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지: 코엑스몰 메가박스★빵 하나 훔친 죄로 옥살이하고 나와서 평생 냉대받는 전과자로 살다가 유일하게 자기를 인간답게 대해준 주교님의 자비에 감화되어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한 장발장 아저씨의 눈물나는 일대기는 사실 너무 잘 알려진 터라 이걸 다시 영화화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또 그냥 그렇고 그런 세계명작영화 하나 나오려나 해서 별로 관심이 안 갔는데, 나오는 배우들이 워낙 거물급에다가 그냥 평범한 영화화가 아니라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 버전을 기본으로 한 영화화라고 해서 '아니 그럼 뭔가 좀 다른 걸 보여주려나'하는 마음을 품고 보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이것이 영화인데 영화가 아니고 뮤지컬인데 뮤지컬이 아니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묘한 하이브리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단 본 바탕은 영화다보니 야외에서 찍은 장면이나 군중과 세트를 100% 활용한 대규모 스펙터클 덕분에 눈이 꽤 즐겁다. 또한 뮤지컬에서는 일정한 각도에서 멀찌감치 바라만 봐야 하는 장면도 영화의 시점샷을 잘 활용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몰입에 유리하다. (특히 장발장이 바리케이드 뒤에서 잠든 마리우스를 축복하며 신에게 이 젊은이를 살려달라고 자비를 구하는 독창이 끝난 뒤 카메라가 상공으로 스윽 빠지면서 파리 전경을 비추고 그와 동시에 다른 길로 쳐들어오는 경찰대를 포착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전투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장면이나 어려운 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실상 같은 것도 리얼하게 연출되어 있어서 훨씬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뮤지컬의 요소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몇몇 부분을 제외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되어 있고 인물의 속셈이나 현재의 심정도 노래를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크게 머리 굴리지 않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며 극의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배우들의 소름돋게 만드는 노래 솜씨가 감정 풍부한 연기와 어우러져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것도 장점.
물론 이런 짬뽕에는 그만큼 단점도 있기 마련. 초반부에는 영화라는 팔레트와 뮤지컬이라는 내용물이 충돌하면서 다소 참기 어려운 위화감도 느껴진다. 뭔가 심각한 장면에서도 다들 아름답게 노래로 대화를 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간지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게다가 주연과 조연을 비롯한 중요인물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독창이 꽤 길게 이어지며 조금이라도 전개에 필요한 부분은 빠짐없이 집어넣는 바람에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을 훌쩍 넘는지라 한번에 다 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독창 부분에서는 그 노래를 부르는 배우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하여 아무리 작은 감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에 커다란 화면으로 배우의 모공이나 수염 하나하나까지 다 들여다보며 노래를 듣는 것도 꽤 부담스럽다. 말하자면 뮤지컬의 형식에 익숙지 못하거나 영화와의 융합에 대한 위화감을 극복하지 못했을 경우, 그리고 극중 상황에 최대한 몰입하여 노래하는 인물들의 심정을 따라잡고 그들에게 동조하지 못한 경우에는 꽤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로 비칠 확률도 크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감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권하기는 어떨까 하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위에서 말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을 경우에는 진짜 표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얘기도 된다. 뮤지컬보다도 훨씬 싼 가격으로 뮤지컬과 영화의 장단점을 한몸에 갖춘, 그리고 그래서 더욱 특이한 작품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줄거리로는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장발장의 고난과 구원, 판틴의 비극, 코제트의 사랑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가려져 일반 관객에겐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많은 조연들도 저마다 개성있는 활약과 뚜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이 작품의 제목이 어째서 '장발장'이 아닌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인가를 실감케 해 준다. 