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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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안경
가공의 1990년대. 흉폭해지는 도시범죄에 대비하여 경시청은 특별수사반을 결성한다. 특수강화복과 중화기로 무장한 그들은 지옥의 파수견 = '케르베로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범죄계에 대하여 과감한 진압을 개시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비정한 수사활동에 세간의 비난이 집중되자, 결국 정부에서는 이 조직을 해산시킨다. 그들의 일부는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후에 '케르베로스의 소란'이라 불리게 되는 반란사건을 일으킨다.

이 사건은 당국의 강경탄압과 참가자 전원의 체포라는 형태로 매듭지어진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주도적인 인물이었던 돌입반 제1소대의 토도메 코이치는, 강화복과 함께 혼자 국외로 도피한다. 그리고 3년 후,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코이치가 도쿄에 돌아온다. 하지만 너무나도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에 당황한 코이치는...

1986년에 제작된 오시이 마모루의 첫 번째 실사영화. 독재정권 하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가공의 20세기말 일본을 배경으로, 소위 '특기대'라 불리는 특수경찰부대를 주역으로 하는 일련의 연작 시리즈 중의 하나이자, 그 세계관의 출발점이 되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표면상으로는 케르베로스 괴멸 이후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버리고 해외로 도망쳤던 코이치가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겪게 되는 기괴한 체험들을 그리고 있지만, 잦은 시점이동과 혼란스런 스토리 전개, 겉멋과 인용으로 가득하면서도 서로 엇나가는 듯한 인물간의 대화, 액션영화와 필름 느와르, 정치투쟁물, 블랙 코미디 등 각종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그 중 어느 하나라고 결정짓기 힘들 정도로 어정쩡한 분위기로 인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괴작이 되어버렸다.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라기보다는 실험극 무대를 영화로 찍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독재로 인해 망가져버린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너무 늦게 돌아와버린' 주인공과 그를 기다리다 지쳐 배신의 길을 택한 나머지 자기혐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냉철하게 조종하여 파멸의 길로 이끄는 공안의 책략이 난무하는 '1984'류의 정치 풍자극처럼 전개되지만, 비약이 심한 장면전환과 대부분 성우들로 구성된 출연진의 과장된 연기, 몽환적인 분위기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이리저리 뒤섞는 괴이쩍은 연출이 반복되면서, 점차 관객은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코이치의(혹은 제3자의) 꿈인 건지, 더 나아가서는 주인공이 진짜 코이치가 맞기는 한 건지 의심할 정도가 된다.

이야기가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전개는 더더욱 부조리하게 전개되고, 당초에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앞의 사건들이 단계적으로 '꿈 속의 꿈'임이 차근차근 밝혀지면서 관객은 더욱 더 혼란에 빠지고, 결국은 타이틀인 '붉은 안경'의 의미마저도 뒤흔들어 버리는 기막힌(그러나 허탈한) 반전과 함께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자세히 말하면 천기누설이 되니 생략) 영화 전체를 어두침침한 인상의 세피아 톤으로 통일하고, 일부 장면에서만 살짝 컬러를 끼워넣어 분위기를 살린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 곳곳에 등장하는 오시이 특유의 '개와 고양이' 모티브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시이는 감독 외에 이토 아키노리와 함께 공동각본도 담당했고, 오시이 사단의 단골이라 할 만한 카와이 켄지가 실감나는 음악을 제공. (솔직히 이 영화 전반부는 이렇다 할 재미를 느끼기 힘들지만 그나마 카와이의 음악이 분위기를 돋워준 덕분에 꾹 참고 보았다.) 이즈부치 유타카가 케르베로스의 강화복 디자인을, 그리고 타카다 아케미가 극중 엠블럼 디자인을 맡는 등 헤드기어 멤버도 은연중에 참가하고 있다.

코이치 역으로 치바 시게루, 옛 동료인 와시오 미도리와 토리베 소이치로('아호') 역으로 와시오 마치코와 타나카 히데유키, 그들을 괴롭히는 공안의 엘리트 무로토 분메이 역으로 겐다 텟쇼가 열연. 그 외에도, 여기저기 나타나서 사람 혼을 빼놓는 의문의 소녀(결말에 가서 컬러화면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그녀가 쓰고 있는 두건이 붉은색임이 드러나는데, 이 모티브는 이후 <인랑>의 빨간 두건 소녀에 연결되기도 한다.) 역으로 효도 마코가, 배신한 정보통이자 재야 미식가(?)인 '달맞이 긴지' 역으로 수년 전에 작고한 '사신박사' 아마모토 히데요가 출연했다. 또한 분메이의 부하들 중에는 무려 후루카와 토시오니시무라 토모미치의 이름도 끼어 있다!
by 잠본이 | 2005/04/03 23:41 | 시네마진국 | 트랙백(5)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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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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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왕님 후기 2005년 4월 3일 오후2시 약간 넘은 시간부터 6시 가까이에 걸쳐 영화 두 편을 감상.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죄송. 확실히 오시이 영화답게 씹을 거리는 많고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워낙에 실망스럽다는 평을 많이 듣고 나서 본지라 <붉은 안경> 쪽은 의외로 재미나는 구석이 좀 있었고, <케르베로스> 쪽은 제목만 다르게 붙였으면 그나마 용서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 '오시이 실사영화 트릴로지 박스'. 3작 중 <토킹 헤드>는 시간......more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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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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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04/04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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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친구들! 내가 누군지 아니? 사람들은 날 일격의 코이치라 부르지! (뭐, 시바 시게오 아니냐고? 그런 놈 몰라!) 한때는 특기대의 우수한 대원이었지만 상부와의 트러블에 말려들어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지. 동지들이여, 기다리게나. 내가 반드시 구해주러 돌아오리라! ...그런데... 싸움의 허무함을 깨달은 나는 안식을 찾아 시골에 정착했지만 후배란 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길래... 여기서 같이 살자고 재빨리 구슬려서 내 얘기를 퍼뜨리지 못하게 했지. 마침......more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6/01/2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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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Tachigui Retsuden Production Committee 스포츠닛폰 2006년 1월 4일 연예면에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등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가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54)이, 새로운 영상표현에 도전한 최신작 <입식사열전[立&#21936;師列&#20253;]>을 완성했다. 스스로 라이브메이션이라 이름지은, 라이브(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융합시킨 수법을 사용. '누구도 ......more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철인 28호,.. at 2008/12/09 00:33

... Y 2008 ......의 뒤를 이을 괴작 탄생의 예감이... (그나저나 오시이 가공역사의 연장선상이라면... 먹고 튀는 그양반들이 나와서 철인을 피해 도망간다거나... 케르베로스대가 폭주하는 철인을 상대로 싸운다던가 하는 일은...물론 없겠지? OTL) ... more

Commented by yasujiro at 2005/04/04 00:25
정치적인 메시지보다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이야깃거리를 던져보는 영화라고 봅니다. 그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견랑전설]의 설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설명부족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Commented by 정수君 at 2005/04/04 00:27
소문보다는 상당히 재미있게 본 편이었습니다.
확실히 초반부는 카와이 켄지씨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에 한 표.
어떻게 보면 '켈베로스'가 느낌만으로서는 더 좋았는지도요.
영화적 재미(?)라면 붉은 안경쪽이겠지만서도.
Commented by 산왕 at 2005/04/04 02:52
그 소녀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가브씨 at 2006/08/16 15:00
토킹헤드 상영회도 계획해놨었는데..
지난번의 대성황-.-으로 인해 1년반째 보류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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