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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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나의 신들
원제: The Gods of Pegāna
저자: 로드 던세이니
역자: 엄진
출판사: 페가나

19세기 아일랜드에 에드워드 존 모어튼 드랙스 플렁킷(Edward John Moreton Drax Plunkett)이라는 쓸데없이 긴 이름의 귀족 양반이 살았다. 18대 던세이니 남작(18th Baron of Dunsany)이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었던 이 남자는 토지명을 딴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사냥과 크리켓을 즐겼으며 귀신같은 사격 솜씨와 체스 실력을 갖추었고 용맹한 군인으로서 보어 전쟁과 1차대전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학대에 반대하고 보이스카웃 활동을 장려한 운동가이기도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현기증이 날 정도인데 여기에 더해서 다수의 작품을 집필하고 예이츠나 러셀 같은 당대의 유명 작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던 문필가이기도 했으니 인생을 참 알차게 살았던 모양이다. (한 가지만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다고 허덕이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참 세상 고르지 못하구나 하는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이 괴물같은 귀족 양반이 1905년에 런던의 출판업자 엘킨 매튜스(Elkin Mathews)를 통해서 발표한 출세작이 바로 『페가나의 신들』이다. 당시의 로드 던세이니는 불과 몇 편의 시문을 발표한 초보 작가였다. 따라서 이 작품이 잘 팔릴지 어떨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책이 팔릴 때마다 커미션을 받기로 계약하고 일단은 자비(自費)를 들여 1천 부만 찍어냈다고 한다.

이른바 한정판 동인지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예상을 깨고 재판을 거듭하며 로드 던세이니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었으며, 이 책에서 비롯된 가상의 세계 ‘페가나’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신화체계는 시대를 뛰어넘어 후대의 영미권 판타지 문학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와 함께 본서의 삽화를 담당한 화가 시드니 사임(Sidney Sime)의 독특한 그림들도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본서는 서문과 총 30편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식상으로는 산문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긴 호흡을 띤 연작 서사시에 가깝다. 각 단락의 분량은 별로 길지 않고 각기 독립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나 매우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한 번에 금방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흠정역 성서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저자의 문체 또한 쾌적한 감상을 어렵게 한다. 게다가 저자가 졸다 말고 일어나서 급하게 써내려간 건지 때로는 앞서 나온 내용과 모순되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으면서 ‘…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누가 그 깊은 뜻을 헤아리리오?’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는 부분도 있어 더더욱 피곤하다. 이를테면 독자는 판타지라는 말에 현혹되어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아기자기한 소설을 기대하고 책을 펼쳐들었는데 정작 속 내용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같은 신묘하고도 골치 아픈 장시(長詩)에 가까우니 이거 참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이야기는 신들이 사는 영역인 페가나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들이 사는 현실계로 나누어진 연대 불명, 소재 불명의 세계를 무대로 하여 펼쳐진다. 아주 오랜 옛날에 만물의 근원이자 창조의 종결자인 마나-유드-수샤이(Mana-Yood-Sushai)가 ‘작은 신’들을 만들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하여 태어난 ‘작은 신’들은 다시 세상 만물을 만들고 저마다의 속성과 능력에 맞게 그 운행을 관리하는 지배자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언젠가 위대한 마나-유드-수샤이가 잠에서 깨어나 다시금 새로운 신들과 다른 세계들을 만들게 되면, 현재의 신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는 파괴될 운명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날’이 언제인지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고, 단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라고 계속해서 암시만 남기고 있다.

