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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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모험' 시리즈 완독
결국 극장판 버프 받아서 간만에 지름신을 영접, 박스세트 전권을 1주일에 걸쳐 다 읽었다. 에피소드마다 개성이 꽤 확연해서 작품별로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한데 기력이 모자라니 일단 전반적인 감상을 정리해 두고자 한다. (그나저나 특전으로 준 3D영화 예매권은 L모시네마에서만 사용 가능한데 이 영화가 그리 재미를 못 본 터라 지금은 2D밖에 상영 안하는 형편이고 그마저도 언제 간판을 내릴지 모를 상황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1. 무색투명하고 솔직담백하며 엄마친구아들급의 능력을 가진 주인공 땡땡은 과거나 가족관계나 개인적인 성향 같은 부분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독자의 분신으로서 모험에 참여해서 웬만한 어른도 힘든 일을 척척 해치우고 어떤 어려운 일도 쿨시크하게 받아들이며 웬만해서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외모도 굉장히 단순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독자의 사건에 대한 이입을 돕는 탈바가지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스콧 맥클라우드의 분석이 꽤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초반에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오라고 초대한 적도 없는 나라에 쳐들어가서 적극적으로 사건을 일으키는 경향이 강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본인은 평온하게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그냥 놔두질 않아서 사건에 말려드는 패턴이 늘어나 묘한 느낌을 준다. (이름만 대도 세계 곳곳에서 팬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유명인사란 것도 그렇고... 뭔가 카네다 쇼타로의 성질머리를 지닌 초인 로크를 보는 느낌? OTL)

성실하게 살면서 약자를 돕는 보이스카웃 정신과 옳지 않은 일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기자정신이 땡땡의 두 가지 대표적인 행동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외부자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근본적인 변화에는 관여하지 않고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애쓰는 편이라 어찌보면 꽤 기회주의적인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후반부에 나온 <땡땡과 카니발 작전>에서는 중남미 모국의 혁명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전부터 알던 사이인 군사지도자 도와주는 식이라 객관적인 정의와는 좀 거리가 있고.)

2. 주인공이 표준적이고 몰개성한 만큼 그 옆에서 보좌하는 조연들의 개성이 한번만 봐도 뇌리에 팍 새겨질 정도로 강렬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시도때도 없이 붙어다니는 애견 밀루인데 이녀석은 축생인 주제에 항상 중얼중얼 불평을 일삼고 모든걸 자기 위주로 생각하여 소동을 벌이며 술이나 음식에 약해서 주인을 곤란하게 하는 등 주인공에게 결여된 온갖 인간적(?)인 결점을 다 갖추고 있는 동시에 여차할 때에는 주인공의 위기를 구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운 면모를 발휘하여 서로 죽고 못사는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한시도 땡땡 곁을 떠나지 못하며 잠시라도 땡땡이 다른 데로 가면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데다 땡땡의 위기를 가장 먼저 탐지하여 구하러 달려나가는 등 충견의 원패턴을 그대로 따르는데, 그에 맞게 주인공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밀루를 절대 내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구하러 애쓰는 등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애견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 만화의 주인공은 땡땡 혼자가 아니라 땡땡과 밀루로 구성된 하나의 유닛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둘의 관계는 돈독하다. (하긴 작품 로고에도 땡땡 혼자만 나오는 법은 없고 반드시 밀루가 따라붙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별 무리 없을 듯.)

이들의 관계는 제1탄 <소비에트에 간 땡땡>에서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여 이후 마지막 작품까지 계속 유지된다. 밀루를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조연으로 자리잡은 아독 선장만 해도 상당히 나중에 등장한 편이고 관점에 따라서는 밀루의 인간화 마이너체인지 버전(...)으로 보일 정도라 꽤 거시기한 느낌도 든다.

3. 원래는 가톨릭계 보수신문의 어린이용 부록에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띠고) 연재된 터라 <미국에 간 땡땡>까지는 정말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도 많고 잘못된 인종주의나 다른 국가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내용도 여과 없이 나타나서 이후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작가 본인보다도 해당 신문의 편집인이었던 모 가톨릭 신부의 견해가 많이 들어간 터라 작가의 본의에서도 벗어난 부분이 많고 작가 자신도 이후 '젊은 날의 과오'라고 말하는 등 별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소비에트-콩고-미국으로 이어지는 초기 3부작은 사리판단이 분명치 않은 어린이들에게 함부로 보여주기에는 꽤 위험한 작품이며 재미 면에서도 좀 떨어지기 때문에 작품에 관심이 많거나 연구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성인들에게만 판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제일 문제가 많았던 콩고편의 경우에는 꽤 여러 국가에서 판매금지를 먹거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으음 그나저나 분명 콩고편의 코뿔소 사냥 장면은 동물애호가들에게서 엄청 두들겨맞은 탓에 재발매시 표현이 순화되었다고 들었는데 솔출판사 버전에서는 원래 그대로 다이나마이트 꽂아서 퍼펑! 이라는 전개를 보여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기도 하고.

