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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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원제: Lolita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출판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별다른 고생이나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한번의 이혼경력을 제외하고) 중년의 유럽인 문학자 험버트 험버트(가명). 그에게는 어릴 때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안타까운 첫사랑의 추억이 남아있어, 그 때문인지 십대 초반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새 생활을 시작하려던 그는 미망인인 샬럿 헤이즈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되는데, 샬럿의 어린 외동딸인 돌로레스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바로 그때부터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엄마와 딸의 날카로운 신경전과, 그 딸에게 어떻게든 접근하려 하면서도 체면을 차리는 남자의 위선이, 한 지붕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데...

본작은 2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위 줄거리는 그 일부만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는 일단 위선적이고도 예민한 감성을 가진 속물 험버트와 억척스럽고 질투심 많은 샬럿,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악하고 요염한 이중적인 속성을 갖춘 돌로레스(오직 험버트만이 그녀를 롤리타라고 부른다. 다른 이들은 로, 돌리, 돌로레스 등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의 삼각관계가 진하게 펼쳐지리라고 예상하지만, 작가는 샬럿의 어이없는 교통사고라는 이벤트를 통해 그 기대를 여지없이 날려버리고, 험버트와 롤리타가 세상의 눈을 피해 미국 일대를 헤매는 도피행을 그리는 제2부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나 험버트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것은 자꾸만 어긋나고, 롤리타는 그의 상상과는 반대방향으로만 움직이더니 결국 그를 떠나버리며, 급기야 험버트는 (중반부터 슬금슬금 나오긴 했으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이 위장하고 있던) '어떤 인물'이 거기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짓고 그를 죽여버린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사실 들어가 있는 내용은 대부분 험버트의 자기변호와 망상과 말장난으로 가득하여, 읽고 나면 '뭐가 이따위냐?'라는 느낌으로 당혹스러워진다.

본작은 그 민감한 소재 때문에 발표 당시인 1950년대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고, 지금까지도 입방아찧기 좋아하는 여러 평론가에 의해 각각 다른 식으로 해석되고 음미되어 왔다. 후기로 미루어 보아 작가가 처음부터 중년남자와 어린 소녀의 비련에 가득한 러브스토리, 라는 컨셉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시작한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두 번에 걸친 재구성과 긴 창작 기간을 거치면서 이 작품의 핵심은 그 컨셉에서 3만광년쯤 빗겨가 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이어린 여자아이에 대한 성적 호기심을 병리학적으로 정의하는 '롤리타 컴플렉스'라는 용어(및 그것을 거꾸로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잇속을 채우는 일본의 문화산업계) 덕분에 본작의 제목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 (두 번에 걸친 영화화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으리라) 하지만 그에 비해서, 이 소설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극히 적어 보인다.

게다가 소설 자체도 제대로 읽어보면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다. 음흉한 중년의 에로틱한 로망 판타지 비스무리한 걸 기대하며 본서를 손에 잡은 독자라면, 곧 어지러이 춤추는 만화경을 방불케 하는 험버트의 몽롱하고도 자기도취적인 서술과 일요일 조간신문 기사보다도 재미없는 줄거리,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에 기가 질려 책을 내던져버릴 것이 틀림없다.

시선집중의 대상이어야 할 롤리타 본인도 사실 소설 안에서는 그저 '약간 눈에 띄게 이쁘고 버릇없는 보통 아이'에 불과하며 그녀를 팜므 파탈로 신격화시킨 건 순전히 험버트의 콩깍지와 우유부단함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간에 험버트의 곁을 떠났다가 '하층민의 임신한 마누라'로서 그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서 돈 좀 달라고 하는 롤리타의 모습은, 로리콘이니 뭐니 하는 관념 자체를 산산이 깨부술 정도로 리얼하다. -_-

출판 당시에는 논란거리가 되었던, 험버트의 무신론적인 오기나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행각에 대해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된 오늘날의 평자들은 이러한 '애매모호함'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영원한 미에 대한 동경과 그에 결코 다다를 수 없는(혹은 다다른다 치더라도 그로 인해 오히려 그것을 스스로 파괴시켜버릴지도 모르는) 안타까움이라던가, 나이와 관습을 초월한 진정한 애정의 구현이라던가, 혹은 창작인으로서의 작가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진실'을 쫓아가지만 결코 그것을 잡지는 못하고 반대로 자기가 쓰는 것이 '갈데없는 거짓말의 뭉터기'에 불과함을 깨닫고 그것을 자기 손으로 해체해버리는 몸부림이라던가. 뭐 하여튼 많다.

