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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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우먼
★촬영지: 부천 CGV★



일에 치여 고단한 일상을 보내던, 심약한 광고 디자이너 페이션스 필립스. 그녀는 자기가 근무하는 화장품 회사의 신제품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아차린 죄로. 공장 폐수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여신 바스테트의 사도로서 페이션스를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흰고양이 '미드나잇'이, 해변에 시체로 떠내려온 그녀에게 신비한 기운을 불어넣어 되살린다. 다시 살아난 페이션스는 고양이의 습성과 능력은 물론, 넘쳐나는 자신감과 도전적인 기질을 지닌 '캣우먼'이 되어. 자기를 죽인 범인들을 찾아내 복수하려 하는데...

<비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영화감독 피토프가 <배트맨>에 등장한 조연 캐릭터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캣우먼 상을 창조해내는 데 도전한 의욕작. 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작품일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확실히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퀄리티는 중간 정도고 짜임새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히어로 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며 스토리는 구멍 투성이다.

최종보스에 해당하는 로렐(<원초적 본능>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우리 시대의 팜므파탈 샤론 스톤이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다.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생긴 강철피부(...)외에는 이렇다 할 특수기능도 없고, 데리고 다니는 부하도 고작해야 경호원 두놈이며, 그나마 이 친구들은 눈에 띄는 활약도 안 보여준다. (결국 마지막에 로렐의 피부가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 '샤론스톤이 [V의] 다이아나가 되었네!'라고 개그를 하며 스스로를 위안해야 했을 정도니 원...) 로렐의 말만 믿다가 그녀의 함정에 빠져, 울면서 경찰에 체포당하는 페이션스의 바보스런 행각도 꼼짝없는 탈력[奪力]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 싸구려틱한 캣우먼 의상이다. 뭔가 잘 안 맞는 고양이 가면이야 봐준다 쳐도 상체를 가릴락말락한 가죽 브래지어나 얼마 입지도 않았으면서 미친듯이 찢어발겨서 누더기를 만든 바지를 보면 뭘 하려고 만든 옷인지 용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영화에서는 4가지 모습의 할 베리를 감상할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긴 곱슬머리의 어리버리한 회사원 버전, 부활 직후 머리를 보이쉬하게 깎고 눈매도 날카로워진 폭주족 버전, 보석상을 터는 도둑들을 혼내줄 때 나왔던 검은 아이마스크 차림의 프로토 캣우먼[?],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게 되는 게릴라풍 캣우먼 의상. 솔직히 마지막 버전만 좀 고쳤더라면 이것보단 나았을텐데 말이지...)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게 봤는데, 중간중간에 간간이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신비스런 분위기나(고양이 애호가들이 보면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캣우먼의 전통이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신설정(이거 하나 설명하려고 상당한 양의 고대벽화, 기록화, 신문기사, 광고 포스터가 [어느 정도의 조작을 거쳐] 동원된 것이 또 끝내준다), 그리고 부활 이후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습성마저도 서서히 고양이를 닮아가게 되어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재미있었다. (개를 보면 이빨을 세우고 으르렁거리고, 비가 오면 안 맞으려고 도망치고, 배고프면 통조림에 담긴 캣푸드를 서너개 해치우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데어데블>을 연상케 하는 점이 없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고양이다운 유연한 움직임을 가미하면서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는 액션도 볼만은 했다.

거대한 음모에 희생될 뻔한 개인이 뜻밖의 경로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그 음모를 뒤집는다는 헐리우드 영웅물의 공식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포인트는 오히려 주인공의 개인적인 '변모'를 그리는 데 있지 않은가 싶다. 마음은 착하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어설프게 행동하고 후회하기를 거듭하던 주인공(그녀의 이름이 patience[인내심]이란 점을 상기하자!)은 점점 고양이처럼 변해가는 자기 자신의 상태에 경악하고 고민하지만, 결국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거듭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사실 본작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페이션스가 캣우먼이 된 뒤가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의 막바지'에 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열어서 이웃사람까지 잠 못자게 하는 야비한 자식들을 찾아가 새로 얻은 능력으로 혼을 내주고 돌아와서 편하게 잠드는 바로 그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한다. (그 뒤는 솔직히 사족처럼 느껴져서 될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봤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길들여져 있었지만 그 상태에 대해 불편을 느끼던 주인공이 다소 엉뚱한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혹은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성장 드라마. 그것이 바로 '캣우먼'이었던 것이다.

(미드나잇의 현재 주인이자 캣우먼의 전승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인 파워스 여사는 그 과정으로 페이션스를 이끄는 안내인인 셈이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대체 어떤 연구를 했길래 그런 걸 다 알고 있담? 혹시 자신도 옛날에 선대 캣우먼이었다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남에게 추천하기는 약간(이 아니라 아주 많이!) 망설여지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고 색다른 부분에 주목한다면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거야 어쨌든, 피토프 감독의 차기작이 오오토모 카즈히로의 애니메이션영화 <아키라>의 실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있는데...제발 루머로 끝났으면 좋겠다;;;;;;)

PS1. 파워스 아줌마가 선대 캣우먼들 그림 보여줄 때 거기에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극장판 셀리나 카일이나 TV드라마판 배트맨의 셀리나 카일 사진이 들어가 있었더라면 진짜 개그였을텐데 아쉽도다. (그나저나 이런 설정이라면 캣우먼이라기보단 거의 팬텀 + 크로우 아닌가? -_-)

PS2. 캣우먼의 탄생비화는 <배트맨> 원작에서도 여러가지로 설명된다. (영화 <배트맨 2>에서 나온 버전과도 많이 다르다) 캣우먼의 변천사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에 서양인들이 만들어둔 팬사이트 등을 참조하는 게 좋을 듯.