4. 이런데 등장하는 악당들이 늘 그렇긴 하지만 어찌된게 땡땡을 가만히 내버려두거나 은근슬쩍 속여넘겼으면 대충 넘어갈 만한 일도 꼭 무력을 동원하여 땡땡을 미리 제거함으로써 후환을 없애려다 오히려 의심을 품게 된 땡땡이 더 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아 망했어요'가 되도록 해버리니 어찌 이리 바보스러운 악당들만 세상에 가득한가 싶다.

악당들의 패턴도 초기에는 소비에트 일당독재의 폐해를 감추려는 소련 비밀경찰(!)이나 알 카포네의 사주를 받고 다이아 암거래를 은폐하려는 갱단 앞잡이(!) 등등 꽤 현실적이고 정치사회적인 맥락이 강한 놈들이 많은데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배경에서 현실과 관계없는 가상국가의 비중이 커지고 내용 자체도 탈정치적인 어드벤처의 색채가 강해지면서 보다 순수하고 흔해빠진 악당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의 폐해를 그린 초기 작품에서도 정작 다른 작가들은 허벌나게 악역으로 써먹었던 나치독일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이건 벨기에가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 망명 안하고 그냥 남아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친 나치계 신문에 기고하며 살아야 했던 작가의 개인사 때문인 것 같다. 이 경력 때문에 2차대전 이후 상당기간 나치 협력자 혐의를 받아 시달렸다고.)

5. 개인적으로 꼽는 시리즈 중 최강 작품은 <파라오의 시가>-<푸른 연꽃>으로 이어지는 2부작. 초기의 정치적 커멘터리에서 중기 이후의 어드벤처 계열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품인지라 양쪽의 장점을 다 갖고 있다. 국제적 배경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침략전쟁에 대한 울분, 사악한 음모와 순수한 우정을 한 작품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아무래도 초기 3부작의 어이없음에 질려있다가 곧바로 이 작품들을 읽은 탓에 더 재미있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지만.) 일제가 만주에서 깽판치다 탄로나 국제연합에서 탈퇴한 게 사실은 땡땡 때문이다(...)라는 호쾌한 개뻥을 읽으며 낄낄대는 것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묘미일려나.

모험이 아니라 코미디 측면에 비중을 둔다면 시리즈 유일의 전원 추리 시트콤(!)인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이 기막히고, 오컬트를 살짝 가미한 감동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역시 시리즈 굴지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티벳에 간 땡땡>을 추천. 특히나 후자는 보물섬 연재 당시 중요한 부분을 거의 다 보았는데도 완역판을 다시 읽으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여러모로 즐거웠다. 특정한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오해나 대자연의 장엄함 등의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묘미가 느껴지는 것도 이 두편의 특징.

반대로 시리즈 최고의 괴작은 <시드니행 714편>. 등장 캐릭터는 개성적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매너리즘의 기미를 보이고 주인공들의 행동도 영 호쾌한 맛이 없어 불만스럽다. 게다가 난데없이 외계인과 UFO 드립을 끌어들여 허무개그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종결지어버린 꼼수도 잘 나가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 마음에 안 든다. (스필버그가 인디 4편으로 해먹은 짓을 에르제 할배는 이미 수십년 전에 더 뜬금없는 방식으로 해치웠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수확일지도 모르지만.)

6. 아무래도 극장판의 각색으로 인해 가장 크게 손해본 인물은 비앙카 카스타피오레 여사일 듯. 극장판에선 아주 만화적인 트릭(고음으로 유리깨기)의 도구 비슷하게 활용된 것 외에는 별 활약이 없는데 그마저도 원작에 비추어보면 말도 안되는 각색이다. 원작에서도 이분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을 설설기게 만든 것은 틀림없으나 유리를 깰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았다. (첫 등장편인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에서 우연히 차량에 동승한 땡땡이 이분의 노래를 들으며 '강화유리라서 다행이군!'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맥락으로 각색된 셈.)

