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Boys from Brazil
저자: 아이라 레빈
출판사: 고려원
1970년대. 제4제국 건설의 야망에 불타는 나치 전범 멩겔레 박사는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잔당들과 결탁하여 그전부터 준비해 온 대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94명의 지정된 인물들을 살해하는 작전에 착수한다. 대개 순탄한 공무원 생활을 보내고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여 전원에 묻혀 사는 평범한 인물들인 피해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인연도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이들의 계획을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인 청년은 자기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이 정보를 오스트리아의 나치 추적자 야콥 리베르만에게 알리지만, 리베르만은 재정적 고통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그는 멩겔레의 진의를 알아내고 그들의 계획을 늦지 않게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하도 많이 써먹어서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클로닝을 소재로 한 고전 미스터리 추적극. 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를 철저히 날려버리는 리베르만의 쪼잔하고 고달픈 생활상 묘사와 세계최강 사이코 멩겔레의 갖가지 개그가 읽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반 농담)
나치의 죄를 고발하고 생존자들을 추적하는 데 일평생을 바쳤지만 별다른 보답도 못 받은 채 고달픈 말년을 보내는 리베르만은 전형적인 미스터리의 주인공과는 수만광년 정도 떨어진 영감님이고, 이제나저제나 총통을 되살려서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조직과도 갈등을 일으키더니 급기야는 자기가 직접 리베르만을 해치우고 목표를 완수하겠다며 별별 삽질을 다 해대는 천연기념물 스토커 멩겔레는 곁에서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썰렁하게 논다.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동료를 마구 패더니 그게 아니라는 사정을 알고는 뻘쭘해져서 "의사 불러요 의사!" 이러는 동료의 아내에게 "내가 의사인데" 이러는 장면은 진짜 개그만발;;;;;;)
전혀 얽히지 않을 것처럼 멀리 떨어져서 행동하던 두 인물이 운명의 장난으로 결국 만나게 되어, 다소 불공평한 클라이막스를 연출하도록 만드는 작가의 재주도 놀랍지만, 결국 멩겔레가 [
자기가 철석같이 믿었던 어린 총통 중 하나에게 되려 죽임을 당하는] 결말은 뭔가 참 블랙코미디라고나 할지... -_- (분명 자기자신은 되게 진지하다고 생각하고 실제 하는 짓도 잔인한데 어째서 내게는 멩겔레가 개그맨으로 보이는 거냐고!)
결국 리베르만은 [
94인의 클론들을 입양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명단]을 찢어버리고 인도주의적 양식에 따르기로 하지만, (당연 그 과정에서 그를 도와줬던 과격파 랍비에게 무지하게 욕을 먹음) 에필로그에서는 과연 그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것인지 묻는 듯한 섬뜩한 마무리를 보여줌으로써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스러운 여운을 남기며 끝내는 건 같은 작가의 대표작 '로즈마리의 아기'하고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만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리베르만 아저씨는 '그 소년'이 얼마나 영악하고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눈 앞에서 목격했으면서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심히 궁금한 바이다. (정말로)
보게 해주신 람감님께 감사를.
ps 그나저나 실존인물 멩겔레는 어찌 되었더라? 뭔가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
ps 1976년에 나온 작품이니 (나하고 동갑이로세) 당시는 꽤 최첨단 테크노 스릴러처럼 보였을지도. (실제 벌어지는 얘기는 전혀 테크노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