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by 잠본이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메모장
카테고리
태그
포토로그
라이프로그
rss

skin by 이글루스
도롱뇽과의 전쟁
원제: Válka s mloky
저자: 카렐 차페크
역자: 김선형
출판사: 열린책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1936년작 장편소설.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도구와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도롱뇽 종족이 20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세계 무대에 등장하여 국제정세를 바꿔버리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다. 원래는 순박하고 야생의 삶에 만족하던 도롱뇽들은 탐욕스런 인간들의 노예로 사역되면서 점점 독자적인 문화와 조직을 갖추게 되고, 급기야는 인간들이 적국을 공격하기 위해 지급해 준 무기를 이용하여 인류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전체적인 틀은 SF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본래 이 작품은 세계대전으로 인해 불안과 혼란에 빠져들어가던 당시 서구사회를 풍자한 일종의 블랙코미디로 집필되었으며, 저자 본인도 '이 작품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지금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도롱뇽들의 우두머리가 사실은 도롱뇽이 아니고 '독일에서 지난 대전에 군인으로 복무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자체가 은근슬쩍 히틀러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 등등)

1부에서는 도롱뇽을 발견하고 그 상품가치에 주목한 선장과 그를 후원하여 전세계적인 규모의 도롱뇽 신디케이트를 건설하는 기업인을 중심으로 도롱뇽들이 인간사회에 소개되는 과정을 그리며,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도롱뇽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각국의 정부와 개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과 행태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3부에서는 각국 군비경쟁에 이용되던 도롱뇽들이 결국 자아에 눈뜨게 되어 '우리가 살 해안선이 필요하니 육지를 좀 가라앉히겠다'며 인류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특히 2부에서는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신문기사, 보고서, 기행문, 회의록 등 여러 가지 가상 문서로 상황을 전달함으로써 보다 생생하고 총체적인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서 도롱뇽은 '파시즘의 위협'이나 '고삐 풀린 과학만능주의' 등 여러 가지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반면교사로서 설정된 SF상의 '이종족'으로서도 상당히 훌륭하게 설정되어 있다. (인간 못지 않게 영리하고 고결한 이종족과 인류의 갈등을 통해 인류를 성찰하는 수법은 이후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에 영향을 주는데, <넥스트월드>, <제로맨>, <지구대전> 등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철완 아톰> 시리즈의 인간 대 로봇이라는 구도 역시 이러한 수법의 연장선상으로 해석 가능하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쓸 당시에는 아직 2차대전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앞으로의 국제정세가 어찌될지도 불분명한 상태였기에, 미래소설이 아닌 풍자소설이라는 성격상 이야기의 결말은 상당히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도롱뇽들의 마수가 드디어 체코에까지 뻗어오자 초반부터 등장하여 사건을 추적해 온 민간인 포본드라 씨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몸져누우면서 본편은 끝나고, 그 뒤 에필로그에서는 저자의 자문자답 형식으로 앞으로의 전개가 간략하게 암시되어 있다.

잘 모르고 보면 왠지 더 할 얘기가 있는데도 중간에서 끊어버린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의 의도 자체가 '현재에 대한 경고'임을 생각해 보면 굳이 전쟁의 결말까지 가지 않고 위기가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는 것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끝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도롱뇽들의 생태 설정이나 그들의 출현으로 인한 세계의 변화 등 앞쪽에서 펼쳐보인 내용이 너무나 풍부하고 기막힌 나머지, 저자가 종전까지 살아남아서 속편을 써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저자 차페크는 독일이 프라하를 점령하기 직전인 1938년 12월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본인은 별 생각 없이 썼겠지만 극중에서 포본드라 씨가 맞이하는 결말이 저자의 최후와 너무나 유사해서 일종의 예언처럼 느껴질 정도다.)

기괴한 이생물이 등장하여 암울한 묵시록적 종말을 가져오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밝고 경쾌하며 때로는 시니컬한 냉소마저 머금고 있는데, 저자는 도롱뇽을 거울 삼아 인류의 추악하고 무책임한 실태를 냉정하게 파헤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성실함을 보여준다. 또한 문지기로 일하던 시절에 도롱뇽을 발견한 선장을 기업가와 연결시켜줌으로써 세계가 변화하는 단초를 제공한 포본드라 씨의 죄의식과 책임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전쟁과 억압을 초래하는 것은 소수의 악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과 같이 무지하고 평범한 다수의 보통사람일 수도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ps. 저자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로봇'이란 단어의 원전으로 유명한 희곡 'RUR'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지난 2002년에 번역된 판본이 이미 절판된 터라 낙심할 뻔 했지만, 다행히도 2010년 10월에 새 판본이 나온 모양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읽어봐야 할 듯. =]
by 잠본이 | 2010/12/05 20:52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2) | 덧글(9)
트랙백 주소 : http://zambony.egloos.com/tb/351468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잠보니스틱스 : 체코SF걸작선.. at 2011/08/27 01:32

... 에 대한 소개가 미진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마저도 체코 SF라고 하면 당장 생각나는 게 카렐 차페크의 『R.U.R.』이나 『도롱뇽과의 전쟁』 정도이니 할 말이 없다. 이번에 출간된 『체코SF걸작선 :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는 그러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고 아직까지 우리 독자들에게 미지의 영역 ... more

Linked at 도롱뇽과의 전쟁 &#8211;.. at 2016/12/06 22:15

... 2002년에 번역된 판본이 이미 절판된 터라 낙심할 뻔 했지만, 다행히도 2010년 10월에 새 판본이 나온 모양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읽어봐야 할 듯. =] ※원문 작성: 2010-12-05 sf열린책들인류멸망체코소설카렐 차페크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 Your email ... more

Commented by draco21 at 2010/12/05 21:28
옹. 이분책이 나왔군요. 체크체크
Commented by 세바스찬 at 2010/12/05 22:12
저도 체크! 재미있을 거 같네요~
Commented by 검투사 at 2010/12/05 22:50
아~ 예전에 아동도서로 번역 소개된 바 있고, 북토피아에서 전자책으로 된 것을 구매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나온 판본을 보니 많이 축약되었던 모양이구나 싶어 놀랐죠.

아무튼 식민지 주민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으면서 기존의 제국/종주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뜻이 있었군요. @..@;
Commented by ogion at 2010/12/05 23:31
'SF의 이해'에 소개되었을때 번역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번역이 되었군요. 하지만 RUR도 읽어보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어서 과연 읽게 될런지는.
Commented by 미니 at 2010/12/06 00:54
카렐 선생님 우왕굳
Commented by 오거 at 2010/12/06 00:55
저는 RUR만 읽어봤는데 이런 책도 나와있었군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함다!!
Commented by 차원이동자 at 2010/12/06 08:34
오. 새판본 나왔나보군요. 봐야쓰겠구먼.
Commented by 블랙 at 2010/12/06 09:28
'도마뱀'이 아니라 '도룡뇽'이군요.

도룡뇽이라고 하니까 왠지 도마뱀보다 순한 느낌이 듭니다.
Commented by TERMINATOR at 2010/12/06 13:17
치프 살라만더! ← 이 이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