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물섬에 1회짜리 단편으로 실린 물건이었는데 작가는 신문수씨였고 주인공은 다른 작품에서 항상 조연이나 지나가는 행인으로만 나오던 탱구 녀석이었다. (매일같이 T자가 박힌 모자를 쓰고 다녀서 대체 원래 머리모양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나는 캐릭터였는데, 가끔 가다 모자를 벗는 장면을 보니 별 특징 없는 삼각형 빡빡머리였던 듯) 집없이 헤매는 굶주린 노인을 도와준 탱구가 그 노인으로부터 수상한 성냥을 선물로 받는데 성냥을 켤 때마다 도깨비가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이런저런 일에 성냥을 사용하여 즐거워하던 탱구 녀석이 학교에 갖고 갔던 성냥을 선생님에게 들키고 불장난하려 한다고 오해를 받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성냥을 빼앗긴다. (탱구가 '요술 성냥'이라고 변명하지만 '네가 마술사냐! 요술성냥을 들고 다니게!'라는 핀잔만 듣는 안습한 상황~) 교무실로 돌아온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져서(당시는 금연건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무심코 그 성냥을 그었다가 도깨비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하고 그제서야 탱구의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지만, 이미 성냥을 다 써버린 뒤여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더라는 이야기다.
도깨비를 마치 램프의 거인같은 존재로 바꿔놓은 설정이 흥미롭긴 한데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는지라 딱 적당한 분량으로 끝을 낸 듯 하다. 이 이야기가 내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 의문의 노인(마지막 위기가 지나간 뒤에 다른 선생님이 '혹시 신령님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한다)이 탱구 집에 들어와 밥을 얻어먹으며 그동안 이런저런 집을 돌아다녔으나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신세타령을 하는 장면인데 그때 '누구누구네'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애들 이름이 아주 걸작이다. 바로 촉새, 콩자, 혁이, 팔팔이, 펄렁이 등등 그동안 신문수 만화에 나왔던 주/조연급 캐릭터들이 (비록 대사에서만이지만) 총출동하는 것이다. '그동안 별 상관없었던 걸로 생각했던 만화들이 하나의 장대한 신문수 월드였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꽤 웃겼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바로 이 단편의 결말이다. 성냥을 모두 잃고 침울해진 탱구는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하며 안타까워하는데 밖에서 누가 초인종을 누른다. '그 할아버지가 또 오셨나' 싶어 탱구가 나가보니 집배원 아저씨가 책 한 권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얘기가 실린 보물섬 ○월호가 나왔단다!' 탱구는 광희난무하며 '더 좋은 선물이 왔구나!'라고 외치고 이야기는 그대로 끝난다. 단지 장면 하나로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이야기를 스리슬쩍 마무리하는 그 기술에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극중 인물이 자기들 얘기가 만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자세한 건 ○○권을 읽어봐~'라는 식으로 어필하는 장면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마지막 결말을 내는 장치로 대담하게 써먹은 건 진짜 전무후무한 듯)
확실히 보물섬 시절은 망작도 많았지만 이렇게 신선한 아이디어도 찾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다 지나간 시절이니 좋은 것밖에 기억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