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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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거미에게 보내는 편지
Illustration (C) Alex Ross

피터 파커에게

그동안 잘 지냈나? 마지막으로 본 이래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군.
뉴욕의 날씨는 어때? 이곳은 한여름이라 찜통 속을 헤매는 기분이야.

2년 전에 자네는 이상한 거미에 물려서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었지만, 어찌 보면 그게 오히려 자네를 불행하게 만들었지. 자네 삼촌은 자네를 기다리다 강도의 총에 맞아 운명하셨고, 자네 단짝 친구의 아버지는 정신이 홱 돌아서 범죄를 저지르다 자네와 한판 붙더니만 실수로 죽어버리고, 자네 친구는 그 때문에 자네를 원수로 오해하게 되었잖아? 덕분에 자네가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와는 가까이 지낼 수도 없게 되었고 말이지.

나는 한 인간의 일생이 저 정도로까지 꼬일 수도 있는 건가 싶어 할 말을 잃었다네.
하지만, 2년 뒤에 다시 자네를 만나고 나서는, 그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지.
자네는 그전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더군. 오히려 더 나빠졌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피자 배달은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해고당하고, 대학 강의는 매일 빼먹고, 여자친구가 출연하는 연극도 제때 관람하지 못해서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버젓한 사진작가가 되려는 꿈도 점점 멀어지고, 집세도 못 내서 날마다 집주인을 피해 도망 다니고… 정말 궁상스럽기가 한이 없더군.

더군다나 그 모든 게, 자네가 가진 그 힘을 사용해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우려 하다가 생긴 일이라는 게 화가 났어. 너무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자넨 그 힘만 빼면 그저 평범한 20대 청년인데 말이야.

결국 그런 일상에 지쳐버린 자네는 그 촌스러운 가면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더군. 백번 잘한 결심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지. 위험수당도 없고 사람들에게는 오해만 받고 날마다 고생만 죽어라고 하는데 왜 그 짓을 계속하겠나? 차라리 열심히 공부해서 자네가 바라는 대로 과학자도 되고 사진가도 되면 더 좋겠지.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어디 그런가. 항상 예상치도 못한 일이 생겨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게 인생이지. 바로 자네가 존경해 마지않던 과학자 양반이 실험실 사고로 괴물이 되어서 뉴욕을 한바탕 뒤집어놓더니 급기야는 자네 여자친구와 숙모까지 위험에 빠졌잖아?

고민하던 자네가 결국 휴지통에 버린 가면을 되찾아갖고 뛰쳐나가 또 한바탕 영웅 노릇을 하는 걸 보고 신나기도 했지만 속이 타기도 했다네.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싶어서 말이지. 자네가 또 다시 지나치게 몸을 혹사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은 자네 몫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겠지.

세상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힘없는 사람들에겐 영웅도 필요한 법이니 어쩌면 자네가 옳은 걸지도 몰라. 하지만 나로서는 자네를 그렇게 고생시키고도 표창장 하나 안 주고 사회악 취급이나 하는 대중이 원망스럽기 그지없네.

물론 자네한테서 직접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고맙게 여기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충분하다고? 알았어. 하긴 자네는 예전부터 그런 녀석이었지.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자넬 사랑하는 걸지도 몰라.

부디 몸조심해. 좋은 남편감 마다하고 자넬 선택한 여자친구에게도 잘해주고!

-바다 건너에서, 자네를 응원하는 사람이


추신:
자네 친구가 아버지의 유산을 발견했더군. 자네 이제부턴 밤길 조심해야 할 거야.


