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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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 오브 올 피어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핵탄두를 장비한 이스라엘군 전투기가 적의 기습을 받아 격추된다. 핵탄두는 다행히 폭파되지 않고 사막에 떨어졌으나 모래바람에 파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그로부터 29년 후, 아랍인 고철 수집상이 우연히 그 탄두를 발굴하여 남아공 무기상에게 넘기고 그 무기상은 오스트리아의 신나치주의자 드레슬러에게 탄두를 팔아넘긴다. 각국의 우익 인사들과 결탁하여 파시즘의 재흥을 꾀하고 있었던 드레슬러는 탄두를 개조하여 모종의 계획에 이용하려 한다. 한편 CIA의 신참 정보분석관 잭 라이언은 캐봇 국장의 지시로 러시아의 핵 처리 상황을 시찰하던 중 중요한 과학자 3명이 행방을 감춘 사실을 알아내고, 국장으로부터 소개받은 현장요원 클라크와 함께 조사에 나선다.

톰 클랜시의 1991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2002년에 필 앨든 로빈슨 감독이 연출한 극장용 장편영화.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 명령>에 이어 잭 라이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4번째 영화이다. 원래는 전 2작과 마찬가지로 필립 노이스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영상화 기획이 진행되었으나 각본 작업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각자의 스케줄이 생긴 노이스와 포드가 둘 다 빠져버리는 바람에 좌초의 위기를 겪었다가 벤 애플렉을 새로운 주연으로 맞아들여 구사일생으로 제작에 돌입한 케이스이다. 따라서 이전 3편이 원작소설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1990년대를 무대로 '중년 베테랑 애아빠 요원' 잭 라이언의 활약을 묘사한 데 비해 이 영화에서는 개봉 시기와 같은 2000년대를 배경으로 '싱싱한 풋내기 미혼남 요원' 잭 라이언의 활동을 그리며, 잭 라이언과 존 클라크의 첫만남도 <긴급 명령>에서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묘사된다.

말하자면 한번 죽을 뻔한 프랜차이즈에 새생명을 수혈하기 위해 시행한 일종의 리부트 기획이다. (이전 시리즈와 공통점은 톰 클랜시 원작, 잭 라이언 등장, 그리고 프로듀서가 메이스 뉴펠드라는 세 가지밖에 없다. 메이스 아저씨는 각 작품의 제작 다큐에 꼬박꼬박 개근하여 제작현장에 관한 귀중한 증언을 들려주고 있다.) 잭의 여자친구로 장래의 아내가 되는 캐시 멀러를 브리짓 모나한이, 잭을 대신하여 현장에서 발에 땀나도록 뛰는 존 클라크를 리에브 슈라이버(보통 '리브'로 통하는데 이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는 다들 '리에브'라고 부르더라.)가, 전작에서 그리어 제독의 역할과 비슷한 CIA 국장 윌리엄 캐봇을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 대통령으로 제임스 크롬웰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시어런 헌즈가 출연하여 캐스팅에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신나치주의자들의 음모로 핵 테러가 일어나고 이를 러시아의 짓으로 의심하는 미국이 과민반응을 보이자 러시아 측에서도 반격할 테세를 갖춤으로써 3차대전 발발의 위기로까지 발전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보이는 작품이다. 전 2작과 달리 선과 악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비교적 알기 쉽게 이야기가 진행되며 진정한 악의 흉계에 빠진 미-러 양대 군사대국이 점점 격화되는 위기상황에 허둥지둥하며 파국으로 달려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일단 표면상의 주인공은 정보분석을 통하여 진상을 밝혀내고 그것을 토대로 지도자들을 설득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잭 라이언이지만 그 정보를 실제로 수집하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클라크도 일종의 서브 주인공으로서 활약한다. 또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리며 공격명령을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도 꽤 비중 있게 등장하여 주역급의 명연기를 보여준다. 원제 'The Sum of All Fears'는 윈스턴 처칠의 말에서 따온 구절로, 강대한 위협(이 경우는 핵)에 대한 모든 이들의 공포심을 한데 모은 최악의 공포를 상징한다.

