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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함 야마토'의 니시자키 프로듀서가 사고사
2010년 11월 7일 0시 45분경, 도쿄도 오가사와라무라[小笠原村] 치지지마[父島]의 후타미[二見] 항구에 정박 중이던 증기선 YAMATO(485톤)에서 인기 SF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의 프로듀서 니시자키 요시노부[西崎義展](본명 니시자키 히로후미[西崎弘文]) 씨(75)가 바다에 떨어졌다.

승무원의 통보를 받은 오가사와라 해상보안서가 10여분 만에 출동하여 니시자키 씨를 구조한 뒤 근처 진료소로 옮겼으나, 약 2시간 15분 후(오후 2시 58분)에 사망이 확인되었다. 니시자키 씨는 잠수복 차림이었는데, 수영을 하기 위해 갑판에서 바다로 내려오던 도중에 배의 우현 중앙부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YAMATO는 니시자키 씨가 수산학교로부터 회사 명의로 사들여 개조한 선박으로, 당일에는 개조 이후 처음으로 시험항해를 하던 중이었는데,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경부터 그 지점에 정박하고 있었으며, 사고 당시에는 모두 9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니시자키 씨는 고령으로 인해 건강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이동도 거의 휠체어를 이용했다고 한다. 일부 관계자는 구조에 20분 가까이 걸린 점이나, 건강에 불안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른 시간에 수영을 하려고 한 점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경찰은 더욱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다.

니시자키 씨는 1934년 12월 18일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1957년에 무사시[武蔵] 고교를 졸업하고 도쿄대 수험에 두 번 낙방한 후 니혼대학 예술학부에 진학했다. 재즈 해설가, 무대 사회자 등을 거친 뒤 1963년에 오피스 아카데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프로듀서 일을 시작했다. 고(故)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 씨의 매니저를 거쳐 1972년에는 무시 프로덕션 상사의 TV 애니메이션 <바다의 트리톤>을 제작했다. 수많은 테즈카 만화 중에서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바다가 좋아서'였다고 한다.

즈이요[瑞鷹] 엔터프라이즈 재직 당시 <우주전함 야마토>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획하였으며, 이후에는 속편 작품인 <우주전함 야마토 ~ 새로운 여행길>, <우주전함 야마토 III> 등의 제작에도 참가했다. <야마토>는 첫 TV방영 당시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중후한 스토리와 본격적인 SF고증이 하이틴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아, 재방송과 극장판 공개를 통해 인지도를 점점 높였고, 급기야는 <은하철도 999>나 <기동전사 건담> 등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아니메 붐'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후에도 다양한 작품의 제작에 관여했으나, 경영하던 회사인 웨스트 케이프 코퍼레이션이 1997년에 도산한 뒤에는 왕년의 명성을 좀먹는 불미스런 사건이 계속되었다. 1998년에는 각성제 관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 8개월의 판결을 받았으며, <우주전함 야마토>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 씨와 여러 번의 민사재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2003년에 토호쿠신샤[東北新社]가 저작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하여 법정 바깥에서 화해 성립)

2년 8개월의 징역을 살고 나온 뒤에도, 1998년에 필리핀으로부터 자동소총 등을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건으로 인해 총포도검류 소지관리법 위반으로 5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아, 연속으로 수감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2007년 12월에 모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야마토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우주전함 야마토 부활편>을 제작하여 2009년 극장공개를 성사시켰다. 2010년 12월 1일 개봉예정인 실사영화 < SPACE BATTLESHIP 야마토 >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아들인 니시자키 쇼우지[西崎彰司] 씨가 협력하고 있으며, 요시노부 본인도 제작을 허가하였다. 제작사인 토호[東宝] 관계자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원안' 또는 '원작'으로 크레딧할 것이라 밝혔다.

<부활편>은 속편의 제작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로 끝났으며, 니시자키 씨와 토호쿠신샤 간의 저작권 양도계약 중에는 제작회사 도산으로 중단된 OVA < YAMATO 2520 >의 제4권~제7권을 장래 완성할 예정이라는 사항도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니시자키 씨의 머리 속에는 더욱 더 웅대한 야마토 월드의 구상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야마토로 이름을 날리고 야마토로 바람 잘 날 없는 말년을 보냈던 인물이 하필 '야마토'라는 이름의 배 근처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정말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활편>의 총작화감독을 맡은 애니메이터 코가와 토모노리[湖川友謙] 씨(60)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생전의 니시자키 씨에 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니시자키 씨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잘가거라 우주전함 야마토 ~ 사랑의 전사들>(1978)의 기획회의에서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제3자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었다. '자네한테만 주는 거니까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게'라면서 야마토 손목시계를 살짝 넘겨준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수한 프로듀서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가 없었으면 야마토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집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창작은 남의 의견만 너무 들어줘도 안될 때가 있다. 그의 지휘하에 모두가 단결할 수 있었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잘가거라~>의 대성공 때문에 니시자키 씨는 약간 변해버렸다. 현장에 대해서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에까지도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활편>에 참가하기로 수락한 것은 이제까지 그와 손잡고 만들어 온 작품들이 다들 어중간한 것들밖에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스탭들과 함께 <부활편>의 디렉터즈 컷을 편집 중인데, 정작 니시자키 씨 본인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역시 안타깝다. 그런 만큼 디렉터즈 컷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완성시키고 싶다."

