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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제너레이션 패트레이버 제1장
1988년을 기점으로 십수년간 전개되었던 미디어믹스 기획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의 실사영화 버전. 초기 OVA와 극장판 시리즈에도 참가하여 이름을 날렸던 오시이 마모루가 총감독을 맡았다. 본 프로젝트는 2014년 4월 초부터 순차적으로 극장 및 위성방송을 통하여 공개되는 단편 작품 13화(15분짜리 제0화 + 48분짜리 1~12화) 및 2015년 상영 예정인 장편영화 1편으로 기획되었는데, 이번에 국내 수입된 제1장은 그 중에서 제0화 및 제1화에 해당한다. 그런 이유로 포맷 자체는 사실 TV드라마에 더 가까운 형태로 되어있으나 일단 발표형태는 엄연히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한 '영화'이다. 초기 OVA의 발표로부터 이미 26년의 세월이 지났고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된 2002년의 <폐기물 13호>로부터도 12년이 지난 터라 요즘 관객들에겐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헤드기어는 '원안'으로만 크레딧되어 있고 오시이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레이버 디자인도 실사판에 맞춰 재도안한 사람만 크레딧되고 이즈부치 유타카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작품은 대개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되 실사로 만들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타협한 것'과 '원작에서 일부 설정이나 모티브만 따오고 실제로는 전혀 딴 얘기'라는 두 가지 패턴 중에서 하나를 택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원작이 실제 역사로서 존재했었던 세계관을 전제하여 '이야기가 끝난 후의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다만 기본적인 인물 구성과 작명, 그들 사이의 관계 등등은 원작의 주요인물들을 의식한 형태로 되어 있어서 몇몇 부분에서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도록 연출되어 있기도 하다. 실사영화라는 점 때문에 거대로봇인 레이버의 활약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이 마주치는 부조리한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초기 OVA의 '로봇도 나오는 경찰 시트콤'이라는 특성을 제법 잘 물려받았다고 할 만하다. 음악도 원작에서부터 계속해온 카와이 켄지가 담당하여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간판 캐릭터라고 할 만한 98식 AV 잉그램은 거액을 들인 1:1 모형이 제작되어 정비 및 출동 모습에서 꽤 공들인 연출을 보여주지만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실제로 움직이는 장면은 거의 없다. (실사판 <트랜스포머>와 비교해가며 화제를 불러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케팅 담당자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영화는 아무 예비지식 없이 로봇이 싸우는 거 보러 갔다간 극장에 불지르고 싶어질 그런 영화다.)

바빌론 프로젝트의 종결로 인한 건설경기 침체와 버블경제 붕괴라는 원투펀치를 맞은 극중의 일본 사회는 전반적으로 평화롭기는 하지만 어딘가 권태롭고 병든 느낌의 세계로 그려진다. 또한 그러한 경제사정 때문에 유지비를 무지하게 잡아먹는 레이버는 효용가치가 떨어져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며, 레이버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된 경시청 특차2과도 그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원작에서 활약했던 초기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고 몰개성한 2기 멤버(아마도 극장판 2탄의 그 존재감 떨어지는 엑스트라들을 의식한 설정인 듯)들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라졌으며 극중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무능한 3기 멤버들이라는 설정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정은 제0화에서 원년멤버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비반장 시바 시게오(연기하는 사람도 애니메이션에서 시바를 연기한 치바 시게루 본인)의 회상을 통해 간략하게 제시되며 이어지는 제1화에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특차2과가 언제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출동 상황을 기다리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묘사된다.

특차2과 제2소대의 3기 멤버들은 얼핏 보면 초기 멤버들의 열화복제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초기 멤버들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열악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른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1반 지휘담당 시오바라 유마는 시노하라 아스마보다 훨씬 삐딱하고 드라이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으며 늘 똑같은 편의점 음식에 질려서 숙직 때마다 이것저것 섞어서 괴식을 실험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2반 조종담당 오오타와라 이사무는 오오타 이사오보다 훨씬 조폭스럽고 술에 쩔어서 사는 알콜중독자다. 2반 운반담당 미키야 신지는 신시 미키야스처럼 위장병은 없으나 소심하긴 마찬가지고 부인에게 이혼당한 뒤 파친코에 빠져서 산다. 1반 운반담당 야마자키 히로미치는 야마자키 히로미처럼 닭들을 돌보는 착한 거한이지만 지능 면에서는 훨씬 딸리는 듯하고 히로미처럼 푸근한 안정감도 없다. 2반 지휘담당 카샤는 카누카 크란시와 달리 미국이 아닌 러시아 출신으로 인생 다 산 듯한 허무감을 풍기며 줄담배나 피워대는 게 하루 일과다. 1반 조종담당 이즈미노 아키라는 이즈미 노아와 마찬가지로 정의의 사도 증후군을 앓는 보이쉬 소녀이지만 출동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실제 조종보다 격투게임 쪽이 훨씬 익숙한 생초보다. (그러나 그 정체는 사실 가면라이더 나데시코...가 아니다!)

