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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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야기
원제: アイの物語
저자: 야마모토 히로시[山本 弘]
역자: 김영종
출판사: 대원씨아이(주)

인류가 쇠퇴하고 대도시는 폐허로 변하여, 기계들이 세계에 군림하고 있는 머나먼 미래. 인간들은 기계의 간섭을 피하여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 간다. 주인공 '나'는 이 공동체에서 저 공동체로 떠돌아다니며 신기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다. 어느날 식량을 훔쳐 달아나던 '나'는 미소녀 형상의 전투용 안드로이드 '아이비스'에게 체포되어 기계들의 마을로 끌려온다. 병원에 수용된 '나'는 기계들에게 고문이나 세뇌를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저 아이비스가 매일 찾아와 전자책에 기록된 옛 이야기들을 들려줄 뿐이다. 과연 그녀의 진의는 무엇일까? 그리고 옛날에 기계와 인간 사이에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작가 겸 게임 디자이너인 저자가 2006년에 발표한 장편 SF소설. 원래 각각 다른 잡지에 별 관계없이 발표되었던 5개의 단편과 본서를 위해 새로 쓰여진 2개의 중편을 한데 모아 하나의 장편으로 엮은 픽스업(fix-up) 소설이다. 아이비스와 '이야기꾼'이 벌이는 현재의 이야기가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인터미션(중간 휴식)의 형식으로 각 작품 사이를 이어주며, 각 작품은 스토리상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전부 1인칭 여주인공 시점을 취하고 있으며 인간과 인공지능, 혹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사이의 관계를 제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7개의 작품 중 6개는 작중 세계에서도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픽션이라는 설정이며, 7번째로 실려 있는 '아이 이야기'만이 극중 세계의 과거에서 일어난 실제 역사로 취급된다. 일부 예외를 빼면 각각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며, 반드시 독자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훈훈한 이야기'라는 점도 비슷하다.

수록 작품은 다음과 같다. (첫 게재지 및 주요 테마 첨부)
1. 우주를 내 손에[宇宙をぼくの手の上に] / 'SF재팬' 2003년 겨울호 / 픽션과 현실의 상호작용
2. 두근두근 가상공간[ときめきの仮想空間] / '게임 퀘스트' 1997년 5월호 / 가상공간의 '나'와 진짜 '나'
3. 미러 걸[ミラーガール] / 'SF온라인' 1999년 3월 29일호 / 육성형 AI와 소녀의 교류
4. 블랙홀 다이버[ブラックホール・ダイバー] / '더 스니커' 2004년 10월호 / AI의 시선에서 본 인간
5. 정의가 정의인 세계[正義が正義である世界] / '더 스니커' 2005년 6월호 / 가상세계와 현실의 괴리
6. 시온이 온 날[詩音が来た日] / 본서 오리지널 / 간호보조 안드로이드의 진화
7. 아이 이야기[アイの物語] / 본서 오리지널 / 인간의 어리석음과 AI의 선택

본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처럼 모두 같은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배열하는 방식도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설정상 모순되는 점이 있어서 결국 같은 작가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맨(문신한 사나이)>과 유사한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비스의 얼굴에 문신 비슷한 문양이 있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작가의 오마주.) 하지만 스토리 전체에 일관된 주제가 존재하며 일정한 인물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편견에 사로잡힌 다른 인물을 설득한다는 점에서는 <천일야화>에 더 가깝다. 제목의 '아이'는 실질적인 주역인 아이비스의 애칭인 동시에 영어의 I(나 = 자의식), 일어의 愛(사랑), 전산용어의 AI(인공지능), 수학의 i(허수 = 인공지능 간의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퍼지 기호) 등등 다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극중 세계에서 인간들은 기계를 겁내고 혐오하여 자기들의 몰락도 옛날에 기계가 반란을 일으킨 탓이라고 멋대로 믿고 다른 얘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들이 믿는 것과 전혀 달랐으며 기계들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자의식을 지닌 인공지능(TAI)들은 인간들의 오해를 풀고 그들과 기계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매우 온건하면서도 점진적인 설득 방법을 구상하여 실행에 옮긴다. 그것은 바로 현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픽션 - '이야기'의 침투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 아이비스가 '이야기꾼'에게 처음에는 픽션만 들려주다가 끝에 가서야 세계의 진짜 역사를 밝히고 자기들의 원대한 미래 계획을 설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의 6개 이야기는 비록 극중 세계에서 현실로 인정받지 못하며 여러 가지 기술적, 역사적인 면에서 극중 세계와 어긋나지만 각 작품마다 하나씩 중요한 테마가 도출되며 7번째 이야기에서 그 테마들이 하나로 집약되어 기막힌 태피스트리를 이루고 있다.

