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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들판
원제: A Darkling Plain
저자: 필립 리브
역자: 김희정
출판사: 도서출판 부키

뗏목 도시 브라이튼을 뒤흔든 클라우드 나인 사건 이후로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톰 내츠워디는 외동딸 렌과 함께 비행 무역상의 일로 돌아가지만 아내 헤스터와의 안타까운 이별로 인해 의기소침한 상태다. 테오 응고니는 렌과 헤어져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렌을 잊지 못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 한편 그린 스톰은 스토커 팽을 몰아내고 온건파인 나가 장군이 집권하여 견인 도시들과의 화평 정책을 추진한다. 나가의 아내가 된 위논 제로는 레이디 나가라는 이름으로 외교관 노릇을 하면서 전쟁을 하루라도 더 빨리 끝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우연히 레이디 나가 암살 음모를 저지한 테오는 그녀의 보디가드가 되어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지만 그것은 더 큰 시련의 서막에 불과했다.

필립 리브의 2006년작 장편소설. 전작 『악마의 무기』에서 바로 이어지는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의 제4부인 동시에 최종편이다. 2006년도 가디언 아동소설상 및 2007년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상(청소년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60분 전쟁’이라 불리는 파멸적인 최종전쟁 이후 모든 지식과 기술을 잃고 황폐해진 수천 년 후의 지구를 무대로 하늘과 바다와 들판과 빙원을 넘나들며 펼쳐진 소년 소녀의 모험담도 이제 본서에서 그 종막을 맞이한다.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던 톰 내츠워디는 피로한 인생에 고민하며 시한부 인생을 이어가는 아저씨가 되었고, 복수심에 불타는 소녀였던 헤스터 쇼는 톰 덕분에 다소 누그러지긴 했으나 예전 못지않게 시니컬하고 위험스러운 아줌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들의 마지막 여행이다.

아무래도 시리즈의 마지막권이다보니 그 전에 제시되었던 여러 가지 복선을 최대한 회수하고 중요한 캐릭터들의 행적을 정리하는 동시에 시리즈 전체에 걸쳐 묘사되었던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마무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 때문에 다루어야 할 분량도 상당히 늘어나서, 『악마의 무기』는 총 463쪽인데 비해 본서는 훨씬 두꺼운 656쪽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과연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지만, 본래 청소년 소설인 만큼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고 사건과 사건이 연속으로 맞물리며 조금도 긴장을 늦출 틈을 주지 않는 작가의 스타일도 여전하기 때문에 일단 한 번 책장을 펼쳐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전작들에서는 대체로 2~3개의 조직이나 무대를 넘나들며 단순한 구역 다툼이나 마을 단위의 투쟁, 그리고 거기에 말려든 인물들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주는 정도였으나 본서에서는 본격적으로 그린 스톰과 견인 도시들의 전쟁이 발발하고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듯이 그것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제3의 요소가 개입함으로써 사태는 전 지구적인 위기로까지 발전한다. 그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행로도 더욱 복잡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마치 대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앞서 제1권~제2권이 톰과 헤스터의 행로를 그려내고 제3권이 톰과 헤스터, 렌과 테오의 두 쌍이 벌이는 사건을 병행하여 그려내는 데 비해 여기서는 톰, 헤스터, 렌, 테오가 각각 상황에 따라 서로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함으로써 변화무쌍한 행로를 보여주며 이와 함께 스토커 팽과 피쉬케익, 나가 장군과 그린 스톰의 활동을 동시다발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건에 박진감과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