제0화의 연출은 다른 사람이 맡았으나 각본은 제0화, 제1화 모두 오시이가 맡았기 때문에 대사나 장면 구석구석에 패트레이버라는 시리즈와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오시이 본인의 다소 비뚤어진 풍자와 딴죽이 가득하다. 제1소대가 해산되는 바람에 원작에서보다 훨씬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야만 하는 제2소대는 외딴 매립지에서 근무한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격리되어 국가에 시간을 저당잡힌 피곤한 청춘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모습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요즘 일본인들을 빗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꿈도 희망도 없는 묘사가 가득하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실사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현실적인 연출을 보여주지만 감정이 고조된 상황을 보여주거나 개그를 섞고 싶을 때는 <입식사열전>이나 <미니패트> 등에서 오시이가 실험한 바 있는 종이연극 연출이 슬쩍 끼어들어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숙직시간에 보는 TV드라마가 같은 토호쿠신샤 제작의 특촬액션극 <가로>라든가 제1화 후반에 사건을 일으키는 범죄 레이버로 실제 시판되었던 작업용 로봇인 쿠라타스가 등장한다든가 등등 사소하지만 매니악한 부분도 적지 않다.

패트레이버를 아는 입장에서 본다면 원작의 세계관을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과거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절망적인 세계를 무대로 하여 원작에서 추구했던 모든 이상이 부정되고 이름과 성격만 물려받은 꼭두각시들이 애처로운 일상을 보내는 의미불명의 작품으로 비칠 수 있어서 영 찜찜한 느낌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OVA의 실험정신과 그당시 오시이가 보여주었던 블랙코미디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도 눈에 보이기 때문에 완전히 싫어하기도 힘든 기묘한 물건이라 하겠다. 오시이의 특기대 시리즈에서 주인공 토도메 코이치를 맡아 괴연(怪演)을 펼쳤던 치바 시게루가 머리 허연 기성세대로서 돌아와 자기가 왕년에 더빙했던 캐릭터를 실사구현하는 흥미로운 모습도 볼 수 있고, <공각기동대> 이후로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며 사람들 해골에 쥐나게 하던 오시이가 간만에 비교적 멀쩡한(?) 영화를 찍었다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 아직 파일럿 필름만 공개된 시점이라 확실한 평을 내리기엔 이르지만 처음 제작기사를 접했을 때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정도로 훌륭한 시리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상대가 오시이니까 너무 큰 희망을 갖는 것도 좀 생각해봐야 할 듯.)

시사회에 참석할 기회를 주신 백금기사님께 감사드린다.



★촬영지: 롯데시네마 합정★
by 잠본이 | 2014/04/26 21:57 | 시네마진국 | 트랙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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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페니웨이™의 In Th.. at 2014/05/20 12:09

제목 :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 로봇물 아닌 일상 ..
창작집단 헤드기어가 탄생시킨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기동전사 건담] 이후 트렌드를 이룬 리얼 로봇 계열 중에서도 대단히 이질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거대 로봇이 등장하지만 액션이나 전투가 그리 중요시 되지 않고, 극의 중심에 서는 건 어디까지나 특차 2과의 소대원들과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밀도높은 드라마와 깨알같은 개그의 조합이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TV판 OVA, 극장판 각각의 특색있는 완성도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more

Commented by 늅실러 at 2014/04/26 23:48
오시이 마모루치고야 멀쩡한 일본 드라마같단 점이 경악스러웠습니다. 실사영화에서 추구하는 특유의 색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예전처럼 붕뜨진 않았고요. 그냥저냥 구 OVA를 리메이크했단 느낌이더군요 ㅋㅋ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4/27 19:32
그점에서 취향이 확 갈릴 것 같더라고요. 구OVA 잘 아시는 지인분은 꽤 호의적인 평을 내리셨는데 tv판 이후의 로봇액션 강화된 패트레이버나 극장판의 오시이스런 철학을 기대한 사람에겐 쥐약일테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온 사람에겐 비싼돈주고 일드 한편 억지로 봤다란 느낌일터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입했을까 걱정될 정도(...)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14/04/27 02:10
주욱 읽다가 이즈미노 아키라에서 뿜었습니다. ㅇㅈㄴ
(원작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름-_-)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4/27 19:34
저는 요코테 미치코의 소설판 패트레이버에서 노아가 나이트클럽에 위장취업했을 때 쓴 가명 생각했는데 직접적인 소스는 아마도 오시이가 이거 하기 전에 패러렐 월드 격으로 쓴 모 소설에서 가져온 듯하다고 하더군요 (근데 거기의 아키라는 남자라고 =_=)
Commented by nenga at 2014/04/28 07:36
0화에서 1세대 멤버들은 배우가 다른 것 같았는데 아닌가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5/07 23:57
교묘하게 얼굴을 안 보여주는 식으로 연출한데다 등장시간 자체가 짧아서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풍신 at 2014/04/28 10:36
일단 흥미는 있지만, 후속작도 아니고 그냥 새로운 패트레이버라고 생각하고 보는게 나을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과거 세계관과 연결하면 위만 아플뿐...)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5/07 23:57
마크로스 2에서 민메이 어택이 그 민메이 어택이 아니듯이...응?
Commented by fkdlrjs at 2014/04/29 08:08
솔직히 0화보고 쌍욕이 나왔습니다.

'싫은 티'가 팍팍나서....

그렇게 패트레이버가 싫으면 만들지 말라고...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5/07 23:57
역시 돈 때문이 아닐까 싶은
Commented by 주전자 at 2014/05/17 12:07
돈떨어진 사회에 살아가는 오시이의 현재 같은…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4/05/22 22:04
그렇게 로봇이 싫으면 개와 새가 나오는 개새같은 영화나 찍을것이지 왜 자고 있는 잉그램을 건드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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