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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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시리즈 (7) 파운데이션을 향하여
원제: Forward the Foundation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
역자: 김옥수
출판사: 황금가지

그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은 도피 사건으로부터 8년 후, 트랜터에 정착한 천재 수학자 해리 셀던은 제국 총리 데머즐의 후원 하에 스트릴링 대학에서 심리역사학을 완성시키기 위한 연구를 계속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구를 거듭해도 심리역사학의 실용화에는 다양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어서 언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제국 체제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일련의 정치세력이 데머즐을 실각시키기 위해 활동을 개시하고, 그 여파는 조용히 연구에 묻혀 지내고 싶어했던 셀던에게도 닥쳐 온다. 하지만 이것은 은하계의 운명을 구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따라가면서, 셀던은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과 친구들을 하나 둘씩 잃어간다. 그와 동시에 은하제국도 셀던의 예언대로 전성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몰락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다. 절망과 낙심의 구렁텅이에서 심리역사학의 완성과 파운데이션 계획의 시작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셀던은 점차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만약에 가능하다 해도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93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7번째 단행본인 동시에 최종편. 전작 <파운데이션의 서막>에 이은 해리 셀던 2부작의 후편에 해당하지만 전작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대조되는 작품이다. 전작이 32세의 젊은 셀던을 주인공으로 하여 몇 달 동안의 짧은 사건을 집중적으로 그려낸 장편 모험소설인데 비해 본작은 잡지에 순차적으로 발표된 4개의 단편과 1개의 짤막한 에필로그로 구성된 연작 장편으로 각각 셀던의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시절을 다루고 있다. 형식만으로 보면 오히려 초기 3부작에 가까운 체제로 돌아온 셈이지만, 그 작품군보다는 비교적 단기간을 배경으로 삼아 동일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의 일생을 꾸준히 추적하는 스타일이라 훨씬 응집력이 강하고 감정이입하기도 쉬운 편이다. 시기상으로는 제6권 <파운데이션의 서막>과 제1권 <파운데이션>의 중간 시기를 다루고 있으나 에필로그 부분은 <파운데이션>의 제1장 '심리역사학자'보다 나중에 위치하며, 여기서 해리 셀던의 장엄하고도 애달픈 마지막 순간이 묘사된다.

여기서의 셀던은 전작에서처럼 뛰어난 무술로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천재적인 이론을 구상하여 세간을 뒤흔들던 만능형 주인공이 아니다. 한때는 멋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젊은 날의 활력을 서서히 잃어가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언젠가 다가올 종말을 걱정하면서도 희미한 비전에 의지하여 무력하게 발버둥치는 현실적인 캐릭터인 것이다. 전작의 엄마친구아들 셀던이 저자의 이상적인 히어로상이라 한다면 여기의 노친네 셀던은 점점 나빠지는 건강과 싸워가며 말년까지 창작욕을 불태우던 저자 본인의 자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레비스 2부작에 비유한다면 전작은 트레비스가 연기하는 셀던이고 본작은 페롤랫이 연기하는 셀던이라고나 할까. 물론 실제 캐릭터의 세부사항이나 성격은 약간씩 다르지만.)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소중한 사람들은 점점 곁을 떠나가며, 이대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마는 게 아닐까 하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셀던의 모습은 전작에서의 생생하고 활기찬 모습이 있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보통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논리적 토론을 통하여 지적(知的)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시모프 본래의 스타일이지만 본작은 그 집필된 시기 탓인지 훨씬 정적(情的)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느낌이 강하다. (세상에 내가 아선생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 줄이야!)

