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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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타르타랭
원제: Tartarin sur les Alpes (1885)
저자: 알퐁스 도데
출판사: 여명출판사 (세계문학선 35)

일년 내내 태양이 내리쬐는 밝고 즐겁고 기운찬 마을 타라스콩. 이곳의 인기인이자 모험가인 타르타랭은 동네 뒷산에도 제대로 올라가 본 적 없는 주제에 '타라스콩 알프스 클럽'이라는 산악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유쾌한 사나이. 그러한 그가 회장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 코스트카르드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스위스의 명산들을 정복하려고 나선다. 절친한 동네 약사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온갖 장비를 갖춰 길을 떠나는 타르타랭.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그의 앞길에는 그림처럼 펼쳐진 설산들이 감추고 있는 위험과 사람들의 상술이 빚어낸 갖가지 허위가 기다리고 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자전적 소설 <꼬마 철학자>(그것도 상당히 허수룩한 판본)를 제외하고는 도데의 장편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게다가 내가 읽은 도데의 단편들은 저 <풍차방앗간 편지>에서 따온, 고요하고 잔잔하며 때로는 인생무상까지 느끼게 하는 휴먼드라마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만큼 내가 이 유쾌하고 아이러니와 기지가 넘치며 포복절도할 개그가 가득한 소설을 읽고 얼마나 황당했을지는 상상이 가시리라 믿는다. (거의 돈 까밀로 시리즈 읽는 기분이었음)

주인공 타르타랭은 낙관적인 호인이고 모험과 기운찬 생활을 즐기는 쾌남아이지만, 동시에 부풀리기 좋아하는 허풍쟁이에다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성질급한 중년이기도 하다. 내숭떨기 좋아하고 조용히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고급 관광객들이나 눈앞의 일에 바빠 즐긴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마을 주민들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돈키호테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기사도에 미쳐 세상을 등진 돈키호테와 다른 점은, 광기나 어거지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고향 타라스콩은 따뜻하고 즐거운 남프랑스의 전형적인 마을로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극적인 성품과 수다스런 입담, 그리고 공상과 현실을 뒤섞어 버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서로간에도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묘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결코 무언가에 미쳐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

타르타랭의 시끌벅적한 알프스 원정이 재미있는 것은, 그의 그런 자연스런 성품이 주변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며 삐걱거리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상업화된 산촌에 기가 질린 타르타랭은 여행길에 만난 옛 동료 봉파르의 허풍에 넘어가 스위스 전체가 하나의 안전한 테마파크라는 착각을 하게 되고, 사실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융프라우를 정복하는 일도 그런 착각에 빠진 채, 가까스로 해낸다.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능숙한 안내인들 덕에 살고, '봤지? 위험할거 하나도 없다는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고'라는 그의 호언장담에 오히려 안내인들이 얼이 빠진다) 자기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몽블랑 등정을 시도하는 타르타랭. 그러나 봉파르한테서 진실을 전해들은 그는 갑자기 자신을 잃고 뒷걸음질치기 시작하더니, 산을 내려오다 조난을 당하고야 만다. (...그 뒤는 진짜로 어처구니없기 때문에 비밀)

타르타랭의 여행길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와 풍자가 가득한 유쾌한 오디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조촐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에, 색다른 리얼함이 느껴진다. 항상 죽음과 이웃하여 사는 러시아인 아나키스트나, 삶에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스웨덴인 철학도 등등 묘한 손님들과 대면하여 열띠게 그들의 삶을 바꿔보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 한 채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서는 타르타랭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또한 중간부터는 마을의 깃발을 전해주기 위해 타라스콩에서 친구들이 달려와 합류하게 되는데, 역시 허풍선이에다 개성 만점이지만 타르타랭만큼의 행동력이나 배포는 갖지 못한 그들과의 대비를 통해, 타르타랭의 인간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본작은 1872년작 <타르타랭 드 타라스콩>의 속편으로, 이에 더하여 1890년에 나온 <타라스콩 항구>와 더불어 3부작을 이루고 있는데, 셋 다 타르타랭의 유쾌하고도 엉뚱한 모험을 다룬 소설이다. 저자의 고향인 남프랑스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온갖 인간상에 대한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수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어째서 이 출판사는 3부작 중 2부만 낸 건지 미스터리...(보통은 1부만 내고 그만두지 않던가?)
언젠가는 제대로 된 판본으로 3권 전부 읽어보고 싶어진다는 작은 소원이...;>
by 잠본이 | 2004/07/27 15:10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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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INK at 2004/07/27 15:27
항상 느끼는 것인데. 잠본님(좀 이상한가)께서는 정말 책을 빨리 읽으시는 것 같네요!! (그러면서도 제대로) ㅠㅠ 책 빨리 읽는 사람들 언제나 부러워요.. 흑
Commented by 체셔 at 2004/07/27 16:32
재미있겠네요! 유럽이나 남미,러시아 쪽 순수문학 상당히 좋아하는데 읽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룰루랄라 at 2004/07/27 17:06
어렸을 때 읽고 인상에 남았던 소설이었죠.
어릴 때 한 때 알퐁스 도데에 심취해서 그의 작품들을 섭렵한 적이 있었는데..
알퐁스 도데 컬렉션중에서도 참으로 튀는 놈이었습니다.. ^^;;
양쪽에서 잘린 자일의 비밀은... 헉,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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