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본? 성은요?' '그냥 잠본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포털 잠본이라고도 부르지만.' '포털... 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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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루즈 제3권
원제: 어떤 개인 날 (환상문학웹진 '거울' 연재)
저자: 김주영
출판사: 서울문화사

동화에나 등장할 법한 이계의 존재들이 인간들 틈에 숨어 사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약간 다른 세계. 그러한 존재들의 고민을 접수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초현상을 추적하는 자들을 ‘해결사’라고 부른다. 나름대로 괜찮은 재능과 실적 덕분에 1급 해결사로 알려진 주인공 이카는 오늘도 이계와 인간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녀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동일한 주인공이 매번 다른 상황에 직면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옴니버스 형식의 시리즈로, 이번 제3권에는 유흥업계의 실세인 강남 제비들의 갑작스런 집단 발병과 그들을 돌봐주는 농촌 주민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강남 제비전」, 국가간의 정략결혼에 필요한 ‘잠의 미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잠들 수 없는 미녀」, 가출하여 성냥 모양 환각제를 판매하는 소녀를 찾아 헤매는 「러브 혹은 사랑」, 진실만을 말하는 마법의 거울이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서 생기는 파국을 그린 「진실의 거울」 등 총 4개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위의 내용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는 잘 알려진 전래 동화에서 그 이야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상황, 아이템을 차용해 와서 전혀 다른 맥락으로 둔갑시키는 ‘비틀기’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또한 그러한 비틀기는 단순한 패러디에 머물지 않고 작가 특유의 환상적이면서도 시니컬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하는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거꾸로 비춰보고 그 부조리함을 인식케 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래 동화 비틀기라는 기본 발상은 작가가 1990년대 말에 발표한 ‘다시 쓰는 시리즈’에서 싹튼 것인데, 작가의 대표작인 SF 옴니버스 '나호 시리즈‘의 스타일과 이 발상을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일궈낸 것이 본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http://redfish.pe.kr/)에서 확인 가능하므로, 이 책을 읽고 기분전환 삼아 함께 읽어본다면 더욱 알찬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라이트노벨로 포장하여 판매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현재 라이트노벨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식의 청소년 모험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고 자극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와 사회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 다양한 캐릭터들의 인생 경험을 통해 우러나오는 잔잔한 감동에 역점을 두고 읽는다면 그런 대로 만족스럽다.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하게 현대풍으로 각색된 동화 속 캐릭터들의 성격 묘사 역시 이 시리즈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을 싫어하는 공갈협박 전문의 변태 예술애호가 산타클로스나 천재적 사업수완과 왕성한 행동력으로 왕실을 먹여 살리는 불면증의 일중독자 공주 등등) 다만 조역이나 1회성 출연자들의 개성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주인공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는 역효과가 있고 사건의 전개도 주인공의 능력이나 의지보다는 타인의 도움이나 우연히 얻은 정보 등 부차적인 요소에 의존하여 스리슬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문제로 남는다. (아무래도 단편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긴 하겠지만)

이번 권에서는 그동안 계속 뭔가 있을 것처럼 암시만 던지면서 궁금증을 유발해 왔던 주인공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실마리가 상당 부분 드러남으로써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출판사의 사정 때문에 종이책 버전은 이번 권에서 마무리를 짓고 이후의 이야기는 본래 시리즈가 발표되었던 웹진 ‘거울’(http://mirror.pe.kr/)을 통해 이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주인공이 세계를 뒤흔들고 천공의 감시자들까지 벌벌 떨게 만드는 예측불허의 파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약간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비밀이 완전히 밝혀졌을 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하여 주인공과 세계가 충돌하게 된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무한하게 다채로운 이야기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에 기대를 걸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지난 1~2권을 복습하는 것도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SF무크지 「미래경」 제1호(2009년 7월, SF&판타지도서관)에 기고한 글.
by 잠본이 | 2009/12/27 20:10 | 대영도서관 | 트랙백 | 핑백(3)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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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는 단행본 3권까지 복습한 뒤 이후 연재분을 정주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관련링크: 연재 게시판 | 작가 공식홈페이지 +잠본이의 단행본 리뷰: 1권 | 2권 | 3권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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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브, 2005년)  ㆍ ○「소리사랑」제2호 (허브, 2006년)  ㆍ ○ SF무크지 「미래경」 vol. 001 (SF&판타지도서관, 2009년 7월)  ㆍ신간 리뷰 : 『이카, 루즈』 제3권 - pp.239~240 ○ SF무크지 「미래경」 vol. 002 (SF&판타지도서관, 2010년)  ㆍ - pp.402~410  ㆍ단평 : 『아돌프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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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에 기대를 걸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지난 1~2권을 복습하는 것도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원문 작성: 2009-12-27 김주영라이트노벨서울문화사웹진거울장편판타지패러디한국소설 Previous article Be the first to comment Leave a Reply 응답 취소로그인 ... more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09/12/27 20:52
이카루즈는 확실히 '어른들의 사정'으로 살리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죠.
ㄴ네리아리가 전적으로 '내용'만으로 본다면 별 4개 줘야 할 정도군요.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12/28 00:01
이게 사실 '미얄의 추천'보다도 여러모로 나았는데.
질적으로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한국적' 어쩌고 하는 측면을
떠들어 볼작시면 더 그랬고.
Commented by mattathias at 2009/12/28 01:02
이 글은 잘 쓰긴 했지만, 라이트노벨은 아니었어요.
사긴 했지만 나올 거면 일반 소설 형식으로 나오는 게 나았을 뻔했죠.

글 자체가 결국 약간의 연결 고리를 두고 이어지는 단편 연작 내지는 액자 형식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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