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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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산맥
원제: At the Mountains of Madness (1931)
저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출판사: 씽크북

1931년, 지질학자 다이어 교수가 이끄는 미스카토닉 대학 탐사단이 미지의 땅 남극에 도착한다. 그들의 목적은 새로 개발된 드릴 장비를 이용하여 남극대륙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한 암석과 토양의 심층 표본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물학과의 레이크 교수가 이끄는 북서 지역 탐사반이 기묘한 물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알려진 어떤 진화 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화석이었다. 게다가 흥분한 레이크 교수가 탐사 결과를 무선으로 알려온지 며칠만에 북서 지역 캠프는 초토화되고 멤버들이 모두 사망하는 괴사건이 벌어진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탐사단은 철수 준비를 서두르고, 그러는 가운데서도 아직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남극 깊숙한 곳의 산맥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다이어 교수는 조수 댄포스와 함께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정찰에 나선다. 그들이 광기의 산맥 저편에서 발견한 것은 수만 년 전의 과거에 인류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들에 의해 세워진 거대 도시의 유적이었다......!

장편이라 하기엔 너무 짧고 중편이라 하기엔 너무 긴 어중간한 분량의 러브크래프트 작품.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단순한 고딕 호러 분위기지만 당시의 최신 과학기술과 정교한 세부묘사, 허구와 역사가 뒤섞인 기이한 박물학적 지식과 인류의 차원을 벗어난 장대한 설정 등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현대의 SF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극지방에서 미지의 우주물체와 만난 탐사단이 재앙을 당한다는 기본 플롯은 이후 존 우드 캠벨 주니어의 1938년작 중편소설 <거기 누구냐?>에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이 캠벨의 소설이 이후 1951년1982년에 두 차례 영화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본작이 현대 호러/SF에 끼친 영향은 의외로 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말고;;;)

이 스토리의 숨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존재들'은 사실 작중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않고 이미 죽어버린 시체나 기분나쁜 과거의 그림자 정도로 모습을 드러낼 뿐이지만, 화자인 다이어 교수의 끈질긴 추적과 정보 수집에 힘입어 그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명실상부한 본작의 주역으로 등극한다. 동물과 식물의 중간형태로 보이는 기기묘묘한 생김새와 수만 년의 동면에도 견디는 강인한 육체, 거기에다 다른 생물을 개조하여 이용해먹고 높은 거석문명도 쌓아올릴 정도로 엄청난 기술 수준이나 놀랍도록 정교한 부조로 후세에 역사를 남기는 특유의 미학까지 갖춘 엄청난 고대 종족. 실제로 레이크 교수의 탐사반이 단 하룻밤만에 (아마도) 이들의 생존자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공포도 이만한 공포가 없다. 인간과는 원천적으로 소통 가능성이 없는, 비인간적이고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혐오스러운 외계의 존재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러브크래프트계 이생물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세계의 존재가 인류와 애초부터 동떨어져 있으며 소통도 불가능하다는 기본 구도는 스타니스와프 렘과도 통하는 데가 있다.)

하지만 본작이 단순한 괴담 수준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가치를 갖게 된 것은, 이러한 '고대의 존재들'을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클라이막스 전후, 그들이 선조 대에 갖고 있었던 '별 사이를 이동하는 능력'을 잃고 지구에 갇혀버린 뒤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창조했던 부정형 생물 쇼거스의 반항으로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는 슬픈 사연(?)이 폭로되면서, 그들에 대한 화자의 감정은 공포나 경악을 넘어 연민과 동정으로 바뀌어 간다. 클라이막스에서 고대 도시의 지하동굴을 지배하며 '고대의 존재들'마저도 압도하는 괴물로 변해버린 '진정한 악의 축'(?) 쇼거스가 그 흉칙한 모습을 (잠깐동안만) 드러냄으로써 공포는 최고조에 달하고, 이후 탐험에서 돌아온 다이어 교수가 인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의 탐험은 중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이야기는 끝난다. 교수와 함께 고대 도시를 둘러봤던 댄포스가 마지막으로 도망쳐나올 때 멋대로 뒤를 돌아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신경쇠약에 걸리는 장면도 있지만, 그가 대체 무엇을 보았는가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물론 러브크래프트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네크로노미콘>이나 크툴루 신화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네크로노미콘>의 저자가 묘사한 렝 고원은 '고대의 존재들'이 남극의 깊숙한 곳에 세운 식민지와 거의 일치하는 정경이라 설명되며, 크툴루를 우두머리로 하는 또 다른 종족이 '고대의 존재들'과 비슷한 시기에 지구에 왔다가 몇 차례 싸운 끝에 지구를 분할하여 다스리기로 합의한다는 엄한 역사도 밝혀진다. (결국 다들 아시는 대로 지각변동 때문에 크툴루네 집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리지만 -_-) <어둠 속의 속삭임>에 등장하는 균류종족 미-고에 대한 언급도 약간이나마 실려 있다.

