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출판사: 동서문화사 (동서미스터리북스 61)
'기괴하고 심오한 대우주의 악마신이 괴기와 공포의 환영에 몸서리치는 독자들을 아득한 태고에서 영겁의 미래로 이어지는 암흑세계의 포로로 잡아들일 러브크래프트 대망의 작품! 크투르프신화가 살아 숨쉬는 <인스마우스의 그림자>와 <어둠속의 속삭임>, 델러포어 집안의 피를 둘러싼 놀라운 비밀을 그린 <벽속의 쥐> 등 신들의 분노와 통곡이 울려오는 그로테스크문학의 최고 환상 걸작 제1탄!' (뒷표지 설명)
'물고기 얼굴에 반인반수의 생물에게 점령당한 도시, 더러운 피를 둘러싼 비밀을 간직한 옛 성, 알듯모를듯한 신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음울한 악몽과 같은 암흑세계, 러브크래프트의 충격적 리포트!' (사이드 레이블)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호러 장르를 (영화나 문학을 불문하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러브크래프트가 유명하다는 소리는 듣고 살았어도 이 사람 단편들을 직접 읽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전혀 상관없는 볼일 때문에 부천에 가지 않았다면 이 책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내가 관심을 가진
모 각본가가 이 작가 팬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노아타마 마을' 시리즈에서 '크툴루'나 '요그 소트호트'가 전혀 엉뚱한 녀석들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 살다 보면 항상 별것도 아닌 것이 조금씩조금씩 쌓여서 뭔가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그런 경우에 속하지 않나 싶다.
실은 이것을 읽기 한참 전에 장편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을 서점에 서서 빈곤한 티를 푹푹 풍기며 다 읽은 적이 있었는데, (대체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전에 듣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아저씨 작풍이 의외로 SF나 추리물틱한 데가 있고 결말도 상당히 깔끔해서 놀랐던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때의 좋은 인상이 남아 있었기에 본서를 주저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참고로 다음은 2003년 6월 11일에 썼던 짧은 감상: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으음 러브크래프트의 위력을 실감. 명불허전이로다.
-근데 이건 호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추리소설이었군;;;;;
(트릭이 의외로 평범한데서 놀람... 난 좀더 판타스틱하게 꼬아놓을줄 알았더니;;
맹렬 타키온에서 가짜파운사 진짜파운사 바꿔치는게 생각나는건 왜?;;;)
-윌렛선생!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히어로다!
-우울하게 끝날줄 알았는데 의외로 (독자입장에서는) 멋진 결말. 악인은 지옥으로!
-덱스터의 실험실과는 아무 상관 없음(그렇게 믿고 있음;;;)
-교훈은: 조상 잘못 둔 오타쿠에겐 미래가 없다 (...)
일단 책 자체는 서문과 4개의 단편, 그리고 역자 해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어 원제의 표기가 전혀 없고 몇가지 미심쩍은 발음을 사용한 점('타히티'가 '차이티'로 되어 있다거나 등등), 그리고 <네크로노미콘>을 일부러 <사령비법> 등의 한자어로 옮겨놓은 점 등을 살펴볼 때 (동서추리문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일어판을 중역한 혐의가 짙다. (가장 명백한 증거를 들자면, 역자 해설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 <시체실에서>라는 단편이 이 책에서는 빠져 있다. -_-)
뭐 어쨌든 몇 가지 어색한 문장을 빼면 그런대로 읽을만은 했기 때문에 불평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기에 실린 중단편들을 읽어보고 나니 대충 러브크래프트의 기본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는 듯 해서 꽤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언제나 사건의 핵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뛰어드는 구경꾼이나 발굴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초과학적인 현상에 대해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라는 식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점점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혹은 남의 기록이나 편지를 통해 간접경험만 하고서도) '아니 이건 뭔가 내가 모르는게 있는걸지도 몰라'라고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마지막에는 초과학적인 일들을 철석같이 믿게 되거나, (<어둠속의 속삭임>) 미쳐 버리거나, (<벽 속의 쥐>) 혹은 자기 자신도 그 비밀에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거나 (<인스마우스의 그림자>) 한다.
