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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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원제: The Devil and Miss Prym
저자: 파울로 코엘료
출판사: 문학동네

한때는 번영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쇠락의 일로를 걷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 베스코스. 어느날 갑자기 이 마을에 나타난 가명의 이방인은 인간이 과연 선한가 악한가를 시험하기 위해 자기가 가져온 금괴를 놓고 기묘한 내기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 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일주일 동안에 무고한 사람 한 명을 죽이면 금괴를 모두 나눠주겠다'는 것이었다.

가슴에 품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는 바의 종업원 샹탈 프랭은, 그와 마을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자로서, 혹은 그의 계략에 반발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는 적대자로서, 그리고 때로는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선악에 대해 고민하는 이해자로서 관계를 맺어나간다. 과거에 테러로 인해 가족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방인은 '인간은 결국 악하다'라는 명제를 확인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으나, 그와 동시에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인간의 선의에 대한 갈망 또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금괴가 가져다줄 이익에 눈이 먼 마을 유지들과,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신부는 끊임없이 자기들을 합리화하며 산제물이 될 사람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이 찾아낸 제물은 수년 전 미망인이 된 이후 마을을 굽어보며 죽은 남편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노파 베르타였다. 그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마을 어귀의 오래 된 켈트족 비석으로 데려가 총으로 쏘려는 마을 사람들. 과연 이 부조리한 상황을 종결지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좀처럼 분리해내기 힘들고, 상황에 따라서는 같은 인간이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선인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 이후로, 이러한 선악 이원론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만드는 중요한 명제로서 기능해 왔고, 아직까지도 시원한 해답을 찾아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본작은 이러한 주제를 바탕에 깔고, 작은 산골 마을에서 일주일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한 담담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고찰을 제시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전제하는 세계는 천사와 악마가 항상 인간을 가운데에 놓고 끊임없이 다툼을 벌이며 얼키고 설키는, 겉으로 보기엔 한가롭지만 사실은 극히 불안정한 세계다. 인간은 결코 100%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선악을 가르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이 취하는 '선택'과 '통제'의 문제로 귀결된다.

몸소 비극을 체험하고 인간에 대해 절망한 이방인이나,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평범한 생활에 만족했으나 순간의 유혹에 따라 점점 악에 물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마음 속의 '어둠'을 상징한다면, 괴퍅하긴 하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지혜로운 인상을 풍기는 베르타 할멈은 미미하게나마 마음에 남아 있는 최후의 '빛'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의 중간에 서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하나의 '선택'을 함으로써 비극을 피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는 샹탈은 그러한 빛과 어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든 인간의 대표라고 여겨진다.

(그런 시각으로 볼 때, 그녀가 클라이막스에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할 때 사용한 논리가 결국 '어떻게 해서 그녀 자신이 애초에 금을 들고 튀려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는가'라는,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논리라는 점은 꽤 흥미롭다. 근거없는 선의나 추상적인 이성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위험'을 끌어내어 마을 사람들 스스로 공포를 느끼고 물러나서 생각을 고쳐먹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얼핏 보기엔 간단한 듯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의외로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여 독자로 하여금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모든 일의 주동자인 이방인의 동기도 결코 간단하지 않고, 샹탈의 변화하는 심리 또한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하다. 외부적으로는 별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전편을 통해서 일어나는 '내면의 대결'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여겨진다. 샹탈은 결국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선택'을 하였지만, 속세에 찌든 독자에게는 '과연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이던가'라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본작은 코엘료의 <그리고 일곱번째 날...> 3연작 중 마지막 작품인데, 이 시리즈는 각각 사랑, 죽음, 부와 권력에 맞닥뜨린 평범한 인간이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겪는 갈등과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한다. 나머지 2작품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by 잠본이 | 2004/07/04 11:30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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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끄레워즈 at 2004/07/04 12:01
다소 무서운 실험이군요 'ㅇ');;;
Commented by young026 at 2004/07/05 16:22
상황만 보면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이 생각나는군요. 보아하니 전개는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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