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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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프라 탄생비화!
■ 건프라 탄생 외전[外傳]

건담이라는 희대의 거물 캐릭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고기능 범용 소프트웨어라고 할 만하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 온 만큼, 그 잠재능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났다. 게다가 지금도 새로운 영상작품을 만들어 가며 버전업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독자적인 사고회로를 지닌 생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각설하고, 건담은 극장영화, TV, 비디오, 무크본, CD 같은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를 통하여 접하는 사람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캐릭터의 매력을 키워 왔다. 그 매력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하드웨어 전개의 중심에 플라스틱 모델을 배치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동차 제조업체나 가전제품 메이커가 최종 디자인을 결정할 때 스케일 모델을 중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입체 조형물은 백 마디 말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갖는다. 건담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매력을 프라모델에 계속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 프라모델의 스케일 설정에 의해 높아지는 설득력을 흡수하여, 더욱 더 파워업한다는 시스템을 보기 좋게 구현해 냈다.

또한 프라모델이 마치 소프트웨어의 매력 조성에 호응하기라도 하듯이, 절대로 접촉할 수 없을 터인 오리지널 이미지를 유저에게 제공한 것도 좋은 결과를 창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아무리 실체가 없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도 소프트와 하드의 상승효과에 따라 원래의 매력을 증폭함으로써 상상을 뛰어넘는 광채를 발산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체현하여 보여준 것이 건담의 엄청난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원작자인 토미노 감독이나 기획사인 선라이즈의 야마우라 씨가 "반다이와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럼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건담의 프라모델을 세상에 내놓자는 결정이 내려진 순간을, 건담에 승부를 건 한 남자의 집념 어린 여정을 통해서 소개하는 걸로 본서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시동]

건담 프라모델의 상품화권을 따내려고 반다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방영이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의 일이다. 그 당시 로봇물 캐릭터 상품의 주류는 변형합체기구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은 다이캐스트(아연합금)제 완구, 통칭 '초합금 모델'이었다. 건담도 메인 스폰서인 완구회사 (주)크로바에 의해서 그런 종류의 아이템을 메인으로 삼아 정석대로의 세일즈를 진행하고 있었다. 반다이 모형에서 접근해온 것은 건담의 광고대행사인 소츠 에이전시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득권을 손에 쥔 메인 스폰서가 이미 존재하는 이상, 아무래도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츠 에이전시가 크로바를 무시하고 반다이 모형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반다이 모형과 소츠 에이전시 사이에는 과거에 거래관계가 전혀 없었고, 게다가 소츠 에이전시는 반다이 그룹의 경쟁사인 (주)타카라와의 거래실적을 쌓아온 회사였다. 그러한 정세와 배경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반다이 모형에서 건담의 라이선스를 따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한 문제를 절충하기 위해 나선 것이 당시 특판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나카요시 쇼지[仲吉昭治]였다. 반다이 그룹 내에서 특판부가 맡은 역할은 인기 캐릭터를 일괄적으로 취급하는 본사의 모형부가 미처 대응하지 못한 캐릭터를 발굴하여 상품화하는, 일종의 '틈새시장 개척'이었다. 나카요시는 영업의 정석에 따라 집요하게 이어지는 전화공세를 시작으로 소츠 에이전시 담당자와의 접촉을 꾀했으나, 결국 약속을 잡기는 커녕 담당자를 전화통 앞으로 끌어들이는 것조차 실패했다. 미리 예측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건담의 방영 종료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당시 상황은 나카요시에게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나카요시가 직접 소츠 에이전시로 출장을 가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결단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신칸센 열차를 타고 시즈오카에서 도쿄 긴자에 있는 소츠 에이전시의 사무실로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주요 시청 대상인 어린이들에게 외면당하여 시청률은 곤두박질치고 판매실적 면에서도 스폰서의 기대를 줄곧 배신해 왔던 <기동전사 건담>에 대해서 반다이 모형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건지, 소츠 에이전시 측에서는 도무지 영문을 모를 노릇이었다.

[비원의 달성]

사무실 문앞에서 인사하는 걸로 시작된 나카요시의 소츠 에이전시 방문은 무려 4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연말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소츠 에이전시로부터 나카요시에게 한 번 만나서 얘기하자는 답변이 왔다. '계속해서 무시로 일관하고 있던 상대방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보면 뭔가 진전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나카요시가 속으로 미소지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나카요시는 일일천추[一日千秋 : 마치 하루가 천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간절하게 그리는 마음]의 심정으로 판권 상담 자리에 나갔다. 회의실에서 기다리기를 수십분, 마침내 <기동전사 건담>의 판권 담당자가 나타났다. 명함을 주고받은 뒤 곧바로 상담에 들어가려고 생각했으나, 우선은 소츠 에이전시 측에서 거두절미하고 자기들의 의향을 밝혔다.

