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회 : 마크로스의 원점을 파헤친다!-출전: THIS IS ANIMATION THE SELECT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하권(1983, 쇼가쿠간) pp. 106~113
-해석: 잠본이(2010.8.18)
1. 애니메이터를 개고생시키는 기획이 시작되다
10개월에 걸쳐 계속되어 온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전대미문의 신선한 드라마성은 우리들 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TV애니메이션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과 함께.
이번 특별좌담회에서는 『마크로스』 시리즈를 매듭짓는 의미에서 ‘마크로스의 원점을 파헤친다’라는 제목으로 기획단계의 발단, 기획의 목표부터 시작하여, 그 성과에 이르기까지의 관계자 여러분의 감상을 섞어서 들어보도록 하겠다.
출석자는 치프디렉터(총감독)를 맡은 이시구로 노보루 씨, 시리즈 구성의 마츠자키 켄이치 씨, 메카 디자인의 미야타케 카즈타카 씨, 메카 디자인 및 설정감수의 카와모리 쇼지 씨, 캐릭터 디자인의 미키모토 하루히코 씨, 제작의 모리타 시게루 씨, 이렇게 다들 아시는 6명의 메인 스탭이다.
■ 거인족을 설정한 이유
사회자: 우선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적이 거인족이라는 점이었죠. 『마크로스 스페셜』의 마지막 장면(제작상으로는 제2화의 라스트신에 해당)에서 굉장히 효과적으로 그 사실을 드러냈는데요, 시리즈 전체를 통해서 봐도 기막히게 리얼한 설정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대체 이 설정은 어떻게 해서 태어난 겁니까?
미야타케: 그건 벌써 기획을 시작한 첫날부터 결정했던 사항입니다. 발상의 원점은, 우선 이번에는 ‘전함로봇물’로 가자고 생각했죠. 거대로봇, 변형합체로봇 등 이미 나올만한 패턴은 다 나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참신한 걸 보여주려면 그것밖에 남은 게 없었거든요.
그리고, 메카끼리 싸우는 건 별로 재미가 없으니 적은 살아있는 생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죠.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배트로이드(전투기의 인간형태)였던 겁니다.
카와모리: 거기에 더해서, 아무리 궁리를 해도 왜 거대로봇이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필연성을 붙일 수가 없더군요. 그렇다면 상대측을 거인으로 만들어서 격투장면을 직접 보여줘버리면, 시청자도 납득…아니 양해를 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야타케: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특히 다른 설정보다 마무리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있었지만, 마츠자키가 도무지 확실히 해 주지를 않아서…
(바로 그때 마츠자키 씨가 한발 늦게 등장)
일동: 맞아, 여기 없었던 사람이 잘못이지! (폭소)
■ 『마크로스』는 원래 ‘더미’ 기획이었다?!
사회자: 이제 전원이 다 모이셨으니, 우선 기획을 세우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미야타케: 마침 『테크노폴리스 21C』를 하려고 할 때, 이 기획이 통과될지 어떨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병행기획 몇 개를 새로 만들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마크로스』였어요.
카와모리: 아직 『테크노폴리스』가 TV시리즈가 될지 아니면 다른 포맷으로 갈지도 알 수 없던 시기의 얘기죠.
미야타케: 맞아요. TV시리즈로 할지 극장용으로 할지 아니면 텔레피처(TV용 단막극)로 갈지 알 수 없었지만,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GO 사인이 나와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편만으로는 통과할 가능성이 좀 낮으니 후발 기획도 필요하게 되었던 거죠.
카와모리: 그래서 만든 게 『마크로스』는 아니고, 그 전에 2작품이 더 있어요. 물론 그 2작품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마크로스』에도 유용되었죠.
미야타케: 좀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크로스』는 그 2개분의 기획을 하나로 뭉뚱그린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시구로: 그러니까 내용이 농밀하다고 할까, 설정 만들다가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고 할까, 작화파트가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스케줄 면에서도 굉장히 빡빡했어요. 뭐 그런 가운데서도 재미있는 얘깃거리는 잔뜩 나왔지만.
미야타케: 영상 이미지와 아이디어만은 철저하게 양이 많았으니까요.
이시구로: 만쥬에 비유하자면 팥소를 너무 많이 집어넣어서 빵껍질이 터질 지경이었다고나 할까.
모리타: 그 당시는 빵껍질까지 제대로 만들 능력이 저희들에게는 없었거든요.
카와모리: 실제 제작에 들어가면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전혀 고려하질 않았던 거죠.
미야타케: 응, 전혀 몰랐어.
이시구로: 이제와서 과연 골수에 사무치도록 잘 배웠는지도 좀 의문이죠. (웃음) 아직도 혼이 덜 난 게 아닌지 걱정돼서 죽겠다니까요.
