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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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샤아 아즈나블
■ 그것은 마치 드라마처럼

음향감독인 마츠우라 씨가 <기동전사 건담>의 오디션에서 아무로 레이 역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온 것은 드라마 <지로 이야기>에 출연했을 당시의 내 이미지가 그분의 머릿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로를 연기한 이케다라면 내성적이고 감수성 풍부한 소년 아무로도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미 28세였기 때문에 16세의 소년을 연기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디션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것은 술집에서의 뒷풀이였죠.

내가 불려간 시간은 그날의 최종 테스트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마츠우라 씨가 소속되어 있었던 사무소에는 간단한 스튜디오 공간이 있어서, 그날도 몇 명인가 성우분들이 오디션을 받으러 왔었을 테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들 돌아가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떨어질 거라고 확신한 채로 오디션을 받았고, 마츠우라 씨도 나의 그런 심정을 헤아렸는지 '뭐 어쩔 수 없구만'이라는 느낌의 쓴웃음을 지으며 몇 가지 대사를 읽어보게 한 뒤 테스트용 녹음을 마쳤습니다.

담배를 피우며 마츠우라 씨가 일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응접 테이블에 놓여있던 프로그램의 자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자료를 집어들고 건성으로 대충 넘겨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캐릭터들의 설정 일러스트에 시선이 닿았던 것입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 씨가 그려낸, 부드러운 묘선(描線)의 캐릭터들은 단순한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매력과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의 눈으로 봐도, 야스히코 씨의 캐릭터가 그때까지의 애니메이션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참신한 그 무언가라는 사실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림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약동감과 입체감을 갖추고 있었기에, 나는 순식간에 야스히코 씨가 그린 캐릭터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야스히코 씨의 그림은 내가 알고 있는 만화나 극화, 애니메이션 그림의 어느 유형에도 해당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내 눈은 특히 그 중에서도 가면을 쓴 청년장교 캐릭터의 그림에 못박혔습니다. 그에게서는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기품과 풍격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표정이나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내 머릿 속에서 '이녀석이라면 이렇게 지껄이겠군'이라든가 '이런 느낌의 행동을 취하겠지'라는 식의 영감이 솟아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샤아 아즈나블------------.

나는 믹싱 룸의 문을 열어젖히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던 마츠우라 씨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이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캐릭터의 테스트를 받아볼 수 없을까요?"
"어? 그야 뭐, 상관없네만..."

마츠우라 씨의 입장에서 보면 애니메이션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내가 솔선해서 캐릭터의 오디션을 받아보겠다고 나선 것이 뜻밖이었던 모양인지 '그렇다면 잠깐 해 볼까'라는 뜻에서 나의 보이스 샘플을 녹음해 주었습니다. 분명 그 때의 대사는 제1화의 시나리오에서 발췌한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마츠우라 씨와 함께 사무소를 나왔을 때는 이미 주변 상점가가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의 오디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마츠우라 씨가 갑자기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슈쨩, 샤아 연기해보지 않을래?"
물론 내게도 이의는 없었습니다.
"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아, 그럼 결정했다!"

이것이 나와 '그', 샤아 아즈나블과의 기나긴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스스로 돌아봐도 '마치 드라마같네'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것이 나와 '그'와의 첫만남에 얽힌 진실입니다.