셀던의 대외적인 지위 또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변천을 거듭한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조용히 연구에 열중하는 교수의 신분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사건을 해결한 뒤 클레온 1세 황제의 눈에 들어 총리가 되고, 다시 운명의 장난으로 황제가 퇴장한 뒤에 대학으로 돌아오지만 심리역사학을 악용하려는 군부정권의 압박에 시달리더니, 말년에는 제국의 멸망을 예언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연구비를 구걸하러 다니는 재야 학자의 비참함을 맛본다. 그 와중에 전작에서 등장했던 익숙한 주변인물들이 사망이나 실종 등의 이유로 하나 둘씩 셀던의 곁을 떠남으로써 그를 더더욱 힘들게 한다. 모든 계획의 시작이자 후원자인 에토 데머즐, 어리석긴 하지만 악의는 없는 절대군주 클레온 1세, 현명한 아내이자 역사학 고문이며 보디가드인 도스 베나빌리, 셀던과 함께 심리역사학 연구에 전생애를 바친 수제자 유고 애머릴, 그리고 셀던의 양아들로서 온갖 궂은 일을 대신해준 레이치까지... 전작에서는 주인공과 함께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서 유쾌한 모험을 즐기거나 사태를 관망하는 데 그쳤던 조연들이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이들고 의기소침해지고 서로 사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급기야는 셀던에게 큰 슬픔을 남기고 퇴장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결국 의외의 돌파구를 찾아내어 평생 매달렸던 문제를 타개한 셀던은 손녀 완다 셀던과 그의 연인 스테틴 팔버(바로 그 프림 팔버의 조상이다)에게 미래를 맡기고 셀던 프로젝트의 첫발을 내딛는다.

본래는 5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저자의 건강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4부+에필로그로 축소되었고 특히 후반의 3~4부는 전반부보다 글의 짜임새나 설정을 펼쳐나가는 설득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엉성한 느낌이 드는지라 어쩌면 아선생은 간단한 아웃라인만 남기고 아내인 자넷이나 후배 작가 중 누군가가 대필을 하여 완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없지 않다. (3부에서 '레모네이드 죽음'이라는 썰렁한 말장난에 집착한 도스가 너무 열심히 수사하다가 자기 명을 재촉하는 부분이나 4부에서 정신간섭 능력이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으로 부자연스런 효과를 발휘하는 부분 등등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그러한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매서운 한파에 부대끼며 어떻게든 미래의 희망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셀던의 집념은 꽤 진실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SF소설이라기보다는 가상인물의 전기문이나 저자 본인의 사소설(私小設)에 가까운 독특한 매력을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1부에서 텅 빈 총리 관저에 들어선 셀던이 오랜 친구에게 바치는 작별인사를 뇌까리는 장면이나 2부에서 모든 요소를 충분히 통제하여 반란 음모를 막았음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앞쪽에서 충분히 복선을 깔아둔 요소에 의해 황제 암살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전개 등등 꽤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았기에, 3부 이후도 이 정도 퀄리티로 집필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초기 3부작보다 이전 시기의 이야기이므로 파운데이션 자체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에 관련된 여러 가지 복선이나 후대에 사용될 아이템의 편린이 은근슬쩍 끼어들어가 있어서 프리퀄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다. (특히 제2파운데이션의 기틀이 되는 제1발광체(Prime Radiant)나 정신간섭 능력이 후반부에 꽤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거기에 더하여 나중에 샐버 하딘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는 '어떤 인물'이 몸소 게스트 출연하여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뿐만 아니라 저자의 다른 작품들과 섬세한 연결고리를 남겨둔 것도 특기할만한데, 초반부에 도스가 연구한다는 '제국 초기의 플로리나 사건'은 제국 시리즈(혹은 우주 3부작) 중 <우주 기류>의 내용을 암시하며 셀던이 손녀 완다의 정신간섭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드는 전설은 말년의 장편 <네메시스>를 그대로 요약한 것이다. 또한 '고위층 인사가 로봇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뒤 그 내용을 역이용하여 반대파에게 한방 먹인다'는 1부의 플롯은 수잔 캘빈이 등장하는 양전자로봇 단편 <증거>의 재탕이라 할 수 있다. 3부에서 썰렁한 말장난 하나를 키워드로 삼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흑거미 클럽>을 위시한 저자의 미스터리 소품이나 영단어 발음을 재치있게 이용한 일련의 개그 단편들이 이어온 흐름을 계승한 것이라 여겨진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이미 수 년 전에 <파운데이션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현대정보문화사에서 <파운데이션의 서막>까지만 내고 본작은 누락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이 국내 최초 출판이다. (역자 후기를 쓴 시점이 '2011년'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출판사 사정 때문에 발행이 늦춰진 것으로 짐작된다.)

해리 셀던이 오로지 심리역사학 그 자체로서 역사에 남게 되었듯이 아이작 아시모프 본인도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을 활활 불태우며 SF 그 자체로서 영원히 잊지 못할 족적을 남기고 떠나갔다. 다시 한 번 저자의 명복을 빌며 이만 감상을 마치고자 한다.
by 잠본이 | 2013/11/27 01:01 | 대영도서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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