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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소녀클럽판]
★불새 [소녀클럽판] / 테즈카 오사무 / 학산문화사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아들인 클라브 왕자는 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불새의 피를 찾아서 원정을 떠난다. 왕자의 계모인 젊은 왕비는 그 틈을 타서 왕을 살해하고 왕권을 가로채려는 음모를 꾸민다. 동물을 사랑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노예 소녀 다이아는 우연히 그 음모를 알아채고, 왕자에게 알려주려고 달려간다. 사정을 듣게 된 왕자는 필사적으로 불새를 잡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예기치 않은 폭우로 인해 신하들과 떨어져 다이아와 단 둘이서 동굴에 갇히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두 사람은 홍수에 떠내려가는 불새의 알을 건져내어 불새에게 돌려주고, 불새는 그 보답으로 피를 나눠주기로 한다. 기쁨에 들떠서 불새를 데리고 수도로 귀환하는 왕자 일행. 하지만 이미 왕은 숨을 거둔 뒤였다. 음모가 탄로날까봐 우려한 왕비는 왕자와 다이아를 피라미드 안에 가두려 하지만, 불새의 활약으로 실패하고, 불새는 은혜를 갚기 위해 두 사람에게 자기의 피를 마시게 한다. 클라브는 왕비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이 되어, 다이아를 아내로 삼고 노예를 해방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왕비가 보낸 자객들이 두 사람을 습격, 클라브는 창에 맞아 나일 강에 빠지고 만다. 슬픔을 못 이겨 뒤따라 죽는 다이아. 하지만 두 사람의 기나긴 모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테즈카 오사무가 평생에 걸쳐 매달렸지만 결국 완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대하연작 <불새>. 이 시리즈의 첫번째 파트인 '여명편'은 1967년에 < COM >지를 통해 발표되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미완으로 끝난 프로토타입[원형]에 해당하는 작품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54년에 <만화소년>지에 연재되었던 최초의 <불새>이다. (현재는 편의상 이쪽을 '만화소년판', < COM >지 연재 이후에 이어지는 작품군을 '보급판'이라고 호칭한다. 학산에서 전16권으로 나온 <불새>는 바로 이 '보급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두 작품 사이에 '잃어버린 고리'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불새>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작품이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소녀클럽판'으로,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소녀클럽>지에 연재되었다.

불새의 설정은 만화소년판 <불새>에서 이어받았기 때문에, 여기의 불새는 이후에 나온 버전과는 달리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불사의 존재가 아니라, 3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만 살 수 있는 한계를 지닌 것으로 나온다. 대신에 평생에 단 한번 딸을 낳아 자기의 힘을 모두 물려주고, 자신은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생을 마친다는, 보다 전통적인 불사조 전설에 가까운 설정으로 되어 있다. 또한 불새의 피를 마신 사람도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3천 년 동안만 살 수 있다. 불새 자신의 성격도 모든 것을 초월하여 무덤덤하게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물'로서 주변 생태계와 동화하여 더불어 살고, 자기를 도와준 인간에게는 보답을 하며, 괴롭히는 인간에게는 벌을 내리는 등, 상당히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흑백판 <철완 아톰> 109화에 게스트 출연한 불새 가족도 이쪽에 가까운 분위기인데, 다만 이쪽에는 수컷 불새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작 <리본의 기사>를 읽어준 독자층을 의식한 탓에 상당히 로맨틱하고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당시 작가가 즐겨 보던 할리우드 스펙터클 대하사극의 영향도 곳곳에 드러나 있어서, 읽다 보면 <불새>라기보다는 이집트-그리스-로마의 3시대에 이어지는 장대한 대하로망 동인지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1부 이집트편은 영화 <피라미드>를, 2부 그리스편은 유명한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그에 기초한 영화 <트로이의 헬레나>를, 3부 로마편은 성경의 <다니엘과 사자 이야기>나 민간전승의 <피디어스와 다몬의 우정>과 유사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특히 2부 그리스편은 이미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율리시스[오딧세우스], 아킬레스, 헥토르, 파리스, 헬레네 등이 중요 조연으로 등장하여, <일리아드>와는 미묘하게 다른 테즈카 독자의 해석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클라브와 다이아(카드의 '클럽'과 '다이아'에서 따온 듯)는 불새의 피를 마신 덕에 몇번이고 죽어도 계속 되살아나서 처음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영원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의 관계는 연인에 가까웠던 것에 비해 2부, 3부로 넘어갈수록 점점 남매에 가까운 사이로 변해가는 것이 수상하다. (<잃어버린 세계>의 켄이치와 아야메처럼, 시대 분위기나 독자층을 의식해서 일부러 순화했을지도?) 죽었다 살아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들의 이름만은 안 잊어먹고 그 이름으로 통하게 된다는 것도 미스터리. 1부 끝에 등장하여 불새의 피를 마시고 2대째 불새인 치로루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동물 3인조(뽀뽀, 요타, 노로)의 개그연기도 그런대로 볼만하다. 이런저런 면에 주목하다 보면 이 작품이 본래의 <불새> 시리즈보다는 할리우드 대하사극이나 디즈니 영화에 더 가까운 분위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본작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생명이 어떻고 우주가 어떻고 하는 심각한 걱정은 다 내던지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테즈카 스타 시스템의 단골 배우들이 알게모르게 얼굴을 내미는 것도 본작의 특징. 레드공이 이집트 파라오로, 케리간이 트로이 국왕으로, 메이슨이 율리시즈로, 노루스 누케토루와 테즈카 오사무 본인(!)이 로마 콜로세움의 실황중계 아나운서(!)로 출연한다. 3부에서 다이아를 도와주는 사자의 이름은 무려 레오(!)인데, 백사자가 아닌 보통 사자이긴 하지만 귀 부분이 우리가 아는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 3부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네보케터스 왕자(판본에 따라서는 그 아버지 '오키로 대제'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학산판에서는 네보케터스로 통일한 듯)는 이후 <블랙잭> 에피소드 '어느 노파의 회상'에서 뉴욕의 병원장 역으로 출연했다.

