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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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원제: 夜の国のクーパー
저자: 이사카 코타로[伊坂幸太郎]
역자: 김수현
출판사: 민음사

어딘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의 이야기. 8년에 걸친 전쟁이 패배로 끝나고 점령군의 선발대가 쳐들어와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불합리한 폭력은 삼가달라고 항의하던 국왕은 점령군의 총탄에 맥없이 쓰러지고,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웅성거린다. 어떤 이는 적에게 빌붙어 보신을 꾀하고, 어떤 이는 은밀히 동료를 모아 저항을 계획하고, 어떤 이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몰라 방관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언젠가 돌아와서 자기들을 구해줄 병사들의 전설을 믿고 기다린다. 삼나무 숲에 사는 무서운 괴물 쿠파를 퇴치하러 파견되었다가 투명하게 변해버린 서글픈 병사들의 전설을...

2년 반에 걸쳐 집필된 이사카 코타로의 전작장편으로 저자의 장편소설 중에서는 10번째라는 기념비적인 작품. 우리 세계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적용되는 물리법칙이나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몇 가지 부분을 빼고는 우리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적국에 점령당한 마을 사람들의 불안과 그들을 억누르는 점령군의 수상쩍은 행동, 그리고 모든 사건을 연결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쿠파의 병사들'에 관한 전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때로는 판타지같고 때로는 역사소설같고 때로는 추리소설같기도 한 장르불명의 신선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의 모든 사건이 1인칭 관찰자인 마을 고양이 '톰'의 시선을 통해서 시니컬한 풍자와 해학이 섞인 기묘한 어투로 서술되는데, 동물이라서 의심을 사지 않고 모든 것을 훔쳐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과 말이 통하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포지션 덕택에 제법 흥미로운 긴장을 유지하며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톰은 항상 인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과 태생적인 본능에는 거역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함께 갖추고 있어서 극중 어떤 인물보다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무사태평한 성격의 단짝친구 '갈로', 박식하고 사려깊은 현자 역할의 '클로로' 등 주변 고양이들의 성격이나 활약도 꽤 재미나게 묘사되어 있다. 고양이와 쥐들과의 관계를 통해 강자와 약자 사이의 역학관계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세계의 일본에서 쓰라린 배신을 겪고 낚시여행을 떠났다가 풍랑을 만나 이 세계로 밀려온 평범한 직장인이 또 한 명의 서술자로 추가되는데, 이 캐릭터는 우리 세계의 시선에 맞춰 극중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후반부에 가서 뜻밖의 활약을 보여주는 히든카드로도 기능한다. 그 활약이란 것이 약간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운 반칙의 냄새를 풍기기는 하지만 초반부에 톰과 처음 만났을 때 알게모르게 복선을 깔고 있어서 작품을 끝까지 읽었다가 다시 뒤돌아보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납득할만한 정도는 된다. 이 작품은 거시적으로 보면 마을사람들과 점령군의 밀고 당기기이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톰과 이 직장인의 두 주인공이 방관자이면서도 참여자라는 이율배반적인 입장에서 사건에 관여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가서는 그동안 보아왔던 현실이 겉보기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암시가 계속 튀어나오면서 마침내는 마을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진실로까지 소재가 확대된다. 환상적이고 신비한 그 무엇으로만 여겨졌던 전설이 실은 어이없을 만큼 현실적이고 잔혹한 진상을 감추고 있었으며 반대로 현실적이고 비루한 존재로만 여겨졌던 극중 인물이 실은 사건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판타지스러운 반전을 감추고 있었다는 '의식의 전환'을 한바탕 보여준 뒤 이야기는 훈훈하고 잔잔한 마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끝까지 다 읽은 뒤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용을 곱씹어 보면 왠지 위화감을 느끼게 하거나 잉여스러운 부분으로 여겨졌던 서술들이 하나같이 복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by 잠본이 | 2014/08/24 22:43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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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염땅크 at 2014/08/25 01:28
쿠파라기에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국밥마왕부터 떠올려버렸습니다;;
Commented by 마스터 at 2014/08/25 12:04
반전을 알고 처음부터 다시 보면 다시 보이는 작품이라니, 이사카 고타로 소설 단골로 영화화 하는 나카무라 감독님이 좋아하겠네요[....]

그러고보니 작가분이 영화화 때문에 소란스러워지는 걸 싫어해서 다시는 안하겠다는 걸 졸라서 3년 뒤쯤에나 생각해보자고 했다던게 2010년인데[............]
Commented by 미니 at 2014/08/25 17:36
그 국밥선생인가?? 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별개 작품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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