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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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데이
같은 대학 출신의 두 남녀가 졸업식 날 만나서 죽이 맞아 침대로 직행했다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분위기 싸해져서 결국 거사는 치르지 못하고 '친구로 지내자'는 협정을 맺은 뒤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살아가며 이따금 안부를 확인하거나 만나러 오거나 연락을 취하거나 연락을 취하려 하지만 엇갈리거나 하는 식으로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1988년부터 2011년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이 처음으로 만난 7월 15일을 기점으로 하여 각 해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데이비드 니콜스의 2009년작 소설을 원작자 본인의 각본으로 영화화한 작품인데, 여자 주인공 엠마 몰리(애칭 '엠')를 앤 해서웨이가, 남자 주인공 덱스터 메이휴(애칭 '덱스')를 짐 스터게스가 연기했다.

작가 지망생이던 엠은 가난한 일상에 매몰되어 멕시코 식당의 종업원이나 학교 교사로 힘겹게 살아가다가 뒤늦게 펴낸 어린이 소설이 히트하여 작가의 꿈을 이루고, 부잣집 아들인 덱스는 인기는 많지만 저질 취급 받는 TV 버라이어티 쇼의 사회자로 출세했다가 유행이 다 지나가면서 실업자 신세가 되는 등 두 주인공의 신변이 변화무쌍하게 굴러가면서 각자의 살아가는 모습과 둘 사이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해가는 것을 관찰일기처럼 순서대로 보여준다. 각 시간대에 따라 풋풋하고 어설프던 두 주인공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점차 원숙한 성인의 면모를 갖춰가는 과정이 그 시대의 풍물이나 패션과 어우러져 잔잔하게 펼쳐진다. (모 할리우드 영화의 영국 개봉, 휴대폰과 랩탑 컴퓨터의 등장, 인기있는 TV쇼의 유행 변화, 기타 등등)

표면상으로는 이렇다 할 극적인 사건 없이 그냥 주인공들이 살아가다가 가끔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전개되며 점잖으면서도 은근히 서로 까대는 식의 영국식 유머가 간간이 들어가는 정도라서 뭔가 좀 더 극적이거나 화끈한 것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이런저런 사정이나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20년 동안이나 겉도는 두 남녀의 섬세한 내면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랜 친구의 흑역사로 가득한 일기를 엿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또한 후반부에 두 인물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려는 순간 뜻밖의 사고로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한 명의 인간적인 성장을 그리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단순히 로맨스뿐만 아니라 인생과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할 만한 기회를 주는 영화로서도 권할 만하다.

좋은 영화 보여주신 여친님께 감사. =]


ps1.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의 초점은 놈팽이 덱스 사람만들기에 맞춰져 있다는 인상이 강한데, 두 주인공 중에서 이놈이 출세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삽질하는 장면이 훨씬 길게 나오고 인간적으로도 좀 더 찌질한 레벨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식으로 묘사된다. 그에 비해 엠은 처음부터 개념이 콱 박힌 대인배라 솔직히 성장의 여지가 없고 만날 덱스의 고민 상담해주느라 정작 자기 고민을 풀 데가 없어서 속앓이만 계속한다(...묵념)

ps2. 엠이 식당에서 일할 때부터 추파를 던지다 동거까지 하게 되지만 계속 덱스를 견제하는 코미디언 지망생 이안, 덱스의 아내로 딸 하나를 두지만 결국 덱스의 더 잘나가는 친구 캘럼과 바람나서 쿨하게 이혼해버리는 실비, 학생 때 부잣집 아들 덱스에게 놀림받던 과거를 날려버리고 회사 사장으로 출세해서 덱스를 잘근잘근 밟아주시는 캘럼 등 우리나라에서 찍었다간 '사랑과 전쟁'류의 막장 드라마 한 다스는 능히 제작할 만한 조연들이 넘쳐나는데 의외로 은근히 잔잔하게 흘러가서 놀랐음.

ps3. 이안이 은근히 덕후기질이 있는데다 그걸 엠에게 본의아니게 강요하다가 미움을 사는 부분이 많은데 그때마다 꽤 유명한 대중문화 아이콘들이 흘러나와서 숨은그림찾기하는 재미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 무비로 이블데드 시리즈를 보러 가고 여자가 싫어하는데도 스타트렉 2를 몇번이나 돌려보고 뭐 물어보는데도 무심하게 왓치맨 만화책이나 들고 나와서 건성으로 대답하는 남자라니 내가 여자라도 짜증났을듯(...)

ps4.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후반부에 덱스가 자기 아버지와 TV 앞에서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을 찾는 장면인데 별로 비중이 없어 보였던 덱스 아버지가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셔서 눈물이 찡하더라는. (더 자세히 얘기하면 천기누설이니 직접 보시라.)

ps5.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그날로 돌아가서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나를 더 자세히 보여주는 식으로 마무리하며 아쉬운 여운을 남기는데, 알고보니 덱스가 어떻게든 2차시도를 하려고 '부모님이 늦게 오시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있자'고 뻥을 쳤으나 눈치없는 부모님이 제때 와버리는 바람에(...) 결국 친구로만 남게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있었다. 그러니까 둘의 인생을 저모냥으로 만든 범인은 결국 덱스 부모님(어라?)
by 잠본이 | 2012/12/19 21:37 | 시네마진국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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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블>의 팡틴 역으로 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을까 싶은 잡생각이 든다. ps4. 다 본 뒤의 감상: 이번엔 앤 해서웨이가 살아있는 채로 끝나서 다행이야... (<원 데이>나 <레미제라블> 생각하면 정말;;;) ps5. 대부분의 장면이 제이미 쪽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고 매기는 영화 시작된지 거의 20분쯤 지나서야 처음 등장한 ... more

Commented by 풍신 at 2012/12/20 05:13
부모니이이임!!!!

가난하게 살다가 뒤늦게 낸 어린이 소설이 히트하다니, 이 무슨 해리포터!!! 그리고 배트걸로 직업 변경하는 것이군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12/23 14:57
덱스어머님이 암으로 돌아가시는 건 분명 엠의 저주때문일 거임(...)

엠은 남자때문에 속태우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캐릭 삭제한 뒤 고담서버에서 재생성(...)
Commented by rumic71 at 2012/12/20 12:04
결국 병원 이야기만 빼면 닥터스 구조...?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12/23 14:57
제가 그쪽을 안봐서 뭐라 비교할 수가...
Commented by BBASSO at 2012/12/21 18:54
암튼 귀여운 영화였어요. ㅎ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12/23 14:58
귀엽고 아련한 영화였죠.ㅋ
Commented by AEyjm at 2013/01/15 01:47
좋은후기 잘봤습니다. 얼마전에 이 영화보고 너무좋아서 후기찿아서 읽고있는데 가장 맛깔나는 후기가 아닌가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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