본서는 페가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성립과, 마나가 잠자는 동안 세계를 다스리는 ‘작은 신’들의 활동,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세상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하나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인간들의 삽질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이야기들은 마치 누군가의 꿈을 중간부터 들여다보는 것처럼 흐릿하고, 어떠한 희망이나 낙관도 허용하지 않는 염세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인간들이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그들 위에 버티고 있는 ‘작은 신’들에 비하면 하루살이에 불과한데, 거기에다 그 신들보다 더욱 더 전능한 존재가 있어서 아예 우주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라면 정말 살기 싫을 것이다. 애초에 마나가 신들을 만들어낸 것도, 그 신들이 세상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게임에 불과한데, 그 게임의 놀이말에 불과한 인간들의 삶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본서의 후반은 대체로 인간의 대표인 ‘예언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의문에 접근하였다가 대부분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씁쓸하다.

마나로부터 지배권을 위임받아 한정된 시간 동안 세계를 만들고 다스리는 ‘작은 신’들의 면모도 매우 다채롭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키브와 죽음으로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뭉, 시간의 파괴적인 속성을 상징하는 시쉬, 물을 지배하는 슬리드, 환희와 음유시인을 주관하는 림팡-퉁, 작은 꿈과 환상을 내려주는 요하네스-라하이, 만물을 전진시키는 룬, 그리고 수많은 가택신(家宅神) 등등 페가나의 신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서로 맞물리거나 혹은 스쳐지나가며 세상을 이끌어 간다.

사실 여기까지는 세계 각지에 숱하게 퍼져 있는 고대신화나 애니미즘 신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변 사물이나 자연현상의 의인화’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신의 속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다신교적 세계 해석과 겹치는 면도 있으며,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신선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유일의 조물주와 그 조물주가 만들어낸 복수(複數)의 신들이라는 2단계 지배 구조는 기독교나 이슬람의 유일신 신앙과 위에서 말한 다신교적 해석을 절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신들이 보여주는 행동원리다. 그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자기들의 권능을 행사하지만 인간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인간 또한 자기들이 관장하는 세계의 부속품에 불과하며 따라서 특정한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에 대해서도 특별히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하는 감정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며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무심하게 대한다. 어찌 보면 이 신들은 확립된 캐릭터라기보다는 주어진 일에만 충실한 기계, 혹은 일체의 타협이나 유연성을 허용치 않는 순수한 개념(槪念)에 가깝다.

그러한 신들과 인간 사이에는 애초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불합리한 감정의 변덕과 유한한 인생에 갇힌 채 끊임없이 해답을 구하는 인간과, 정해진 법칙을 따라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의미 모를 게임을 되풀이하는 신들. 이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소통이나 교류의 여지가 없다. 비슷하게 의인화된 신들을 다루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인간화’된 신을 다루지는 않는 것이다. 때로는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러한 무심함은 유일신 신앙의 절대자 이미지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나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해 게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100% 같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런 소통 불능의 함정으로 인해 본서에서 묘사된 세계에 드리워진 비극성은 더욱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갖고 실수도 저지르는 신들을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할 수 있고, 기독교나 이슬람이라면 특정 인물이나 민족에 대해 어떠한 목적이나 계획을 가지고 시련을 주거나 배후에서 조종하는 유일신을 보며 특별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기계적이고 융통성 없고 목적조차 흐리멍텅한 신들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들을 캐릭터로써 서로 구분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혹자는 본서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아일랜드인인 저자가 켈트 신화나 북유럽 신화를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긴 농사도 잘 안 되고 일년 내내 추위가 가실 날이 없는 지역이라면 신들 또한 무미건조하고 차가워질 수밖에 없을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신들의 장난으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세계 - 이러한 세계관은 명백히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인간중심주의와 대극(對極)의 위치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헬레니즘에 대비되는 유일신교의 헤브라이즘에 기반을 둔 것이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헤브라이즘은 인간의 뜻과는 상관없이 신의 뜻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고 해석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신의 뜻을 헤아리고 잘 따르는 인간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융통성이 있다. 하지만 페가나의 신들은 애초에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전혀 없다. 마치 우리들이 체스를 두면서 장기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 신들의 의지 또한 위대한 마나의 의지 앞에선 추풍낙엽에 불과하고 그 마나를 움직이는 것은 운명(fate)과 우연(chance)의 주사위 놀음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허무의 극치(極致)인 것이다.