별로 쓸데없어 보이는 디테일은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정작 중요한 공포의 근원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나 입다물어버리는 스타일도 여전하다. (단순한 깜짝쇼 수준의 공포보다 '한발한발 서서히 죄어들어오는 광기어린 공포'를 추구한다고나 할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만화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에서 모 캐릭터의 대사로 인용되는 '테케리-리! 테케리-리!'의 원전이 이 작품이란 것도 재미나는 발견이라 하겠다. (근데 사용하는 맥락이 정반대란게 좀 깬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미스카토닉 대학에는 괴인들만 모여있는게 틀림없다... (대체 자기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네크로노미콘을 왜들 읽어갖고 이럴때 알아서 겁에 질리는건데)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4호선↔2호선 환승통로에 위치한 서적할인매장에서 구입. (아직 서너권 남아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가 보시길)
by 잠본이 | 2004/08/16 23:23 | 대영도서관 | 트랙백(3)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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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4/08/17 00:14

제목 : 공포의 보수
원제: 없음 [역자 임의로 선정한 단편선] 저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출판사: 동서문화사 (동서미스터리북스 61) →저자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gaya님 블로그를 참조하시라~ '기괴하고 심오한 대우주의 악마신이 괴기와 공포의 환영에 몸서리치는 독자들을 아득한 태고에서 영겁의 미래로 이어지는 암흑세계의 포로로 잡아들일 러브크래프트 대망의 작품! 크투르프신화가 살아 숨쉬는 <인스마우스의 그림자>와 <어둠속의 속삭임>, 델러포어 집안의 피를 둘러싼 놀라운 비밀을 그린 <벽속의 쥐> 등 신들의 분노와 통곡이 ......more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4/08/17 22:15

제목 : 네크로노미콘의 비밀을 밝힌다!
그것은 내가 미합중국 A시 M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왠지 눈빛이 음흉해 보이는 도서관 사서 하나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내가 아직 교내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N모 마도서를 읽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대단히 놀라는 눈치였다. "정말로 읽지 않았단 말인가? 요약본이라도 읽어야 수강을 허락할텐데?"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번 학기 동안만..." "아무리 그래도 그래선 안되지. 그걸 모르면 여기 사람들과 대화가 안돼. 내가 특별히 알아봐줄테니 언제 저녁이나 한번 사게. 내일 오전엔 보......more

Tracked from 이무기의 작은 세계 at 2010/08/11 14:13

제목 : [책] 광기의 산맥 : H.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 2001년 씽크북판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공포문학의 아버지라더니만 포의 '아서고든 핌의 모험'과 유사합니니다. 광기의 산맥만 놓고 본다면 '함께'가 아니라 포의 자식뻘인겁니다. 광기의 산맥만 놓고 본다면...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남극탐사를 떠났던 과학팀이 미지의 생명체와 그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5000 만년 전의 고대도시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못 볼것을 보죠. 못 볼것. 그게 공포의 핵심입......more

Linked at 광기의 산맥 &#8211; 앤서블 at 2016/11/16 01:17

... 역시 미스카토닉 대학에는 괴인들만 모여있는게 틀림없다&#8230; (대체 자기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네크로노미콘을 왜들 읽어갖고 이럴때 알아서 겁에 질리는건데) ※원문 작성: 2004-08-16 H.P.러브크래프트sf장편판타지호러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남길 ... more

Commented by 오오가미 at 2004/08/17 00:35
그 책을 보고 난후 머리에 남는것은 이것이군요
"데낄리리 데낄리리"....네타인가;;
Commented by nique at 2004/08/17 01:11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4호선↔2호선 환승통로에 위치한 서적할인매장에서 구입? ^^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4/08/17 01:21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미스카토닉 대학에는~ 알아서 겁에 질리는건데)' 이부분 읽다가 무의식중에 "푸하하"하고 웃었습니다. ^^; 확실히 괴인들만 모여있는 듯...

