 '총특집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pp.125~134, 143~144 참조)

4. 구도의 효과
○ 등교 준비를 하며 이를 닦는 마도카. 양쪽에 마주한 거울 때문에 마도카의 모습이 여러 개 겹쳐진 것처럼 보인다. 마미와의 회상 장면이 짧은 컷백으로 들어가면서, 마도카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것을 암시한다. (*제10화를 보고 나서 다시 보면 무수한 평행세계의 마도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은근슬쩍 암시하는 연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 학교 옥상에서 대화하던 마도카와 사야카 앞에 호무라가 나타나, 화면 왼쪽에 호무라가, 오른쪽에 마도카와 사야카가 위치하는 구도로 대치한다. 호무라가 서 있는 쪽에 장애물이 들어가, 화면의 좌측이 무겁게 느껴진다. 동시에 호무라의 존재감이 증폭된다.

5. 가로에서 세로로 변화하는 액션
○ 사역마를 추적하려는 사야카의 앞을 쿄코가 막아선다. 사야카가 쿄코에게 공격을 가하는 장면은 옆에서 가로로 잡는 구도로 그려지지만, 쿄코가 사야카에게 공격을 가할 때에는 정면에서 본 구도를 취한다. 이에 더하여 쿄코는 세로 방향으로 뛰어오르며, 무기가 화면 앞쪽으로 오면 포커스를 벗어나 흐릿하게 보인다. 가로축의 구도에 입체적인 세로축의 구도를 가미함으로써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기세를 연출하고 있다.
by 잠본이 | 2012/12/08 19:59 | 원환의 섭리 | 트랙백 | 덧글(3)
마도카 마기카의 풍경
마법소녀와 마녀의 끝없는 싸움

-text by 히로타 케이스케[廣田恵介] / <오토나 아니메> VOL. 20(요센샤, 2011년 4월), pp.11~13
-해석: 잠본이(2012. 12. 8)


■ 일상으로부터 결계에 이르는 악몽의 그라데이션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세계는 부조리한 규칙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소녀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큐베와 계약하여 마법소녀가 되지만, 그들의 결의는 결코 보답받지 못하고, 상처입은 채 점점 피폐한 감정에 짓눌린다.
그러한 모순과는 대조적으로 마도카와 친구들이 사는 도시는 상쾌한 느낌이 넘쳐난다. 통학로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녹지도 사방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신흥주택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공적으로 배치된 자연의 모습이다. 학교의 교실도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개방감이 느껴지며 책걸상도 수납식으로 되어있는 등, 미래적인 기능미가 깃들어 있다.
사야카가 짝사랑하는 쿄스케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을 가 봐도 병상이 온화한 색상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어 병원 특유의 긴장감은 없다. 마도카의 집은 넓은 뿐만 아니라 디자인성이 높아서, 사람을 안심하게 만드는 여유가 느껴진다.
말하자면 마도카 일행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은 무기질의 느낌을 주지만 안전한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이 도시는 생각지도 못한 일면을 보여준다.
쿄코의 첫 등장 장면(제4화)에서 그녀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전파 송수신탑 비슷한 구조물에 앉아 있다. 그것은 쿄코가 '바깥 세계'에서 온 인물임을 드러내는 연출이지만, 이 도시에도 '교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마도카와 호무라가 하교길에 대화하는 장면(제4화)에서는 복잡한 실루엣의 공장 건물이 보인다.
이들 교외의 풍경은 깔끔하게 정돈된 학교나 병원의 풍경에 비하면 왠지 추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전파탑이든 공장이든 중학생인 그녀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은 없다. 하지만 싸움이나 죽음과 항상 등을 맞대고 있는 소녀들에게는 그로테스크한 '교외'에 들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사야카를 구하겠다고 결심한 쿄코가 마도카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장면(제9화)이 있다. 마치 유럽 어딘가의 뒷골목처럼 포석[石畳]이 깔려 있는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풍경은 불안이나 긴장과는 관계없지만, 어딘가 먼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아서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마미의 싸움 이후, 마도카와 사야카가 결의를 재확인하는 장면(제3화)에서도 돌로 만든 커다란 육교와 가로등이 인상에 남는다. 즉, 소녀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는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낯선 풍경이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과 같은 '교외', '이국'을 거쳐, 그녀들은 마녀가 숨어있는 '결계'로 돌입해야만 한다. 극단 이누카레가 창조한 '결계'의,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막대한 콜라주에 의해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이 화면에 쏟아져 들어온다. 셀화로 그려진 소녀들은 결계 안에서는 너무나도 덧없고, 너무나도 연약하게 느껴진다. 결계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시의 이곳 저곳에 불규칙적으로 출현한다. 그 규칙 없는 무작위성이 무엇보다도 공포스럽다.
아니, 결계에는 결계 나름의 질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생활공간과는 절대로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결계는 주인공들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법소녀들은 이윽고 그 소울젬을 검게 물들여, 그리프 시드를 낳고 만다. 정돈된 일상에서 살고 있던 소녀들이 하루 아침에 불행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이 부조리. 부조리하지만 그 나름의 논리는 성립하고 있다. 청결한 일상 속에서 악몽 같은 결계가 태어난다. - 그 구조야말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참된 폭력성인 것이다.
by 잠본이 | 2012/12/08 18:20 | 원환의 섭리 | 트랙백
마도카 마기카의 매력
이야기의 '형태'에 충실하면서도
예상한 것에서 반 걸음 정도 앞서가는 '자세'