9. 11 테러가 벌어지기 전에 촬영이 끝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미국 본토가 대규모 테러의 목표가 된 상황을 가정하고 있어서 개봉 당시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필자는 '에이 설마 할리우드 영화에서 정말로 터뜨리기야 하겠어. 주인공들이 어찌어찌해서 폭발 전에 잘 막아내겠지'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그로부터 5분만에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상태가 되어버려서 기절할 뻔 했다. (게다가 절대 죽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중요 조연 한 명이 그 사고 때문에 돌아가시는 사태까지 벌어져서 더더욱 놀랐음.) 다만 핵폭발 장면은 관객의 정서를 고려하여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폭발에 휘말리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며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주인공이나 조연들이 있는 곳을 덮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폭발 이후인데 한편에서는 잭이 볼티모어 시내를 배경으로 재난영화(+약간의 액션)를 찍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러 대통령이 각각 비상작전실을 배경으로 실감나는 3차대전 시뮬레이션을 전개한다. CG와 미니어처, 실제 훈련영상을 적절히 편집하여 구현한 양국 현용병기들의 전선 배치 모습도 적재적소에 들어가서 정말로 전쟁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공들여 쌓아올린 악역들의 음모나 세심하게 전개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비해 그 뒤에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대처나 사건의 해결 과정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머리는 좋지만 조심성이 없고 마치 대학생처럼 까불거리는 벤 애플렉의 잭 라이언은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추리를 한다기보다는 일단 답은 자기 좋을대로 미리 정해놓은 뒤에 이리저리 마구 찔러봐서 그에 맞는 단서가 나오면 '봤지? 내가 뭐랬냐!'라고 우기는 느낌이 강하여 설득력이 떨어진다. 리에브 슈라이버의 존 클라크는 그에 비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만만하고 맡은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프로의 포스를 내뿜기는 하지만 하는 일들이 주로 사람 찾아가 인터뷰하고 나무 뒤에 숨어서 도촬하고 하는 식으로 스토리상 중요하긴 한데 영상으로서의 임팩트는 별로 없는 일들뿐이라 배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봇 국장과 친했다는 크레믈린 내부의 '비공식 채널'이 누구인가 하는 점도 이야기 속의 소소한 미스터리로 작용하기는 하는데 마지막에 그걸 너무 대놓고 노출하는 건 프로답지 못한 짓이 아닐까 싶다. (관객들이야 이미 다 짐작할 수 있게 해놨으니 굳이 잭에게 그걸 알려줄 필요 없이 암시만 살짝 흘리는 걸로 끝났으면 더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으려나.)

결론으로 말하자면 평작. 감독이 <꿈의 구장>, <스니커즈> 등 훈훈하고도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영화를 주로 찍어온 사람이라 그런지 전작들에 비해 스릴러로서의 만족도는 낮은 편이며 배우들의 물갈이와 달라진 시대 분위기, 너무나 뚜렷한 선악 대결구도와 평면적인 악당 묘사 때문에 스토리의 깊이도 전작들보다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원작재현도가 뛰어나냐 하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라, DVD의 코멘터리에 참가한 원작자 톰 클랜시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분[감독]이 무시한 그 책의 작가올시다'라고 자조적인 자기소개를 내뱉었다고 한다. 핵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3차대전 발발 직전의 상황을 실감나게 펼쳐보이는 모의실험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본래의 목적인 액션 스릴러로서의 역량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 작품이다. 다만 지금보다 훨씬 풋풋한 벤 애플렉이나 리에브 슈라이버의 반짝거리는 얼굴들을 감상하고 싶거나 캐릭터끼리 찧고 까부는 소소한 개그를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하다. (갑작스런 출장으로 여친과의 저녁식사를 취소하려고 전화를 건 잭이 '나 사실 CIA에서 일해'라고 하니까 여친이 안 믿어준다거나, 잭을 처음 만난 클라크가 '원래 내가 가기로 했던 디너파티 티켓을 가로채서 대신 가니 좋더냐'고 잭을 마구 갈군다거나, 처음 만난 잭의 허수룩한 옷차림 보고 국장이 '지금 무슨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찍나?'라고 비꼰다거나, 기타등등 기타등등)

DVD를 물려주신 시네프린지님께 감사드린다.


