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by 잠본이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메모장
카테고리
태그
포토로그
라이프로그
rss

skin by 이글루스
배트맨 대특집 #4 - 다크 나이트 라이즈 두근두근 대예측!

Remember the Dark Knight

- 크리스토퍼 놀란의 고담은 어디로 가는가 -




1. 여명의 흑기사

2012년 7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드디어 개봉한다. 올해는 할리우드에서 유난히 메이저급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며, 그 중에서도 『고스트 라이더 2』, 『어벤져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 마블 코믹스 원작영화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에 비해 DC코믹스 원작영화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하나뿐이다. 또한 『어벤져스』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흥행 고공행진을 펼친 직후이고 배트맨에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스파이더맨이 약간 앞서서 개봉하는 터라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경우 감독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와 전작 『다크 나이트』의 가공할 만한 실적, 그리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무시할 수 없는 지명도가 플러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놀란 감독은 그 사이에 『프레스티지』, 『인셉션』 등을 통해서 배트맨 시리즈와 상관없는 자기 자신의 영화로도 충분히 흥행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꾸준히 증명해온 바 있다.) 마블 쪽 영화들이 주로 청소년층에 어필하기 쉬운 밝고 경쾌한 내용으로 채워진 데 비해 놀란의 배트맨은 성인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춘 어둡고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차별화가 쉽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까지 영화의 상세한 내용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순차적으로 공개 중인 예고편과 TV광고, 잡지 기사 등을 통해서 약간의 정보만이 흘러나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무대는 『다크 나이트』로부터 8년 후의 고담시이며, 브루스 웨인이 새로운 악역 베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다시 배트맨으로 활동하고, 조연으로 ‘캣우먼’ 셀리나 카일이 등장한다. 예고편으로 미루어 보아 베인의 위협은 어느 개인이나 일부 지역의 차원을 넘어서 고담시 전체를 상대로 이루어질 듯하며, 공중납치, 대교 폭파, 미식축구장 점거 등 이전의 라즈 알 굴이나 조커에 버금가는 대규모 테러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활용될 3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어 원작의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짚어보고 영화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예상해 보고자 한다.


2. 고양이과(科) 그녀 : 캣우먼

캣우먼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셀리나 카일은 「배트맨」 제1호(1940)에서 ‘더 캣’이라는 신출귀몰한 보석도둑으로 처음 등장했다. 밥 케인의 착상과 빌 핑거의 작화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그녀는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배트맨의 악역 캐릭터들 중 한 명으로서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등장 순서로만 보면 지금 활동 중인 배트맨의 악역들 중에서는 조커와 함께 최고참에 속하는데, 조커와는 대조적으로 완벽한 악역이 아니라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선악을 넘나들며 입장을 능숙하게 바꾸는 기회주의자라는 점이 흥미롭다. 본래는 정체불명의 신비스럽지만 위험한 여인 - 즉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남성 위주의 거친 세계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혜와 요령으로 유연하게 헤쳐 나가는 독립적인 모습이 점차 주목을 받으면서 일종의 페미니스트 안티히어로에 가까운 위치로까지 성장했다. (비슷한 예를 찾자면 일본 만화 『루팡 3세』의 미네 후지코 정도?)

배트맨과의 관계도 이야기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서 기본적으로는 적대관계이지만 어떤 때에는 협력관계로, 어떤 때에는 아슬아슬한 애정관계로, 어떤 때에는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대립하는 라이벌 비슷한 관계로 바뀌는 등 꽤 변화무쌍하다.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가면을 벗은 맨얼굴로 만났을 때의 관계가 가면 쓰고 만났을 때의 관계와 동시 진행될 경우는 더욱 더 흥미진진하다.)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욕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성향은 고양이라는 동물 모티브와도 잘 들어맞아서, 시대에 따라 외모나 복장이 바뀌더라도 그 성격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팀 버튼 감독의 2번째 배트맨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가 이 역할로 등장하면서 지명도가 상승했다. (참고로 할 베리 주연 영화 『캣우먼』에 등장하는 캣우먼은 이름만 캣우먼일 뿐 셀리나 카일이 아닌 다른 사람이며 배트맨 월드와 아예 관계가 없다.)