-review by 마에다 히사시[前田 久] / <오토나 아니메> VOL. 20(요센샤, 2011년 4월), pp.8~9
-해석: 잠본이 (2012. 12. 8)


■ 팬을 열광시키는 성실한 스토리텔링
애니메이션 팬들은 '미리 약속된 패턴'을 즐긴다. 그러니까 작품을 칭찬할 때는 오히려 '이런 건 예상도 못했다'라는 어구가 사용된다. '약속된 패턴'을 좋아하며, 일상적으로 그런 패턴으로 가득한 작품을 접하기 때문에 비로소 '그런 패턴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은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어떨까.
조금이라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데 익숙해진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완전히 예상 못할 일만 일어나는 그런 작품은 아니다. 평범한 소녀가 세계의 뒤편에서 남몰래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말려들어...라는 스토리는 일본의 서브컬처 전반을 둘러봐도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런 작품설정의 큰 틀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것을 봐도 제1화 첫머리의 마도카의 꿈 장면을 비롯하여 굉장히 정성스럽게 복선이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제3화의 '그 장면'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무의식중에 예상에서 제외했던 것 - '일어나지 말았으면 했던 최악의 사태'가 묘사됨으로써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편이, 그 충격의 원인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서프라이즈만을 목적으로 뜬금없는 전개가 횡행하는 작금의 서브컬처계를 곁눈으로 볼 때, 오히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소비자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라는 것이 지닌 본래의 '형태'에 대해서, 더없이 성실한 자세로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 이 작품이 예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이루어졌냐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시청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전개로부터 반 걸음 정도 앞서가는 절묘한 강약 조절. 그 속에서 표출되는 캐릭터들의 격정은 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뒤흔든다. 영상작품으로서의 파워 면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경지를 보여준다. 큐베의 모질고 박정스러운 분위기나 극단 이누카레가 보여주는 영상 임팩트, 카지우라 유키의 너무나도 중후하면서 때로는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사운드의 매력...
다채로운 요소가 서로 중첩되면서 상상을 반 걸음 정도 앞서가는 작품의 존재양식이 많은 애니메이션 팬을 열광케 한 것은 아닐까.