ps1. 사실 <붉은 10월>에 알렉 볼드윈을 캐스팅한 제작진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벤 애플렉도 외모로는 잭 라이언에 꽤 잘 맞는 배우이긴 한데 문제는 이 양반 개성이 워낙 투명(?)해서 뭘 해도 그냥 벤 애플렉으로 보일 뿐 잭 라이언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는 게 문제다... 해리슨 포드만 해도 자기의 잭 라이언이 인디아나 존스와는 확실하게 구분되게끔 연기를 했었는디... 역시 이건 세월과 함께 붙는 관록의 문젠가 OTL

ps2. 클라크가 그나마 암살자다운 액션을 보여주는 게 남아공 무기상 올슨을 찾아가서 처단하는 에필로그의 장면인데... 이거 배우만으로 보면 세이버투스(from 울버린)가 요툰의 왕 로피(from 토르)의 목을 따는 게 되네? 하긴 그러고보니 <긴급 명령>에서 등장한 1대 클라크는 무려 그린 고블린이었고 여기의 미국 대통령은 스테이시 서장(from 거미남 3) 아니던가... OTL

ps3. 시어런 헌즈는 원래 러시아어를 전혀 못했는데 개인교수와 함께 2주간 열나게 연습해서 자기의 러시아어 대사를 다 마스터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언피니시드), 영국인(팅테솔스), 화성인(존 카터) 등등 못하는게 없는 양반이다 싶었는데 이미 10년 전에 러시아 대통령까지 했을 줄이야... OTL

ps4. 볼티모어에서는 그렇게 가까이서 핵이 터졌는데 의외로 방사능 피해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 나오고 낙진이 날아오는 방향만 피하면 안전해염~이라고 넘어간다. 근데 나중에 클라크가 이 탄두를 발굴한 아랍인을 찾아가보니 이분은 폭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만지기만 했을 뿐인데 거의 말기암 환자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더란 말이지... 진짜로 괜찮은건가 볼티모어? OTL

ps5. 훈련상황에서는 허허허허 으허허허 여유작작하게 놀던 양반들이 실제상황 벌어지고 나니 육두문자를 마구 읊어대며 게임 도중 전원 차단당한 고교생마냥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기가 막혔음. 어찌보면 참 자연스런 반응이지만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아니라 무슨 동네 노인정 할배들같은 느낌이... OTL

ps6. 제작다큐 말미에 애플렉이 새로운 잭 라이언 상(像)을 잘 확립했다고 제작진 및 동료배우들의 칭찬이 늘어졌던데 그들이 기대하던 속편은 10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이제 또 다시 배우 바꿔서 리부트한다는 얘기도 들려오는 상황이라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데어데블도 그렇고 어째 이리 애플렉씨는 유명 캐릭터 맡아서 한편이상 가는 경우가 없는고... OTL

ps7. 주인공의 직장인 CIA 사무실 분위기도 전작들에 비해 젊고 화사해진 느낌이다. 해리슨 포드가 일하던 CIA는 중, 노년 직원으로 가득한 증권회사 주가예측실 보는 기분인데 여기의 CIA는 다들 캐주얼 차림으로 들어와서 자유분방하게 지껄여 대는 IT 벤처기업 사무실 보는 기분이야! 랭글리의 실제 CIA 본부 가서 취재한 결과를 반영했다고 하니 결국 90년대와 2천년대의 CIA 분위기가 그만큼 달라졌다는 소리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런데 이건 단순히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업종이 바뀐 느낌인데? OTL)

ps8. 러시아 베테랑 첩보원 그루쉬코프를 연기한 마이클 번은 무려 인디아나 존스 3탄에서 나치 비밀경찰 포겔 대령 역을 맡았었음. (만약 해리슨씨가 잭 라이언으로 한번 더 나와줬더라면 진짜 웃겼을텐데! OTL)
by 잠본이 | 2012/07/31 23:30 | 시네마진국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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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날 at 2012/08/01 09:20
소설을 읽으며 손에 땀을 쥔 경험이 있어 특히 기억에,남는 작품입니다만. 역시 리부트는 실패.....
Commented by 블랙 at 2012/08/01 11:06
원작 소설은 오래전에 고려원에서 '베카의 전사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온적이 있었죠. (무려 TV 광고까지 했었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0400209119004&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2-04&officeId=00020&pageNo=19&printNo=22759&publishType=00010

(...)
Commented by sharkman at 2012/08/01 11:46
실제로 9.11 이 벌어지고 나서 ㅅ태가 이렇게 벌어지게 된 원인이 당시 CIA의 요원 물갈이가 제대로 되지않아서 그랬다 라는 기사도 나왔었습니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요원은 퇴직하는데 그 자리를 햇병아리가 차지하면서 업무도 황이된
Commented by rumic71 at 2012/08/01 14:13
그래도 카터시절 CIA보다야...
Commented by 가라나티 at 2012/08/01 15:54
전 반대로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 맞춰서 뒷처리(...)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뭐 취향 문제겠습니다만...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8/02 09:00
그 장면은 좋았죠.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미묘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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