물론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유명사(대충 뜯어맞춘 듯하지만 묘하게 오컬틱한 향기가 풍기는)와 역사기록(대부분 날조했거나 그럴듯하게 비틀어놓은)과 목격담(대부분 신빙성이 극히 떨어지고 진술자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전제로 풀어놓는)이 제시되고, 주인공 스스로가 (독자와 함께) 그 무서운 '무언가'의 실체에 도달하여 오싹함을 느끼는 순간은 극히 짧고 애매모호하게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구시대적이고 과장된 비유와 너스레를 통해) 묘사되어 있어, 무섭다기보다는 감질나게 하는 면이 강하다. 즉 무언가를 직접 보여주어 임팩트를 주기보다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리, 그리고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특히 후각)을 통해 '느끼게' 한다. (그리고 명확한 해결을 보여주지 않은 채 어중간하게 끝을 맺음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어찌보면 되게 치사한 수법이 되풀이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SF와 호러, 미스터리와 사이코드라마를 오가는 장르의 모호성을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은 에드거 앨런 포로 대표되는 미국 고딕 호러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그러나 <인스마우스의 그림자>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수생종족과의 접선이나 이종교배를 통해 은근슬쩍 이루어지는 지상침략(!), <어둠속의 속삭임>에서 묘사되는 외계생물과의 교류 시도와 뇌수만을 분리하여 우주를 항행한다는 개념, <크툴루가 부르는 소리>에 나오는, 인지(人知)를 초월한 초고대문명의 존재 등등은 현대의 SF작품과도 통하는 면이 있고,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이 수동적으로 자기에게 닥쳐오는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쪽에서 적극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탐정물의 형식도 빌리고 있으며, <벽 속의 쥐>처럼 저주받은 혈통의 연쇄를 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광인이 되는 주인공을 보여줌으로써 실감 나는 사이코드라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읽는 이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하는 모호함과 광대함이야말로, 러브크래프트 최대의 무기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너무 뜬구름잡는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쥐약이다)
러브크래프트 작품군의 거대한 배경을 이루는 설정인 '크툴루 신화'의 일부분도 본서를 통해 약간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데, 말인즉슨 인류가 아직 생겨나기도 전인 수억 년 전에, 우주 저편에서 '위대한 오랜 신들'이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존재들이 젊은 지구에 내려와 거대한 초문명을 이루었으나, 지각변동인지 대홍수인지 하여튼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해저에 가라앉아 파묻혀버리는 바람에, 오늘날의 지구로 바뀌었다고 하는 얘기다. ('크툴루'는 그 신들의 대표이사 격인 녀석)
그러나 오래된 신들은 여전히 죽지 않고 해저 깊숙한 곳의 신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언젠가는 지상에 다시 올라와 지금의 모든 문명과 자연을 뒤엎어버리고 화염과 광기로 뒤덮인 살육의 대재앙을 일으킬 것이라 한다.
그들은 그때를 대비하여 여러가지 메시지를 '꿈'의 형태로 송신하고, 지상에서 우연히 파장이 맞아 그 메시지를 받은 자들이 그들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비전(秘傳)으로 남기거나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광기의 아랍인 압둘 알하자드가 남겼다는 가공의 서책 <네크로노미콘>도 그 중 하나)
솔직히 말해 전통적인 신이라기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이미지다. (데빌맨의 데몬족?;;;)
물론 러브크래프트 이전에도 일관된 배경을 설정하여 일련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판타지/호러 작가들은 존재했겠지만,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이 인간의 지혜나 감성을 초월하는 광대함과 냉혹함을 그 배경 속에 짜넣은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에이 그게 뭐야' 싶은 설정이지만, 그가 작품을 발표했던 시기가 1920년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가 일구어낸 상상의 우주 속에서는 과학과 미신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살며, 귀신과 외계인이 공존하고, 초고대의 정체모를 위협과 현대의 신경증적인 오싹함이 앞다투어 사람들을 덮치는 것이다.
이 작가가 현대의 SF나 호러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성이나 장인으로서의 기술보다는 이러한 세계관의 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너무 무드에만 의존하다보니 영상화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는...)
의문1. '크툴루'가 '크투르프'로 되어있는 건 대체 무슨 조화일까? (띠융)
의문 2. 대체 왜 '추리'문고에 이게 들어가 있었던 걸까? (갸우뚱)
의문 3. 왜 '제1탄'이라고 해놓고 이것만 나왔나? (시무룩)
의문 4. 미스카토닉 대학에는 괴짜들만 입학하나? (두둥)
공포의보수,
러브크래프트,
크툴루,
코스믹호러,
그럭저럭,
근데왠지,
중역본,
OTL,
단편집,
판타지소설,
독서감상,
번역은별로마음에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