■ 최고의 예정조화(予定調和 : 미리 정해진 질서)를 깨부숴버리는 조합
팬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미리 '반 걸음 앞서가는' 자세는 애초에 메인 스탭을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갖춰진 듯하다.
우로부치 겐(니트로플러스)은 하드보일드하고 드라마틱하며 피비린내나는 스토리를 쓰는 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각본가다. 아오키 우메는 훈훈한 미소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는 틀림없이 00년대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중 한 사람이다. 신보 아키유키와 제작회사 샤프트는 00년대에 TV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한껏 넓힌 바 있다.
어느 한 쪽의 이름만으로도 오리지널 기획의 간판을 짊어지기에 충분한 이름값과 실력을 갖춘 3명의 창작가와 1개의 회사. 하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면 각각의 팬들이 바라는 예정조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 걸음 앞서가는' 매력은 이 4자가 손을 잡음으로써 우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올스타 진용이 애초의 계획만큼 훌륭하게 기능하는 일은 드물다. '사전에 정보를 퍼뜨려 사람들의 기대감을 지나치게 부풀려 놓았더니만 정작 만들어낸 결과물은 별로라서 다들 실망했다'는 경험은 어느 정도 나이든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누구든 겪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이 4자가 빚어내는 화학반응을 미리 간파했다...기보다 믿고 도박을 건 프로듀서 측의 역량 또한 본 작품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본 작품의 성과가 금후 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이제부터 본 작품에 관여했던 각각의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것인가. 불행한 사고(*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중단되어버린 최종 2화가 발표될 날을 기다리며 주시하고 싶다. (*이 글은 최종 2화가 방영되기 전에 집필되었음)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수많은 팬들도 함께 그 행보를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후략]
by 잠본이 | 2012/12/08 12:16 | 원환의 섭리 | 트랙백 | 덧글(14)
철인 28호 극장판, 마침내 개봉!
'초(超)영화비평'의 리뷰:

『철인 28호 : 백주의 잔월』 - 60점 (100점 만점 중)

2007년 3월 31일부터 신주쿠 무사시노관 외 극장에서 전국 순차 로드쇼
2006년 제작 / 일본 / 95분 / 배급: 미디어수츠

이미지를 깨지 않고 옛날과 다름없는 철인의 매력을 전해주는 작품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만화 <철인 28호>는 몇 번이고 거듭 영상작품으로 만들어져서, 위로는 50대부터 아래로는 10대까지 폭넓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는 대단히 귀중한 양질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은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 가정에서 아이가 <극장판 케로로 중사>를 보러 가자고 해도, 아버지는 그리 간단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철인 28호>라면, '호오, 그러고보면 내가 어렸을 때도 했던 만화군. 어차피 애들과 함께 갈 거라면 이쪽을 보는 게 낫겠는데'라고 생각할 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흡인력을 지닌 컨텐츠는 한층 더 소중하게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신 CG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기대 끝에 공개되었던 2004년판의 실사영화는, 조잡한 각본과 원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세계관으로 인해, 어떤 연령층의 팬으로부터도 냉대를 받는 희대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판은 마침 그 당시에 방영되었던 TV 애니 시리즈(철인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광팬인 이마가와 야스히로가 감독)의 극장판에 해당한다. 예정보다 공개일정이 지나치게 늦어진 점은 아쉽지만(아동 대상 애니메이션은 방영종료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청자가 성장하여 작품을 떠나버리고 만다), TV시리즈 쪽의 평가가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남다른 기대를 모았다.

무대는 2차대전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도쿄. 소년탐정 카네다 쇼타로(성우/ 쿠마이 모토코)는 거대로봇 철인 28호를 조종하여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쇼타로의 앞에 같은 이름을 지닌 청년(성우/ 아와노 후미히로)이 나타나, 자기가 쇼타로의 의형(義兄)이라고 주장한다. 개발자가 직접 가르쳐준 철인의 조종 테크닉을 쇼타로에게 전수하면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사건에 맞서게 되는데...