『캣우먼 : 로마에서의 일주일』은 캣우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2004년작 미니시리즈다. 『롱 할로윈』 이후, 그 속편인 『다크 빅토리』와 비슷한 시기에 전개되는 사이드 스토리(side story)로, 보기 드물게 고담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활개치는 캣우먼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제작팀도 각본이 제프 로브, 작화가 팀 세일로 편성되어 있어서 『롱 할로윈』 및 『다크 빅토리』와 공통된 분위기를 이어 나간다.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추적하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날아간 캣우먼이 자기를 방해하는 세력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왜 캣우먼이 『이어 원』 및 『롱 할로윈』 사건 내내 카르미네 팔코네 일당에게 집착하여 그들을 도발하는 위험한 행동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도 제공된다. 배트맨 본인은 당연히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그에 대한 캣우먼의 복잡한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프린세스 다이어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한 앤 해서웨이가 셀리나 카일을 연기한다. (공식적인 배역명은 ‘셀리나 카일’이며 ‘캣우먼’이라는 명칭은 비공식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 리얼리티에 충실하기 위해 일부러 뺀 건지 아직 내보낼 기회를 못 잡아서 그냥 말을 안 하고 있는 건지는 불명.)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전문 사기범으로 모종의 목적을 위해 브루스 웨인에게 접근한다. 예고편에서는 파티에 참석해서 춤 한 번 춰 주신 뒤에 웨인 댁 사모님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브루스의 자가용을 훔쳐 달아나는 대담함을 보여주는데, 베인과 어느 정도로 협력하게 될지, 배트맨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대체 어떤 경로로 『다크 나이트』에서 브루스가 사용했던 배트포드를 입수한 건지 등등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예고편에서 배트맨에게 “당신은 저들에게 더 이상 빚진 게 없어요. 이미 모든 걸 다 줬잖아요.”라며 그를 말리는 것을 보면 마지막에 가서는 협력관계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해서웨이는 역대 캣우먼 배우들 중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밥 케인이 캣우먼의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진 고전 여배우 헤디 라마르(Hedy Lamarr)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놀란의 고담시에 최적화된 새로운 캣우먼 상(像)을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원작에서처럼 팔코네 가문과 관련 있는 인물로 등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영화의 세계에서는 팔코네의 신변이 이미 『배트맨 비긴즈』에서 정리되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팔코네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도 좀 어색할 것 같다.)


3. 전율의 심판자 : 베인

베인은 1993년에 미니시리즈 「배트맨 : 베인의 복수Vengeance of Bane」를 통해 데뷔한 비교적 신참 악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니까 결코 경력이 짧은 건 아니다.) 각본가 척 딕슨(Chuck Dixon)과 더그 모언크(Doug Moench)의 착상에 기반하여 작화가 그레이엄 놀란(Graham Nolan)이 디자인을 완성했다. 가공의 카리브해 국가인 산타 프리스카 출신으로, 혁명분자인 아버지가 감옥에서 낳은 아들이었으나 치사한 아버지가 자기 혼자만 탈옥해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어린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던 비운의 사나이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베인은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틈틈이 체력을 단련하고 살인기술을 배워서 교도소를 좌지우지하는 어둠의 실력자로 자라난다. 그런 베인을 위험인물로 판단한 교도소 당국은 신종 마약인 ‘베놈’의 성능시험에 베인을 강제로 투입하고, 베인은 투약 결과 일반인을 능가하는 육체를 갖게 되지만 베놈을 일정 시간 내에 지속적으로 투입하지 않으면 부작용에 시달리는 몸이 되어버린다. 근육질 악한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지능이 낮은 걸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지력도 상당히 뛰어나며 무작정 돌격하기보다는 신중한 계획을 꾸민 뒤에 치밀하게 적을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베인 캐릭터를 창안한 작가들에 따르면 그의 본래 모티브는 1930~40년대에 펄프 잡지에서 활약했던 고전 모험소설 주인공인 ‘닥 새비지’를 악당으로 반전시킨 것이라 한다. (스스로를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단련시킨 다재다능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베인의 본격적인 활약은 『나이트폴』 스토리라인에서 상세히 다루어진다. 오랜 준비 끝에 교도소를 탈출한 베인은 부하들과 함께 미국의 고담시로 향한다. 수감 시절에 고담시도 교도소처럼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낀 베인은 그 공포의 정점에 서서 고담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적어도 베인의 시각에 따르면 그렇게 보이는)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을 개시한다. 처음부터 직접 부딪히는 것은 아무래도 불리하다고 생각한 베인은 아캄 정신병원의 수용자들을 탈출시켜 배트맨을 정신없게 만든 뒤 빼어난 추리로 배트맨의 정체가 브루스 웨인임을 알아내고 그를 불시에 기습하여 엄청난 타격을 입힌다.