PS3. 회사에서 짤린 후에 페이션스는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교보본점에 들어온 소설판을 잠깐 뒤져보니 결말부분에 자기가 좋아하는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페이션스가 디자이너로 인정받아 다른 회사에 스카웃되는 부분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그럭저럭 사는 걸로 나온다. (실업수당은 제대로 챙겼을라나) <스파이더맨 2>가 이미 생계문제로 고민하는 히어로를 보여준 이상, 그걸 무시하고 지나가면 왠지 허전하더란 말이지.

PS4. 신촌의 그랜드시네마 7관에서 봤는데 손님이 나를 포함하여 3명뿐. (아무리 평일 저녁 시간대라고는 해도 이건 좀...) 과연 다음주까지 붙어있으려나 모르겠다.

PS5. 생각해보면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저렇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건... 별로 기대 안 하고 봐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캣우먼이란 캐릭터 자체에 대해 좋다 싫다 하는 감정이 아예 없고 미셸 파이퍼판 캣우먼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해 그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선명한, 광택 만점의 캣우먼 타이즈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

PS6. 형사아저씨와 농구공 갖고 으쌰으쌰하는 장면을 보며 데어데블의 '놀이터에서 1:1격투'를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나. (역할은 정반대지만) 요즘은 슈퍼 히어로가 되려면 남다른 데이트 아이템도 갖고 있어야 하나보다. (거꾸로 매달려서 키스하기라던가...)
by 잠본이 | 2004/10/09 00:23 | 시네마진국 | 트랙백 | 핑백(3)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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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을 볼때마다 할베리 캣우먼에서 화장품 잘못써서 얼굴 망가지는 샤론스톤 생각이... (내용은 아마도 전혀 상관없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놈의 연상작용이 웬수여 OTL) ...데, 데몬 코구레 각 ... more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그린 랜턴(2.. at 2011/06/23 02:06

... 려넣은 걸 생각하면 약간 불안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그냥 TV나 DVD 등으로 직행하여 작은 화면으로 즐기기에는 스펙터클에 들어간 공이 만만치 않아서 좀 아깝다. 하여튼 할베리의 이나 케서방의 정도로 망한 물건은 아니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즐길 만한 작품이긴 하다. -주인공 할의 내적 성장이라든가 헤로인 캐롤과의 로맨스, 선배 랜턴들과의 갈등 ... more

Commented by zelu at 2004/10/09 07:29
이집트 여신 바스타트가 자막에서는 바스트[...가슴???]로 나왔었죠;;;
Commented by 작가 at 2004/10/09 09:44
포스터에서부터 B급의 향기가 풍기던 영화......
Commented by 카오스 at 2004/10/09 09:54
미셀 파이퍼의 캣우먼이 너무 강렬해서....=_=;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0/09 10:10
바스트 혹은 바스테트라고 하는군요. (자막도 틀린 건 아닙니다)
졸면서 쓰느라 바스타트라고 오타를 냈습니다. 죄송.
http://100.naver.com/100.php?id=68775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4/10/09 12:30
의상 디자인만 어떻게 해 줬으면 보러 갔을겁니다.
Commented by 건전유성 at 2004/10/09 13:44
베리 처자에게는 파이퍼 누님에게 있던 '고양이스러움'이 없어요. 그게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겁니다. 전 처음에 베리-스톤의 캐스팅이라고 들었을 때, '음 스톤이 캣우먼이고 베리가 악당 두목인감네, 좋은 캐스팅이긴 한데 스톤여사가 액션연기가 잘 될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4/10/09 13:57
저 역시, 시대유감님처럼 의상 디자인이 걸리는군요.
Commented by BLIAR at 2004/10/09 16:09
....전 저 마스크를 볼때마다 제브라맨이 자꾸 떠오르더군요[콰당]
Commented by ShaDow? at 2004/10/09 18:52
무척 재미있는 포스팅이네요.^^
Commented by 안봐도TV at 2004/10/09 22:48
BLAIR//대비되는 것의 한 전략이랄까...(노랑색하고 검정색이 대비가 잘 된다죠.)
Commented by M·RJHAN at 2004/10/10 00:10
하복 즐.
Commented by rumic71 at 2004/10/10 02:25
저도 의상이 불만.
Commented by 앨리쓰 at 2004/10/11 01:34
화장품회사 다녔으면서 화장이 별로였다는..(어이;)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10/12 12:10
작가님> B급 맞긴 맞죠. 돈이 너무 들어가서 문제지.

카오스님> 그래서 남이 안한 일을 해야 한다니까요. ;>

시대유감님, 영원제타님, M-RJHAN님, rumic71님> 의상디자인만 좀 잘했어도 10점은 먹고 들어갔을텐데 말입니다.

건전유성님> 스톤여사는 캣우먼하기엔 너무 늙었어요...차라리 엑스맨의 화이트 퀸이라면 모를까;;;

ShaDow?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앨리쓰님> 아니 그런 멋진(?) 면에 착안하시다니.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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