철인을 만든 카네다 박사의 양자를 자칭하면서도, 진짜 정체는 불명인 이 젊은 남자. 쇼타로보다 훨씬 능숙하게 철인을 다루는 그 모습. 항상 곁에 지니고 다니는 기묘한 상자. 여러모로 수수께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쇼타로는 그와 공동전선을 편다. 미스터리 가득한 분위기에, 철인의 개발비화 등 팬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도 몇 가지 짜넣은, 스케일이 제법 큰 이야기다.

세계관은 호평을 받았던 TV애니판의 설정을 그대로 계승하여, 그 바탕 위에서 장대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전개한다. 친숙한 그림체로, 극장 영화답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써서 묘사된 쇼와[昭和] 시대의 분위기를 충분히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컨셉을 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다.

어린이용 애니의 체제를 취하고 있긴 하나,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성인 대상의 작품이란 인상을 준다. 전쟁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있는 시대설정 하에서, 원폭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철인의 묘사 등등, 관객의 해석이 들어갈 만한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있다. 실사판의 실패를 철저히 연구한 결과인지, 이러한 어른스러운 작풍(作風)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철인의 전투장면이 호쾌하다.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넘기면서도 끄떡없는 건장한 몸체, 그리고 절대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지닌 거대한 철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슈퍼 히어로다. 잔기술이 통용되지 않는 파워 배틀은, 마치 쇼와시대의 프로레슬링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스크린에 비춰보면 그러한 부분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옛날 그대로의 만화영화 풍이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도쥰카이 아파트 등 실재의 건물을 모델로 한 부분도 나오는 등, 연배가 제법 있는 관객을 의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이정도라면 다시 한번 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다.

Original Text (C) Yuichi Maeda
Translation (C) ZAMBONY 2007

..........아무래도 저 필자는 이마가와의 TV판을 제대로 본 일이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애들용이라 할 만한 내용이 아닌데다 시간대도 심야방송이었는데;;;;;;)
그거야 어떻든 비교적 점수는 후하게 줘서 다행이지만... 다른 관객들 반응은 과연 어떠할지?
by 잠본이 | 2007/03/31 15:10 | 바벨의 농성 | 트랙백 | 덧글(11)
철인 28호 극장판, 이런저런 정보
http://www.tobunken.com/diary/diary20070116125956.html

작가 겸 서브컬처 평론가인 카라사와 슈운이치의 2007년 1월 16일자 일기에 실린 극장판 시사회 리포트.
(좀 괴악한 센스를 지닌 만화가 카라사와 나오키의 형인데, 형제 둘다 대단한 철인매니아여서 관련 서적에도 몇 번인가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을 정도다.)

[전략] 이전에 나왔던, 쇼와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04년판 TV시리즈에서 스핀아웃된 극장 공개 작품인데, TV판 이상으로 복고 감각이 가득한 엄청난 물건이다. 너무나도 요코야마 작품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요코야마라는 작가는 작품에 그렇게 시대감각을 크게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따름). 이것은 역시나, 완전히 이마가와 야스히로 작품, 이마가와 월드의 이야기라 하겠다.

팀 버튼이 <배트맨>을 자기 이미지대로 영상화해버린 그 시절부터, 일본에서도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구나'라고 깨달은 크리에이터들이 옛날 자기가 어렸을 때 빠져들었던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으로 재구축한다는 무브먼트를 일으켰다. 이마가와 감독의 <자이언트 로보 THE ANIMATION ~지구가 정지하는 날~>이 그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 이어서, 다양한 영상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히어로들을 리메이크해 왔으나, 이마가와 감독처럼 원작팬들로부터도 절찬을 받은 경우는 별로 없지 않았을까. 아무리 작품세계를 뜯어고치더라도, 그의 작품에는 요코야마 작품, 요코야마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어, 그것이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라 '너희들도 이런 거 보고 싶었지?'라고 속삭이는 듯한,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요코야마 팬에 바치는 훌륭한 서비스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표현 방식이, 이마가와를 거의 만인이 인정하는 요코야마 팬의 최정상에 올려놓은 것이리라.

