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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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리스트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의 투탑 공연이라는 점 때문에 기대하고 보러 갔다가 실망했을 관객들이 꽤 되리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관객들이 기대한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허수룩하게 생긴 미국 관광객이 유럽 여행을 갔다가 신비한 묘령의 여인을 만나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다'라는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왠지 평범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위험에 빠져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히치콕 영화의 향기가 느껴진다. 거기에다가 아름다운 관광지의 경치를 배경으로 화끈한 액션을 펼치는 요즘 영화들의 트렌드를 생각해 보면 기대감은 더더욱 높아진다. 주연이 연기와 액션 양면에서 어느 정도 실적을 쌓아온 저 두 사람이니 그런 기대감은 로켓을 달고 하늘로 날아갈 지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영화인 척 하지만 은근슬쩍 중간부터 다른 방향으로 빠진다고 해도 좋다. 원래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었는데 제작진의 취향이나 외부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다른 방향이란 게 대체 뭔가 하면... 로맨틱 코미디다. 그것도 아주 고상하고 잔잔하며 애잔한 유럽식 로맨틱 코미디. 애초에 표방한 장르는 스릴러이며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근사한 배경음악도 그점을 아주 확실하게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스릴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에 인물들의 대사나 미묘한 표정연기, 아이러니한 상황의 중첩으로 인해 코미디 영화가 아님에도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속출한다. (결코 만듦새가 어색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진짜 상황연출이나 타이밍이 절묘해서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액션이나 추격전도 요즘 할리우드의 툭하면 뭐가 터지고 날아가고 산산조각나는 패턴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정말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공법을 따른다. 애초에 주인공들이 전투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상대하는 인물들도 평범한 경찰과 러시아 건달들 정도라 그다지 큰 싸움박질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주인공들은 주로 잔머리나 소도구를 이용하여 그때그때 간신히 위험을 돌파하는 정도로 대처하고 상대역들도 살인보다는 보물찾기에 더 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충돌이나 추격은 아주 간단하고 소박하게 전개된다. 거기에 더하여 클라이막스는 아예 주인공의 직접적인 액션보다는 지략과 뒷거래에 의존한 반전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액션을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여겨진다. 미국회사가 제작한 미국영화임에도 감독이 독일인에다가 출연진 대부분이 유럽사람에 주무대도 유럽이라 그런지 미국영화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고 오히려 유유자적 느릿느릿한 전개 때문에 저예산 유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점 역시 경쾌하고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마이너스 요소다.

-하지만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하고 평범한 드라마로써 감상한다면 의외로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중반에 극중 인물이 야누스 신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양면성을 설명하며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감싸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테마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상당히 의미 깊은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 둘 다 어느 정도 양면성을 갖고 있으며(이점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드러나는데 자세히 얘기하면 천기누설이 되므로 생략) 서로의 그러한 양면을 차츰 알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완전한 상대방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말이 나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꽤 뒷맛이 깔끔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스팅>을 연상케 하는 사상 초유의 어부지리 사기극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재미가 있다.)

-조연들의 면모도 주인공들 못지 않게 화려하다. 주인공들을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이번에야말로 잡고 말리라는 의욕을 불태우지만 하는 일마다 꼬여서 허당의 전설을 만들어가는 애치슨 수사팀장은 무려 폴 베타니인데, 뭔가 좀 진지하거나 혹은 좀 싸이코스런 역으로만 기억하다보니 이렇게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찌질한(...) 조연으로 나온 게 오히려 신선했다. 그의 상관으로서 중년의 관록과 여유만만한 미소를 보여주며 애치슨 머리 꼭대기에서 뛰어노는 존스 국장은 4대 007로 유명한 티모시 달튼인데, 어째 나이들수록 토미 리 존스를 닮아가는 것 같아서(...) 데굴데굴 굴렀다. 결말에서는 좀 허무하게 퇴장하지만 실적이 부진한 용병을 재봉용 줄자로 목졸라 죽이는(...) 빠와를 보여주시는 악당두목 레지날드 쇼는 스티븐 버코프가 맡았는데, 이 아저씨도 알고 보니 <람보 2>의 포도프스키 대령이나 미니시리즈 <전쟁과 추억>의 히틀러 역으로 일세를 풍미한 연기파였다. 베니스에서 주인공들과 부딪히는 호텔 종업원이나 경찰관 등의 이탈리아 단역들도 하나같이 미국인 관광객에 대한 반감을 은근한 블랙유머로 표현하고 있어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중간에 열차로 이동할 때 나오는 프랑스의 전원 풍경이나 주무대인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은 장면 하나 하나가 거의 그림엽서 급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어서, 기왕에 감상하려면 큰 화면에서 디지털로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주인공 두 명은 평소의 카리스마에 비해 그다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굳이 그 이상의 뭔가를 배우들에게 요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몇몇 장면에서 꽤 재미나는 활약을 펼친다. 조니 뎁은 낯선 유럽 땅에 내려서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어딜 가나 뻘쭘한 모습으로 쭈뼛거리는 미국인의 초상을 꽤 실감나게 연기하는데, 아침도 못먹고 잠옷 바람으로 괴한들에게 쫓겨서 기와지붕 위로 껑충껑충 도망다니는 장면이 특히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나긋나긋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팜므 파탈을 연기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는 하는데 평소 이미지가 워낙 억세고 강인하다보니 '에이 누님 왜 갑자기 약한척을'이라는 잡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전성기 때의 소피아 로렌을 방불케 하는 파티 드레스 차림을 비롯하여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각종 패션을 실컷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제법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할 만하다.

