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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로보 OVA : 장르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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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로 분류할 수 없는 작품

OVA판 『자이언트 로보』는 간단히 보자면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이지만, 좀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순수하게 거대 로봇물로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다이사쿠의 모험과 방황을 통한 성장 드라마이며, BF단과 국제경찰기구의(왜 BF단이 먼저 나오는지는 묻지 말자) 첩보전을 다룬 액션 스릴러이며, 홍콩 무술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무예와 도술을 겨루는 초능력 무협물이며,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자녀들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서로 대비하면서 동시에 풀어나가는 심리극이며, 에너지 위기라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한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질문하는 (이건 사실 양념의 혐의가 짙지만) 환경 SF이기도 하다. 물론 이 모두가 전부 다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정말로 주된 요소로서 장르를 결정짓는 것은 이들 중 한두가지로 압축될 수 있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장르적인 특징들이 서로 겉돌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단단하게 맞물려 보다 입체적이고 탄탄한 스토리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는 점도 『자이언트 로보』의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작품이 이것은 스포츠물, 이것은 소녀물, 이것은 메카물 하는 식으로 뚜렷하게 장르 구분이 되던 것에 비해, 80년대 중반부터 현재로 올수록 점점 여러 장르의 혼합•교차 현상이 일어나서 한 작품이 동시에 두세 가지 장르에 속하는 복합 장르가 보편화되고 있다. 물론 과거의 작품들도 반드시 한 가지 장르에만 매달리지 않고 다른 장르의 소재나 방법론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작품에 변화를 주고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를테면 거대 로봇물에 비련의 러브 스토리를 도입한다는 등) 그러한 차용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여, 장르 구분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에 비해, 현재의 복합 장르라고 불리는 것들은 여러 가지 다른 장르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면서 그 특성들 모두가 저마다 비슷비슷한 비중의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에 어딘가 한 가지 장르로 한정지어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자이언트 로보』 또한 이러한 복합 장르의 시대에 태어난 작품으로서, 한 가지 장르에만 국한시키기에는 아까운 여러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복합 장르의 장점은 한 가지 장르로만 해서는 끌어들이기 어려운 다양한 계층의 팬을 동시에 한 작품의 수용자층으로 끌어들이기 쉬워진다는 점에 있다. 1979년에 등장한 『기동전사 건담』이 그 좋은 예로, 거대 로봇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과학설정에 매료된 SF팬, 전쟁물 요소에 흥미를 느낀 밀리터리 팬, 캐릭터 드라마에 끌려든 문학 팬, 모형 붐에 경도된 모델러층을 동시에 끌어들여 사상 유례가 없는 대히트를 기록했던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물'이다

단지 제목이 『자이언트 로보』이기 때문에, 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무리 복합 장르라고 해도, 제작하는 측의 편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 두가지의 중심 축을 이루는 장르가 결정되어 있어야만 만들기가 쉬워지고, 받아들이는 시청자에게도 어떤 장르가 될 것이라는 정보가 확실하게 전해져 있어야 수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홍보나 상품 전개를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일정한 카테고리에 묶이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작품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요새는 아예 처음부터 분류를 거부하는 듯한 작품도 나오고 있어서 꼭 이렇지도 않은 모양이지만) 그런 면에서 볼 때, 『자이언트 로보』는 분명한 거대 로봇물의 범주에 들어가며, 그 장르가 쌓아올려 온 전통과 유산을 손상하는 일 없이 독자적으로 훌륭한 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거대 로봇물이 거의 죽은 장르가 되어버린 90년대에, 박력 넘치는 로봇의 액션과 그것을 조종하는 인간의 애환을 이렇게까지 '통쾌하게' 보여준 작품도 달리 없지 않은가.

거대 로봇물의 정석은, 아무리 묘사되는 세계관이 복잡다단하다 해도 결국 마지막에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종결짓는 것은 주역 로봇과 그 조종자라는 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현실적으로 '보이는' 메카를 내보냈음에도 결국에는 주인공을 신적인 레벨의 '초인'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장갑기병 보톰즈』는 거대 로봇물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분명 BF단과 국제경찰기구의 싸움이나 겐야의 복수극, 그리고 이를 계기로 얼키고 설키는 각종 캐릭터의 드라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리고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오히려 다이사쿠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고 다이사쿠는 어쨌든 보호받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그려지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그 모든 갈등의 중심에 서서 관련된 인물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일격에 폭발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다이사쿠와 로보인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불타는 활약을 보여 주었기에, 『자이언트 로보』는 한 편의 '로봇물'로서 분류되어도 괜찮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주역 로봇이나 주인공이 결코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운명을 떠맡지 않고 주변에서 밀고 당길 뿐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하드웨어만 보면 로봇물일지 몰라도 사실은 범죄수사극이다.)