===
지난 여름에 과제 삼아 작성했던 졸문.
이 영화의 감상을 쓰려니 잘 떠오르지가 않아서 결국 이걸로 대체. (퍽)
제목은 다들 아시는 릴케의 그... (퍼퍽)
by 잠본이 | 2004/10/12 12:24 | 굳세어라 거미남 | 트랙백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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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샤 at 2004/10/12 12:39
추신 : ...그런데 자네의 심미안에는 조금 의심이 가는구먼. 안경을 새로 맞춰 보는건 어떤가? (먼눈-)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로인을 굉장히 싫어한다-)
Commented by 다인 at 2004/10/12 12:42
애정이군요. 저는 이런 글을 못 쓸겁니다.
Commented by 우유차 at 2004/10/12 12:44
밤길 조심하라는 의미가 이중적이라는 느낌- 애정 넘치는 러브레터♡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4/10/12 12:54
추신 2 : 제임스 편집장이 사진 한 장에 얼마씩 쳐주던가?
Commented by Devilot at 2004/10/12 13:02
잘 읽다가 추신에서 푸하하하(...)
이건 개그 액추얼리 카테고리로 옮기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D
Commented by 깐밤 at 2004/10/12 13:04
밤길...조심해야 하는 거군요...으음...
Commented by 미르 at 2004/10/12 13:04
...재미있군요(...)
...힘내라 해리피터!?!?
Commented by 라블루건담 at 2004/10/12 13:12
히로인이 싫으시다니...그 거유 한쌍만으로도 충분한겁니다. (퍽푹팍)
Commented by TITANESS at 2004/10/12 13:54
... 추신에 올인!
(예전에 동아일보에서 '배트맨이 스파이더맨에게 보내는 편지' .. 를 몬것 같은데... 어떤 내용인지가 기억이.. 아니 보긴 봤던건가...;;)
Commented at 2004/10/12 1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4/10/12 15:11
밤길 조심이라... Y를 의도하셨군요.
Commented by 비안졸다크 at 2004/10/12 15:23
등짝 좀 보자는 사람 없길 (....)
Commented by Nariel at 2004/10/12 15:34
저도 추신에 올인입니다. ㅋㅋ 넘 멋지시잖아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4/10/12 17:10
딴 소리지만 알렉스 로스의 일러스트들은..참 징그러워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Commented by 라블루건담 at 2004/10/12 17:39
엥...전 알렉스 로스가 좋은데. (친구중에 팬들이 많아요)
Commented by 리엽 at 2004/10/12 18:13
아하하....;;;
Commented by 흰토끼 at 2004/10/12 19:07
추신이 핵심이군요. 참으로 애정이 넘치는 글이네요 :)
Commented by 젠카 at 2004/10/12 19:50
그야말로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군요!
Commented by 僞초인로쿠 at 2004/10/12 20:53
어라? 대중은 거미男을 사랑하는 거 아니었나요?
편집장 아찌만 스파이디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_^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0/12 21:00
카샤님, 라블루건담님> 개인적으로 커스틴 던스트가 메리제인 이미지엔 안맞는다고는 생각하지만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는 터라...

다인님, 젠카님> 그냥 잡생각이 많은 거지요.

시대유감님> 1편 보면 나옵니다.

렉스님, 라블루건담님> 아무래도 극사실주의니까 말이죠.

우유차님 外> 그냥 글자 그대로의 의미인데 뭘 생각하신 겁니까;;;

僞초인로쿠님> 반반이죠. 뷰글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테니.
Commented by 烏有 at 2004/10/12 22:37
웬지 노인말투....(퍼억)
[烏有는 타격음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10km정도 날아갔다]
Commented by 구바바 at 2004/10/12 22:50
세일러 문 일당처럼 구제(?)의 대상을 한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스파이더맨은 여기저기 많이 참견하는 느낌인데... @_@;;
Commented by 작가 at 2004/10/12 22:57
알렉스 로스의 그림을 볼때마다 손바리오그라듬다 ㅠ.ㅠ
Commented by Sion at 2004/10/13 01:02
과제로 이렇게 재밌는 글을 낼 수 있다니 즐거운 선생님 이셨나 봅니다>_<
Commented by 이로동 at 2004/10/13 09:37
'친구는 개조인간 가면 라이더가 되어 괴인 거미남자를 쓰러트렸다'(이봐)
Commented by ring at 2004/10/13 14:34
날이 춥다 보니 따뜻한 게 필요한데 이글은 꼭 따뜻한 코코아라는 느낌이 듭니다. 잠보니표 코코아 잘 마셨습니다~! ㅁ.ㅁ)/
Commented by 소녀일기 at 2004/10/14 01:03
저는 정말읽으면서 영화 예고편을 스크랩하신줄 알았어요.너무 너무 좋아요.(이말밖에 표현할길이 없네요.)영화전반이 생각나면서 다음편도 궁금하게 만들어요.^^멋지네요.
Commented by 일라이드 at 2004/10/14 09:31
이것 참 멋진 감상문이군요. 개인적으로는 베놈이 언제쯤 나올지 기대하는중.
Commented at 2004/10/14 10: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람감 at 2004/10/14 10:13
파하하핫 한참 웃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Commented by 楚鈴 at 2004/10/14 10:53
하하하 ;ㅁ; 정말 재미있네요~ 스파이더맨은 1만 보고 2는 얘기만 들었지
아직 보지를 못했는데 조만간 꼭 봐야겠네요:)
Commented by Mireille at 2004/10/14 22:19
링크 퍼갈께요~ 자주 들려주시길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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