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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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 A Life
원제: Helen Keller - A Life
저자: 도로시 허먼
출판사: 미다스북스

19~20세기 이후 장애인 복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 중 하나가 헬렌 켈러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880년 미국 앨라배마주 투스쿰비아의 명문가에서 영특하고 예쁘장하긴 하지만 그 밖에는 별다른 특징 없이 태어난 그녀는, 출생 후 19개월만에 뇌척수막염(성홍열이라는 설도 있음)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말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탓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촉각과 후각만으로 세상과 접촉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어둠 속에서(여기의 '어둠'은 비유적인 뜻이 강하며, 연구에 따르면 실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은 오히려 회색 혹은 무채색에 가깝다고 한다) 예절도 지식도 익히지 못한 채 짐승같이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인 생활을 영위하던 헬렌은, 한 명의 여성과 조우함으로써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나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 여성의 이름은 앤 설리번(애칭 애니)이었다.

본서는 헬렌의 전기일뿐만 아니라 거의 반평생 동안 그녀의 옆에 붙어서 가르치고 이끌어준 애니의 전기이기도 하다. 흔히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일생이 하나의 '희귀한 기적'이자 '성스러운 업적'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의 실제 일생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굴곡이 많으며 어지러운 감정들로 뒤얽혀 있기도 했던 모양이다. 헬렌은 애니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지만 그 반면 애니의 일생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애니의 그러한 희생은 결코 순수한 이타심이나 사랑에서 왔다고는 할 수 없고, 불행한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와 보다 높은 계층으로의 상승욕구를 채우기 위해 헬렌을 '이용'한 면도 없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헬렌은 살아 생전에 그 어떤 장애인 여성보다도 유명해지고 떠받들어졌지만, 애니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혼자 해 나갈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강한 유대로 맺어져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어떤 사제들보다도 대립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때로는 싸우거나 갈등하고 서로를 상처입히기도 했다.

본서는 이러한 두 사람의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공생관계와 함께, 성인이나 위인으로서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헬렌의 인간으로서의 실체, 즉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힘들어하며 때로는 개인적인 욕구나 주변의 몰이해 때문에 갈등하기도 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내려 한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헬렌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했지만 생전에 그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해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자들이나 지도층은 그녀를 신기한 구경거리 정도로 생각했고 그녀와 같은 장애인들은 그녀가 자기들의 이미지를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경멸했다. (헬렌이 그렇게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그녀가 장애가 있을망정 여전히 아름답게 생겼고, 활달한 성격이며,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그녀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한몫 챙기려 했고, 어떤 이는 그녀와 애니의 성과를 의심하며 그 뒤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 속임수를 밝혀내거나 그 성과를 깎아내리려고 공격을 가했다. 또한 1~2차 대전을 겪어나가는 역동적인 세계정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한 나머지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것도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헬렌과 애니의 업적만을 강조한 나머지 생략되기가 일쑤였던 그녀들의 수많은 주변인물들이나 동시대의 위인들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다 큰 흐름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애니의 죽음 이후로 거의 헬렌의 시중드는 일을 도맡아 했던 폴리 톰슨이나, 애니의 전기 작가로서 오랜 세월 동안 두 사람을 관찰한 넬라 브래디 헤니, 그리고 애니의 남편이자 헬렌의 출판 대리인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던 존 메이시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처음에는 헬렌과 좋은 관계로 출발했지만 뒤로 갈수록 사이가 틀어져서 파국을 맞게 되는 케이스이기도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나 마크 트웨인 등 헬렌에게 이해적인 명사들과의 친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본서는 헬렌이 죽기까지를 기술한 뒤, 에필로그에서 현대 미국의 시청각 장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간단히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사례들은 상당히 성공적인 사례들이고, 실제로는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난이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통계자료의 제시(그것도 미국 국내 한정)에만 그치고 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단순히 역경을 극복한 인물의 전기로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나 여성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ps. 탄탄한 신앙심에 바탕을 둔 낙관적 사고를 지닌 헬렌은 또한 신지학자 스베덴보리의 열렬한 숭배자였다고 하는데... 저번에 칸트도 그렇지만 여기에까지 이 인간의 이름이 나오다니 의외로 대단한 영향력;;;;;;
by 잠본이 | 2004/06/29 16:58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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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한루 at 2004/06/29 18:50
그렇지 않아도 헬렌켈러가 스베덴보리와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게 있습니다. 원제는 Light in My Darkness였는데, 제목은 나는 신비주의자 입니다- 로 나왔지요. 저도 그녀가 스베덴보리의 숭배자였다는 사실이 굉장한 의외였습니다.
Commented by 검색중 at 2005/05/25 23:56
나는 신비주의자입니다(옛오늘, 2001)에서
“열여섯 살 이후로 나는 에마누엘 스베덴보리가 세상에 전해준 교리를 확고하게 믿어왔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여론이나 시끄러운 논쟁보다는 내면의 음성을 듣도록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경건하게 ?성경?을 공부하고 난 후, 나는 나의 어둠을 빛으로 바꾼 신앙을 갖게 된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스베덴보리에게 크게 힘입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성경?을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하고,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그리고 이 세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값진 관념을 갖게 되는데 있어서 스베덴보리에게 힘입은바 크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웹 검색중에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참고 하세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5/05/26 15:59
검색중님> 무려 스베덴보리 카페가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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