이번에는 최초의 극장용 장편 연출이란 점도 있어서, 약간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고, 또한 오프닝의 처리 등등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도 적지 않다. '폐허탄'이라는 병기가 아무리 가공병기라고는 해도 너무 현실감이 없다는 점 역시 신경쓰인다. 또한 큰쇼타로[ショウタロウ](쇼타로의 이복형)가 2차대전 당시 특공대원의 생존자라는 설정이라면 종전시 약 20세 정도(제로센 전투기의 명조종사였다고 하니 아무래도 17세나 18세는 아닐 것이다)일 테고, 작품의 시대배경인 쇼와 33년(1958년)에는 이미 30세를 넘겼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극중의 큰쇼타로는 너무 젊어 보인다.

이렇게 딴지를 많이 걸기는 했어도, 쇼타로에 망나니 텐도에 무라사메 류사쿠에 산쵸메[三丁目]의 석양에 도쥰카이[同潤会]아파트에 베라네드 재단에 덤으로 이후쿠베 아키라까지 곁들여져 있는 영화다. 철인 팬, 요코야마 팬으로서, 그 끔찍한 실사판 직후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직 '전후[戦後]'를 제대로 결산하지 못한 일본인에게 보내는 이마가와 감독 나름의 메시지일 테지만, 생각해보면 일본의 전후만화사는 테즈카 오사무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고 요코야마 미츠테루를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해 온 역사였다. 이마가와 야스히로라는 인물의 출현에 의해, 그 '전후'에 가까스로 진정한 매듭이 지어지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략]

Text (C) Shunichi Karasawa
Translation (C) ZAMBONY 2007


http://www.yosensha.co.jp/products/9784862481108/

저번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요센샤의 성인 대상 애니전문 무크 '오토나아니메' 제3호가 드디어 2007년 1월 11일에 발매. (A5판 160쪽, 본체 952엔) 예고했던대로 철인 관련은 '<철인 28호 백주의 잔월> 개봉기념! 타올라라! 이마가와 야스히로의 세계'라는 기사가 실린 모양인데, 카탈로그의 설명으로 보아서는 철인 관련이라기보다는 이마가와 관련이고, 극장판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을 듯하여 주문할까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게다가 커버스토리가 하필 내게는 별다른 의미도 관심도 없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인지라... 구입해도 별로 메리트가 없다는 게 더더욱 망설여지는 원인. 주변에 죠죠 팬이라도 있으면 슬슬 꼬드겨서 구입케 한 다음에 저 부분만 읽어보면 될텐데 우에에에;;;)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
by 잠본이 | 2007/02/10 16:37 | 바벨의 농성 | 트랙백 | 덧글(4)
울트라맨 타로 - 그 최종회를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다」
~‘타로’의 끝. ‘코타로’의 시작~


