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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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현실의 사이에.
어떤 학자가 잘 알려지지 않은 원시부족의 신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위상이 있는데, 하나는 냉혹하고 유한하며 괴로운 현실을 나타내는 '표범', 그리고 또 하나는 달콤하고 무한하며 불멸인 환상을 나타내는 '개미핥기'이다. 결국 저 신화에서 인간은 표범의 위상에 머무는 쪽을 택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탈피하여 개미핥기의 쾌락을 즐김으로써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힐 때도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현실에서는 무지막지하게 곤란하고 짜증나는 일이라도 가상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면 어느새 '오락거리'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저 구경꾼으로서 아무런 해를 입을 걱정도 없이 어떻게 일이 되어가는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인데, 그렇다보니 크리에이터 중에는 가끔 이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가상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뭐 다들 아시는 '론머맨' 이라던가 하는 것도 알고보면 그런 테마가 약간 들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야기와도 통하니 넘어가고)

스타 트렉이라는 닳고 닳은 tv시리즈를 보다 보면, 시리즈가 하도 오래 끌고 여러가지 sf적인 테마도 많이 다루다보니 이런 가상현실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리지널의 정통 속편인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리즈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홀로덱이라는 테크놀로지다. 이것은 장기간의 우주 여행 때문에 고단해진 대원들의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특정한 공간 내에 입체영상을 투영하여 현실과 비슷한 허구를 만들어내는 레크리에이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입체영상만 띄울 뿐 아니라 리플리케이터의 응용을 통해 가까이에 있는 물체는 실제로 복제해 내고, 역장[力場]의 작용을 통해 제자리를 맴돌아도 오랜 거리를 걸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한정된 공간 내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입체영상+물질복제+러닝머신 ;;;;)

이 장치는 본 시리즈의 제1화에서부터 나오긴 했지만 특히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제1시즌 13화인 '위대한 작별'편에서부터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1940년대 탐정소설을 좋아하던 피카드 선장이 부하 몇을 데리고 홀로덱 안에서 가상인물들을 상대로 탐정 플레이를 하다가 시스템에 고장이 생기는 바람에 안에 갇혀버린다는 상황, 그리고 별 생각 없이 행동하던 부하가 복제기에 의해 만들어진 '실체가 있는 총알'에 맞아 진짜로 부상을 입어버린다는 엄한 전개일 것이다. (특히 그때까지는 위에 언급된 설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총맞은 대원은 물론이고 시청자까지도 깜짝 놀랐었다;;;)

가상에 갇힌 사람에게는 가상이 현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때로는 가상이 실체화하여 현실을 능가하는 해를 입히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홀로덱은 비록 스토리상의 빈곤함을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가지 재미나는 스토리의 무대가 됨으로써 '넥스트 제너레이션' 이후의 스타트렉 시리즈에 깊이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오리지널 스타트렉에서도 사실상 가상현실에 유사한 개념은 출현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그때는 인류보다 훨씬 월등한 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지구인을 실험하기 위해 조성하는 '시험관' 혹은 '동물원' 비슷한 역할로 나오는 일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두 시리즈 사이의 세월의 차이와 그로 인한 제작진의 가상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참고로 이 '실체를 가진 총알'의 설정은 이후 극장판 '퍼스트 컨택트'에서 피카드에 의해 역이용되어 선내에 침입한 보그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는데, 위의 에피소드를 아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여러가지 감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결국 요는, 다치기 싫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은 좋지만, 언제까지나 환상 속에 있는다고 해서 다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다칠 거라면, 현실에서 맞서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을까?

결론:

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는 명곡!

(어떻게 이런 결론이? -_-)


by 잠본이 | 2003/11/04 13:18 | 시네마진국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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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3/11/04 13:31
브래드버리의 단편이 생각나는군요... 가상현실속의 아프리카가 나오는.
Commented by Ruri at 2004/03/11 13:06
나데시코의 버쳘 시스템은 여기서 따온 것이었군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04/03 11:18
나데시코 극장판의 '올스타 동창회' 어쩌구 하는 것은 사실 스타트렉 극장판에서 60년대 원년멤버들이 몇번씩이나 어거지로 모이는 것을 비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들을 셔틀로 수송해 주는 승무원의 복장이 묘하게 TNG 유니폼을 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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