■ 거대 로봇물이라는 장르

'로봇 robot'이라는 단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펙(1890~1938)이 1920년에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 R.U.R』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이래 영미권의 SF소설계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일상어로까지 보급된 것이다. 사실 차펙이 생각한 로봇이라는 존재는 특별히 '거대'할 필요는 없었고, 인간과 같은 크기를 하고 인간과 같은 사고와 감정을 지닌 말 그대로 '인조 인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불도저나 포크레인같은 거대한 중장비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이 주로 가지고 있었던 로봇의 이미지는 등신대(等身大)의 앤드로이드가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열심히 땅을 파는(한국에서는 로봇이 없는 대신 군대에게 시키고 있다 ;-_-) 정도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정교한 심리묘사나 사건의 추이(推移)를 다루는 데 편리한 소설이라는 양식에서는 굳이 '거대한' 로봇을 출연시킬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미권의 로봇 SF는 지능형 로봇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거대한 메카가 나온다 하더라도 게임 『멕워리어』나 영화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에 나온 것처럼 비인간형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거대한 메카가 인간형을 취할 경우 구조가 상당히 취약하게 된다는 합리적 사고의 소산인 것 같다. 다만 최근에 나온 미국애니 『아이언 자이언트』등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이러한 지능형의 로봇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등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존재의의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고뇌하는 스타일을 파고들어,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철완 아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거대 로봇의 시조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 차펙의 로봇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탈레스'나 유대 전설에 등장하는 '골렘'처럼 거대한 인간 모양의 조형물이 신의 주술이나 마법에 의하여 스스로 움직인다는 컨셉일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2차 대전 이후 일반화된 탱크나 비행기 등의 '거대한' 현용병기와 맞물려, '인간형의 병기'라는 사상이 (어디까지나 실용화를 전제하지 않은 상상의 세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러한 컨셉이 등장한 것은 초창기 헐리우드 영화에서였고, 그것이 『인조인간의 비밀』(운노 쥬자[海野十三] 作, 1940)등의 일본 모험소설에 피드백되어, 마침내 만화의 세계에 도입, 1956년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의 『철인 28호』가 탄생한다. 물론 거대한 인형병기라는 컨셉이 일본 독자의 것이 아니라 해외로부터의 수입품인만큼, 영미권의 만화에도 이러한 개념이 분명 등장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인 28호』의 독특한 점은, 그전까지는 범죄나 전쟁에 악용되는 도구에 불과했던 거대 인형병기를 '정의의 사자'로 탈바꿈시킨, 기발한 발상의 역전에 있었다. 2차대전 중에 전쟁병기로 개발된 철인 28호가, 전후 갱단에게 탈취당하여 악용될 뻔 한 것을, 주인공인 소년탐정 가네다 쇼타로[金田正太郞]가 다시 찾아와서 범죄와 싸우는 법질서의 수호자로 활약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발상이었지만, 엄청난 힘을 지닌 강철의 거인을 자기의 손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설정에 당시의 독자들은 열광했고, 무려 10년의 장기연재를 기록. 1963년에는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거대 로봇물의 시조가 되었다.

원격조종형인 『철인 28호』 이후, 1972년의 『아스트로 강가』에서는 인간이 기계생명과 합체하여 완전체가 되는 형태가 등장하고, 같은 해 방영된 『마징가 Z』에서는 드디어 인간이 기계인 로봇에 탑승하여 '운전하듯이 조종하는' 형태가 등장함으로써, 거대 로봇물은 하나의 틀을 갖추고, '모험물'이나 'SF물'로 묶이는 전 시대의 애니메이션을 떠나서, 독자의 역사를 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거대 로봇물은 마징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탑승형과 미-일 합작애니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영향으로 형성된 지능형(그러니까 위의 등신대 로봇에서 추구되었던 미국식의 지능형이 거대 로봇에 이식된 것이라 보면 된다.)으로 크게 갈라져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 오고 있다. 물론 『기동전사 건담』의 시도로 인해 같은 탑승형이라 해도 로봇을 조종자의 신체의 연장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단순한 병기이자 소모품으로 여기는가 라는 취급의 차이가 등장하였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또한 같은 거대 로봇물이라도 위와 같은 조종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좀더 복잡한 기준에 따른 분류도 가능하지만 역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자이언트 로보』는 『철인 28호』(1963 제작, 1980 리메이크, 1992 속편) 및 『초인전대 바라타크』(1977) 이후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원격조종형 거대 로봇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특색은 『건담』 이후로 그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던 '거대로봇 = 거신(巨神)'의 이미지를 보다 세련된 형태로 현대에 되살려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조종자의 의지를 반영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조종자의 신체는 아닌, 독립된 존재로서의 '거신', 『전설거신 이데온』(1982)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에 나오는 것처럼 파괴와 종말의 대리인이 아닌, 보다 친밀하고 우호적인 존재로서의 '거신'을, 『자이언트 로보』는 현대에 보기좋게 되살려낸 것이다. (물론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자이언트 고그』(1984)에서도 '긍정적인 이미지의 거신'으로서의 로봇이 묘사되고 있지만, 이 경우는 완전히 자기의 의지를 지닌 '생명체로서의 로봇'이므로 『자이언트 로보』와는 경우가 약간 다르다.)

확실히 '로봇'이라는 존재는 힘든 일을 도와주고 인간을 편리하게 해 주기 위해 태어난 대용품이자 하인으로서의 역할을 그 주된 존재의의로 삼고 있다. 그러나 '거대 로봇'은 그런 실리적인 이유와는 동떨어진 영역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먼 옛날, 태고적의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처럼, 인간의 보다 거대하고 장엄한 것에 대한 동경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물결을 타고 은유적으로 투영된 것이 '거대 로봇'인 것이다. 만약 단순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거대한 로봇을 만들려고 한다면, 굳이 비효율적인 인간의 형상을 따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이언트 로보』는 그러한 '신화로서의 거대 로봇'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기념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Article (C) ZAMBONY 2001.05.09.
※영화전문 사이트 '네오필름' 애니메이션 코너에 기고한 글.
by 잠본이 | 2010/07/11 13:42 | 바벨의 농성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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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히무라 at 2010/07/11 18:00
자이언트로보는 정말 복합적인 세계관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마즈 관련 떡밥도 꽤 많던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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