Text by AKIHIRO Yasuo
Translated by ZAMBONY 2004/06/12



□ 제53화 「잘가라 타로여! 울트라의 어머니여!」
1974년 4월 5일 방영
―사메쿠지라 & 발키성인 등장―
히가시 코타로는 꿈을 꾸고 있었다. 녹색옷의 아주머니로서 그의 앞에 나타난 울트라의 어머니는 “코타로. 곧 당신의 일생을 바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요”라며 유조선이 파괴되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 유조선의 선장은 바로......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코타로.
켄이치의 친구 이치로군의 아버지가 유조선을 타고 귀국하던 도중에 괴수 사메쿠지라[상어고래]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 ZAT도 타로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며 켄이치에게 분통을 터뜨리는 이치로. 그리고 그런 그를 달래며 “ZAT도 타로도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변호하는 켄이치. 그러나 이치로는 “너네 아빠는 아직 살아계시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야!”라며 뛰쳐나가 버린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켄이치의 부친이자 코타로의 은인인 시라토리 선장이 탄 배까지 같은 괴수의 습격을 받아,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고 만다. 이번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에 넋이 나간 켄이치가 코타로에게 울분을 토로한다.
차마 대답할 말이 없었던 코타로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할 뿐이었다. 사메쿠지라는 물 속으로 다가와 순식간에 기습을 가하기 때문에 ZAT의 전투기로는 응전이 불가능했고, 그때 코타로는 키타지마와 같은 전투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타로로 변신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 사메쿠지라가 상륙. 시라토리 선장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변신하는 코타로. 그곳에 사메쿠지라를 조종하는 발키성인도 나타난다. ZAT의 협력을 받은 타로는 간신히 사메쿠지라를 퇴치하지만, 발키성인은 감쪽같이 도주하고 만다.
타로가 좀더 빨리 와줬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았을 거라며 코타로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켄이치. 그가 타로나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살아갈 의욕을 잃은 것을 깨달은 코타로는 자기가 바로 울트라맨 타로라는 사실을 밝히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울트라 배지를 바다로 던져버린다. 하늘 저편에 나타나 배지를 받아든 울트라의 어머니는 코타로에게 “이제야 답을 찾아냈군요. 당신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긍지를 손에 넣은 거예요”라고 말하더니 곧 사라진다.
그곳에 발키성인이 모습을 드러내어, “이제 타로가 없으니 지구는 우리들 맘대로 할 수 있다”며 광분한다. 코타로는 켄이치에게 인간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 변신하지 않고 지혜와 용기를 짜내어, 콤비나트의 유폭을 이용해서 발키성인을 쓰러뜨린다.
며칠 후, 코타로는 ZAT를 그만두고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라스트 신에서 코타로가 걸어가는 곳은, 긴자의 보행자천국이었다.


■ 코타로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울트라맨 타로』의 제1화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히가시 코타로라는 캐릭터는, 상쾌한 미소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권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세계를 여행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최종회, 그는 자기 나름의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난다. 제1화와 마찬가지로, 밝고 명랑하게 웃는 얼굴을 남기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타로』라는 드라마는, 히가시 코타로의 청춘의 한 페이지를 그린 작품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제1화에서 코타로는, 유조선을 습격한 초수 오일드링커에게 분노하여, 즉각 항만작업용의 크레인에 올라타서 맞선다. 그의 행동은 무모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으나, 가까스로 오일드링커의 격퇴에는 성공한다. ZAT의 아사히나 대장은, 스카이호엘을 타고 그런 그를 지켜보며 “용감한 젊은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자기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 감연(敢然)히 맞서는’[*1] 용기와 행동력에 대한 것임은 물론이나,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상황을 감안할 때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대괴수작전을 전개했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행동을 ZAT대원 중 누군가가 함부로 실행에 옮겼었다면 ‘임기응변[機轉]이 어쩌다보니 통했다’라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 - 『돌아온 울트라맨』 최종회(각본: 우에하라 쇼조)에서 고우 히데키(울트라맨)가 지로 소년과 헤어질 때 “나중에 크면 MAT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을 설파할 때 나온 대사 중 한 토막.}

