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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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 부모도 인간이다
모/부성애는 불완전한 것이다 (세퓌님)

"우리 아버지는 어부였죠. 제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지만, 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으으응, 얼마든지. 그래서?"
노아는 다음 말을 재촉했다. 히로미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인 제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기잡이 솜씨도 훌륭했고, 술도 말술이었고, 그래도 실수 한번 하시지 않았죠. 게다가 조합장까지 하실 정도로 인망도 두터웠고, 남자 중의 남자라는 느낌이었죠."
"응."
"어른이라고 하면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게는."
히로미는 조금 멀리로 눈길을 준다.
노아도 히로미의 가족사진을 한번 본 적 있다. 색이 바래고 인화지의 끝부분이 조금 떨어져나간 사진이었다.
배짱이 두둑해 보이는 모친과 적동색으로 그을은 근육질의 아버지 사이에 어린 히로미가 서 있었다. 가족여행 때 찍은 것인지 바다와 비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몇 학년 때였을까,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그림 그리는 숙제를 깜박했다는 걸 알았죠. 그때까지 전 뭘 잊어버린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히로미는 혼란 때문에 울고, 난동을 부리고, 끝내는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다. 양친은 처음에는 빨리 그리라고 달랬지만, 히로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그린다는 건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집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토라질 대로 토라져 있었다. 히로미는 이미 반은 정신이 나간 채 울고 있다.
"그러자, 무엇을 어떻게 생각한 건지 아버지가 대신 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라고."
"헤에에."
히로미가 훌쩍거리며 훔쳐 본 도화지에는 배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못 그린 그림이었어요. 어린 제가 봐도."
못 그린 그림, 이라고 하는 말에 히로미는 힘을 주었다.
"그것을 본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힐긋 노아를 본다.
"에... 감사의 기분이나, 역시 내가 하는 게 나을 뻔했어, 뭐 그런 생각?"
히로미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보다, 아아... 아버지도 완벽한 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고, 정말 조용히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물론 깔본다든지 그런 생각은 없었고, 그냥 '아아...'하고."
히로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아버지에게는 명예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그림입니다. 이즈미 씨는 그런 일 없었습니까."
히로미가 노아에게 물었다.
"글쎄."
금방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고토오 대장도 그런 게 아닐까요."
잠시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히로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문득 고개를 든 노아에게는 언제나와 변함없는 온화한 히로미의 옆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죠. 제가 아버지를 영웅시한 것처럼.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이 필요한 겁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대의 진실을 보며 말입니다."

- 요코테 미치코, 소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제4권(이종수 옮김, 도서출판 대원, 1997년) pp.199~201
by 잠본이 | 2012/12/05 18:18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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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daykin at 2012/12/05 19:12
엑, 저게 소설도 있었습니까?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12/07 17:45
있었습니다. 이젠 고대유물이라 쉽게 못 찾지만(...)
Commented by 풍신 at 2012/12/05 20:10
오오, 역시 히로미...저 멤버 중에선 가장 속 깊은 대사를 자주하죠.

크고 나서, 부모님도 불완전하구나 하고 느꼈을 땐 슬펐습니...(퍽)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12/07 17:45
제2소대의 숨은 현자 야마자키 히로미씨(...)
슬프지만 그게 인생이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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