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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로보 OVA : 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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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력으로 가득한 열혈무협의 세계!

무협이라 하면, 역시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고 범위 또한 다양하게 정할 수 있겠으나 일단 여기서는 중국 무협소설을 바탕으로 한 정통 무협만을 뜻하는 것으로 한정짓고 얘기해 보자. (사실 넓게 보면 『드래곤볼』같은 무국적풍의 격투물이나 『유랑인 켄신』같은 일본 고유의 사무라이 액션도 무협에 들어가지만 앞서 전제한 정의에 따르면 무협이 아닌 걸로 된다.)

의외로 정통 무협이란 장르는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융성한 장르이고, 실제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봐도 무협의 요소를 차용하거나 무협지적 구성으로 짜여진 작품은 많아도 실제 중국을 무대로 중국 고유의 무술을 등장시켜 정파와 사파의 대결 같은 고전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사나이 호연지기(그런데 그게 뭘까?)를 펼쳐나가는 정통파 무협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뒤져봐도 만화로 시작하여 TV애니화된 『철권 칭미』 정도가 눈에 띄고, 그밖에는 찾아보기가 극히 어렵다. (굳이 무대와 시간대를 옛날 중국으로 한정짓지 않는다면 『권아』나 『일격전』 같은 무술만화도 꼽을 수 있겠지만, 한국인들이 흔히 보는 무협만화와는 어딘가 좀 다르다. 좀더 억지를 부린다면 요리만화에 무협적인 요소를 결합한 『중화제일![中華一番!]』(국내명: 『요리왕 비룡』/『중화일미』)도 있기는 하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주된 이유라면 아무래도 워낙 오락의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고, 일본 고유의 사무라이나 닌자 등을 소재로 한 무용담이 흘러넘치는 만큼, 일본인들 자신이 굳이 정통 무협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 듯 하다. 즉 옛날 홍길동이나 일지매 같은 의적들의 모험담 빼고는 그다지 가슴후련한 고유의 무가적(武家的) 스토리를 갖지 못한 한국인들이 중국의 정통 무협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것을 어느샌가 '주류'로 받아들인 것에 비해,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정통 무협은 '주류'가 아니라 단지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받아들이는 '2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물론 필자가 무협지를 그다지 잘 아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 관측은 다소 불안정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이언트 로보』는 거대 로봇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통 무협물의 요소를 폭넓게 받아들여 마치 홍콩 무술영화를 보는 것같은 긴박감 넘치는 액션과 말도 안되게 황당한 필살기들이 난무하는 스케일 큰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특징은 같은 감독의 작품인 『기동무투전 G건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또한 같은 무협이라 해도, 한정된 스케줄 안에서 어린이를 주 시청자로 하여 TV용으로 만들어진 『G건담』의 경우는, 아무래도 틀에 박힌 필살기의 반복과 재강화, 그리고 패턴화된 드라마 구조와 주인공 1명에게만 집중된 연출 등으로 인해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 데 비해, 장기간동안 청소년 이상의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하여 보장된 퀄리티의 OVA로 만들어진 『자이언트 로보』는 훨씬 복잡하고 중후한 드라마와 안정감 있는 작화, 그리고 각 에피소드가 전부 클라이막스인 듯한 느낌을 주는 폭발적인 전개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뚜렷한 개성과 드라마를 부여하는 연출로 인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무대의 대부분을 중국계로 구성한 탓인지 몰라도 오히려 『G건담』보다 훨씬 무협영화의 색채가 강한 이색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정통 무협물이 아님에도 오히려 이러한 무협의 맛이 우러나는 것은, 역시 이마가와 감독 자신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홍콩영화 매니아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청도인과 양지의 등장장면 등에서 사용되는, 한문 붓글씨를 이용한 화려한 연출은 확실히 홍콩영화의 오마주라고 할만하다. 이 기법은 『G건담』에서도 사용되어, 화제를 모았다.)