후에 코타로는 괴수 아스트로몬스의 출현에 깊은 책임을 느낌과 동시에 “저 괴수는 내가 처치하겠다”고 결의하고, ZAT에 입대한다. 그리고 전투 도중, 폭발의 불꽃에 휘말려든 코타로는, 대장과 마찬가지로 그의 본질을 꿰뚫어본 울트라의 어머니(녹색옷의 아주머니)로부터 울트라의 생명을 부여받아, 울트라맨 타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격전 중에, 무모함과 책임감이라는 전혀 상반된 성질을 겸비한 코타로는 대장에 대한 자기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증하기라도 하듯이, ZAT대원으로서 훌륭하게 그 능력을 개화시켜 나간다. 괴수퇴치용 초병기가 완비된 ZAT라면 당연히 전투 교범도 갖추어져 있겠지만, 코타로는 제1화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스스로 몸을 던져 괴수와 격돌, 공적을 쌓아간다. 거꾸로 말하자면, 대장도 교범대로의 작전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했으니까 ‘어제 카레를 먹은 사람부터 출동’[*2]시키거나 ‘가장 기운이 넘치는 대원이 기지당번’[*3]을 맡게 하는 등, 얼핏 봐서는 부조리해 보이는 지휘를 해 온 것이리라. 말하자면 코타로가 ZAT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성격이 정해진 틀에 맞춰진 플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ZAT의 분위기와 보기 좋게 합치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울트라의 생명에 대해서도, 그의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라고 설명하면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타로의 전투방식은 코타로와 마찬가지로, 빈틈을 보이지 않고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공격하는 방식으로서, 괴수나 우주인에게 반격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2 - 제2화 「그때 울트라의 어머니는」에서. 아사히나 대장이 대원들에게 “어제 저녁에 카레를 먹은 사람?”이라고 묻고는 그에 응하여 손을 든 히가시와 난바라에게 사건의 조사를 명하는 장면이 있다.}

{*3 - 제6화 「보석은 괴수의 밥이다!」에서. 아사히나 대장이 대원들에게 “어제 저녁에 카레를 먹은 사람?”이라고 말하자 “예!”하고 기운차게 손을 든 니시다 대원만이 기지당번을 맡게 된다.}

하지만 최종회에 가면, ZAT의 대원이라는 점이 오히려 코타로의 행동을 방해하게 된다. 오일드링커를 몰아세웠던 그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 하에서, 이번에는 자신이 스카이호엘에 타고 있다 보니, 생각만큼 적절히 공격을 할 수가 없다. 괴수 사메쿠지라를 놓친 것은 둘째치고라도, 제1화에서는 구했던 시라토리 선장까지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울트라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빛의 나라의 철칙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이 타로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면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옆자리에 동료가 앉아있는 콕핏 안에서는 마음대로 변신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이전의 코타로를 알고 있었던 우리들 시청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괴수에 대한 대항심 - 대상물에 육박하는 마음가짐[踏み込み]이 불충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코타로가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무모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위험 속에 뛰어들어 온 나날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코타로의 행동은 템페라 성인과의 싸움 이후 변화를 보여 왔다.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점을 반성하고, 많은 점을 배운 코타로는 정신적인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어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 이후, 코타로(=타로)는 괴수퇴치에 대해 깜짝 놀랄 정도로 괴이한 술책을 사용하는 일이 있기는 해도, 그 전투방식이나 사건에 대한 대처에서 초기에 보여주었던 파천황(破天荒)적인 무모함은 거의 보여주지 않게 된다.[*4] 코타로(=타로)는 어른이 됨으로써, 질서있고 신중한 태도로 사태에 대처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제작자가 그를 길러 온 드라마로서의 필연이기도 하고, 성장하는 생물 - 인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극히 중요한 사실이다. 허나, 그러한 성장이 시라토리 선장의 위기라는 비상사태를 맞이했을 때는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방해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분명 코타로도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ZAT대원이라는 족쇄, 울트라맨 타로라는 족쇄... 이런 것들만 없었다면 곧바로 사태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코타로는 어느 사이엔가 하나의 틀 안에 갇혀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과감히 소용돌이치는 운명에 몸을 던졌을 것이 틀림없다. 새로이 태어난 코타로는, 이전의 코타로와는 별개의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나타나게 되었다.

