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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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원제: りら荘事件
저자: 야유카와 테츠야[鮎川哲也]
역자: 김선영
출판사: 시공사

원래 대부호의 별장으로 지어졌으나 원주인이 몰락하여 자살한 뒤 휴양시설로 탈바꿈한 '리라장'. 어느 늦여름, 이곳에 일곱 명의 예술대학 학생들이 피서 목적으로 찾아온다. 원래 다들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서로 보이지 않는 애증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항상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근처 계곡에서 변사한 마을사람의 시체 옆에서 그들이 잃어버린 스페이드 카드가 발견되면서 의심과 불안은 점점 깊어지고, 결국 리라장을 중심으로 의문의 연속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1950년대라는 배경 때문인지 외딴 산장이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딘가 고즈넉하면서도 음침한 느낌을 주는 본격파 미스터리의 고전. 저자인 아유카와는 본래 열차 시간표 등을 활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다루는 작가로 더 유명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트릭을 총동원하여 독자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트릭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거창하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사소한 트릭들을 이중 삼중으로 치밀하게 배치함으로써 극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독자들까지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또한 클라이막스 이후의 수수께끼 풀이를 통하여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듯한 요소들이 모두 연관이 있었고 사방에 어지럽게 흩어진 소품들(레인코트, 만년필, 양주, 펜나이프, 기타등등)도 전부 각각 독립된 복선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에게 상쾌한 충격과 퍼즐 조각이 순식간에 하나로 맞춰져가는 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사회적 메시지나 인간성 탐구 같은 무거운 주제는 없지만 순수한 수수께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꽤 양질의 작품이라 하겠다. 작품 얘기는 거의 안 하고 '그때 내가 누구를 만났는고 하니'라는 옛날 얘기만 잔뜩 늘어놓는 작가 후기와 거기서 거론된 포인트를 정성스레 짚어가며 내용을 보완하는 역자 후기도 이리저리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다.

다만 퍼즐과 트릭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인물 구성이나 사건 전개가 다소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는 난점도 있다. 특히나 무대인 리라장이 특별히 외부와 격리된 공간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빠져나갈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피해자들이 전혀 밖으로 도망칠 생각을 안 하더라는 기괴한 상황이 옥에 티라고 하겠다. (물론 읽는 동안에는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폭풍같은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에 중간쯤 가서야 '어라?'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게다가 산장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인데다가 다들 어딘가 한두 군데쯤 비뚤어진 구석이 있어서 틈만 나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거나 긴장감 가득한 신경전을 벌일 정도인데, 애초에 그런 관계라면 도대체 뭐하러 같은 곳으로 피서를 온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가난한 미술학부 친구들이야 다른 데 가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그냥 왔다 치자. 하지만 유복한 집안의 아가씨 도련님들이라고 자부하는 음악학부 친구들은 대체 뭐하러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리라장을 택한 것일까?) 탐정 역할인 호시카게 류조가 너무 늦게 등장해서 인상이 희미하다는 점도 불만스러운데, 그 반면에 추리력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나서 사건 자체는 전혀 접하지 않고 남들이 나중에 정리해준 정보만 듣고도 금방 진상을 밝혀낸다는 것이 여러모로 기가 막힌다. 특히나 추리 자체는 분명히 일리가 있고 정확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한 추리를 하게 된 '과정'이 상당부분 생략되어 있어서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되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중간과정은 다 빼고 마지막 수식 몇 줄과 답안만 살짝 보여주는' 듯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참고로 이 작품에 사용된 트릭의 원형은 저자가 무명 시절 동인지에 다른 이름으로 발표한 2부작 중편 <주박재현>에 처음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저자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인 '오니츠라[鬼貫] 경감'이고 호시카게는 초반에 나와서 수수께끼를 푼답시고 폼만 잡다가 망신만 당하고 퇴장하는 사기꾼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원전에서 푸대접받던 캐릭터가 리메이크작에서는 보기좋게 주인공으로 등극한 셈인데, 이 프로토타입 호시카게의 포지션은 약간의 변형을 가미하여 본작의 니조 요시후사에게 계승되었다. (프로토 호시카게는 애초에 수수께끼 자체를 해결조차 못한 채 도망치듯 떠나지만, 니조는 그래도 중요한 수수께끼는 풀었으나 그걸 발표하기도 전에 타고난 쇼맨십이 화가 되어 새로운 범죄의 희생자로 전락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ps1. 소설로서의 매력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일부분만 놓고 보면 꽤 문학적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특히 마지막에 호시카게가 생존자(?) 아무개씨를 차로 바래다주면서 '범인이 얘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얘한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부분은 그때까지 차가운 추리기계로만 느껴지던 호시카게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꽤 마음에 든다.

ps2.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경찰이 '우리는 무능의 달인이라네'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작품. 헛다리를 짚어서 새로운 살인이 계속 일어나도 막지 못한 데 더하여 범인의 농간에 넘어가 중요한 증인이나 증거물까지 놓치고 마는 추태를 보여준다. 물론 본격 추리소설의 경찰답게 아마추어 탐정을 스스로 불러들여 망신을 자초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부분도 원형인 <주박재현>과는 정반대. (오니츠라 경감이 호시카게를 쫓아낸 뒤 '자기가 성공한 사건만 공개하고 실패한 사건은 꼭꼭 숨겨두니 사람들이 속아넘어가지. 그 머리로 사이비 교주나 하면 딱이겠구만'이라고 빈정거리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OTL)

ps3. 피해자의 시체를 놓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이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그 밤샘 때문에 생긴 허점을 틈타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100% 쓸데없는 장면은 아니겠지만...
by 잠본이 | 2010/11/23 23:21 | 대영도서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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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극한추리 hansang.. at 2010/11/29 22:03

제목 : 리라장 사건 - 아유카와 데쓰야 / 김선영 : 별점..
리라장 사건 -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리라장이라 불리우는 건물에 일곱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한다. 친구들이기는 하나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는 상황.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살인극이 시작된다.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으로 이런저런 리스트 -'필독본격추리30선' 이라던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이라던가 - 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죠.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more

Linked at 샬롯! 당신이 차에 치였다고 .. at 2012/04/13 22:41

... 리라장 사건</a> by 잠본이 리라장 사건 by 정윤성 고즈넉한 산속의 기숙사에서 발생한 의문의 연쇄살인!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아유카와 데쓰야의 대표작『리라장 사건』. 본격 미스터리를 완성시킨 소설로 꼽히며,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산속에 자리한 기숙사 '리라장'에 일곱 명의 예술대생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휴양을 목적으로 리라장에 왔지만, 얽히고설킨 애증 관계로 사사건건 분쟁이 일어난다. 하룻밤이 ... more

Commented by hansang at 2010/11/29 22:02
말씀하신대로 작위적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고전 본격물의 작위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는 보이는데 외려 설득력이 더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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