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보영
출판사: 행복한책읽기
『멀리 가는 이야기』에 이은 김보영의 두 번째 단독 작품집. 다만 『멀리 가는 이야기』의 경우는 예전에 ‘거울 개인 단편선’이라는 카테고리 하에 전자책 및 종이책으로 판매된 책을 다시 펴낸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리지널 상업 단편집은 이쪽이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김보영 작품세계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뒤집기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독자가 익숙하게 느끼던 일상의 모습이 순식간에 전혀 다른 별세계 얘기로 밝혀지기도 하고, 반대로 처음에는 어딘가 다른 차원인 것처럼 느껴지던 이야기의 무대가 한 순간의 깨달음에 의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일한 곳임을 보여줌으로써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그러한 뒤집기는 작가의 단순한 공상이나 변덕에 따른 것이 아니고, 치밀한 내적 논리와 촘촘한 복선을 거쳐 자연스럽게 제시되는 하나의 결론이기 때문에 더욱 감탄스럽다. 그리고 그 뒤집기의 과정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독자의 두뇌를 사정없이 강타하는 센스 오브 원더(기성관념을 깨뜨리는 데서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경이감)의 물결이 뒤따른다.
SF와 판타지의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으면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스토리의 핵심이 주인공과 외부의 갈등보다는 주인공 자신의 내적 변화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는 어슐라 르 귄을 방불케 하는 면도 있다. 물론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이 종횡무진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