반다이 모형 측의 열의는 잘 알겠으나, 건담의 프로그램 스폰서에는 완구회사인 크로바가 있다. 그들의 동종업체에 라이선스를 부여함으로써 마찰을 빚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따라서 건담의 상품 전개에 반다이 모형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담당자의 이러한 설명을 들은 나카요시는 그 이면에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음을 직감했다. 이 회담의 진짜 목적은 반다이 모형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카요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반다이 모형은 프라모델 전문 메이커로, 반다이 본사와는 별개의 법인이며 완구 전개는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로바의 초합금 모델과는 시장에서 부딪힐 일이 전혀 없지요. 만약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반다이 모형에게 교섭의 여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나카요시에게는 '건담은 프라모델로 전개한 뒤에야 비로소 개화(開花)하는 캐릭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소츠 에이전시 측은 '비록 카테고리는 다르다고 해도, 프라모델과 초합금 모델은 같은 완구매장에 늘어서서 경쟁하게 될 것이므로 크로바를 자극할 소지가 있다. 건담의 완구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으므로 이제와서 그걸 전부 다 무효로 돌릴 수는 없다.'며 본래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한동안 대화는 평행선을 그리며 계속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카요시를 상대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던 담당자도 그의 열의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서서히 조금씩이나마 태도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담당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밝힌다. 나카요시는 모르고 있었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반다이 모형과 같은 취지로 프라모델 상품화권을 넘겨달라며 다른 회사 두 곳에서 구체적인 액수를 첨부한 오퍼를 직접 소츠 에이전시 상층부에 제출했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전제를 포함해서, 만약 반다이 모형이 저희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액수를 하루나 이틀 사이에 제시하겠다고 확약하실 수 있다면, 검토할 여지를 남겨둘까 합니다만-"
담당자의 이러한 답변은 나카요시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계산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회사로 돌아가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시간만 끄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니다. 가까스로 붙잡은 이 기회를 살리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는 없다. 나카요시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문제 없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미 예산을 확보해 두고 제 권한에 따라 판단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두었거든요. 분명 귀사가 만족하실 만한 답변을 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라고 말한 뒤, 담당자는 일의 경과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츠 에이전시 측이 희망하는 액수를 알려주었다. 물론 그 숫자가 건담의 평가를 직접 반영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현재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판권료에 비춰 보면 결코 높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금액은 나카요시가 상사로부터 허가받은 예산을 훨씬 웃도는 액수라는 게 문제였다. 이 자리에서 즉답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은 반다이 모형 내에서도 건담의 프라모델화 기획에 대해서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세력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래에 건담이 가져다 줄 이익을 믿는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액수에 맞춰서 거래를 진행하도록 하죠. 그 대신에 프라모델의 상품화권을 반다이 모형에 확실히 넘겨주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해 주십시오."
예상외로 너무나 흔쾌히 답변이 나오는 바람에 이번에는 소츠 에이전시 측에서 곤혹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허나, 비즈니스인 이상 이제와서 물러설 이유도 없는지라, 동점 상황에서 역전 홈런을 날리는 식으로, 교섭권은 반다이 모형 측에 넘어갔던 것이다.

이후 <기동전사 건담>은 (주)반다이의 중점 판매 캐릭터로 지정되어, 본사 관할에서 취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건담이라는 거대 캐릭터 비즈니스는 시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기동전사 건담>의 눈부신 광채는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 빛난다-.


*출전: 이노마타 켄지 著 <건담 신화>(다이아몬드샤, 1995) pp.172~175 '에필로그 ~ 후기를 대신하여'
*해석: 잠본이 (2011. 10. 10)


......진짜 이렇게 보면 건담 자체보다 실제 세계에서 건담 만든 사람들 얘기가 한 백배는 더 재밌는듯
(신작 나올 때마다 반다이 담당자는 '꿈이여 다시한번'을 외치겠지만 저런 일이 매번 있는것도 아니고)
by 잠본이 | 2011/10/10 22:37 | GUNDAMAKERS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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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1/10/11 00: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DukeGray at 2011/10/11 00:42
그리고 거기서 15년...
아직도 반다이의 든든한 힘이군요.
Commented by 스킬 at 2011/10/11 00:42
저거 지금 일본에서 똑같은 일을 벌인다면 담당자는 잘리고 거래는 없었던 것이 될 가능성이 크죠. -_-;
역시 과거의 사람들이 더 일처리가 유연성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원더바 at 2011/10/11 08:54
일본이 매뉴얼에 얽매여 돌아가긴 해도 저런 사례가 나오는걸 보면 참 재밌습니다. 저때 저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반다이는 없을테고...
Commented by 한컷의낭만 at 2011/10/11 09:25
역시 저런 뒷 이야기가 더 재밌네요~
Commented by 이무기 at 2011/10/11 11:15
시마차장님이시군요 ^^
Commented by 풍신 at 2011/10/11 18:04
음...가장 궁금한 부분인, 차익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쏙 빠져있...

정말 건담보다 실제의 뒷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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