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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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
'케르베로스'라는 별명을 부여받고 범죄자들을 벌벌 떨게 했던, 수도경비특기대의 정예 대원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최후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다. 젊은 특기대원 이누이가 형처럼 따랐던 리더 - 토도메 코이치는, 소란을 틈타 혼자 국외로 도피한다.

3년 후, 코이치의 행방을 쫓아, 이국 땅인 대만에 발을 들여놓은 이누이. 망명자 원조 조직의 일원인 '하야시'의 정보를 얻어, 코이치의 애인이라는 미소녀 '탄미'와 만난 이누이는, 그녀와 함께 정처없는 수색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결국 어촌에 숨어 살던 코이치와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된다.

한편, 공안당국이 보낸 토벌부대도 코이치를 쫓아 일본으로부터 날아온다. 자기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중재에 나선 하야시는, 코이치 본인과 그가 가지고 달아난 강화복을 넘겨주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얻어내고, 그 뜻을 이누이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누이는 스스로 투항하려 하는 코이치를 때려 눕히고, 토벌부대가 기다리는 폐옥으로 향한다. 두 번 다시 입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강화복을 장착한 이누이의, 목숨을 건 처절한 사투가 마침내 시작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1991년에 제작한, '특기대' 세계관을 베이스로 한 실사영화 제2탄. 유바리 국제모험판타스틱 영화제 '91의 정식 초대 작품이기도 하다. 1탄인 <붉은 안경>과 마찬가지로 특기대 괴멸 당시 혼자 도망친 비운의 사나이 코이치를 핵심인물로 다루고 있지만, 이번의 주인공은 그의 후배로 설정된 이누이라는 사내다.

작품의 터치 자체도 뭔가 인공적이고 부조리하며 꽉 짜여진 실내극의 느낌이 강했던 전작과는 달리, 탁 트인 자연 풍경이나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시의 풍물을 계속해서 비춰 주며 상당히 널널한 분위기로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 (달리 말하면 <붉은 안경>보다 좀 늘어진 느낌이 나고, 단순한 이야기를 너무 유유자적하게 풀어 나가서 참고 보기가 더 괴롭다.) 전작이 1930년대의 고전 애니메이션이나 비선형적 구조의 실험 연극에 가깝게 느껴진 데 비해,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누이와 하야시의 상징적인 대화씬 몇 개를 제외하고는) 직선 코스로 흘러가며 현실의 재현으로서의 '영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초반은 도피 중인 코이치를 찾아헤매는 이누이와 탄미의 (대사보다는 주로 이미지에 의존하는) 로드무비로 흘러가며, 중반에 코이치와 만난 뒤에는 한가로운 시골 생활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이누이의 미묘한 심경의 변화가 그려진다. 그리고 겨우 후반에 와서야 이누이와 토벌부대 사이에 벌어지는 일당백의 액션 시퀀스가 제시된다. 결국 이누이는 적들을 모두 쓰러뜨리지만 마지막 남은 토벌대원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코이치는 (전편을 본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 만한)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귀국길에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전작에서 모티브 중 하나로 제시되었던 '특기대 = 개'라는 이미지가 여기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장황하게 전개되는데, 특기대 자체가 너무 임무에 충실한 나머지 국가로부터 토사구팽당한 사냥개로 비유됨은 물론, 복수나 힐책이 아닌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한 감정 때문에 코이치를 찾아 헤매는 이누이의 처지 또한 헤어진 주인을 쫓아 먼 거리를 여행하는 명견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이국의 소녀 탄미와 코이치/이누이가 맺게 되는 기묘한 연대도 남녀의 관계가 아닌 '버려진 개와 그들을 거두어들인 사람'의 관계로 수렴된다. (중간과 결말에 탄미를 쫓아 대만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이누이의 경험이 사람의 시점이 아닌 개의 눈높이로 촬영되었음에 주목)

절망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코이치 대신 나아가서 토벌부대와 싸우던 이누이가 적의 총에 맞아 고통에 몸부림치며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 또한 배신당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충성을 다하다가 최후를 맞이한 충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이름이 '이누[개]'과 비슷하게 들리는 '이누이'라는 것도 범상치 않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사람이 아닌 개들만 좌르륵 나온다. -_-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을 맡은 오시이 마모루가 직접 썼다. (그래서 이토가 참가했을 때와는 확연히 분위기나 대사의 느낌에서 차이가 있다.) 카와이 켄지의 음악도 <붉은 안경> 때의 묵시록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란한 사운드에서 한 발 물러나서, 보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즈부치 유타카가 디자인한 강화복은 빌드업 소속의 조형사 시나다 후유키(나중에 고지라 시리즈에 참가하여 이름을 날리는)가 제작하여, 전작의 강화복보다 디테일이 더 충실해졌다.