『나이트폴』은 『슈퍼맨의 죽음』과 함께 1990년대의 DC코믹스를 뒤흔든 2대 사건으로 브루스 웨인을 거의 재기불능으로 만들고 고담시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조커를 비롯한 전설의 범죄자들도 못한 일을 처음 등장하자마자 해치워버린 베인은 그 뒤로도 배트맨을 위협하는 강적으로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매체에서는 그 위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여 주먹이나 휘두르는 골빈 덩치’라는 오해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배트맨과 로빈』에서는 포이즌 아이비의 경호원으로 등장하여 다른 악당들 심부름이나 하는 등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인셉션』, 『워리어』 등으로 주목을 받은 톰 하디가 베인을 연기한다. 조커의 난동으로부터 기껏 회복되어가나 싶던 고담시를 다시 뒤엎기 위해 엄청난 인원의 동료를 모아서 상상도 못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가는 테러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완전 예측불허의 혼돈을 표상하며 주로 머리싸움을 통해 배트맨을 괴롭힌 것에 비해 베인은 일정한 ‘계획’을 가지고 고담시를 바꾸려 하며 머리싸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힘으로도 배트맨을 압도하는 최악의 적이다.

근육질 레슬러를 연상케 하는 원작의 디자인을 과감히 무시하고 두꺼운 코트와 흉칙한 마스크로 몸을 가린 괴팍한 인물로 변신했는데, 그 마스크에는 원작의 베놈 약물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 숨어 있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예전에 큰 사고를 당하여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그 고통이 계속 남아있어서 주기적으로 마취제를 주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몸이 되었다고 한다.)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인을 넘어서는 괴력과 매우 야만적인(brutal) 격투 스타일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싸움은 싸움이라기보다는 학살(carnage)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톰 하디 본인의 인터뷰에서는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 식으로 영화의 핵심 내용에 대한 질문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에 베인의 진짜 의도나 계략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당신 누구냐고 묻는 희생자의 질문에 “고담에 내려진 심판(reckoning)이다.”라고 당당하게 답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냥 심심해서 저런 일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다. 예고편에서는 브루스 웨인을 생포하여 괴롭히는 부분도 나오는데, 『나이트폴』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나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배트맨의 거취와 관련하여 중대한 타격을 입힐 것은 확실하다. (예고편에서 루시어스 폭스가 브루스에게 신병기 ‘더 배트’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브루스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베인 때문에 부상을 입어서 회복 중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뭐 그냥 베인과 상관없이 골프 치다가 다친 걸지도 모르겠지만.)


4. 어둠 속의 빛 : 고담시

고담시(Gotham City) 없이는 배트맨도 없다. 모든 배트맨 이야기의 무대이며 DC 유니버스의 중요한 장소들 중 하나인 만큼 배트맨 시리즈에서 고담시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Gotham은 미국식으로는 ‘가떰/가썸’, 영국식으로는 ‘고텀’에 가깝게 발음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대중매체에서 ‘고담’으로 쓰기 시작해서 그게 그냥 굳어져버린 듯하다. (팀 버튼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표기 기준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월간 우뢰매」같은 잡지의 소개기사에서는 ‘가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곳삼(ゴッサム)’이라고 표기하는 모양.) 영국 노팅햄셔 주나 미국 위스콘신 주에 실존하는 마을 이름이기도 하지만, 원작자들이 배트맨의 무대를 고담으로 명명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무래도 뉴욕시의 별명으로 사용되던 ‘고담’이었던 것 같다. (각본가 빌 핑거의 말에 따르면 이리저리 전화번호부를 넘겨보다가 눈에 띈 이름이 ‘고담 보석상’이라서 그걸로 정했다고 한다.)

