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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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여왕
원제: She
저자: 헨리 라이더 해거드
역자: 김지혜
출판사: 영언(2003)

루드윅 호레이스 홀리는 남자로서 그다지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추한 용모와 길다란 팔에 땅딸막한 체구. 그야말로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 돈도 집안도 친척도 없이 사람들에게 따돌림받고 외롭게 살아온 사나이였다. 그런 그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것은 오직 강인한 체력과 폭넓은 교양. 고생 끝에 대학 교육을 마치고 연구원 자리를 얻어 평생을 책 속에 파묻혀 살려고 결심한 그의 곁에 유일한 친구인 빈시 노인이 찾아와 이상한 제안을 한다. 자기의 어린 아들을 자기 대신 맡아 기른 뒤, 그가 20대가 되면 자기가 맡긴 철궤를 보여주며 그의 운명을 선택하도록 해 주라는 것이었다.

홀리는 반신반의하지만 그날 밤에 빈시는 덜컥 죽어버리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아들 레오를 맡게 된 홀리는 정성들여 그를 교육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성년이 되어 친아버지의 유언을 읽게 되는 그날이 찾아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레오의 머나먼 조상 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연의 이야기와, 아프리카 늪지대 어딘가에 감춰진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신비의 여왕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레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탐험을 떠나자고 홀리를 설득하는데.....

<솔로몬왕의 동굴>로 유명한 해거드가 1886년에 발표한 비경탐험소설. 화자(話者)인 홀리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영국의 어느 대학(케임브리지로 추정)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 해안, 악어와 모기가 우글거리는 늪지대, 기이한 풍습을 지닌 부족이 사는 마을, 고대인이 암반을 깎아 만든 여왕의 거대 도시, 그리고 생명의 불꽃이 넘실거리는 지하동굴 등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상당한 학식과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외모 때문에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데다 대인관계도 별로라서 은근히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홀리의 캐릭터도 꽤 개성적이다. (오히려 그에 비하면 여왕의 직접적인 연애 대상인 천진난만한 미남자 레오나 '영국적'인 관습에 얽매여 어딜 가나 불쾌감에 시달리는 하인 조브는 상당히 틀에 박힌 인물들이라 재미가 떨어진다) 여왕을 사이에 두고 레오와 삼각관계가 될 뻔...하지만 워낙 이성적인 인물인데다 여왕 쪽은 이 아저씨를 그저 재미난 말상대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극단적인 데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장수와 젊음, 지식과 권위,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을 한몸에 갖춘 신비의 <여인> 아샤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겠지만, 이 사람은 이야기 시작 후 200쪽이나 지나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아랍계 태생으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훨씬 오랜 옛날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풍물을 보고 당대의 철학자들과 토론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끝에 독자적인 철학을 갖게 된 아샤는 주로 홀리의 눈을 통해 신기하면서도 위험스럽고, 아름다우면서도 냉혹한, 최강의 타자(他者)로 그려진다.

스토리의 초점은 레오의 선조인 칼리크라테스와의 못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2천 년을 아프리카의 암굴에 은거하며 기다려 온 아샤가 조상의 유언과 운명의 장난이 반반씩 작용하여 마침내 그곳을 찾아온 레오와 만나, 그와 결혼하려 하는 과정에 맞춰져 있지만, 중간까지만 해도 엄청난 카리스마와 능력을 과시하며 매혹(주로 홀리와 레오에 대해)과 공포(주로 조브와 원주민들에 대해)의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해, 결말은 좀 허탈하게 짜여져 있어서 캐릭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불꽃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레오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뛰어들었다가 부작용으로 인해 늙어 죽어버린다. 인디아나 존스 3의 도노반 보는 기분 -_-)

확실히 남성중심에 서구중심이었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저자는 무심코 자기 손으로 이 위력적인 여인을 창조해 놓고, 오히려 그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곤 해도 외부적인 사고나 타인의 공격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의 삽질(...)로 스타일 왕창 구기고 퇴장한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자도 아깝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이후 집필한 <여왕의 귀환>(1905)에서 아샤를 되살려 티벳에 출현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올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서도...;;;)

요즘의 눈으로 보면 스토리 자체는 크게 놀랍거나 충격적인 데는 없지만, 저자의 아프리카 체류 경험을 백분 발휘한 정경묘사와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은 꽤 쓸만하다고 여겨진다. (아샤가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에 겪은 모험이라던가, 그녀가 오기 수천년 전에 코르의 고대 도시를 건설한 선주민의 역사 등등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암시들이 많다 ;)

저자는 말년에 <솔로몬왕의 동굴> 이래 맹활약해 온 자기의 또 다른 거물 캐릭터 앨런 쿼터메인과 아샤를 함께 등장시킨 <동굴의 여왕과 앨런>이란 크로스오버도 시도했다는데, 이쪽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듯 하다. 하긴 앨런이 아무리 나대봐야 불사신 여왕에게 무슨 감명을 줄 것 같지도 않고 하니 뭐 당연한가...(글쎄, <젠틀맨리그>버전의 앨런 정도라면 감명을 줄지도?)

