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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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얼굴의 기사 - 세르반테스 이야기
원제: The man who was Don Quixote; the story of Miguel Cervantes
저자: 라파엘로 부조니(Rafaello Busoni)
역자: 송재원
출판사: 풀빛

불후의 명작 <돈 키호테>를 낳은 스페인의 작가 돈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이 사아베드라(Don Miguel de Cervantes y Saavedra : 1547~1616)의 일생을 그린 평전.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럽에서 활약했던 저자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관심을 갖게 된 세르반테스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1958년에 엮은 결과물이다. 소설 속의 돈 키호테보다 훨씬 기구하고 파란만장했던 세르반테스 본인의 처절한 생애를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상상을 곁들여 생생하게 재구성한 것이 매력으로, 가족의 경제사정 때문에 스페인 각지를 헤매며 살았던 어린 시절부터 명성은 얻었으나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던 말년에 이르기까지 세르반테스의 거의 모든 것을 충실하게 담으려 애쓰고 있다. 한국어판 부제인 '슬픈 얼굴의 기사'는 소설 속 돈 키호테를 일컫는 말인 동시에 세르반테스의 기구한 운명을 웅변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가난한 하급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숱한 고생을 겪어야 했던 세르반테스는 그러한 배경 덕분에 귀족과 평민의 양쪽 세계를 모두 경험하며 넓은 세상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었다. 본인은 어떻게든 군인이나 관료가 되어 국왕에게 봉사하고 싶어했지만 용맹한 군인이나 약삭빠른 행정가로서의 면모는 갖추지 못하고, 고지식한 성격과 원칙에 충실한 청렴함 때문에 끊임없이 호구 취급을 받거나 배신당하고 곤경에 처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어느 정도 문학적 재능과 시문에 대한 흥미가 있긴 했지만 당시 사회에서 글쟁이는 별로 대접을 못 받았던 탓에 세르반테스 스스로는 문필가가 될 생각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약간의 시를 공동 작품집에 싣거나 극단의 연출가로 활동하는 등등 미미한 경력밖에 없고, 원숙기를 한참 지난 50대 후반에야 본격적으로 문학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다.

오랜 방랑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겨우 마감하고 도시에 정착한 뒤 유력한 성직자의 비서가 되어 로마로 유학가고 급기야는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군에 입대하여 투르크와의 싸움에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때부터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사정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기껏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나 싶었더니 열병에 걸려 몸져눕고, 그럼에도 억지로 일어나서 싸우려 했더니 재수없게 유탄에 맞아서 왼팔을 못쓰게 되고, 지루한 투병과 재활을 끝낸 뒤 재기를 모색하나 이번엔 항해 도중 해적에게 잡혀 알제리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천신만고 끝에 몸값을 치르고 풀려나 귀국하지만 이번엔 일자리가 없어 상당기간을 백수로 지내고, 영국과 전쟁이 발발하여 물자 징집관으로 대활약하지만 그 전쟁이 스페인의 패배로 끝나는 바람에 또 무직으로 돌아오고, 세금 징수원으로 재취직하여 어떻게든 잘해보려 했는데 이번엔 또 사기를 당해서 감옥에 갇힌다. 진짜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리는 안습인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감옥에서의 기간이 세르반테스의 생애를 의미 있는 무언가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지루한 수감 생활에 지친 세르반테스는 자기의 인생 경험을 통해 얻어낸 재치와 그때까지 만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경험담, 그리고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나 그 비현실성과 클리셰의 난무로 매력을 잃어가고 있던 중세 기사 모험담에 대한 불만을 한데 버무려서 그 전에는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광기의 시골영감 돈 키호테와 그의 뒤를 따르며 항상 골머리를 앓는 산초 판사의 엉뚱하고도 유쾌한 모험담은 스페인 전역은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까지 사로잡았고, 돈 키호테의 명성을 악용하려는 가짜 속편까지 나오는 부작용까지 초래했다. 결국 그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스스로 돈 키호테 2부를 집필하여 주인공을 저승으로 보낸 세르반테스는 불과 1년여 후에 그 뒤를 따르듯 세상을 떠난다.

저자 부조니는 이러한 세르반테스의 인생역정을 애정어린 눈길로 추적하며 그의 인간 됨됨이나 각각의 전환기에 느꼈을 법한 절망과 분노, 그리고 성찰과 자기 구원의 과정을 꼼꼼하게 재현한다. 그가 바라본 세르반테스는 비록 불행에 유린당하고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부평초같은 인물이었으나 그럼에도 결코 빛바래지 않는 낙관적인 성품과 어떤 계층의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친화력을 겸비한 진정한 신사이기도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세르반테스가 겪은 일들은 그 시대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두번쯤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흔해빠진 곤경과 불운의 집합체이긴 하지만, 그 사건들을 솜씨 좋게 연결하여 반전의 연속으로 포장한 저자의 글빨 덕분에 실제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수리술술 넘어가는 저자의 빼어난 이야기 솜씨에 휩쓸려 세르반테스와 함께 오랜 옛날의 스페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노라면 어느새 독자인 우리들도 돈 키호테를 이해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인 것이다.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를 소재로 한 뮤지컬 <라 만차의 사나이>를 감상하고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을 듯 하다.
by 잠본이 | 2013/09/09 22:05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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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풍신 at 2013/09/10 10:02
이거 한번 읽고 싶군요. 안습한 시뇨르 세르반테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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