약속이 있어서 동대문에 나갔다가 동대서점에 두어권 남아있는 것을 발견. 마침 며칠 전에 TV판 블랙잭 제10화에서 불새가 나오는 것을 본 터라 기분이 참 묘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학산판 <불새> 본편은 서점에서 전멸한 상태라 어디가서 찾아야 할지 참으로 막막...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터라...)
by 잠본이 | 2004/12/19 11:51 | 아톰대륙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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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uts at 2004/12/19 13:26
불새는 애니 방영할 때 재미있게 봤었죠.(다 못봤지만;;;)
흐음 라이센스로 발매가 되었나 보군요;;; 더군다나 절판이라;;
Commented by 작가 at 2004/12/19 14:33
학산 이놈들 데즈카 컬렉션을 재판하란 말이야~
그나저나 10화에 불새가 나왔단 말입니까.....ㅠ.ㅠ 볼수밖에 없군.
Commented by JOSH at 2004/12/19 15:35
데츠카오사무판 자이언트로보 입니까... --;
Commented at 2004/12/19 16: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브룸바 at 2004/12/19 17:30
맘편하고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선 본판 [불새]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2/19 17:47
JOSH님> 별로 그런 건 아닌데요.

브룸바님> 저도 사실 너무 부담스러워서 본판 <불새>가 나왔을때 안 샀기 때문에...
(근데 이제와서 후회하다니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로군)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2/19 21:06
본편은 가장 걸작이라는 3권 한권만 샀습니다. 후회는 안돼지만 보고 싶어지긴 합니다.
Commented by RoadMaxter at 2004/12/20 00:34
이렇게 될 줄 알고 저는 나오는 족족 사뒀지요.(염장염장~♬)
일단 블랙잭하고 불새는 수집완료.

홍대의 한양문고 지하 매장에서 덤핑/절판도서를 취급하는데 거기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좀 일찍 포스팅을 해 주셨다면 어제 갔을때 확인해볼수도 있었을텐데...
Commented by 브룸바 at 2004/12/20 10:08
불새 본판, 막상 가지면 별로 보고싶지않습니다...(장난 아니게 재미없음)
Commented by kybkk at 2004/12/22 14:02
전생에서 사랑한 연인은 현세에서 가족으로 만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뭐니뭐니 해도 가족애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기 때문에 저 수상한(?) 관계변화가 마음에 드네요.
수천년 동안 몇번씩 죽고 둘이서 살아왔는데 세속적인 사랑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이루지 않았을까요.(꿈보다 해몽이 좋다더니 ㅡㅡ)
붓다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불새도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군요.뜬금없이 덧글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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