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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원제: The Wind's Twelve Quarters
저자: 어슐라 크로버 르귄
출판사: 시공사

특유의 감성적인 내용과 유려한 문체로 장르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주류문학계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은 르귄 여사가 1964년부터 1974년에 걸쳐 집필한 17개의 초기 단편을 한 데 모은 걸작 단편집. 그 기간 동안 작가가 구축한 두 가지 대표 세계관(SF 쪽으로는 헤인 시리즈, 판타지 쪽으로는 어스시[땅바다] 시리즈)을 무대로 한 작품도 여럿 섞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제목만 들으면 다들 알 만한 장편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거나 혹은 외전 격으로 쓰여진 글들도 나온다. 그밖에도 작가 고유의 분위기나 실험정신을 음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샘레이의 목걸이(Semley's Necklace)>, <겨울의 왕(Winter's King)>,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Vaster Than Empires and More Slow)>, <혁명 전날(The Day Before the Revolution)>은 헤인 시리즈에 해당한다. 정확히 말하면 <샘레이의 목걸이>는 <로캐넌의 세계>의 프롤로그에 해당하고 <겨울의 왕>은 <어둠의 왼손>의 시발점 혹은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으며 <혁명 전날>은 <빼앗긴 자들> 이후에 외전으로 집필된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쓰여진 작품은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하나 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단편도 저마다 완결된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관련 장편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에 대하여 <해제의 주문(The Word of Unbinding)>과 <이름의 법칙(The Rule of Names)>은 어스시 3부작의 원형에 해당한다. 이들 역시 3부작 본편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루어지는 주제에 대하여 사전탐색을 행하는 의미에서 집필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샘레이의 목걸이>와 <이름의 법칙>은 장르문학 독자라면 익숙하다못해 식상할 정도로 잘 아는 소재를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각에서 비틀어, 색다른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겨울의 왕> 같은 경우는, <어둠의 왼손>에서 양성종족을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3인칭 대명사를 남성에 준하여 사용했다는 한계를 지적받고, 이 단편에서만은 모두 여성형으로 고쳐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해도 100% 해결이라고는 힘들지만...하여튼 고민스런 부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명인들(The Masters)>과 <땅속의 별들(The Stars Below)>은 과학적 사고가 박해받는 중세풍의 세계에서 끈질기게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심리 신화'에 해당한다. 과학의 세부적인 부분보다 과학 그 자체가 사회가 충돌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럴 때 사회와 맞서 싸우는 인간의 정신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담담하지만 설득력 있게 그려 나가고 있다. <어둠 상자(Darkness Box)>와 <물건들(Things)>은 그와는 대조적인 판타지풍의 세계를 배경으로,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불안과, 완전히 체념하지도, 완전히 싸울 결의를 굳히지도 못한 채 조용히 자기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또 다른 유형의 심리 신화이다. <명인들> 같은 경우에는 수학을 소재로 해서인지 전에 어디선가 비슷한 얘기를 읽은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반에 나오는 조합 가입 의식은 어딘가 프리메이슨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특정한 계열로 나눌 수는 없지만 여러 읽을 만한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작품마다 다루는 소재나 발표 시기가 제각각이고 개별적인 스타일도 매우 달라서,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장르소설이라기보다는 자동기술법에 따라 쓰여진 전위소설에 가까운 <머리로의 여행(A Trip to the Head)>은 상당히 읽기 불편한 작품이다. 작가 서문에도 나와 있지만, 이 글은 굳이 무엇을 말하고자 쓰여졌다기보다는 작가 스스로의 심리적인 곤경을 돌파하기 위한 '뚜껑 따기'의 역할만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파리의 4월(April in Paris)>, <아홉 생명(Nine Lives)>,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은 이미 다른 단편집을 통해 국내에도 한 두번 소개된 작품이니 굳이 새삼스레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의 두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르귄의 단편이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에서 상당히 논의의 여지가 많은 문제작이다. 간만에 이들 작품을 다시 읽고는, 따스하고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이 몸담은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르귄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남은 작품들을 살펴보자면, <멋진 여행(The Good Trip)>은 아내를 잃은 남자가 정신적인 여행을 통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소설이고, <시야(Field of Vision)>는 우주를 체험한 뒤에 묘하게 종교적이 되어버리는 우주 비행사들에 대한 풍자의 시각이 담긴 미스터리 터치의 SF이며, <길의 방향(Direction of the Road)>은 상대성 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고 감탄할 만한 기발한 착상의 이생물 시뮬레이션 소설(?)이다. (아마 르귄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하드SF에 가까운 물건이 아닐까 싶기도...)