하긴 90년대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네덜란드판 오프닝에서 이분이 노래하는 장면과 물랭사르성의 유리창이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깨지는 장면을 곧바로 이어지게 편집해서 마치 이분의 노래소리가 최종병기나 되는 듯이 착각하도록 왜곡했던 걸 생각하면 영상 쪽 스탭들의 비앙카여사 물먹이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만.

7. 아무래도 그려진 시대가 시대인만큼 중요한 역할은 다 남자들이 맡고 극중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거의 지나가는 배경이나 개그 캐릭터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비중 있는 인물들도 여왕병 가득한 오페라 가수나 주인공으로 인한 소란에 질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하숙집 여주인 정도이니 작금의 미소녀 팬들에게는 전혀 어필할 만한 요소가 없다. 기껏해야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에 등장하는 집시 소녀 미야르카 정도가 눈길을 끌지만 얘는 스토리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엑스트라.

반대로 땡땡이 현지에서 얽혀드는 아해들로 영원한 소울메이트 창(<푸른 연꽃>, <티벳에 간 땡땡>)이나 어려운 살림에도 씩씩하게 살며 금기를 깨고 외국인을 돕는 조리노(<태양의 신전>) 등등 꽤 준수한 쇼타들이 넘쳐나는터라 좀 다른 계층의 흥미에는 충분히 걸맞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수비범위가 넓으신 분이라면 가는 데마다 사고를 치는 장난꾸러기 아랍왕자 압둘라 녀석까지도 커버할 수 있을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르제 재단은 언론 보도를 통하여 '땡땡은 절대로 게이가 아니다. 하는 짓을 보면 오히려 마초에 가깝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얼마나 수상쩍은 억측을 내놓는 사람이 많았으면 저런 소릴 다 해야 했을까... =]
by 잠본이 | 2012/01/07 16:13 | 만화광시대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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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히무라 at 2012/01/07 17:39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방영한건 만주편 그 다음화였던가...
Commented by draco21 at 2012/01/07 18:31
... 제가 살때까지 부디 남아있기만을.. OTL
Commented by 103 at 2012/01/07 18:52
콩고편, 미국편은 사놓고도 봉인을..이게 아직 팔리는 걸 알면 작가님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듯 ㅋㅋㅋㅋ
창을 처음 만났을때 둘이서 했던 뜬금없는 인종 차별에 대한 대화는 초기 3부작을 무마하기 위한 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티벳편은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요. 아독선장의 모자장수 의상은 필견포인트....
Commented by 리언바크 at 2012/01/07 20:41
땡땡 캐릭터는 상당히 단순한 필체인데도
의상이나 풍경, 문화들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
에르제가 단순한 스케치식 작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우리 도서관에도 전권이 구비가 되어있고
옛날에 학교에서 일할 때에도 다 봤습니다.
달나라 여행 같은 뜬금없는 스토리도 있지만... ㅎㅎ

땡땡이 출간될 당시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이었죠.
(독일도 분단국가...였던가? 맞나?)
그래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에 관한 묘사들도
상당히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가가 죽었으니 개정은 못하겠지만. ㅋ
Commented by mithrandir at 2012/01/08 01:21
하지만 아무리봐도 땡땡의 신부는 아독선장...
사실 그보다도 의심스런 쪽은 쌍동이(같지만 아닌) 형사 커플이지만요.
Commented by 으잌ㅋㅋ at 2012/01/08 03:37
오오 그렇구나 하면서 보다가 마지막에 격뿜...ㅋㅋㅋ인간들이 진짴ㅋㅋ얼마나 해댔으면 기사를 내서 해명을 하냐 ㅋㅋ
Commented by rumic71 at 2012/01/08 15:58
인디4는 스필버그가 땡땡을 만들기 위한 연습...?
Commented by 풍신 at 2012/01/08 17:51
하긴 <도둑이 제발 저려서 땡땡을 견제했어요. 땡땡이 사고 쳐서 우왁 망했어요.> 패턴이 꽤 있는 듯...

그나저나 인디4는 안습...
Commented by 차원이동자 at 2012/01/08 20:03
아앍! 전권 지르고 싶어졌잖습니까?!
그 뭐랄까. 밀루의 마이너 인격이라고 치면 쌍둥이형사도 굉장하죠잉.
(아니. 그분은 보조가 아니라 '뒷북치는 형사'역할이라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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