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잘 알려져 있고 나름대로 고전 취급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이미 관련 작품이 마르고 닳도록 나와버린데다 요즘 시류에는 별로 맞지도 않는 것 같고 젊은 관객들에게는 '그게 뭐야 하하하하' 취급받기 딱 좋은 프랜차이즈를 꺼내어 이렇게 그럴싸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걸 보면 폭스가 확실히 요즘 겨우 제정신을 차렸거나 아니면 경영진이 약먹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도 그렇고 참 여러모로 기사회생이란 말이 어울리는 케이스라고나 할까.
-CG로 구현된 유인원들의 놀라운 연기경연이라든가 완급조절 잘 되어있고 인물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도록 단계별로 짜여진 스토리라든가 잠깐잠깐 올드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쏙쏙 숨겨놓되 작품 자체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시리즈 고유의 장난이랄까 기타등등 여러가지 좋은 요소는 이미 많은 분들이 감상을 통해 이야기했으므로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요즘 대작영화들이 스토리와 눈요기 둘 중 하나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전체적인 균형을 놓쳐서 참 말하기 뭣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은지라, 이렇게 내러티브와 첨단기술, 감성과 논리가 절묘하게 균형을 맞춘 작품은 그 존재만으로도 참 귀하다고 할 수 있다. (웨타의 CG기술이 없었으면 유인원들의 구현이 어려웠을 테지만 그 유인원들의 무언극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게 꾸며낸 것은 모션캡처에 참가한 배우들과 감독의 역량에 힘입은 것이니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인원측에도 인간측에도 한두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크게 악당이라 할 만한 캐릭터가 없이 다들 자기 감정과 욕망과 생활에 충실하게 사는 것뿐이었는데도 사소한 오해와 아집과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전개과정이 꽤 인상깊었다. 인간측 최대의 악역이야 뭐 연구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속행시킨 젠시스사(社)의 아프리카계 중역하고 유인원 보호소의 인간말종 직원 정도인데 다들 자기 나름의 동기는 갖고 있는데다 우리 주위에서도 충분히 볼 만한 현실적인 인간들이라 하는짓은 밉지만 당하는 꼴을 보면 좀 불쌍하기도 하다. 오히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치매 치료라는 순수한 목적 때문에 모든 것의 원흉이 되어버린 인간측 주인공 윌이야말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인물인데 '최고의 선의가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그대로 실증해보이고 있달까 뭐랄까.
-유인원들의 지능이 갑자기 확 올라가는 동시에 인류측의 세력이 점점 약화되는 단초를 제공하기 위해서 윌이 개발한 개량형 치매 치료약이 중요한 아이템으로 사용되는데, 버전 1이 주사약이었던 것에 비해 이쪽은 분무기로 발사하여 공기흡입을 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 약이 유인원들에게는 머리를 좋게 하는 신비의 영약으로 작용하지만 인간에게는 반대로 무서운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죽음의 약이 된다는 얘긴데, 솔직히 주변에 어떤 영향이 갈지 알 수도 없는 판에 굳이 저걸 분무제 방식으로 만들어야 했나 하는 의아함이 들기는 한다. 스토리상의 필연성을 생각하면 이해는 간다만 극중에서는 주입방식을 바꾼 것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없는지라... 뭐 그렇게 따지면 사육사 프랭클린(이 영화에서 두번째로 불쌍한 사람)이 사고로 그걸 흡입하고 곧바로 피가 섞인 기침을 하는데 격리조치도 없이 병가 얻어 혼자 끙끙 앓다가 전화로 해도 될 걸 굳이 윌네 집까지 찾아와서 옆집 아저씨(이 영화에서 첫번째로 불쌍한 사람)에게 병 옮기는 것도 좀 어거지다 싶긴 한데... 워낙 영화가 긴박감 넘치고 관객을 잘 휘어잡다보니 이런 사소한 태클은 넘어가도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이거 배우만 놓고 보면 엄마 잃은 어린 골룸(...)이 천재과학자 해리 오스본(...)의 손에서 귀여움 받고 자라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스트라이커 대령(...)이 경영하는 동물보호소에 수용된 후 악덕사육사 말포이(...)에게 괴롭힘을 받으며 레벨업, 결국 킹콩(...)에 버금가는 히어로로 성장하여 세상을 뒤집는 얘기가 되네? 오 마이 프레셔스! 미녀가 야수를 죽였어! 시저 집은 여기야! 입닥쳐 말포이! (...별로 상관없는 대사들인데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묘하게 연결이...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