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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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무기
원제: Infernal Devices
저자: 필립 리브
역자: 김희정
출판사: 도서출판 부키

썰매 도시 앵커리지가 전설의 신대륙 북아메리카에 도착하여 정착한 지 16년 후. 톰 내츠워디와 헤스터 쇼는 부부가 되어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렌은 15세의 기운찬 소녀로 자라난다. 다른 세상을 겪어본 적 없는 렌은 앵커리지의 조용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바깥 세계에서 모험을 하고 싶어 하지만, 과거의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톰과 헤스터는 조용히 숨어 사는 쪽을 선호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스트 보이’ 출신의 기술자 카울이 옛 동료들과 접선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렌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 일에 끼어들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말려드는데…

2005년에 발표된 필립 리브의 장편소설. 『사냥꾼의 현상금』의 뒤를 잇는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의 제3권이며, 전작의 주역들인 톰과 헤스터에 더하여 그들의 딸인 렌이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는 제2부의 1막이다. 이전의 두 권이 내용상 서로 연결되긴 해도 각각 완결성을 갖춘 하나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데 비해, 이 작품은 확실한 결말을 내지 않고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다음 권인 『황혼의 들판』에서 완전하게 결말을 내는 최종 2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

전반부에서는 십몇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약간 낯설어진 세계관을 재정리하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차례대로 소개한 다음, 중반부에서는 이들의 활약과 전작의 인물들의 행적을 병행하여 보여주며, 후반부에서는 이들이 한데 모여서 큰 사건에 관여하는 클라이맥스를 터뜨리는데, 바로 이 때 전작에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복선들이 하나 둘씩 제 역할을 하면서 인물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는 한편으로 전작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치다가 퇴장했던 몇몇 인물들이 재등장하여 주인공들과 얽힘으로써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앵커리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관광지로 유명한 뗏목 도시 브라이튼으로 무대를 옮겨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그 중간 중간에 전작에서 등장한 로스트 보이들의 근거지인 그림스비나 극중의 중요 세력인 반 견인 도시 동맹의 현재 상황도 밝혀진다. 로스트 보이들의 작전에 끼어들었다가 납치된 렌은 브라이튼의 노예 상인에게 걸려들어 팔려가는 몸이 되고, 톰과 헤스터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렌의 뒤를 쫓다가 그림스비에 도착하여 로스트 보이들의 최후를 목도한다. 한편 반 견인 도시 동맹은 과격파인 그린 스톰에게 장악된 이래 견인 도시들과의 치열한 전쟁을 14년 동안이나 계속해오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가족과 유년기를 한꺼번에 잃은 천재 엔지니어 위논 제로는 자기 나름대로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은밀한 계획을 진행한다.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렌 내츠워디는 어머니 헤스터와는 대조적으로 항상 밝고 활기차며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소녀. 부모인 톰이나 헤스터보다는 오히려 헤스터의 배다른 누이인 캐서린 발렌타인(즉 렌 자신은 만난 적 없는 이모)을 더 닮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데에도 능하지만 한편으로는 헤스터와 마찬가지로 명석한 두뇌와 빠른 행동력으로 사태를 타개해 나가는 당찬 여성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흉한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와 톰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 여전히 익숙지 않은 부모 노릇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뒤범벅된 헤스터가 딸인 렌에 대하여 남몰래 반발과 질투를 느끼는 것도 흥미롭다. 자기가 미워하는 발렌타인의 모습이 딸을 통하여 다시 나타나는 것도 싫지만, 무엇보다 톰이 자기보다 딸을 더 아끼는 팔불출 아빠가 되어서 자기에 대한 시선이 예전보다 못하게 된 것이 슬픈 것이다.

렌은 익숙지 않은 노예 생활에 적응하면서 탈출의 기회를 노리던 중에 역시 노예로 잡혀 온 그린 스톰의 소년병 테오 응고니와 친구가 된다. 아프리카 출신인 테오는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고 그린 스톰의 사상에 동조하여 군인이 되었으나 자살 공격에 실패하여 포로가 된 뒤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비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테오는 렌처럼 톡톡 튀는 개성은 부족하지만 그 대신 신중한 성격과 단련된 육체로 렌의 중심을 잡아주고 그녀의 활동을 보좌하는 귀중한 역할을 한다. 호기심 많은 소녀와 융통성 없는 소년의 커플이라는 점에서는 『모털 엔진』의 캐서린 발렌타인과 베비스 포드를 연상케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행동적이고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이야기의 열쇠는 로스트 보이들이 앵커리지에서 빼내려고 하다가 사건의 발단이 된 고대 유물 ‘틴 북’에 감춰져 있다. 그 누구도 용도를 알 수 없어서 수백 년 동안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었던 틴 북의 정체는 최종전쟁 때 배치되었던 특수 병기를 다시 기동시킬 수 있는 암호를 기록한 책자였다. 잠수함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설이나 영문 모를 기호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묘사를 보고 핵미사일 발사 암호 정도가 아닐까 예상했었으나 실제로는 그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전 지구적 차원의 초병기와 관련이 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지만, 이 병기에 비하면 『모털 엔진』의 메두사는 애들 장난 수준이라는 점만 밝혀 둔다.)

여러 장소에서 따로 따로 움직이던 주요 인물들의 동선이 브라이튼으로 수렴되면서 후반부는 훨씬 급박한 페이스로 전개된다. 그린 스톰의 지도자인 스토커 팽이 틴 북을 노리고 브라이튼을 습격하고, 톰과 헤스터는 렌을 찾기 위해 브라이튼에 잠입한다. 렌과 테오는 탈출 방법을 찾다가 전투에 말려들어 갖은 고생을 하고, 위논은 스토커 팽을 암살하기 위해 자기만의 비밀무기를 작동시킨다. 전작에서 선악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던 사기의 달인 페니로얄은 브라이튼 시장으로 재등장하여 변함없는 블랙유머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모털 엔진』에서 헤스터와 얄궂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었으나 격투 끝에 기능을 정지했던 스토커 슈라이크가 의외의 역할로 재등장하여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등장했던 프레야와 카울 커플이 제법 현실적인 과정을 거쳐 뒤늦게 과거를 정리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클라이맥스에서는 환락의 상징으로 흥청거리던 브라이튼의 화려한 몰락을 배경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비밀이 가장 무서운 방향으로 그 비밀을 사용하려 하는 자의 손에 들어가고, 숨겨뒀던 누군가의 오랜 과오가 폭로되면서 가족 간의 화합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비록 비밀을 손에 넣은 자가 일시적으로 행동불능에 빠지면서 당장의 위협은 사라지지만 사소한 실수로 인해 크나큰 배신감을 품게 된 다른 이가 그자를 구해내면서 뒷날의 불안은 여전히 남게 된다. 또한 과오를 폭로당한 자는 다행히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고 목숨을 건지지만 뼈아픈 이별의 고통을 안고 사막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그보다 훨씬 더 곤란한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과연 어떻게 그 모든 문제가 수습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장대한 이야기는 다음 권이자 최종편인 『황혼의 들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본 리뷰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y 잠본이 | 2012/09/01 11:22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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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osKeryos at 2012/09/16 14:11
마지막권 최후가 짠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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