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ales of the Black Widowers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
출판사: 동서문화사 (
동서추리문고 92)
치밀한 변호사, 고민 많은 암호전문가, 수다쟁이 작가, 집요한 화학자, 시니컬한 화가, 시를 사랑하는 수학자 - 이들 6인으로 구성된 사교 모임의 이름이 '흑거미 클럽'이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식당에 모여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환담을 나누는 유쾌한 사람들. 회장이나 운영진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회원이 달마다 돌아가며 호스트 역을 맡아 모임을 이끌어 나간다. 그 호스트가 초대한 손님을 상대로 이리저리 질문공세를 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찾아오는 손님들로부터 경찰에 가져가기는 뭣하고 그렇다고 잊어버리기는 아쉬운 기기묘묘한 수수께끼가 제시되어 토론의 대상이 되는 일이 늘어난다. 모든 회원이 달려들어 지혜를 짜내지만 마지막 해결은 언제나 특별회원인 식당 급사의 몫. 그러나 그는 '다른 분들이 지나간 뒤 남은 길을 짚어본 것 뿐'이라며 겸손해할 뿐이다.
읽어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제시되는 수수께끼들도 하나같이 뭔가 쪼잔한 것들뿐이고 해결책도 가끔은 너무 비약적으로 보여서 허탈할 정도다. 거기에다 일정한 모임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사건을 제시하면 안락의자형 탐정이 척척 해결한다는 패턴은 (작품 본문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애거서 크리스티가 미스마플 단편 시리즈로 실컷 해먹었다. 그런 만큼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본작을 펼쳐 본 사람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본작의 가치는 교묘한 추리적 구성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심각한 통찰보다는, 가벼운 퍼즐로서의 재미나 작가 특유의 해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 아시모프는 아시다시피 SF작가로서 유명하지만, 동시에 박사학위를 지닌 과학자이고, 과학 저술가이며, 성서와 셰익스피어 연구가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만담가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의 이러한 전방위적 지식과 장난기 가득한 유머가 어우러져 태어난,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일일이 붙어있는 작가 후기를 보면 그저 즐기기 위해 취미로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양문학과 영어 말장난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겐 솔직히 읽기 괴로울지도 모르겠다만;;;
아시모프는 역시 아기자기 오밀조밀한 개그를 보여줘야지 쓸데없이 정색하고 무거운 얘기를 늘어놓으면 썰렁해지기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이를테면 나 같은) 독자에겐 꽤 즐거운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작은 악마 아자젤> 시리즈의 괴악스런 허무개그를 당할 수는 없드아~! 잠본이가 생각하는 아심홉쁘 최고작은 역시 아자젤 시리즈~! ←독단과 편견)
사건의 해결은 언제나 정체불명의 1류 급사인 헨리가 (대부분 어거지로) 도맡아 하지만 사실 본작의 재미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처음에 초대손님의 문제가 제시된 뒤에, 6인의 개성 넘치는 회원들이 자기들의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별별 황당스틱한 논의를 다 거치며 서로 헐뜯거나 비꼬기도 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도 하는 그 '과정' 자체가 훨씬 의미있다. 이들 유식한 사람들이 한바탕 '복잡한 해결책'을 잔뜩 늘어놓으면, 헨리가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맹점을 찾아내어 '단순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수수께끼를 해결한 것은 헨리 혼자의 힘이라기보다는, 먼저 6인의 회원들이 사전작업을 거쳐 방해물을 모두 제거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뭐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잇살 먹은 아저씨들이 동네 개구쟁이들처럼 서로 자기가 잘났네 네가 바보네 하고 (세련되긴 하지만 다소 속보이게) 툭탁툭탁하는 광경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특히나 딴지의 명인인 화가 곤잘로와 투덜이 역할을 맡은 작가 루빈의 가시돋친 설전이 참으로 개그)
원래는 옛날 자유추리문고 시리즈로 나왔던 버전을 절판 직전에 살 기회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놓치고 피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한데... 뜻하지 않게 동서추리문고 버전이 재판되어 이렇게 읽을 기회를 잡았다. (좋은건가)
본작 이후에도 아시모프는 6편 이상의 관련작을 또 집필했다는데 이들을 제대로 된 한국어판으로 볼 날이 과연 찾아올까 궁금할 뿐이다. (무리야 무리)
그거야 어떻든, 본 작품 최대의 개그가 뭐냐 하면...
루빈은 식탁에 놓인 5달러 지폐 두 장을 살짝 집어들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컬럼비아 백과사전은 정말 좋은 참고서지. 한 권 속에서 무엇이든지 찾을 수 있는 사전으로서는 세계에서 으뜸간단 말이야. 브리태니커보다 훨씬 쓸모 있어. 아이작 아시모프를 위해 페이지를 제공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긴 하지만."
"누구라고?"
곤잘로가 물었다.
"아시모프일세. 내 친구로 SF작가지. 그는 병적일 만큼 자만심이 강해서 파티에도 이 백과사전을 들고 간다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콘크리트에 관해서라면 컬럼비아 백과사전의 내 항목에서 249쪽 뒤에 아주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지. 자, 여기일세.' 그리고는 자기의 항목을 보인다네."
곤잘로가 웃었다.
"마치 자네 같군, 머니."
"그런 말을 그에게 해보게. 맞아죽을걸. 내가 먼저 죽이지 않는다면 말일세."
(동서판 178쪽)
......자기 자신까지 개그의 대상으로 삼다니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 자랑을;;;;;;)
역시 아심홉쁘할배는 영원한 개구쟁이인 것이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