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Y대 중앙도서관★-끝없는 노동의 수레바퀴 속에서 시스템의 일부로 짜맞춰진 주인공은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불명확한 가족과 옛날의 평범한 생활에 대한 기억을 에너지 삼아 불만과 피로를 꾹꾹 눌러가며 주어진 일을 다 하지만... 과연 그가 생각하는 대로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는 해방되는 걸까? 라는 무거운 주제를 꽤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가는 사회파 휴먼SF 모노드라마. 배급사는 이 작품을 마치 달기지에 감춰진 엄청난 스케일의 비밀을 찾아내는 심리 스릴러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그런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았다가는 실망하기 딱 좋을 정도로 잔잔하고 애처롭고 눈물나는 스토리이므로 일체의 기대를 배제하고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컨셉만 들어보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우주개발과 인공지능)나 <남극일기>(폐쇄된 극한상황) 같은 영화를 상상하기 딱 좋지만 실제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주로 로이 배티와 동료들 입장에서)와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주로 콧수염 찰리의 입장에서)를 짬뽕한 것에 가깝다. ('노동SF'라는 서브장르가 존재한다면 그쪽으로 분류하는 편이 좋으려나)
-주연을 맡은 샘 록웰은 2명의 클론을 번갈아가며 연기하여 사실상 1인극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주는데, 외모는 당연히 똑같지만 건강상태, 체험의 깊이, 생활태도, 취미, 성격 등등이 완전 정반대인 두 사람을 확실히 구별되게 연기하면서 둘의 상호작용도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감탄했다. (그외에도 등장인물이 있긴 하지만 주로 녹화된 화면이나 통신을 통해서만 나오고 비중은 거의 없다. 인공지능 거티가 그나마 비중이 있긴 하지만 케빈 스페이시의 캐스팅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거티의 음성은 사실상 촬영이 끝난 뒤에 입혀졌다고 한다.) 서로의 존재와 자기자신의 정체에 대해 충격을 받은 두 클론이 처음에는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면서도 차차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태의 진실을 깨달아가면서 서로를 걱정하고 도와가는 모습은 메마른 사막 위에 핀 한 송이 꽃을 보는 듯한 청량감과 훈훈한 감동을 준다.
-이 배우, 알고 보니 <갤럭시 퀘스트>에서는 자기는 맨날 죽는 역이라며 징징대던 엑스트라 '가이'로 나왔고, <미녀삼총사>에서는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기업 경영자로서 목숨을 위협받는 '녹스'로 나왔더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자포드 역도 있긴 한데 이건 내가 이 영화를 못 봐서 할말이 없고) 내년에는 <아이언맨 2>에서 스타크를 위협하는 라이벌 기업가로 나올 예정인데 과연 내가 이 영화를 진지한 눈으로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보통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라면 원본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복제가 출현하여 티격태격하는 게 보통인데(마이클 키튼의 <멀티플리서티> 등등) 여기서는 [
원본은 아예 멀리 저편에서 상관없이 살고 복제만 줄창 나와서 기계부품처럼 교체되다가 그중에서 사고를 당하여 진실을 깨닫는 놈들이 나와 그들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이라 꽤 신선했다. (이완 맥그리거의 <아일랜드>도 좀 비슷하다는 얘길 들었지만 이건 예고편만 본 상태라 비교 불가능) <2001>의 할처럼 인공지능이 배신을 때리는 전개는 아닐까 싶어서 약간 기대(?)했지만 멋지게 그 기대를 배신한다. [
처음에는 회사의 명령에 따라 주인공을 속이지만, 주인공의 질책에 은근슬쩍 당황하는 모습을 이모티콘으로 보여주면서 나름의 내적 갈등(컴퓨터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을 암시하다가 결국 그(인간)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협력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그 중요한 달기지를 컴퓨터 하나와 사람 하나에게만 달랑 맡겨놓고 접촉을 끊어버리는 괴악한 시스템은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고향별과 완벽하게 차단된 환경에 격리된 인간의 고독과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작극상의 장치로 이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SF는 '과학'소설이기 이전에 과학'소설'이니까. (영화 끝난 뒤에도 단 하나 알 수 없는 건 첫번째 샘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환각으로 보았던 여인의 정체인데... 그냥 몸이 아파서 헛것을 보았다 정도로 끝난 건지 아니면 그가 알던 누군가의 모습이 투영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근무지 이름을 하필 한국어로 '사랑'이라 짓다니... 게다가 [
지구로 여행을 떠난다고 믿고 관 속에 들어가지만 사실은 수명이 다하여 황천길로 떠나는 것인 역대 클론들에게 비디오에 녹화된 담당자가 남기는 마지막 인사가 '안뇽히 가쉐요']라니... 작금의 우리나라 노동현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왠지 의도된 블랙코미디같은 여운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경의를 표하려고 별 생각 없이 넣었다고 하니 이러한 해석은 나의 과민반응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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