역자 후기를 보니 다른 역자에 의해 <로캐넌의 세계>가 한참 번역중이라고 하는데, 과연 올해 안에 출간될 수 있을지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으음 그나저나 여기 실린 단편들을 읽고 있자니 새삼스레 <어둠의 왼손>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아직 못 본 <빼앗긴 자들>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기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스시 쪽으로까지 손을 뻗칠 마음은 들지 않지만, 이래저래 골치 아프다. <어둠의 왼손>은 그리폰북스판은 싹 사라지고 훨씬 비싼 양장본만 남아 있으니 더더욱...)

→어스시 미니시리즈, 미국에서 12월에 방영 예정!
→원제인 'the wind’s twelve quarters'의 원출처
by 잠본이 | 2004/11/18 19:33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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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at 2009/02/14 18:10

제목 : 여성들의 새로운 실험공간, SF
급진적 미래를 꿈꾸다 아나키스트나 페미니스트들과 같이 각종 권위와 권력,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자체를 의심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논리적 대안 없이 비현실적인 주장만 해대며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 혹은 ‘불가능한 저항만을 계속하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담고 있는 구조를 뒤흔드는 시도를 하려는 이들에게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와 같은 명찰은 불명예스러운 것이......more

Linked at 블로그링크 (푸켓) &larr.. at 2013/01/0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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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을 치고 감탄할 만한 기발한 착상의 이생물 시뮬레이션 소설(?)이다. (아마 르귄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하드SF에 가까운 물건이 아닐까 싶기도&#8230;) ※원문 작성: 2004-11-18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검색: 공지 앤서블 ... more

Commented by sabbath at 2004/11/18 20:55
『로캐넌의 세계』는 『빼앗긴 자들』의 역자이신 이수현 님(『크립토노미콘』, 『멋진 징조들』, 『마라코트 심해 外』의 역자)께서 번역하신다더군요. 수현 님 역시 올해 안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걸로 봐서 이미 번역이 끝난 것 같기도 하고… 출판사는 예전에 들었을 때 황금가지였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1/18 21:22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끈기있게 기다려봐야 되겠군요.
Commented by 烏有 at 2004/11/18 21:55
오........많군요;;;;
Commented by sesialord at 2004/11/18 22:34
뭐랄까 굉장한 놈이 방영예정이로군요. 만세~
Commented by 산왕 at 2004/11/19 01:06
아..어스시가 방영되는군요.
어스시를 10년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어스시라도 좀 다 나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LINK at 2004/11/19 01:08
아... 이것도 사야하는데 잊고 있었네요..... 어스시 4권은 언제 나올까요.(한국에)
Commented by lukesky at 2004/11/19 10:05
아아, 사야겠습니다!!!!! ㅠ.ㅠ
헉 어스시 방영...-_-;;; 얘도 결코 만들기 쉽지 않았을텐데......
Commented by 로무 at 2004/11/19 11:34
아하, 사야 하는 책이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지르도록 하지요.
Commented by Edison_Roimir at 2004/11/19 11:48
흐아아악; 르귄 여사님 작품 조사할때 아악, 읽어보고 싶어~ 라고 비명질렀던 작품이었는데 이거 나오는겁니까 ;ㅁ;

...질러야겠... OTL
Commented by 마스터 at 2004/11/19 12:02
그런데.. 테하누 다음권도 있습니까 혹시? 어디선가 어스시 5부라는 놈이 떠억하니 검색 결과에 걸려 올라와서 말이죠;
Commented by 카샤 at 2004/11/19 12:24
어스시 재밌어요 +ㅁ+ 놓치지 마시길.
Commented by Edison_Roimir at 2004/11/19 12:32
테하누(1990)이후, 단편집『어스시에서 온 이야기들(Tales from Earthsea)』(2000)이 나오고, 5부인『또 다른 바람 (The Other Wind)』(2001)이 나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르귄 여사님 원츄 (...읽어보지는 못했 ;ㅅ;)
Commented by 서늘 at 2004/11/19 15:18
빼앗긴자들과 어스시..번역본 빌려드릴까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1/20 00:01
로무님> 혹시나 기대에 못미쳐도 제가 지르라고 시켰다는 말은 마시길. ;>

Edison_Roimir님> 오래도 하고 있군요. 역시 거장.

서늘님> 빌려주신다면 정말로 감사드릴 일이지요. ;>
Commented by 라슈펠 at 2004/11/20 19:11
대명사라. 아너 해링턴 시리즈를 얼마전 다 읽었는데, 거기서는 화자의 성에 따라 쓰는 대명사의 성이 바뀌더군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 화자가 남자면 그 누군가를 'he'로, 화자가 여자면 'she'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던데.
Commented by 바보새 at 2004/12/20 10:09
트랙백에 감사드리면서... >_< 333

...저는 한참 감상문 붙들고 난리치다 결국 때려치웠습니다.. orz
Commented by 싸락눈 at 2005/08/27 11:25
백년 전의 글에 트랙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요. '파리의 사월'을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Commented by 콤돌이 at 2009/05/29 23:56
오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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