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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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의 역습 :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의 심리학
원제: Stuff - Compulsive Hoarding and the Meaning of Things
저자: 랜디 O. 프로스트 & 게일 스테키티
역자: 정병선
출판사: 윌북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쓸모 없는 물건들을 미친 듯이 모으고, 누가 실수로 버리거나 손대기라도 하면 격렬하게 화를 내고, 그러면서 또 모은 물건들을 뭔가에 써먹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저 쌓아두기만 하는 증세를 이른바 '저장 강박(hoarding)'이라 한다. 이러한 습관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의 위협에 시달리며 수렵과 채집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인류의 오래된 본능 중 하나로 여겨져 왔으나, 물자가 풍부해지고 환경도 정비되어 그렇게 생활할 필요가 없게 된 현대에 와서도 이런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냥 진귀한 것을 모으는 정도라면 그다지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충동이 점점 커져서 집안을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 채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가족들에게도 불편을 줄 정도가 된다면 명백한 정신장애라 할 수 있다. 청소를 제대로 못 해서 위생상태도 열악해지고 쌓여있는 물건 때문에 유사시 대피조차 어려워져서 공중보건과 긴급구조의 측면에서도 별로 달갑지 않은 증세다.

스미스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랜디 프로스트는 1990년대에 강박-충동 장애를 연구하던 중 제자로부터 '이런저런 강박을 연구한 사례는 많은데 어째서 저장 행동에 대해서는 그런 연구가 전무한 걸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뒤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그는 보스턴 대학교 사회복지 대학원의 교수인 게일 스테키티의 협력을 얻어 수많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때로는 직접 당사자를 인터뷰하거나 치료과정에 참가하면서 저장 강박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0년에 두 사람의 공동 연구가 결실을 맺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된 것이 바로 본서인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이 그러하든, 혹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든 간에) 직면해 보았을 법한 '죽어도 못 버리는 습관'의 실체를 심리학, 뇌과학, 정신의학, 사회복지학 등등 다채로운 학문의 관점에서 분석한 일종의 종합 연구서인데, 이론보다 사례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저자들의 유머러스한 재치와 연구 대상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행간에 군데군데 배어들어가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고 읽기도 쉽다.

저자들이 만난 환자들(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다)은 연령, 생활환경, 교육수준 면에서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고 그 증세도 가지각색이며 증세에 대한 원인도 사람마다 달랐다. 주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타인과 달라서 특정한 물건을 통해서만 세상을 파악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어릴 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여 소유와 소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경우도 있으며, 반대로 특정 친족과 지나칠 정도의 정서적 유대를 가진 나머지 그 친족이 죽은 후에도 (자기에게는 별 쓸모 없는) 유산을 처분하지 못하고 그냥 두는 경우도 있고,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 거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축적해 두는 경우도 있는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든 처음에는 사람이 물건(무생물뿐만 아니라 애완동물도 포함한다)을 소유함으로써 시작된 관계가 점점 물건이 늘어나면서 사람이 물건에게 구속당하여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단계까지 치닫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저자들은 '저장 강박'이 소비를 권장하고 개인의 소유를 절대적으로 찬양하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환자 본인이나 그 주변 사람의 입장에서 치료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하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증세가 환자의 일생에 걸친 체험과 개인사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만큼, 100% 치료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장 강박의 문제는 아직 미국 밖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괴벽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한국도 서서히 미국식 자본주의에 의해 촉발된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으며 예전에 비해 정신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대비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인간 행동의 한 측면을 들여다보고 그러한 행동을 우리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한 학문적인 가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읽을거리이다. 머리말에서 1940년대에 뉴욕시를 깜짝 놀라게 했던 콜리어 형제 사건(현실은 픽션보다 기묘하다는 말이 진짜 딱 어울리는 사례이다)을 풀어놓음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휘어잡고 책에 흠뻑 빠져들게 하며, 그 뒤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도 현대의 여러 사례를 능숙하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각 사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교차시킴으로써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 책 역시 다 읽으신 후 집 안에 쌓아두지 마세요'라는 경고문도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심리학이나 사회복지에 관심있는 사람은 물론 그냥 인간 행동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실제로 주변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는 이 책을 참고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by 잠본이 | 2011/10/02 11:35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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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연담(輦談) at 2011/10/02 19:34

제목 : 로마, 저장 강박의 도시.
비행시간도 길고, 로마에서 피렌체, 피렌체에서 밀라노, 그리고 베네치아 일일관광의 이동수단을기차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동 중에 보려고 짐가방에 책 세권을 던져넣었다. 적당한 두께에 하드커버가 아니어서 가볍고, 너무 빨리 읽어서 짐이 되어 가방 구석에 처박히면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딱딱해서 전혀 안 읽힐 것같지도 않은 재밌어 뵈는 책. 이런 기...more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단편집을 샀더.. at 2011/10/02 15:38

... 당당하게 자리잡은 표지 말고는 별로 쓸데없는 이 부록은 어찌한담? 너무 크고 두꺼워서 누구 주기도 그렇고 그냥 버리자니 자원낭비일 것 같고... 에이익 망설이지 말자, 콜리어 형제를 잊었느냐? 과감히 버리는기야! (옛날 같으면 받아갈 사람 모집해서 선물하거나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마냥 귀찮어...) ... more

Commented by yora at 2011/10/02 12:36
동방의 모 인간 마법사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겠네요 ㅋㅋㅋ
Commented by 풍신 at 2011/10/02 12:55
제 경우는...책(+오덕물품/데이터)에 대해선 저장강박이 심각한 듯...

절대 안 쓸 것의 백업의 백업에 백업이...있고...책과 책 위에 책이 있고...OTL...
Commented by draco21 at 2011/10/02 13:04
저장 강박이라... 찔리는군요. ^^::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10/02 14:33
미드 수사물에서 꼭 한번씩 나오는 소재죠... (^^)
Commented by rumic71 at 2011/10/02 18:39
한국은 보릿고개를 겪은 집단무의식 덕에 더욱...
Commented by 아묘M at 2011/10/02 23:52
전에 미국비행기에서 볼 게 없어서 우연히 Hoarder 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진짜 미국엔 별의 별 hoarder가 다 있더군요 ^^; 수집벽을 넘어서 강박증이라는게 무섭더라구요.
(맥주캔만 모으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심지어 우리나라 쓰레기녀처럼 치우지 못해서 자녀들이 집 마당에 텐트치고 사는 가족도 있었다능..)
저도 좀 물건을 잘 못버리고 모아놓는 성격이다 보니 찔리기도 하고. 심리학에서부터 종교학까지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학문은 꽤 많은데 막상 해결방법은 별로 없다는게......ㅜ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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