■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이마가와 본인은 항상 '언밸런스한 밸런스' 즉 겉보기에는 불안정하고 균형이 깨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로 인해 불가사의한 균형이 성립되는 희한한 상태를 의식하며 연출을 했다고 한다. 무국적, 근미래의 어느 도시. 거칠거칠한 구레나룻을 기른 중세 중국풍의 무인과 멋드러지게 양복을 빼입은 유럽풍의 신사가 허공에서 격돌하고, 낡아서 허물어져 가는 새빨간 목제 건물들을 지나 터널을 통과하면 서치라이트가 야경을 비추고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금속제의 도시가 난데없이 나타나는 세계관. 단순히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미래 도시'라던가 그냥 목가적이고 자연스러운 '중세 농촌' 같은 알기 쉬운 배경과 사건에만 길들여진 시청자로서는 일순간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곧 감독이 펼쳐 나가는 파워풀한 드라마에 빠져들어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이 서로 녹아들듯이 공존하는 국경없는 세계. 감독 본인의 취향이 그래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도시도 홍콩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유치찬란하고 허점 투성이인 세계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여, 『자이언트 로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독특하고 기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무국적풍 도시의 표현에 대해서는 이미 실사영화에서 리들리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도전한 바 있으므로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영화보다 오히려 타성에 젖기 쉽고 단순하게 나가는 경향이 있는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생각 외로 모험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80년대말 이후 SF물에서 자주 발견되는 '리트로 퓨처 Retro-Future'라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SF속에서 그려지는 기존의 말끔하고 단정하며 발전 일변도인 미래상 대신, 오히려 산업혁명 초기로 되돌아간 듯한 중후하고 투박하며 거칠거칠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전에 묘사되었던 천편일률적인 미래상에 대한 회의와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오묘하게 혼합된 복고적인 경향이라 보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이나 진공관으로 움직이는 드럼통같은 로봇의 출연이라던가)

『자이언트 로보』 또한 외견상으로는 1900년대 초기의 디자인처럼 보이는 투박하고 둥글둥글한 메카나 시설이 무국적풍의 거리를 활보하는 복고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지만, 사실 그 내부에서는 시즈마 드라이브를 비롯한 미래의 과학기술이 쉴새없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옛날풍'의 센스는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주로 활약했던 원작자 요코야마의 구닥다리 분위기와도 묘하게 잘 맞아떨어져서, 자칫하면 어색하게 보이기 쉬운 세계관을 오히려 명확하고 친근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없지만, 그러나 어딘가에는 꼭 있을 듯한 그런 세계. 그것이 『자이언트 로보』가 활보하는 세계이다.


■ 요코야마 캐릭터 꿈의 대행진!

캐릭터라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넘어서서 생명을 얻어, 그 작품이나 작가가 사라지거나 잊혀진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숨쉬는 일이 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매력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아니고 거의 떼거리로 몰려나오는 것이 『자이언트 로보』라는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 캐릭터들은 전부 원작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다른 만화 속에 나왔던 녀석들을 다시 출연시킨 올스타 캐스팅이기 때문이다.

인용된 작품만 대충 열거해도 『자이언트 로보』(1967. -자이언트 로보, 쿠사마 다이사쿠, GR-2, BF단[명칭만]), 『수호전』(1967. -신행태보 대종, 흑선풍 철우, 공손승 일청도인, 지다성 오학인, 청면수 양지, 진삼산 황신, 소이광 화영, 양두사 해진, 쌍미갈 해보, 소패왕 주통, 타호장 이충, 완씨 삼형제, 혼세마왕 번서, 코•엔샤쿠, 기타 양산박 전투원들), 『철인 28호』(1956. -포글러 박사, 시즈마 박사, 닥터 던칸, 시므레 교수, Q보스, 무라사메 켄지, 갤롭), 『바빌 2세』(1971. -빅파이어, 아킬레스, 가루다, 넵튠, 츄우죠우 장관, 현혹의 세르반테스, 멋쟁이 휘츠카랄드, 쿠사마 박사, 바란), 『이가의 카게마루』(1961. -겐야, 해질날 없는 유우키) 『가면의 닌자 아카카게』(1966. -마스크 더 레드, 빅 골드), 『마즈』(1976. -충격의 알베르토, 오로시아의 이반, 격동하는 카와라자키, 대괴구 포글러, 우라에누스, 독토르 트란보), 『삼국지』(1972. -제갈양 공명, 생명종의 십상시), 『어둠의 도키』(1973. -직계의 도키, 혈풍련), 『늑대의 성좌』(1975. -긴레이), 『마법사 사리』(1966. -사니 더 매지션).