하지만 마츠우라 씨는 어디까지나 음향감독이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캐스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그 이후가 훨씬 더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실은 바로 그때 샤아 역할은 어느 성우분이 맡기로 거의 결정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광고대리점이나 TV 방송국의 프로듀서, 스폰서 등에게도 이미 허가를 얻고, 최종 결정 직전까지 갔었던 캐스팅을 이제와서 뒤엎는다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 성우로는 아마추어나 마찬가지였던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제작진이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츠우라 씨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내게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러한 사정을 알게 된 것은 캐스팅이 정식 결정된 뒤의 일이었습니다. 닛폰선라이즈(현재의 선라이즈) 프로듀서인 시부에 야스오[渋江靖夫] 씨를 소개받으러 가는 도중에 마츠우라 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시부에 씨가 이번 일로 죽을고생을 많이 하셨지.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서 말야. 물론 슈쨩에게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갔습니다. 내 쪽에서 억지로 졸라대어 샤아의 오디션을 받기도 했었으니...
회의 장소에 도착하여 시부에 씨와 첫 인사를 나누고, 얘기가 일단락된 뒤에,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전에는 여러모로 수고를 끼쳐드렸던 것 같네요."
"아닙니다. 정말로 고생했던 건 마츠우라 씨 쪽이죠. 그런 것보다도 새 프로그램, 힘내서 잘 해주십시오. 자아, 건배합시다!"
큰 덩치에 호방한 인상의 시부에 씨 덕분에, 캐스팅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고 그리운 옛날 영화 얘기 등으로 분위기를 돋우며, 의외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츠우라 씨와 시부에 씨가 힘써 주신 상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위에 말한 것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희대의 캐릭터인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바톤을 내게 넘겨주신 몇 분의 은인이 계셨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나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특별히 애니메이션 성우가 될 생각은 없었고, <건담>의 오디션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우연히 야스히코 씨가 그린 샤아의 설정 일러스트를 본 순간,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역을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마다, '샤아가 나를 불러세운 것이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믿어주신 마츠우라 씨와 시부에 씨가 나의 좋은 이해자가 되어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연기한 샤아라는 남자는 태어나지 못했겠지요. 야스히코 씨가 그토록 매력적인 샤아라는 남자를 그려주지 않았더라면, 이것저것 따지기 좋아하는 내게 연기의 영감을 주지 못했더라면, 내가 그토록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연기한 샤아 상(像)을 인정해 주시고, 거기에 더하여 샤아라는 남자의 인생을 더욱 흥미롭게 연출해 주신 토미노 감독님의 재능이 없었더라면, 나의 성우로서의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긴 하지만, 몇 가지의 우연이 나와 샤아를 운명적으로 맺어주고, 거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재능과 협력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인 것이라고, 언제나 나는 생각합니다. 나와 샤아, 양쪽 모두에게 정말로 은혜로운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기나긴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출전: 이케다 슈이치, <샤아에게 바치는 진혼가 - 내 청춘의 붉은 혜성>(코사이도, 2009년), pp.76~82
-해석: 잠본이(2013. 5. 19)


...이케다성님이 연기한 아무로라니 그건 또 어떤 느낌일까 좀 들어보고 싶긴 하네 OTL
by 잠본이 | 2013/05/19 20:45 | GUNDAMAKERS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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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자이드 at 2013/05/19 22:04
그야말로 전설의 시작이네요
Commented by 잉그램 at 2013/05/19 22:08
에이이잇! 무기는...무기는 없는건가?!

이런식의 느낌이었을까요?
Commented by 루루카 at 2013/05/19 22:09
운명같은 시작이었군요. 그래도 참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느낌이에요. 평생의 큰 만남이었겠죠.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at 2013/05/19 22: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검투사 at 2013/05/19 23:06
"나 샤아 아즈나블, 아버지에게서도 맞은 바 없다!"
Commented by 히무라 at 2013/05/19 23:42
정말 운명이구나
Commented by JOSH at 2013/05/19 23:49
운명의 인도네... -,-
Commented by 풍신 at 2013/05/20 08:14
건담 창세에서 저 이야기를 각색한 버전이, 술취한~이케다 아저씨가 아무로 오디션에 와서 "아로무 갑니다~"하고 토한 후에, 복도에서 후루야씨의 설정을 빼앗아 구경하다 샤아 일러스트를 보고, 샤아 연기하겠다고 하며 샤아가 되어(...) 토미노 영감한테 발탁되는 식으로 보여줬는데...

현실은 더 드라마틱하군요. 이미 거의 정해졌던 배역을 빼앗았다는 부분에서 특히...
Commented by rumic71 at 2013/05/20 16:41
졸지에 평생 벌어먹을 배역을 빼앗긴 그 성우분은 누구였을까요.
Commented by sharkman at 2013/05/21 08:17
죽은 후에도 계속될...
Commented by AirCon at 2013/05/21 13:08
"보여주실까, 지온 모빌슈트의 성능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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