일견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란 소재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두 가지 측면으로 분리한 뒤 여러 개의 작품을 통해 차근차근 접근함으로써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몰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절묘한 서술이 돋보인다. 특히 인공지능을 먼저 가상공간에 풀어놓고 다양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장기간 육성한 뒤 최종적으로 기계 몸체에 옮겨 안드로이드를 완성한다는 발상이 흥미로운데, 하룻밤 사이에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고전 SF의 인조인간보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만 그만큼 안정감이 있고 현실감각에도 어울린다. '로봇은 반드시 창조자에게 반항할 것이다'라는 프랑켄슈타인 컴플렉스는 물론 '인간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로봇이 완전한 존재다'라는 아톰 컴플렉스마저도 넘어서서 '인공지능은 인간과 똑같아질 수 없다. 그들에게도 마음은 있지만 그것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새로운 형태의 마음일 뿐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다른 것처럼 인간과 인공지능도 그냥 다를 뿐이다. 그점을 납득하고 받아들여야 공존이 가능하다'라는 메시지를 꽤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작품이다.

그와 동시에 본서에서는 '픽션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당히 중점적으로 파헤치고 있는데,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실제 있었던 일보다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세부 내용은 거짓이라도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숨은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라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차가운 현실보다 따스한 픽션이 아닐까?' 같은 문제제기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현실-픽션의 대응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공지능의 대응관계와도 오버랩되어 종국에는 '인공지능을 마음을 가진 생명이자 지성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스토리와 함께 전개되는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느라 다소 설교조가 되고 너무 낙관적인 이야기들만 나오다보니 '과연 인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바뀔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긴 하지만 인공지능과 가상세계를 다룬 SF로서는 여러모로 색다른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슈뢰딩거의 초콜릿 파르페>에서도 그랬듯이 저자 특유의 오타쿠스러운 감각의 문장이나 레퍼런스가 가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므로 이쪽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by 잠본이 | 2012/05/20 10:39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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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라 at 2012/05/20 12:12
일본은 sf 잡지가 2개나 되는 거 보니 한국보다

저변이 더 넓은 모양이군요.

도서관에 있나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5/20 12:28
저 2개 말고도 여러가지 잡지가 있긴 할텐데 휴간 폐간 등등으로 사라진 것도 있을테니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네요.

도서관에 없으면 신청하시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슈뢰딩거의 초콜릿 파르페'는 절판인데 이 책은 아직 판매중이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12/05/20 14:56
소재와 제재만을 보면 웬지 아시모프 냄새가...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5/20 16:29
3원칙의 응용이나 '하비의 오류' 등등의 오마주가 나옵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2/05/20 15:00
얼굴에 문신 하니까 어째 타이거 타이거가 생각나는군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5/20 16:30
그 정도로 무서운 문신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Commented by 더카니지 at 2012/05/20 20:11
슈뢰딩거의 초콜릿 파르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는데 재밌어보이긴 하네요. 싸우는 미소녀 안드로이드라...역시 작가는...ㅋㅋㅋ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5/20 20:43
근데 실제론 별로 안싸우고 얘기만 줄창 한다는게 함정
Commented by 이탈리아 종마 at 2012/05/20 20:25
다 좋은데 굳이 미소녀 안드로이드라는 설정이 조금 신경쓰이네요

그냥 일반인 모습으로 해도 될 것을...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5/20 22:23
작가는 이렇게 말하겠죠. '취미입니다' (...읭?)

농담이 아니고 극중 설정상 원래 마스터가 게임오덕이었던 걸로 되어있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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