이러한 스타일의 작품은 테즈카 오사무의 『마린 익스프레스』(국내명: 『아톰의 해저특급』)나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하록사가 ∼니벨룽의 황금∼』 등에서도 시도된 바 있지만, 『자이언트 로보』가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원작자 요코야마가 전혀 손대지 않은 대신 이마가와 총감독이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과 캐릭터에 대한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부어 원작과는 또 다른 맛이 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악당이던 자가 정의의 편으로 활약하고, 원작에서는 정의의 주인공이던 자가 악의 앞잡이가 되어 주인공을 방해하고, 스타일이 비슷하여 서로 만나면 재미있는 대결을 벌일 듯 하지만 절대 만날 일이 없었던 캐릭터들이 만나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유쾌한 패러디 동인지를 보는 기분. (물론 원전을 아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얘기지만...)

사실 『자이언트 로보』는 요코야마 캐릭터들이 한데 몰려나와 꿈의 공연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그러한 것을 넘어서서, 독자적인 세계관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원전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최근에 비슷한 취지로 나온 OVA 『진[체인지!] 겟타로보 ∼세계최후의 날∼』의 경우는, 원작자인 이시가와 켄의 작품이나 이전의 겟타로보 시리즈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면 재미가 확연히 떨어진다는 난점이 있었다.)

참고로, 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한데 출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이른바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무리없이 해내려면 그만큼 많은 캐릭터를 가지고도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며 확실한 역할을 분배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연출력도 필수겠지만, 역시 그러한 캐릭터를 끊임없이 개발•축적해온 노하우와, 이것을 보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를 사랑하는 팬들의 존재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직 우리 애니계에는 쓸만한 크로스오버는 거의 전무한 편인 듯 하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군단과 메카-3)를 제외하면.) 다만 한두 명의 작가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출판만화 방면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상당히 자주 눈에 띄고 있다. (고유성의 『불사조)나 김진태의 『보글보글)이 대표적이다.) 언젠가 우리 애니계에서도 이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Article (C) ZAMBONY 2001.05.09.
※영화전문 사이트 '네오필름' 애니메이션 코너에 기고한 글.
by 잠본이 | 2010/07/11 13:17 | 바벨의 농성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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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이브스 at 2010/07/11 13:28
역시 기억나는 대사는

'악인에겐 부처님의 자비도 없다.'
Commented by 蘭忍 at 2010/07/11 14:20
[신한국황대장 the Animation 서울이정지하는날]같은거 안만들어줄라나요. 악역은 '복을 폰 보그라'라던가. 9대천왕에 '시민쾌걸 정의봉'넣고 "이것이 나의 생활비를 희생한 필살기 민족의 특단!"이라던지, 타호장 이충의 추혼탈명검급 작화로 핵분열슈즈어택도 보고싶(그만해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0/07/11 23:10
http://zambony.tistory.com/26
http://zambony.tistory.com/27
좀 다른 방향이지만 요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죠(...)
Commented at 2010/07/11 14: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0/07/11 14:22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10/07/12 09:09
뭐, 소설판이라던가 설정까지 끌어다 붙이면 참전인물들은
더 늘어나기도 하구요. (오오츠카 서장이라던가 딕 마키라던가)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0/07/12 20:47
http://zambony.egloos.com/528917/
그런 분들을 위한 용어사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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