이러한 허무주의에 가득한 신화체계는 이후 미국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에게 마치 뒷골을 얼음망치로 강타하는 듯한 충격을 주어, 크툴루 신화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인간과는 전혀 접점이 없고 소통도 불가능한 이질적인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고, 언젠가 그 존재들을 대표하는 위대한 누군가가 잠에서 깨어나면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는 설정은 명백히 던세이니의 모방이다. 다만 던세이니의 세계관이 속으로는 차가운 종말의 프로그램을 감추고 있어도 겉으로는 마치 한낮의 백일몽처럼 아늑하고 들뜬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러브크래프트가 해석한 그 세계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나 성격이 반영된 탓인지 보다 음울하고 습기차고 강렬한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염세주의적 세계관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신의 의지가 애초에 인간들과 아무런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이고 인간이 거기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원래 신(神)은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서, 혹은 스스로 생각해서는 알아낼 수 없는 답을 찾아내고 싶어서 외부에 그 소망과 염원을 의탁하기 위해 등장시킨 철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가나의 신들은 그러한 역할을 거부하고 단지 그 자체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결국 이들은 우주를 통제하는 법칙의 다른 모습일 뿐 우리가 섬기는 신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페가나의 신들은 신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며, ‘신은 이미 죽었다’. (혹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신(혹은 신이라는 이름의 개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만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반(反)휴머니즘의 집약으로만 보이던 본서가 오히려 역설적인 궤변을 통하여 휴머니즘의 부활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다. 본서가 J.R.R. 톨킨이나 어슐러 K. 르 귄 등의 염세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판타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기존의 전승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신화체계를 구축하는 문학적 방법론 또한 물려받았겠지만.)

그 의미야 어떠하든 간에 본서가 여러모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작품 자체는 현대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산만하고 어려운 면이 있지만,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여 발전하다가 종말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보여주는 현대 창작신화의 원형(原形)으로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페가나 북스에서는 본서의 속편에 해당하는 『시간과 신들Time and the Gods』도 전자책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본서와 함께 던세이니의 진면목을 국내에 소개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참고 링크 ■
http://www.pilza2.com/pegana/index.html
http://www.pilza2.com/blog/1733
http://cafe.naver.com/nfantastique/4419
http://en.wikipedia.org/wiki/The_Gods_of_Peg%C4%81na
http://www.dunsany.net/18th_Pegana.htm
http://www.gutenberg.org/ebooks/8395
http://www.isis.ne.jp/mnn/senya/senya0002.html
http://www.geocities.jp/rikichanzoochan/akutagawa/pegana.html

※본 리뷰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by 잠본이 | 2012/01/28 14:13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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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2/01/28 15: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격화 at 2012/01/28 15:15
다른 것보다 '마나-유드-수샤이(Mana-Yood-Sushai)'라는 신의 이름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법의 에너지인 마나 mana라는 단어가 혹시나 이 신의 이름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Commented by 키라라라리이 at 2012/01/28 20:26
아닐 겁니다. 롤플레잉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 속의 마나 개념은 문화인류학쪽에서 차용된 걸걸요. 오세아니아 원주 부족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던 용어, 개념인데, 로드 던세이니의 저작보다 훨씬 이전에 서구에 널리 소개되었죠. 황금가지 같은 그 분야의 대중적 고전을 통해.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1/28 22:16
마나 들을 때마다 성경의 만나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근원이 따로 있었군요(;;;)
Commented by sharkman at 2012/01/28 15:26
그러다 작은 신들의 돌격대장인 청동거인이 반란을 일으켜서 부하를 거느리고 기존의 창조된 세계를 파괴하는 행동으로...
Commented by pilza2 at 2012/01/31 00:25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해설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도 많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간과 신들'은 3월 출간 예정이라는 선전을 슬쩍 남겨놓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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