고담시의 모습도 배트맨의 역사와 함께 여러 모로 변해왔으나 범죄가 만연하고 빈부격차가 극심한 잿빛의 공간이라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대에 프랭크 밀러가 배트맨 그래픽 노벨의 양대 걸작으로 추앙받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이어 원』을 통해서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취향과 영화의 분위기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고담시가 등장하곤 했다. 팀 버튼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설치미술과 몽환적인 무대장치를 통해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 분위기를 한껏 냈고, 조엘 슈마허는 60년대의 향수와 90년대의 조잡스러움이 혼재하는 ‘컬러풀한 동네 디스코장’ 분위기를 탐닉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은 최대한 현실의 도시에 근접한 ‘어디에나 있는 지저분한 뒷골목’의 정서를 추구함으로써 각자 서로 다른 모습의 고담을 형상화했다. 도시가 변하면 그 거주민도 변하고, 거주민이 변하면 그 거주민이 일으키는 사건도 변하고, 사건이 변하면 그 사건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야기도 변하기 마련. 각 시대 각 작품의 고담시는 그 작품의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담시가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작품이 바로 『다크 나이트 리턴즈』다. 1986년에 프랭크 밀러가 각본과 작화를 맡아 발표한 4부작 미니시리즈로, 수십 년 후 미래의 고담시를 배경으로 이미 은퇴한 배트맨이 점점 썩어가는 도시의 실상을 견디지 못하여 노구를 이끌고 다시 범죄 소탕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다만 설정상 55세라고 하니 사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리 늙은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배트맨 스토리와 100% 이어지는 ‘확정된 미래’는 아니고 어쩌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로써 그려진 번외편이라 할 수 있다. 장갑차에 가까운 형태로 디자인된 배트모빌, 로빈의 자리를 소년이 아닌 소녀가 물려받는다는 설정, 사상의 대립으로 인해 격돌하는 아나키스트 마초 노인네 배트맨과 정부의 개 슈퍼맨 등등 그 전까지 배트맨에 대해 품고 있었던 선입관을 뒤엎는 충격적인 전개가 숨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슈퍼히어로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통해서 레이건 행정부와 미소 냉전에 대한 싸늘한 정치풍자, 늘어나는 범죄와 빈곤 문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 자경단 활동으로 인한 사회와 개인의 충돌 등등 무거운 주제를 인정사정없이 들이대며 독자의 감성에 도전장을 던지는 묵직한 작품이다. 게임 및 대중문화 사이트 IGN이 2005년에 실시한 역대 배트맨 그래픽노벨 베스트 25 중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그 이후의 슈퍼히어로 코믹스와 관련 영상작품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문제작이기도 하다. (오직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프랭크 밀러의 그림체가 워낙 개성이 강한데다가 데생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대범함(?)이 넘쳐나기 때문에 취향을 상당히 타는 작품이 되어버렸다는 점이지만, 그건 내용과는 별개 문제다.) 아직 영화화된 바는 없으나 워너브라더스에서 2부작 비디오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서 2012년 가을과 2013년 상반기에 각각 출시할 예정이다. (영화 『로보캅』의 머피로 유명한 피터 웰러가 배트맨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참고로 2001년에는 같은 프랭크 밀러의 손에 의해 『다크 나이트 스트라이크 어게인』이라는 속편이 발표된 바 있다.

이번 영화가 베인의 음모로 인해 디스토피아로 화한 고담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영향이 어느 정도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미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군용 병기를 개조한 중장갑 배트모빌(속칭 ‘텀블러’)을 선보였고, 『다크 나이트』에서는 배트맨 흉내 내며 범죄와 싸운답시고 더 악랄한 짓을 저지르다 경을 치는 바보들을 그려내는 등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여러모로 유사한 설정을 도입하여 관객들을 신나게 만들어 준 전력도 있다. 이번에는 아예 ‘은퇴한 배트맨이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돌아왔다가 개고생한다’는 기본 플롯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더욱 더 적극적인 인용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발 날리는 고담시를 배경으로 배트맨과 베인이 이끄는 무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폭주족 대격전을 생각나게 하니 이 아니 좋으랴. 이제까지 펼쳐 온 이야기의 결말을 짓겠다고 만든 영화이니 어쩌면 끝 부분에 배트맨의 예기치 못한 ‘최후’가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최후‘가 반드시 프랭크 밀러의 비전과 비슷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5. 전설의 끝을 기다리며

이번 영화에서는 줄거리 구성에만 참여하고 각본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 데이빗 S. 고이어의 말에 따르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결말은 2008년 가을에 놀란과 고이어가 의논해서 결정한 것이며, 그 이후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그 결말에 다다를 것인가 하는 세부사항은 전혀 결정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3부작의 결말에 딱 맞는 엔딩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완성된 필름을 시사실에서 시청한 고이어는 자기가 꿈꿨던 그 결말이 영상으로 실현된 것을 깨닫고 너무나 감격해서 목이 메었다고 고백했다.