작가 나보코프가 러시아 혁명 등의 역사적 혼란으로 인해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가정과 조국을 잃고 타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배경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유럽 출신의 지식인' 험버트는 역시 이방인인 작가의 분신으로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애틋함을 찾아 방황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는, 마음의 행로를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자기가 상실한 과거의 무언가(어릴 때의 여자친구 애너벨)를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미국(영악하고 종잡을 수 없는 두 얼굴의 롤리타)에서 어떻게든 구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의 환상 혹은 착각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위선은 일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결국 험버트는 자기의 운명을 꼬아놓은 장본인(이라고 그가 생각하는)이자 그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롤리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어느 인물'을 총으로 쏴 버리고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린다. 확실히 그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죄인이고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파렴치한이지만, 모든 정황이 그의 눈을 통해 묘사되기 때문에 독자는 이자를 동정해야 될지 어째야 될지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또한 본작이 자랑하는(?) '애매모호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후기에 따르면, 나보코프 본인은 보다 풍부한 표현을 원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기의 모국어를 내버려둔 채, 어디까지나 자기에게는 '외국어'인 영어로 이 소설을 쓰느라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본작에는 설명이나 묘사보다는 사물이나 정경을 그저 단어의 나열로 때워버리는,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부분이 많다. 게다가 험버트의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혹은 그 반대로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를 때 튀어나오는 그 수많은 동음이의어의 행렬은 또 뭐란 말인가! 그 덕분에 소재 자체는 꽤나 끈적끈적함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굉장히 메마르고 거침없는 인상을 준다. 과연 이 아저씨가 망명같은 거 안 하고 자기 모국어로 자유롭게 이 이야기를 썼더라면, 그때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방인인 험버트가 혼란과 초조함에 쫓겨가며 자동차로 미대륙 여기저기를 뱅뱅 도는 모습은 어딘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 텍사스> 제1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토리나 캐릭터 면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뿌리를 잃어버린 채 자기가 무엇을 찾는지도 잘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상실감에 가득한 남자'의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썰을 풀어놓긴 했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이 소설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고, 솔직히 알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포스트모던 문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물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ps 롤리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첫번째 남자라는 기념비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본편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찰리 모건은 무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단다. 이런 식으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픽션상의 설정만 모아봐도 꽤 웃길 것 같다. (엑스맨의 저거노트라던가...)

ps 본인의 되도 않는 습작 중 하나인 '저 양을 잡아라'의 두 주인공 이름은 이 책과 저자명 갖고 장난친거지만...내용상 관련은 저언혀 없음.
by 잠본이 | 2004/05/11 14:13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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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5/10/29 19:29

제목 : 쇼타로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해 결혼조차 못하고 미적지근한 나날을 보내던 노처녀 마법학자 코메트 코메트는, 어느날 친척의 소개로 카네다라는 홀애비 발명가의 집에 하숙하게 된다. 카네다는 밤만 되면 지하실로 내려가서 이상한 기계장치를 뚝딱거리는 등 기이한 습관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씨는 비단결 같은 중년. 그는 은근히 코메트를 마음에 들어하며 '우리 아들도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라...'라는 둥 은근히 추파를 던지지만 코메트는 묵묵부답이다. ......more

Commented by 히지리 at 2004/05/11 14:30
책으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로는 봤지요..VCD로 보관중이려나.
확실히 영상미디어로 지식을 채취하려고 해도, 책만큼이나 지루하고, 알수없지요..
Commented by skan at 2004/05/11 15:18
제목만 보고 봤는데 앞부분만 보다가 관두었습니다.
중요한건 재미가 없어요;;
Commented by Vinah at 2004/05/11 15:20
잠본이님은 언제나처럼 꽤 냉철하게 많은 걸 캐취하시네요. 제가 이 작품과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외국어인 영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어와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를 띄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거든요. 내용이 아니라 문장이 좋았던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하나고요. ^^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4/05/11 15:25
책으로 읽긴 했지만, 으음... 뭐라 말하기 힘들더군요. 아무튼 그리 재미는 없었습니다. -_-

한국전쟁과 관련된 픽션상의 설정이라.. 재미있겠군요. 확실히 해외 픽션들을 보다 보면 심심치않게 등장하죠. 가끔 '이런데까지?' 라고 느낄 정도도 있으니...

NOT DiGITAL
Commented by ZIEKZION™ at 2004/05/11 16:20
롤리타의 이미지는 철저히 영화의 덕분이지요^^
소설은...저도 읽다 말았습니다. 그 '건조한 지루함' 때문에.
원서로 읽어본다면 Vinah님 처럼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_^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5/11 19:44
무라카미 류가 리메이크해서 써 준다면 뭔가 나올 거 같지만 지금은 의미없는 일일테니...
Commented by beatapax at 2004/05/11 20:37
전 로리콤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에 책을 읽어서인지 그런 연상은 안 들더군요. 더불어 험버트가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하는 장면은 너무 재밌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는...암튼 나보코프가 러시아어로 쓴 단편이 있습니다.마술사(Wolchebnik)라는 작품인데 로리타의 습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단편으로선 일품이랍니다. 원래 그의 작품이 문체는 건조하고 스토리는 황당한 편이죠...
Commented by 로리 at 2004/05/12 06:21
좀 읽었지만..

정말로 재미없더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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