NOT DiGITAL
Commented by hidezero at 2004/08/17 01:33
네크로노미콘은 무슨 책일까요..?
Commented by EST_ at 2004/08/17 02:14
어쩐지 그 부정형 괴물이 슬라임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드는군요.
Commented by 세계의적 at 2004/08/17 02:25
데몬베인 같은데 보면 확실히 슬라임 처럼 나오지만, 존 카펜터의 The Thing같은 영화는 또 그렇지도 않은것이......(이 영화 광기의 산맥이 모티브가 됐죠.)
Commented by gaya at 2004/08/17 03:06
흐아 간만에 광기의 산맥 감상을 보게되다니. ㅠㅠ.. 전 좀체 책 읽고 나서 감상글 쓰기가 힘들어놔서 언젠가 써봐야지 하면서 한정없이 미루고 있는 중. 다른 분들이 잘 써놓으신 감상글 읽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괴인들의 집합소 미스카토닉 대학이라.(풋-)..^^ 하긴 미스카토닉도 그렇고 이상한 인종들은 모조리 아캄 인근에 다 몰려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글구 테켈리-리 는 원래 에드가 앨런 포우의 창작입니다. 포우를 스승으로 존경했던 러브크래프트가 포우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등장하는 그 기묘한 언어를 오마주한 거죠. 아울러 광기의 산맥이 그 소설의 계보를 따랐다는 걸 은근슬쩍 내보이기도 하는 셈이고요.
포우의 그 소설은 기묘하게 불완전한 결말 때문에 동시대 여러 작가들에 의해 후결작이 쓰이기도 했거든요. 어쩌면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거대한 스케일로 쓴 셈이라 할 수 있을지도.
Commented by 불귀의객 at 2004/08/17 03:20
러브크래프트님이 애초에 이 책을 출판사에 들고 갈 때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능가하는 책이라고 했다지요. 영향은 받을대로 받았으면서 그런 말씀이라니... 역시 러브크래프트님은 귀여우십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08/17 10:31
그랬군요. 언제 황금가지에서 나온 아서 고든 핌의 모험도 봐야 할 듯...(무려 베르느가 쓴 팬픽[...]이 같이 실려있더군요)
Commented by 일레갈 at 2004/08/17 10:41
네크로노미코온... 은.
읽었다 하면 죽어나가는 책.
안죽어도 인생이 고달파지는 책.
그런데 그런 책이 왜 미스카토닉 대학에 -_-;
미스카토닉 대학의 고위 관계자의 음모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MATARAEL at 2004/08/17 10:48
네크로노미콘 스캔본이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류 멸망의 날이겠군요)
Commented by jinliger at 2004/08/17 13:10
최근에는 미스카토닉 대학에서 아자젤이라는 인간이 손대서
는 안되는 물건이 발굴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ARMS 이야기입니다. TT-
Commented by 直死の魔眼 at 2004/08/17 14:36
쿨럭.. 그런 환상적인 책이.. (지금쯤 다 나갔으려나...)
Commented by euphemia at 2004/08/17 15:23
...저도 이상한 인종들은 모조리 아캄 인근에 다 몰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미스카토닉 대학은 교수임용이나 자격시험에 네크로노미콘을 문제로 내는가 하는 생각도. -_-;
Commented by young026 at 2004/08/17 15:28
신길역 환승통로(국철-5호선)에도 4권인가 있습니다. 아까 전에 확인.
Commented by 작가 at 2004/08/17 15:57
미스카토닉 지하에 뭐가 있냐면 말이죠. 누, 누구냐 너는!? 으아악!!!
Commented by 듀란달 at 2004/08/17 21:09
네크로노미콘이라...
'님 공유점 ㅋㅋ'에 대한 약속된 응답 파일로 써먹으면 GooD!
Commented by 세계의적 at 2004/08/19 00:04
미스카토닉 대학은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실은 음비학(隱秘學)부 라는데가 있어서 마술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무시험 입학, 장학금 수여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지요.
미스카토닉 대학의 기괴한 장서들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미스카토닉 대학은 음비학부의 존재 자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그 학생과 교원들은 대외적으로는 고고학 이라던가 타 학문으로 자신의 전공을 밝히고 있는것입니다.
(데몬베인이냐......)
Commented by hansang at 2005/08/23 17:31
테케리-리는 정말 깨는(?) 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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