이누이 역으로 후지키 요시카츠, 탄미 역으로 수 이칭, 코이치 역으로 치바 시게루가 출연. 이누이 주변에서 암약하며 암시적인 대사를 계속 던져대는 장르노 풍의 중개업자 하야시 역으로는 역시 성우로도 활동 중인 '스기타 형사' 마츠야마 타카시가 등장하여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치바 시게루 역시 코이치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글래스를 유지하면서도, 전작의 개폼잡는 느와르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 버리고 호들갑스럽고 쫌생이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연기함으로써, 또 다른 토도메 코이치 상(像)을 그려내고 있다. 주역인 후지키는 나중에 특기대 시리즈 중 가장 메이저한 작품인 <인랑>에도 출연했다.

여담이지만 아무래도 본작은 <붉은 안경>과 기본적인 설정과 모티브, 그리고 토도메 코이치(별명이 '토도메[일격]의 코이치'라는 장난스런 네이밍)라는 캐릭터를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코이치가 국외로 도피하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그려지고, 코이치가 마침내 귀국하는 년도도 1998년이 아닌 1991년으로 바뀌어 있다. 같은 나무에서 나온 다른 가지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버린, 일종의 패러렐 월드라고나 할까.

역시 특기대 유니버스의 설정을 배경에 깔고 있기는 하지만, 전작 <붉은 안경> 이상으로 역사의 본 줄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외전의 성격이 강해서,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가는 피볼 확률이 높은 영화다. (비유하자면 <기동전사 건담>의 타이틀을 붙여놓고 내용은 '쿠쿠루스 도안의 섬'만 살짝 보여주는 영화랄까...;;;) 오히려 오프닝에 뜨는 영문 타이틀인 'STRAY DOG'(길잃은 개) 쪽이 훨씬 이 작품의 성격에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케르베로스 부대의 전성시대를 보고 싶다면 차라리 후지와라 카무이의 코믹스 <견랑전설> 쪽을 보는 편이 낫다.)
by 잠본이 | 2005/04/04 00:13 | 시네마진국 | 트랙백(2)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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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0:59

제목 : 산왕님 주최 오시이마모루 상영회!
→산왕님 후기 2005년 4월 3일 오후2시 약간 넘은 시간부터 6시 가까이에 걸쳐 영화 두 편을 감상.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죄송. 확실히 오시이 영화답게 씹을 거리는 많고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워낙에 실망스럽다는 평을 많이 듣고 나서 본지라 <붉은 안경> 쪽은 의외로 재미나는 구석이 좀 있었고, <케르베로스> 쪽은 제목만 다르게 붙였으면 그나마 용서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 '오시이 실사영화 트릴로지 박스'. 3작 중 <토킹 헤드>는 시간......more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2:29

제목 : 토도메의 인생극장
여어, 친구들! 내가 누군지 아니? 사람들은 날 일격의 코이치라 부르지! (뭐, 시바 시게오 아니냐고? 그런 놈 몰라!) 한때는 특기대의 우수한 대원이었지만 상부와의 트러블에 말려들어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지. 동지들이여, 기다리게나. 내가 반드시 구해주러 돌아오리라! ...그런데... 싸움의 허무함을 깨달은 나는 안식을 찾아 시골에 정착했지만 후배란 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길래... 여기서 같이 살자고 재빨리 구슬려서 내 얘기를 퍼뜨리지 못하게 했지. 마침......more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산왕님 주최 .. at 2008/12/09 00:42

... 제외. 산왕님과 동아리 분들, 그리고 특별 게스트 순구님. (그외에 잠본이와 건전소시민 정수군님이 참가하셨습니다.) 첫 번째 상영작 →잠본이의 감상 두 번째 상영작 →잠본이의 감상 귀중한 자리를 제공해 주시고 길안내까지 직접 해 주신 산왕님 및 후배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대강당 안이 쌀쌀해서 좀 견디기 힘들었지만 사 주신 코코아 덕에 따뜻 ... more

Commented by 산왕 at 2005/04/04 02:55
으음; 너무 정직하게 감상을 적어주시니 제가 뭔가 적을 여지가 없군요!(뭔소리야;;)
Commented by JOSH at 2005/04/04 15:24
붉은 안경, 켈베로스, 인랑, 견랑전설 다 미묘하게 설정들이 다른게 또 매력이지요. ^^
여러 가능성을 다 벌려놔 주기 때문에 그런 전개를 좋아합니다.

(결국 켈베로스의 라이트판이 패트레이버 인가!)

사실 모든 OSMU가 통일성을 지녀야 한다는 건 아닌데...
뭐랄까 설명이 좀 길어지니 패스... -_-;
Commented by 작은울림 at 2005/04/04 23:07
견랑전설...
90년대 중반경에 해적판으로 처음 봤을때 쉽게 이해가 안가서
몇번이고 뒤적거리며 골 싸멨던 추억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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