이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따온 요코야마의 <퀸 피닉스>와 함께 보면 재미가 두 배로 불어날지도? (그건 당신 생각이지......;;;) 언젠가는 두 작품을 요모조모 비교하는 글도 써 보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는...
by 잠본이 | 2004/08/10 18:37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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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동굴의 여왕 &#8211; 앤서블 at 2016/11/15 01:35

... 두 배로 불어날지도? (그건 당신 생각이지&#8230;&#8230;;;;) 언젠가는 두 작품을 요모조모 비교하는 글도 써 보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는&#8230; ※원문 작성: 2004-08-10 R. 라이더 해거드그녀동굴의 여왕판타지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 more

Commented by 에이엔_오즈 at 2004/08/10 19:07
지하철 지나가다 이애림씨가 그린 표지에 반값할인으로 팔고있길래 덥석 산지 몇달 됐는데 아직도 못읽었군요 (....)
계몽사 문학전집으로 읽었을 때랑 분명 느낌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니까 뭐랄까.. 읽기가 좀 꺼려져서요. 나중에 읽었을 때 실망하는 게 있고 다시 읽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어느 쪽일지 심히 두려운 상황에.. ^-^;;
Commented by 모모판다 at 2004/08/10 19:09
예전에 (12년 전 쯤) 초등학교 때 뭔가 알 수 없는 문고판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여왕이 불에 두번째로 뛰어 들었다가 사그라드는 부분의 삽화가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었던 어린 시절이...
Commented by 밀크티 at 2004/08/10 20:21
계몽사 문고버전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전 아샤도 아샤지만 아샤의 저주에 걸려 폭싹 늙어버린 그 불쌍한 처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작중에서도 그 뒤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으니까요.(더군다나 레오, 이 녀석 결혼약속까지 해놓고 그대로 날라버리다니!!!)
Commented by ciel at 2004/08/10 20:37
인상이 강렬했던 작품입니다. 동굴들어가서 부터만 기억하고 있는 데, 그 부분부터의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서 잊을 수가 없었던 듯. 홀리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이 캐릭터는 기억마저 희미합니다) 이 작품은 잔뜩 긴장하며 읽다가 마지막 부분이 허탈했었는 데, 잠본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정말 작가가 '퇴장'시킨 거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러고서 다시 되살리다니 변덕도 참;;;) (+) 원제를 몰랐는 데, 멋진 제목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무섭네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4/08/10 20:39
밀크티님> 우스텐 말씀이시라면 결국 축하연을 틈타 레오에게 접근한 뒤 아샤에게 맞장뜨다 죽습니다. 어찌보면 본작에서 제일 용기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4/08/10 20:43
뭔가 알 수 없는 문고판으로 저도 봤습니다. 삽화도 좋았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재밌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8/10 20:54
계몽사 문고판은 무려 최요안 선생 번역으로 되어 있죠. 명의만 그런건지 실제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Commented by 조나단 at 2004/08/10 22:31
저는 동아해님문고로 봤어요. 지금도 가지고 있고요^^
Commented by 마스터 at 2004/08/11 01:00
이건 못 본거 같은데..; 혹시 솔로몬 왕의 동굴이 끝에 그 내용 나오는 거던가요? 주인공 팀이 굶어죽기 직전에 먼 거리의 사슴을 발견하는데, 좀 모자란 명중률의 연발 단거리 소총으로 쏘느냐, 장거리 저격용 단발 소총으로 승부를 거느냐..해서 장거리용으로 맞춘 뒤에 불이 없어 간과 심장을 식혀 생식하는..;;
(왠지 예전에 솔로몬 왕의 동굴 포스트가 올라와 똑같은 질문 했었던 듯한 데자뷰도..--; 파인더로 검색해보니 솔로몬왕의 동굴로는 안나오길래 일단 질문드려봅니다;;)
Commented by 알바트로스K at 2004/08/11 09:37
저도 원작에서 무서웠죠 (덜덜덜)
Commented by espearl at 2004/08/11 15:19
아..한 때 이 소설에 강렬히 매료되서 몇 번이고 읽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갑네요.
저도 계몽사 버젼으로 본 듯 ^^;;
아샤를 그린 삽화 중 하나가 예뻐서(전반적으로 삽화들은
그리 잘 그린 편은 아니었지만;) 더 기억이 남는 캐릭터라고나.
선욱님의 글을 읽기 전까진 아샤가 그렇게 엄청난 캐릭터였는지 몰랐군요. 제 인상에 아샤는 아름다워지고 오래 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자기 욕심에 스스로 무너진 캐릭터로 남았던지라..;;; 그리고는 '역시 과욕은 금물이야..'를 교훈으로 삼았던..쿨럭;; 그래도 역시 아샤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 부러운 캐릭터(마지막만 빼고. ^^;)
Commented by 깃쇼 at 2004/08/12 12:52
동굴의 여왕, 친구와 불타던 책이었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0/14 11:50
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근데 정말 안팔리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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