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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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원제: Sylvie and Bruno
저자: 루이스 캐럴
역자: 이화정
출판사: 페이퍼하우스

아웃랜드는 자애로운 총독의 지배 하에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의 욕심 많은 동생은 소심한 대법관과 멍청한 아내를 한패로 끌어들여 총독을 여행 보낸 뒤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여 모든 것을 독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그러자면 총독의 아이들인 실비와 브루노 남매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천진난만한 실비와 브루노는 삼촌의 계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편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걱정하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채고 눈을 뜬다. 그랬더니 그곳은 시골로 향하는 여객열차의 객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방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단순히 꿈에 불과했던 걸까? 의문을 떨쳐 버리고 우연히 동석한 백작가의 따님과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던 '나'의 눈 앞에 또 다시 아웃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비치기 시작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로 문학사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긴 루이스 캐럴(본명 찰스 도지슨)이 1889년에 발표한 판타지 동화. 심장질환을 앓는 중년남자 '나'를 화자(話者)로 삼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어딘지 알 수 없는 환상계에서 동시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나는 환상계에 위치한 인간의 나라 '아웃랜드'를 무대로 총독의 아이들인 실비와 브루노가 사악한 삼촌의 음모로부터 도망쳐서 요정이 되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나'의 친구인 젊은 의사 아서 포레스터가 이웃의 백작 영애를 사랑하지만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환상계 파트에서는 주로 철없는 어린이인 실비와 브루노 남매가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이나 총독의 동생이 음험하지만 다소 우스꽝스러운 계략을 꾸미는 모습을 부조리극 비슷한 스타일로 보여주고, 현실 파트에서는 '나'와 아서, 그리고 백작 가문 사람들을 비롯한 이웃들의 대화를 통하여 당시의 여러 가지 이슈를 직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나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 한여름 낮의 노곤함 등등 다양한 계기를 통하여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두 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런 장면전환 수법은 처음에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익숙해진 뒤에는 마치 시계추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화자의 정신상태와 싱크로하여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하지만 해설자에 불과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고, 그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가끔씩 맞장구쳐주는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다른 인물들도 (음모를 꾸미는 총독 대리 일당을 제외하면)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이 아니라서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개성이 제법 뚜렷한 편이고 그들의 대사 하나 하나가 리듬감 있게 어우러지는 편이라 아무 생각 없이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단지 저자의 성향에 따른 동음이의어 말장난이나 정상적인 논리를 벗어난 인물들의 화법, 당시 사회배경이나 저자의 주변사정을 모르면 이해가 잘 안 가는 토론 등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영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문학의 독창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저자는 앨리스 2부작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방식의 새로운 동화를 쓰려고 고심했고, 그리하여 20여년에 걸친 구상 끝에 태어난 것이 본 작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본서에는 앨리스 작품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과 시대를 앞서간 장치들이 가득하다. 인간의 본성과 당대의 현실에 대한 예리한 풍자, 작품 안과 밖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포스트모던스러운 태도,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치가 닿지 않고 부조리하기 그지없으나 순수하고 변덕스런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대화들, 요정이면서도 실제 존재하는 아이들처럼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귀여운 주인공들, 현실과 꿈 사이를 위태위태하게 왕복하다가 급기야는 꿈의 존재가 현실에 뒤섞여 영향을 주기도 하는 스토리 구조 등 여러 모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해리 퍼니스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익살맞은 삽화도 읽는 맛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쉬운 구석도 많은데, 가장 큰 문제는 개개의 에피소드는 몽환적이고 아기자기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적인 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펼쳐지는 아서의 백작 영애에 대한 짝사랑은 별다른 진전 없이 실연으로 치닫고, 환상에서 펼쳐지는 실비와 브루노의 모험은 중간부터 삼촌 일당이 아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별 의미 없는 소꿉장난만 계속되어 지루한 느낌을 준다. 현실 파트의 시니컬하고 메마른 분위기와 환상 파트의 부조리하고 재기발랄한 분위기가 너무나 대조적이고 각각의 내용이 많이 달라서, 대체 어린이와 어른 중 어느 쪽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건지 헛갈릴 정도다. (본문 내용으로 보아 저자 본인은 아무래도 어린이 대상으로 쓴 듯 하지만...)

특히나 환상 파트는 아예 명확한 결말이 지어지지 않아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 듯한 인상까지 주는데, 이것은 원래 본서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2부 구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전반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해당하는 <실비와 브루노 완결편Sylvie and Bruno Concluded>은 1893년에 별도의 책으로 나왔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본서의 역자 해설에서 잠깐 언급될 뿐이고, 같은 출판사에서 이 책까지 펴낼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완결편을 보지 않고서는 이 작품 전체에 대한 온전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만큼, 최종적인 감상은 언젠가 완결편을 볼 기회가 있을 때로 미루어 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올 수는 있는 걸까? OTL)
by 잠본이 | 2011/05/05 20:04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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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만큼, 최종적인 감상은 언젠가 완결편을 볼 기회가 있을 때로 미루어 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올 수는 있는 걸까? OTL) ※원문 작성: 2011-05-05 루이스 캐럴영국소설장편판타지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 Your email addre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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