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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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 지구여행 반다 북
미래의 지구는 독재정부의 지배 하에서 외계의 다른 별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키며 침략자로서의 오명을 쌓아가고 있었다. 총통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냉혹비정한 거대 컴퓨터 '마더'. 반대파의 대표자인 쿠도 박사는 컴퓨터의 인간 지배에 우려를 표하며 각성을 촉구하지만 총통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박사는 가족과 함께 외계로 이민하여 지구의 실상을 알리고 동지를 모으려고 하지만, 박사의 가족이 탄 우주선은 총통이 은밀히 지시한 폭파공작에 휘말려 산산조각나고 만다. 마지막 순간 탈출 캡슐에 옮겨져 우주로 투하된 박사의 어린 아들은 행성 조비에 표류하여 그곳의 왕에게 입양되고, '반다'라는 이름의 늠름한 왕자로 자라난다. 반다는 의동생인 미무르 공주와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결국 자신이 지구인이라는 비밀을 알고, 우주해적 블랙잭의 조비 침공을 계기로 지구를 향하여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1978년에 제1회 '24시간 TV이벤트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의 일환으로 닛폰TV에서 방영된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단막극 애니메이션. 일본 최초의 2시간짜리 TV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영된 시간대의 전체 편성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질적인 러닝타임은 94분이다. 첫 방영시에는 24시간TV 내에서 최고 시청률인 28%를 기록함으로써 이후 수년간 같은 이벤트의 일부로 테즈카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테즈카 본인은 당시 수많은 만화를 동시 연재하느라 몹시 바빴기 때문에 총감독 및 캐릭터 디자인은 아끼던 제자였던 사카구치 히사시[坂口尚]에게 맡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안, 연출, 작화 등에 참여하는 등 의욕을 불태웠다. 중간에 정지화면으로 제시되는 지구 역사를 요약한 캐리커처 수채화들도 테즈카 본인이 그린 것인데, 본편과는 달리 간략화된 성인 풍자만화의 터치로 그려져 있어서 흥미롭다. 당시 인기있었던 SF영화의 패러디도 찾아볼 수 있고(총잡이 로봇이 파괴될 때 '웨스트월드'의 율 브린너를 닮은 마스크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살짝 나온다든가, 우주해적의 부하들이 왠지 스톰트루퍼를 연상시키는 갑옷 차림이라든가 등등), <불새> 등의 테즈카 SF를 통해 잘 알려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왠지 개그스러운 우주생물의 묘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작화는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산만하고 조잡한 느낌도 들지만 제작 년도를 감안하면 극장판에 못지 않는 퀄리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반다가 자신의 출생비밀과 부모의 원수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를 포함하여 총 4개의 행성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전체적인 장르는 히로익 판타지와 우주 SF의 혼합물에 가깝지만 서부극이나 공포영화의 요소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지구인의 만행을 폭로하는 식으로 당시의 현실문제를 꼬집는 부분에서는 사회비평물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중간에 샤라쿠가 지구의 생성과정을 신나게 설명해주는 부분에서는 아예 교육용 과학 다큐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시대 배경은 직접 언급되지는 않으나 중간에 과거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타임머신의 미터기가 '2015'를 가리키며 극중의 '현재'는 그로부터 17년 뒤인 점을 생각해 보면 서기 2032년경으로 여겨진다.

미래의 지구인이 실수하는 바람에 시리우스에서 연구용으로 채집해 두었던 '공포의 감정'이 태고의 지구 전역에 퍼져나가 지구인이 현재와 같이 왜곡된 인종으로 진화했다는 반전은 나름대로 쇼킹하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시간여행 요소가 튀어나오는 부분에서는 약간 뜬금없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서 과거의 자신을 만나고, 죽음의 길로 떠나는 부모를 말리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전개는 어찌보면 되게 흔해빠진 패턴이지만 그래도 역시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는 효과가 있다.) 주인공들이 타임머신의 시간이동 기능을 이용하여 적진에 잠입, 모든 사건의 원흉인 거대 컴퓨터를 처단한다는 후반부 플롯은 1983년에 테즈카가 연재했던 만화 <프라임 로즈>를 의식한 설정으로 추측된다.

테즈카 팬이라면 반가울 만한 캐릭터들이 여기저기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햄에그는 악당 도쿠다미의 심복으로, 수염아저씨는 주인공에게 정보를 주는 지구인 바텐더 '에도'로, 샤라쿠는 시리우스성의 괴짜 만물박사로, 오챠노미즈 박사는 악당 실리콘 일가의 문지기로 각각 등장하는데, 특히 오챠노미즈의 경우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음침한 소악당 역할을 맡고 있어서 이채롭다. (등이 굽은 실루엣이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보면 오히려 돈 드라큐라의 이고르가 나오는 게 더 어울릴 듯하지만) 또한 지구인의 파괴적인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스파이더가 스리슬쩍 스쳐지나가며, 에도의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진 뒤에는 구경꾼들 속에 테즈카 본인과 아톰이 잠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우정출연은 아마도 막강한 우주해적으로 나와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블랙잭일 것이다. 원작과 별 차이가 없는 검은 코트와 양복 차림을 하고 있지만 미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팔이나 가슴 부분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계부품을 약간씩 부착하고 있다. 검술과 사격 솜씨도 일급이고 육박전으로도 주인공을 압도할 정도의 실력파. 첫 등장시에는 주인공이 자라난 고향을 유린하고 주인공을 다른 별의 사막에 내팽개치는 냉혈한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어릴 때 총통에게 납치당한 주인공의 형이며 해적질은 복수자금을 모으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설정이 밝혀지면서 최종결전에서는 어깨를 맞대고 함께 싸우는 처지가 된다. 성우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데슬러 총통으로 유명한 이부 마사토(당시는 이부 마사유키)가 담당했는데, 주인공과 대조되는 '어른의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를 충실하게 연기하고 있다. 얼굴의 칼자국은 원조 블랙잭처럼 폭발사고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고, 어릴 때 총통의 부하들에게 입은 상처로 설명된다.

주인공 반다의 두번째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조비 행성의 주민들은 특수한 링을 착용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스토리의 전개와 맞물려 꽤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남들과 달리 변신이 불가능한 자기 체질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가 하면, 검술 연습에서 변신능력자의 다양한 공격을 순전히 용기와 완력과 잔머리만으로 막아내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주인공의 진정한 강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또한 중반에 반다와 합류하여 여행을 같이하는 정체불명의 분홍색 변신동물(결말에서 조연 중 누군가의 둔갑한 모습으로 밝혀진다.)이 보여주는 가지각색의 임기응변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행동거지를 통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테즈카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변신(메타몰포제)'의 꿈을 제법 효과적으로 구현해 낸 사례라 하겠다.
by 잠본이 | 2010/02/21 00:44 | 아톰대륙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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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이 닛폰TV의 '24시간 텔레비전 ~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라는 이벤트 속의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던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제1탄 &lt;백만년 지구여행 반다 북>에 이은 제2탄이기도 했던 만큼 대대적으로 테즈카다운 색채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후 테즈카 오사무 원작의 스페셜 애니메이션 ... more

Commented at 2010/02/2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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