과연 어떤 결말이었기에 그토록 감동을 받았을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그 감동이 그저 창작자 본인의 자부심과 작품에 대한 애착에서 온 것이 아닌, 그 작품이 지닌 진정한 위력으로 인해 솟아난 것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 영화의 끝은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란이 빚어낸 고담시를 놀이터 삼아 추억을 만들었던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전환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지나가고 나면 또 언젠가 새로운 감독의 새로운 배트맨이 나오겠지만, 그것이 놀란의 배트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놀란의 배트맨이 팀 버튼의 배트맨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화에만 집중하여 충실하게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배트맨의 매력을 더욱 더 깊고 다양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원작의 세계에도 한 번 눈길을 돌려 보기를 권한다. 영화를 재미있게 본 뒤에 관심이 생겨서 원작을 찾아보든, 원작을 미리 본 후에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보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에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새로이 알 수 있다면,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면, 결코 헛된 수고는 아닐 것이다. 이 보잘 것 없는 글이 그런 열망을 가진 독자들에게 약간이나마 길잡이가 되어 준다면 기쁘겠다.



참고 링크
http://en.wikipedia.org/wiki/Catwoman
http://dc.wikia.com/wiki/Catwoman_(Selina_Kyle)
http://www.comicvine.com/catwoman/29-1698/
http://www.comicbookmovie.com/fansites/writerguy1976/news/?a=61798
http://en.wikipedia.org/wiki/Catwoman:_When_in_Rome
http://www.dccomics.com/graphic-novels/catwoman-when-in-rome-0
http://www.timsale1.com/catwoman/index.html
http://en.wikipedia.org/wiki/Bane_(comics)
http://en.wikipedia.org/wiki/Knightfall
http://dc.wikia.com/wiki/Knightfall
http://www.dccomics.com/search/node/knightfall
http://en.wikipedia.org/wiki/Gotham_City
http://terminator.egloos.com/4903160
http://en.wikipedia.org/wiki/The_Dark_Knight_Returns
http://comics.ign.com/articles/624/624619p1.html
http://www.hollywoodreporter.com/gallery/dark-knight-returns-animation-pics-327898
http://sciencefiction.com/2012/06/05/new-images-from-the-dark-knight-returns/
http://en.wikipedia.org/wiki/The_Dark_Knight_Rises
http://collider.com/the-dark-knight-rises-set-visit
http://batman-news.com/category/the-dark-knight-rises/
http://herocomplex.latimes.com/tag/the-dark-knight-rises/
http://insidemovies.ew.com/2012/06/15/dark-knight-rises-showing-off/
http://screenrant.com/dark-knight-rises-riddler-dicaprio-catwoman-kofi-176254/



글/ 잠본이(2012. 6. 17)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에 맞춰 특집을 게재합니다. 세미콜론 편집부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본 리뷰는 세미콜론 공식블로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y 잠본이 | 2012/06/24 18:14 | 친절한 켄트씨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zambony.egloos.com/tb/385443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What I .. at 2013/01/01 01:30

... ... more

Commented by 큐베 at 2012/06/24 19:45
캣우먼은 셀리나 카일로 있을때도 별반 다를바 없는[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는데 비해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은 성격이 180도 극단을 보여주죠.

그래서 그런지 캣우먼과 만날때의 배트맨은 담담한데 비해 브루스 웨인으로 있을때는 셀리나 카일에게 약간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harkman at 2012/06/24 20:09
그리운 이름이 나왔군요. '맨 오브 브론즈' 닥 세비지가 베인의 원형이었을줄이야.
Commented by LONG10 at 2012/06/24 21:55
그러고보니 MIB도 일단 마블 코믹스에서 만화로 나온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MIB의 기원은 도시 전설이지만요.

그럼 이만.......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6/24 21:58
http://en.wikipedia.org/wiki/The_Men_in_Black_(comics)
영화에 영감을 준 코믹스 자체는 마블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영화화 시점에 마블이 그 출판사를 인수하는 바람에 권리가 몽창 마블로 넘어가서 영화의 코믹 어댑션은 마블에서 나왔다는군요(...뭐 이리 복잡해)
Commented by 블랙 at 2012/06/25 10:04
http://blog.naver.com/batman1989/150133389414

팀버튼의 배트맨 영화가 개봉되었을때 소설판 번역이 두곳에서 나왔는데 '고담'을 각기 '고덤' , '고삼'(...)으로 표기했었죠.
Commented by spawn at 2012/06/27 20:53
이번에도 알찬 리뷰 및 예상글을 보고 감사드립니다. 코믹스나 원전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는 피와 살이 되는 글입니다.
Commented by AO at 2012/06/28 22:36
배트맨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https://p.twimg.com/AuXgnqDCEAErIoy.jpg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