레이디 나가의 노력으로 인해 겨우 유지되던 불안정한 평화는 저마다의 이익과 사상을 위해 암약하던 그린 스톰 내부 과격파와 견인 도시 지배자들에 의해 산산이 깨어진다. 거기에 더하여 “세상을 다시 녹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인류 전체를 말살해야 한다”는 경악스러운 결론에 도달한 스토커 팽은 전작에서 손에 넣은 초병기 오딘을 작동시켜 양 진영을 무차별 공격하고, 그로 인한 혼란과 공포에 제 정신을 잃은 양측의 군사들은 치열한 전쟁의 수렁에 빠져든다. 본서는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배경으로 하여 대국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전쟁을 멈추고 인류의 멸망을 저지할 것인지,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온갖 고난을 겪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가까운 사람들과 재회하여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를 기약할 것인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사건에 관여하고 나름대로 액션 장면도 보여주면서 앞날을 개척하는 것은 당연히 새로운 주역들인 렌과 테오 커플이지만, 클라이맥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며 보다 어른다운 입장에서 사건을 마주하는 것은 역시 원조 주인공인 톰과 헤스터 커플이라 할 수 있다. 전작에서 밝혀진 과거의 불편한 진실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긴 했어도 나름대로의 대화와 이해의 과정을 통하여 새삼스레 초심으로 돌아간 두 사람이 어떻게 고난을 타개하고 그들만의 결말을 맞이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작가의 스타일 자체가 워낙 캐릭터들에게 가차 없고 예측을 불허하는지라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톰과 헤스터가 시점상의 주인공이긴 해도 실제 사건의 수습에 기여하는 부분은 의외로 적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겉으로 표는 안 나지만 제법 중요한 부분을 맡아서 활약한다. 또한 이제까지는 헤스터의 빠른 결단력과 만만찮은 전투력 때문에 톰의 비중이 희미해지는 느낌도 들었으나, 이번에는 톰이 어떻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양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가를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비중을 알맞게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에 말려들어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주인공들에 못지않게 그들을 도와주거나 방해하는 조연들의 모습도 볼만한데, 특히 제2권에서 등장한 이래 주인공들과 끈끈한 악연을 과시해 온 님로드 페니로얄의 활약이 눈길을 끈다. 본래는 개그 캐릭터와 희대의 악당이라는 상반되는 역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때로는 폭소를, 때로는 경악을 안겨주는 명물 조연이었으나 여기서는 거기에 더하여 온갖 고난에 휩쓸리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바퀴벌레같은 생명력과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주인공들을 돕는 처지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까지 추가됨으로써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잠시 동안의 여유를 가미하는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헤스터에 대한 배신감과 스토커 팽에 대한 복잡한 감정 때문에 고민하는 피쉬케익, 잔혹한 기계병사로서의 본성과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충돌하여 이중인격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스토커 팽, 막중한 사명과 예측하지 못한 고난에 더하여 의처증까지 겹쳐짐으로써 스타일을 구기지만 마지막에는 진실을 깨닫고 신념을 위해 돌격하는 나가 장군 등 그 외의 조연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 한다. 뛰어난 변장술과 권모술수로 혼란을 조장하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과격파 첩자 트와이트나 테오의 라이벌인 동시에 도시진화론의 맹신자로서 렌의 앞을 막아서는 볼프 코볼트 등 중반부 악역들의 인정사정없는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제1권 『모털 엔진』에서 산산조각이 났던 견인 도시 런던의 생존자들이 등장하여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신기술을 개발해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인데, 그들이 염원하던 새로운 형태의 도시 ‘뉴 런던’이 전쟁의 포화를 뚫고 생존을 위해 질주하는 장면은 다른 견인 도시들의 중량감 넘치는 이동 장면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제1권에서 헤로인이 될 뻔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클라이티 포츠나 캐서린 발렌타인의 좋은 이해자로서 런던의 양심을 대변했던 처들리 포메로이 등 그리운 얼굴들이 속속 등장하여 톰과 독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덕분에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런던에서 시작하여 런던에서 끝나는’ 장대한 서사시로서 마무리된 것이다. 제2권을 제외한 전 시리즈를 통하여 단골 주연으로 활약해 온 어느 인물의 시선을 통하여 하나의 완벽한 원(full circle)을 완성하며 끝나는 결말 또한 이러한 순환구조와 완벽하게 조응하여 이제까지 함께해 온 독자들이 뿌듯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도록 만든다.

참고로 ‘황혼의 들판(A Darkling Plain)’이라는 제목은 영국 시인 매튜 아놀드(1822~1888)의 시 「도버 해안(Dover Beach, 1867)」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전쟁과 파괴의 혼란에 말려든 사람들의 불안을 그려내는 본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결말에서 언급되는 페니로얄 최후의 역작 『무지한 군대』의 제목도 여기서 유래한다.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에서 주인공 몬태그가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들어 놓고 신나게 낭독해서 결국 이웃집 아줌마를 울게 만든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물론 그 아줌마가 운 것은 절대로 좋은 의미로 그런게 아니었지만 OTL)

Ah, love, let us be true
   아, 사랑이여! 우리들이 서로에게 진실해지도록 하소서
To one another! for the world, which seems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들 앞에
To lie before us like a land of dreams,
   마치 꿈나라처럼 놓여 있고
So various, so beautiful, so new,
   참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고 새로워 보이지만
Hath really neither joy, nor love, nor light,
   실은 기쁨도, 사랑도, 빛도 없으며
Nor certitude, nor peace, nor help for pain;
   확신도, 평화도, 고통을 달래주는 도움도 없기에.

And we are here as on a darkling plain
   그리고 우리는 여기 황혼의 들판 위에서
Swept with confused alarms of struggle and flight,
   투쟁과 패주의 혼란스런 공포에 휩쓸린 채
Where ignorant armies clash by night.
   무지한 군대들이 야밤에 격돌하는 것을 보아야 하기에.

★참고링크★
http://en.wikipedia.org/wiki/Mortal_Engines_Quartet
   ▶ 위키피디아 : 모털 엔진 4부작
http://www.predatorcities.co.uk/
   ▶ 스콜라스틱 출판사 : 시리즈 공식홈페이지 (영국판 제목은 ‘Predator Cities’)
http://www5.scholastic.co.uk/zone/book_philip-reeve.htm
   ▶ 스콜라스틱 출판사 : 작가 프로필
http://www.philip-reeve.com/
   ▶ 작가 공식홈페이지
http://www.bookie.co.kr/series?plan_code=20
   ▶ 도서출판 부키 : 한국어판 소개
http://blog.bookie.co.kr/category/부키%20books/견인%20도시%20연대기%20시리즈
   ▶ 도서출판 부키 : 시리즈 관련정보
http://www.sottisier.co.uk/heliograph/display.php?name=urbivore.htm&title=Urbivore
   ▶ 필립 리브의 단편소설 「Urbivore」 (견인 도시 연대기의 원형이 된 작품)
http://coats-and-revolvers.blogspot.kr/search/label/Mortal%20Engines/
   ▶ 팬 애니메이션 (러시아 일러스트레이터 Zhuravleva Julia가 제작)
http://mortalengines.wikia.com/wiki/Mortal_Engines_Wiki
   ▶ 모털 엔진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Fever_Crumb_Series
   ▶ 위키피디아 : 피버 크럼 시리즈 (같은 세계관의 수백 년 전을 그린 프리퀄 시리즈)

※본 리뷰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y 잠본이 | 2012/09/01 11:32 | 대영도서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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