-사실 이 영화는 오리지널이 아니라 2005년작 프랑스 영화 <안소니 짐머>의 리메이크라고 한다. 그다지 큰 인기는 끌지 못했지만 어찌어찌해서 2006년에 한국 개봉도 했었던 모양인데, 그때 나왔던 영화평이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한 평과 비슷비슷한 걸 보면 아무래도 원전의 구조적 한계까지 같이 가져와버린 탓에 더 미묘한 영화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by 잠본이 | 2010/12/19 16:30 | 시네마진국 | 트랙백(5)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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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에블린 솔트 요원이 육지에 올라와 육지멀미로 맛이 간[...] 상태의 잭선장님을 꼬시는 영화로 밖에 안보이더군요..OTL

4대 007님께서 한탄하시기를, "우리 때만 해도 말이야. 첩보세계에도 낭만과 멋이 살아있어서 적국이라도 멋진 여자는 목숨 걸고 구애를 했는데 말이지. 이건 뭐 요즘 후배들은 로망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스탭롤의 '티모시 달튼'을 보는 순간 윗 대사가 음성지원이 되더군요. [먼 산]

레지널드 쇼도 출연한 영화가 겹치는 지는 모르겠지만 007에 악당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의도적인 캐스팅이 아닐까 싶은..^^;
Commented by 블랙 at 2010/12/20 10:22
'옥토퍼시'에서 소련의 과격파 장군으로 나왔었죠. (007은 로저 무어 였지만....)
Commented by 키팅 at 2010/12/19 23:16
지적해 주신 대로 화려하고 시원한 재미보단 오히려 섬세한 재미가 더 컸던 것 같아요...물론 이건 예상치 못하고 갔었기에 기대에 반하긴 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고독한별 at 2010/12/20 02:39
영화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마지막 부분에 나올 반전이 뭔지
너무나 쉽게 짐작이 가는 바람에 좌절했습니다. OTL
Commented by 청풍 at 2010/12/20 21:32
오...악역들도 다들 이름있는 분들이셨군요...마지막에 빵 터져서 그냥 즐거웠습니다.
Commented by 춤추는곰♪ at 2010/12/20 22:33
글 잘 읽고 갑니다~ 오오- 제가 몰랐던 부분들도 많이 알고가요 +_+
Commented by minx at 2010/12/20 22:48
어? 그사람이 티모시 달튼이었어요? 그렇게 변했을 수가...
Commented by 붉은혜성 at 2010/12/21 17:40
보러가려고 했는데 여기저기서 평가가 영 좋지가 않군요ㅡㅜ
다른걸 봐야할듯 ㅎㅎ
Commented by 플린 at 2010/12/23 17:50
졸리양 솔직히 요즘 다작인 듯해요. 좀 쉬워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투어리스트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이미 곳곳에서 황해이야기가, 영구이야기가, 아니면 기대가 되는 다큐들이 예정돼 있어서요. 아무래도 좀 밀려나지 않을까 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at 2010/12/29 18:34
오오 영화평이 정말 꼼꼼하니 좋네요!
잔잔하니 귀엽고 재밌는 첩보멜로코미디였다고 생각해요.
스토리보다는 두 배우를 보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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