니시자키 씨와 가까운 사이였던 어느 영화관계자는 "<부활편>은 생각만큼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해서, 아들에게 맡겨두었던 회사의 자금 조달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대단히 바다를 좋아했던 만큼, 새로운 출항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타쿠의 대부로 불리는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도 2010년 11월 8일에 블로그를 통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중진을 맡아왔던 베테랑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2010년 10월 26일에는 <미래소년 코난>,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에 참가했던 닛폰애니메이션 사장 모토하시 코이치[本橋浩一] 씨(80)가, 10월 29일에는 <전국마신 고쇼군>,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포켓몬스터> 등에 참가했던 각본가 슈도 타케시[首藤剛志] 씨(61)가 고인이 되었다. 또한 2010년 8월 24일에는 <퍼펙트 블루>, <파프리카> 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 콘 사토시[今 敏]가 46세의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Edit (C) ZAMBONY 2010

*참고링크*
http://www.chugoku-np.co.jp/News/Sp201011070158.html
http://mainichi.jp/select/jiken/news/20101108k0000m040062000c.html
http://www.jiji.com/jc/zc?k=201011/2010110700181
http://www.sanspo.com/shakai/news/101108/sha1011080506001-n1.htm
http://www.nikkansports.com/entertainment/news/p-et-tp0-20101108-699769.html
http://hochi.yomiuri.co.jp/topics/news/20101108-OHT1T00051.htm
http://www.sponichi.co.jp/entertainment/flash/KFullFlash20101108033.html
http://gigazine.net/index.php?/news/comments/20101107_yoshinobu_nishizaki_pass_away/
http://sankei.jp.msn.com/affairs/disaster/101108/dst1011082106007-n1.htm
http://sankei.jp.msn.com/entertainments/game/101116/gam1011160817000-n1.htm
http://npn.co.jp/article/detail/25228028/
http://otaking-ex.jp/wp/?p=11013


...솔직히 야마토 때문에 마츠모토와 지지고볶은 것도 그렇지만 여러 가지 다른 일로도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다니 좀 황당한 느낌이... (그나저나 <트리톤> 제작 당시 무시프로의 경영악화를 틈타 수총선생을 속이고 여러 작품의 애니메이션 판권을 가로채가서 결국 무시프로의 도산에 한몫 했다는 골때리는 증언도 있던데 이제 본인이 죽어버렸으니 진실을 밝히는 건 영영 어렵게 되었군... 그 온화하던 수총선생이 니시자키의 이름만 나와도 '내 앞에서 그자식 얘기는 두 번 다시 하지 마라'며 화를 내곤 했고, 본래 선생과 친했던 각본가 후지카와 케이스케가 순전히 '야마토'에 참가했다는 이유 때문에 컬러판 아톰에 참가를 거절당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도 있음.)

테즈카와 니시자키의 악연에 관해서는 당시 무시프로 직원이었던 마사미 쥰 씨의 블로그를 참조.
http://blog.goo.ne.jp/mcsammy/e/f3b2d3f2ffb634d3a7805281cf0ed3bc

어쨌거나 자기주장이 강하고 조폭처럼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듯한데,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증언 중 하나가 '야마토 극장판 개봉 당시 극장 앞에 새벽부터 팬들이 줄선 것을 보고 그동안 니시자키 씨의 강압에 시달려가며 철야를 거듭했던 제작 스탭들이 통곡을 했더라'는 얘기. (이건 진짜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구만 OTL)
by 잠본이 | 2010/11/19 13:12 | ANI-BODY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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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시네프린지 at 2010/12/05 22:04

제목 : 리뷰: 우주전함 야마토 (2010)
, , 시리즈로 높은 평가를 받아 온 감독 겸 시각효과 전문가 야마자키 타카시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 를 실사영화로 제작했다. 수퍼스타 키무라 타쿠야를 비롯한 호화 캐스팅이 기용된 이 영화는 일본에서 지난 12월 1일 개봉했는데,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한 팬들의 복잡한 감정 탓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모아왔다. 는 일본 정식 개봉에 앞서 지난 11월 6일 미국 산타모니카에서.....more

Commented by rumic71 at 2010/11/19 15:18
성불하기를...
Commented by 루리도 at 2010/11/19 16:06
저런..--;요코야마님 때처럼 갑작스럽네요...
그나저나, 왕년에 나름 트러블메이커셨나보군요...

아무튼, 이렇게 돌아가시게 된건 참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at 2010/11/19 16: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미니 at 2010/11/19 18:34
또 거물이 한분 가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중년이 되면 2세대 분들이 하나 둘 가시려나요..
Commented by 개발부장 at 2010/11/19 19:47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증기선... 구입... 야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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