{*4 - 제39화 「울트라 부자(父子) 떡치기 대작전!」에서는 코타로의 활약을 높이 평가하는 월성인 미나미 유코에 대해 “뭘, 난 아직 한참 모자란걸!”이라며 겸손을 떤다. 그리고 제50화 「괴수 사인은 V」에서 공을 좋아하는 괴수 가라킹과 배구 대결을 벌이는 것은 코타로가 아니라, 초기의 코타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소녀 유키의 역할로 되어 있다. 게다가 코타로는 오히려 유키의 행동을 위험하다며 말리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제47화 「괴수대장」에서는, 코타로(=타로)는 자기의 싸움이 얼마나 고독한지를 새삼 깨닫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소년에게 공감을 느끼게 된다.}

■ ZAT와 배지에 이별을 고하고

어떤 경지에 도달해버린 이상, 거기서 다시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코타로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성장시켜 준 ZAT대원으로서의 포지션, 그리고 울트라맨 타로라는 ‘힘’에 의해서 생기는 한계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에게 새로운 도약의 시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타로는 그 양쪽을 한꺼번에 내던지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울트라 배지를 울트라의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그 다음에는 ZAT를 사직한 것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그 두 가지가 반드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효과적으로 작용한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코타로는 은인인 시라토리 선장이 죽었을 때, 그리고 선장의 아들이자 친동생 같은 존재인 켄이치가 “ZAT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울분을 터뜨릴 때에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코타로는 절대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만족했음에 틀림없다. 그가 ZAT대원들이나 켄이치와의 이별에서 조금도 쓸쓸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상쾌한 미소를 보이며 떠나가는 모습, 그리고, 보행자천국에서 만난 모녀에게 명랑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우리들 시청자는 목격했던 것이다. 이별의 한가운데에서도, 그가 내면에 깃든 본질을 결코 잃지 않고, 오히려 이제까지 체득한, 다양한 인생의 무게를 간직한 채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울트라맨』『울트라세븐』의 최종회에는 “지구의 평화는 인류 자신의 손으로 지켜내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대사가 삽입되어 있다. 2작품에 똑같은 대사가 나오는 것은, 각본이 모두 킨죠 테츠오[*5]라는 같은 작가에 의해 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참뜻은 “자기의 미래는 자기 자신의 손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라는, 제작진들이 어린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최후의 메시지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타로』에서도, 최후의 메시지를 발신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5 - 츠부라야 초기 작품을 지탱해 온 시나리오 라이터. 특히 츠부라야 하지메 감독과 콤비를 이루어 수많은 걸작을 낳았다.}

그대가 살아있는 한, 그대의 신변에는 행복이 찾아오는 한편, 항상 무언가의 위협이나 곤란이 닥쳐올 것이 분명하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와 지구인이 존재하는 한, 침략자나 괴수의 습격도 끊이지 않는 한편, '울트라의 별'과의 우정 이야기는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지키려 하는 순간, 우선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터이다. 그렇다면, 지구를 지키는 것은 타로든 ZAT든 그 누구든 간에 별로 상관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 즉시 용기를 내어 곤경에 맞서는 사람’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기 위해 결심한 사람 모두가 지구를 지켜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히가시 코타로는 더 이상, 타로의 힘으로밖에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한, 변신하는 일은 없으리라. 그것이 바로 『울트라맨 타로』의 최종회였다. 그것이야말로, 앞에 예시한 킨죠 테츠오의 메시지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탐지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부가한, 『타로』의 메인각본가 타구치 시게미츠가 목표로 했던 결론이 아니었을까?

후속작인 『울트라맨 레오』에서는, 이러한 시점을 더욱 더 발전시켜, 처절한 역경에 고독하게 맞서는 주인공 오오토리 겐이 설정되었다. 그의 고향 L77성은 흉악한 마그마성인에 의해 멸망하여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는 지구를 제 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스로 손에 넣은 평화로운 생활을 깨뜨리는 침략자들에게는, 거의 감정적으로 싸움을 걸게 되는 것이다. ‘인간 울트라맨’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역사를 새겨나가게 된다.


※출전:
「타로 타로 타로 울트라맨 타로 ~ 검증 ․ 제2차 울트라 붐」 (타츠미출판, 1999)
※본문 내용은 역자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 글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by 잠본이 | 2004/06/12 01:26 | 언밸런스 존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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