원리원칙에만 얽매여 융통성 없이 법집행을 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자베르 경감도, 혁명의 불꽃에 몸을 던지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스러진 앙졸라와 동료들도, 마스코트로서의 귀여움은 물론 혁명 투사로서의 용기도 유감없이 보여준 거리의 소년 가보르슈도,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에 고민하며 어떤 때에는 코제트보다 더 인간적인 매력을 과시한 에포닌도,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의 행각을 지켜보며 그들을 등쳐먹는 데 혈안이 된 테나르디에 부부마저도, 그 시대가 낳은 '비참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ps1. 에포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헝헝 에포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쓰레기같은 테나르디에의 딸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착한 에포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도무지 인형같기만 하고 사람냄새가 별로 안 나는 코제트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인물인데 작가님 취급이 너무 박한거 아니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자기는 코제트보다 에포닌 역을 하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그러더니만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거야... 코제트는 사실 뭘 해도 그냥 '코제트가 원래 그렇지' 싶은 역할이라 연기자로서 보여줄 게 별로 없거든;;;)
ps2. 장발장이 장정 다섯명 정도는 동원되어야 들어올릴 법한 그 무언가를 끙끙거리며 들어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런 소릴 하게 된다. '역시 울버린은 다르군! 저정도를 들어올렸으니 마리우스를 짊어지고 하수도 통과하는 거야 껌이지!' (아닙니다)
ps3. 이전에는 자베르 하면 어딘가 깡마르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인물이어야 할 듯한 선입관이 박혀 있어서 산도적 포스가 가득한 러셀 크로우가 캐스팅된거 보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던 적이 있는데, 영화를 직접 보니 납득이 간다. 설정 자체가 '감옥에서 태어나 자란 하층민 아들이라 죄수의 갱생 자체를 처음부터 안 믿고, 그 힘센 장발장과도 대등하게 붙을 만한 인물'이니 스미스요원 같은 사람을 데려와도 좀 곤란하겠더라고. 그래 울버린을 상대하려면 역시 막시무스 정도는 데려와야지! (뭔소리여) 그러나 결국 너무 생각이 많다보니 나중엔 자기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에 절망하여 '에라이 장발장만 주인공 시켜주는 이 엿같은 세상'을 외치며 세느강 밑바닥으로(두둥)
ps4.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은 주근깨가 좀 심해서 얼굴 클로즈업하고 노래부를 때 분위기가 확 깸. 게다가 부르는 노래의 반 이상이 코제트에 대한 사랑을 토로하는 내용이라 듣다보면 손발이 마구 오그라든다. (코제트와 2중창할 때는 아예 다리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거기에다가 여기에 곁가지로 솔로부대 에포닌이나 질투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 이 될 뻔하지만 애써 인간애를 발휘하여 성자가 되시는 장발장의 노래가 끼어들면 진짜 묘한 삼각관계를 노래로 보여주는 꼴이 되어서 색다른 맛이 난다.;;;) 그나저나 어떤 장면에서 보여주는 표정은 킬리언 머피나 톰 웰링 생각도 나는군. (얘네 셋이 형제로 나오는 영화 만들면 되게 웃길듯 OTL)
ps5. 장발장의 마지막 승천(...)에 판틴과 주교님이 재등장하여 그를 이끌어준다는 연출에는 무릎을 쳤음. 거기에 더하여 죽은 혁명동지들이 총출동해서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끝맺는 거 보고 '시밤바 다 아는 얘긴데 왜 이리 눈물이 멈추지 않지? 안구건조증 때문인가?'를 속으로 외쳤음. 우리나라 노동운동계에서도 백날 신경 날카롭게 만드는 투쟁가만 부르지 말고 좀 저렇게 흥겨운 민중가요를 개발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나저나 주교님은 왠지 씩 웃으며 '내가 준 은촛대 잘 갖고 있지? 팔아먹었으면 너 지옥행'이라고 드립쳤을 것 같아서 되게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6.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 등장해서 사람들 등쳐먹고 결정적인 단서를 던져주고 한편으로는 개그까지 해주는 만능 엔터테이너 테나르디에 부부는 카자흐스탄을 찜쪄먹은 샤샤 바론 코헨과 팀버튼을 찜해먹은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열연. 분명 나쁜놈들이긴 한데 나오는 장면들이 하나같이 개그스럽게 연출되어 있어서 진짜 웃김. 이 양반들만 나오면 심각한 뮤지컬이 갑자기 디즈니 뮤지컬로 바뀌는 것 같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7. 노년의 장발장 연기한 휴잭맨 보고 '조금 살만 더 찌우면 프랑스혁명 영화에서 당통으로 나와도 되겠다'라는 뻘생각을 했음. 아아 역시 분장과 관록의 힘은 무서운기라.
★촬영지: 3호선 교대역★레미제라블,
장발장,
빅토르위고,
뮤지컬영화,
개봉영화,
영화감상,
휴잭맨,
앤해서웨이,
러셀크로우,
아만다사이프리드,
헬레나본햄카터,
그럭저럭,
퓨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