마츠자키: 그럴리가요. 이제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하는걸요.
이시구로: 그런가? (웃음)
사회자: 먼젓번 얘기(이 무크본 앞권에 실린 좌담회)에 나왔던 위즈 코퍼레이션 말입니다만, 그때 내놓았던 기획에 대해서 위즈와 스튜디오 누에가 관계했던 방식은 어떠했습니까?
미야타케: 누에가 기획, 디자인을 맡고, 위즈가 제작을 담당한다는 공동노선이었지만, 위즈가 사실상 해산되면서 누에가 전면적으로 떠맡게 되었습니다. 사무적인 약속에서도 그렇게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카와모리: 앞서 말한 2개의 기획은 3년반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만 하나는 내용이 너무 난해하고 다른 하나는 상품가치가 없었죠. 그래서 또 하나 더미(허수아비) 기획을 만들었습니다.
미야타케: 그 더미가 바로 『마크로스』였죠.
이시구로: 희한하게 이 업계에서는 더미 쪽이 더 잘 먹히더라고.
미야타케: 그런 징크스가 있죠.
■ 패러디에서부터 시작하다
이시구로: 어쨌거나, 그런 경위로 기획이 나와서, 위즈의 해산으로 그걸 다 떠안게 되었다는 얘기지? (이시구로 씨는 기획 초기에는 참가하지 않았음)
카와모리: 그때 먼저 내놓은 두 기획이 도무지 통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가장 통과하기 쉬운 것을 전제로 짜낸 기획이 『마크로스』였죠.
미야타케: 맞습니다. 『우주전함 야마토』나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에 참가했을 때 ‘왜 전함이 로봇으로 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카와모리: 확실히 아르카디아호는 디자인 단계에서 변형하기 직전까지 갈 뻔했죠.
미야타케: 그랬었죠. 실은 내 머릿속에서는 반쯤은 패러디로, 분해도까지는 러프로 그려봤었어요. 하지만 원작자인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님이, 로봇물을 싫어하시더라고. 다만 나 자신의 복안으로써, ‘이건 로봇으로 만들지 마라’는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갖고 있다가 결국 버렸죠.
사회자: 그것이 『마크로스』에서 살아난 셈이군요.
미야타케: 컨셉은 살아남았죠.
카와모리: 컨셉이라기보다 상품기획이 살아났다고 하는 편이 정확해요.
이시구로: 어쨌거나 그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쌓이고 쌓여서 『마크로스』가 태어난 셈이지.
카와모리: 먼저 제출했던 기획들 중 하나가 굉장히 심각한 노선이었어요. 더 이상 유머랄까 마음의 여유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어서, 반대로 좀 장난같은 기획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때마침 『마크로스』의 기획을 세우게 되었던 거죠.
마츠자키: 즉 마크로스 자체도 이미 한계를 넘어선 물건이었지만 그전에 나왔던 또 하나의 기획 쪽이 훨씬 더 엄청나게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는 얘기에요.
미야타케: 아니, 『마크로스』 쪽은 확실히 작화의 한계를 넘어섰지만 다른 한 쪽은 그 정도로까지 심하지는 않았어.
카와모리: 화면구성이나 스토리 작성의 센스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고요.
미야타케: 작화에 들인 수고는 『마크로스』 쪽이 분명히 한계를 넘었지.
모리타: 어느쪽이든 간에 애니메이터에겐 지옥이라고. (웃음)
카와모리: 어느쪽 기획도 동화매수를 많이 잡아먹을 만한 물건이었죠. 하지만 같은 수고라면 『마크로스』 쪽이 더 화려하게 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면 효율이 더 올라갑니다.
이시구로: 내 취향에서 보면 『마크로스』 쪽이 훨씬 좋은걸. 개그라고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코미디라고 할까, 또 한 편은 지독한 시리어스물이었으니까.
카와모리: 라기보다, 마크로스의 원래 컨셉은 엎치락뒤치락(슬랩스틱) 개그였죠.
이시구로: 그래, 패러디였지. 최초에는 진짜 엉망진창이었지 않나. 로봇물 패러디를 하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야마토’가 막 튀어나오고…
미야타케: 우주전함물과 로봇물과 SF물 전반을 패러디해버리자는 속셈이었죠.
모리타: 어떻든 간에 만약 그대로 내놓았다면 부끄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괴작이 되었을 걸.
카와모리: 마침 그때 『우르세이 야츠라(시끌별 녀석들)』의 TV시리즈가 방영을 시작해서, 패러디라면 저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데 이제와서 『마크로스』까지 패러디로 나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시구로: 만약 그대로 했더라면 『마크로스』도 훨씬 성격이 확실한 작품이 되었겠지요. 제작진도 아마 내용을 통제하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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